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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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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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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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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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타투도 패션?

DUMMY

유송은 그 점을 말하며 부탁해왔다.

유리잔을 맞은 날부터 지금까지, 서로 어떤 점이 다른가 고민한 끝에 나온 말이겠지.


“그래, 물어보면 답해주는 것쯤이야. 평소에도 그러고 있잖아?”


녹호도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의미다.

설령 말실수를 하더라도 언제까지는 용인하겠다는 뜻도 있었다.


하긴, 늘 그래왔지.

상식에 도전하는 듯한 말을 내뱉지만, 전부 다 제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왔다.

만약 자신이 반박하지 못할 근거를 들이민다면, 최소한 받아들이는 시늉도 했지.

언짢거나 마지못한 기색을 보이더라도 말이다.


“그럼 바로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러든가.”

“그 학생···.”

“배테이.”

“예, 테이 양과 마지막 대화는 훈훈하게 끝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녹호는 그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꾸했다.


“선택권이 없었다잖아.”

“무슨 선택권 말이십니까?”

“그때 들었···. 아니, 바로 못 떠올린다고 했지.”

“······.”

“네가 나보다 낫다고 했어. 그나마 아군으로 할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다고.”


유송도 뒤늦게 떠올린 듯이 입을 열었다.


“저는 그때 녹호 씨가 화를 낼 줄 알았습니다. 학생이 버릇없게 굴었잖습니까?”

“짜증은 났었어. 밥도 남겨, 돈으로 달라고 해, 심지어 내가 용돈 찔러준 건 까먹었나 편들어준 사람이 너밖에 없었다고 하잖아?”

“예쁘게 생겼던데···. 많이 마음에 안 드셨나 봅니다.”

“그따위 조건이야, 그냥 복사해버리면 그만인 걸. 흥미가 가는 타입은 아니지.”


녹호는 멍청함을 경멸한다.

그런 의미에서 테이는 지나치게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작고 인형 같은 얼굴이나 절로 신경이 쓰이는 가녀림 따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사람에게.


“그런 것치고는 이것저것 많이 챙겨준 느낌이었습니다. 범한 실례는 한두 개가 아닌데, 조언까지 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입금까진 그럴 수 있었다.

어차피 썩어나는 게 돈인 인간이니까.

하지만 다독여주는 것도 모자라, 조언까지 해주는 모습은 정말 의외였다.


“방금도 말했잖아. 걘 선택권이 없었다고.”

“겨우 그 이유 하나 때문입니까?”

“겨우 이유 하나면 적당히 물렸지. 문제는 그렇게 구멍이 하나 나니까 다른 이유도 줄줄 새어 들어왔거든.”


유송이 고개를 갸웃했다.

다만, 되묻기도 전에 뒷말이 연이어 나온다.


“끌어올 아군이 없으니까 간택해주면 따라야 하고, 그 생각에 동조해야지. 살려면 어쩔 수 없으니까. 본인이 고르지 않았으니, 책임도 못 묻고.”

“아···.”

“머릿속에 든 내용에 책임이 없으니까, 나도 마냥 대답을 요구해서도 안 돼. 적당히 그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그 입장도 생각해줘야지.’

녹호가 내뱉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말이다.

그게 겨우 한 마디로 생겨난 변화라니.

그토록 시달렸던 입장에서는 허탈할 만도 했다.


“그럼 무조건 배려해준다는···.”

“그런 말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겠지. 걔가 하는 행동에 내가 이유를 대야 하니까.”

“무슨 뜻입니까?”


녹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태어난 대로, 배운 대로 살아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거기서 벗어나라는 말은 학문을 창시하라는 소리랑 같으니까.”

“그 정도입니까?”

“뭐, 상황이 닥쳐오면 하겠지. 근데 그것도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져야 요구할 수 있는 법 아니겠어?”


타고 나지도, 배우지도 않았는데 올곧게 나아갈 수 있을까?

아이가 저지른 실수를, 무작정 비난하는 게 옳은가?

녹호는 그에 회의적이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애니까 어른이 참아야 한다’고 할까?”

“아···.”


차량이 점차 속도를 줄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배워야 할 사람, 그리고 배운다는 사람은 배려해줘야지.”


녹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차에서 내렸다.

유송은 그 말에 멍하니 있다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주차하고 들어와.”


녹호가 내린 곳은 지난번 그 고급스러운 카페 앞.

덩치를 불려갈 사업이 처음 시작되는 곳이기도 했다.

멀리서 본 내부엔 열댓 명이 불편한 기색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넓은 보폭이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금세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새하얗고 멋스러운 내부가 반겨줬다.

그때도 그랬듯, 고급 레스토랑이나 예식장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상하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건만, 안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한 얼굴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니.


“왔어?”


시선이 갑자기 들어온 녹호에게 쏠릴 찰나, 인영이 화색을 띠며 다가왔다.

아마 계속 기다려왔던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태연한 척을 하더라도 모든 게 처음이겠지.

그런 만큼 속으로는 아군을 간절히 바랐을 터였다.


“시간 딱 맞춰 왔네?”

“뭐, 잘하고 있을 테니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곧 있으면 반이라는 소리잖아? 그 정도면 됐지.”


농담처럼 하는 말에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그래, 반은 끝났어. 이제 면접 시작해야지.”


그런 말을 하면서 앉아있는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척 봐도 2, 30명은 되어 보이는 수가 목례를 취했다.

녹호도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꽤 많네? 듣도 보도 못한 곳일 텐데.”

“어. 그래서 나도 곤란해. 원래는 여기서 하려고 했는데, 안쪽으로 한 명씩 들어와서 면접을 봐야겠어.”

“그럼 밖에서 안내할 사람이 필요한가?”


인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있는 편이 훨씬 좋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건 생각 못 했나 봐.”

“처음이라. 여긴 뭐든 쉽게 풀리진 않네. 네가 왜 돈이 권력을 뜻하지 않는다고 한 줄 알겠어.”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멀쩡한 법인을 갑자기 구매할 순 없다.

동시에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갑자기 회사를 세우긴 힘들다.

노동자를 구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인력은 있어야 편하기 때문이다.

지금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난잡하게 진행됐겠지.


“주차하고 왔습니다, 녹호 씨.”

“그럼, 여기서 인원이나 관리하고 있어.”

“예? 뭘 어떻게 말입니까?”

“10분 후에 5명을 들여보내. 그리고 5명이 나오면 다음 5명을.”

“알겠습니다.”


녹호 먼저 앞장서서 직원 휴게실로 향했고, 인영이 그 뒤를 따라갔다.


“다행이네. 네가 도와줄 사람을 데리고 와줘서.”

“이런 일을 맡을 하부조직을 만들어야 해. 너 혼자 뛰어다닐 수 없으니까.”

“사람 10명 뽑기도 힘든데, 나중엔 진짜 어떻게 하지?”

“그땐 오히려 더 쉬울 걸?”

“응?”

“10명을 뽑을 땐 1명이 뛰어다녀야겠지만, 100명을 뽑을 땐 5명이 걸어 다녀도 되거든.”


휴게실 문이 열린다.

그러자 호텔 방 같은 내부가 두 사람을 반겼다.

밖만 깨끗하고 고급스러운 게 아니라 여기 역시 마찬가지다.

마침인지, 딱 좋게 마련된 면접관 자리는 공간에 균형감마저 줄 정도다.


“괜찮네. 왜 안쪽에서 면접을 봐도 되겠다고 한 줄 알겠어.”

“딱히 계획은 아니었는데. 뭐, 웬만하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보여줄 필요까지 있었나?”

“글쎄, 자랑은 좋은 법이잖아?”


인영은 작게 미소를 지으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장난을 거하게 친 악동이 떠오르는 모습이다.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다는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인영아.”

“응? 왜?”

“우린 똑같은 쓰레기야. 근데 하고 싶어서 안달 난 말을, 나한테까지 참을 필요가 있을까?”


그 말에 악동 같은 웃음에 민망함이 스민다.

꼭 옆자리에 앉은 짝꿍을 몰래 찔렀다가 걸린 듯한 얼굴이었다.

지금껏 내보인 적 없는 풋풋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 입으로 말하긴 뻘쭘한지, 살짝 빼는 기색도 보였다.


“그냥, 뭐···.”

“그래, 말하지 마.”


녹호가 튕기자, 인영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눈치 빠르고 잔뼈 굵은 사람은 딱 보면 안다고!”

“그래?”

“보통은 월급 봉투로 판단하는데, 진짜들은 이런 휴게실을 더 보고 싶어 해. 그럼 좋은 곳인지 아닌지 확실해지거든.”

“흠, 가성비를 따지나?”

“그것도 있지. 환경이 힘들면 병원비가 더 많이 나가니까. 근데 그보다는 안정성이 더 중요하지.”

“안정성?”

“어. 복지에 신경 쓰는 회사가 월급을 밀리게 두진 않을 거잖아? 준다는 만큼 매달 따박따박 들어온다고. 알바하는 입장에서는 이 당연한 게 얼마나 중요한데?”


장난감을 눈앞에 둔 고양이가 이럴까?

가늘었던 눈이 크게 뜨였고, 동공은 유난히 땡그랗게 확장됐다.

목소리는 속삭이듯이 은근해졌다.


“분명 여기 들어오면 다들 주변을 살필 거야. 이때를 놓치면 안 돼. 그 순간이 포인트거든.”

“다들 반사적으로 둘러보긴 할 텐데?”

“반응이 다르다니까? 싹수가 다른 알바는 한 번 보고 흠칫하고선 좀 더 둘러볼 걸? 그러다가 견적 계산 끝내고 갑자기 열정이 샘솟을 거야!”

“오, 그래?”

“그럼! 그런 애들이 진국이야! 잔뼈도 열심히 뛰어야 굵어지는 법이거든!”


속삭이는 목소리로 고함이라.

얼마나 신이 났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살짝 등만 밀어주자 방방 뛸 정도라니.


아니, 대화 상대가 녹호니까 가능한 일일까?

그만큼 편하고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다른 이였으면 내보이지도 못할 면모였다.


“큼! 어쨌든 에이스를 뽑을 방법이 있다는 소리야.”

“이제 다섯 명 들여보내겠습니다!”

“아무튼 안심하고 있으라고.”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열린다.

줄지어서 들어오는 다섯 사람.

다들 방금 들었던 말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생각보다 좋은 내부를 잠깐 관찰하는 기색이다.


다만, 미세한 차이 정도는 있는 걸까?

인영은 예리하게 모두를 훑으면서 비교했다.

꼭 먹잇감을 고르는 맹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선 녹호에게 속삭인다.


“잘 모르겠는데?”


녹호가 작게 생겨나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아니, 그 뜻이 아니고···.”

“알아, 무슨 말인지.”

“진짜?”

“어. ‘나는 그렇게까지 유능한 사람은 아닙니다.’라는 소리잖아?”

“야, 이···. 아니라고! 그냥 에이스는 없다고!”


속삭이는 고함이 울려 퍼졌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진짜 빡쳤을 때 나오는 소리였다.

커다란 손은 자기 입을 가리더니 시선을 지원자에게로 던졌다.


“뭐야? 웃음을 왜 참아? 이 새끼, 진짜 무슨 뜻인지 알고 있었잖아?”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관찰을 이어간다.

그리고 한 사람을 지목해서 말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네.”

“탈락.”

“···네?”


인영이 지원서를 보여주려던 찰나, 녹호는 성급히 결론을 내렸다.


“왜요? 이름도 말 안 했어요.”

“손등에 문신. 여기는 그런 거 곤란해서.”


그 말대로 검은색 그림이 슬쩍 튀어나와 있었다.

꽃이나 다른 식물쯤 되는 듯했다.


“요즘엔 타투도 다 개성인데, 넘어 가주시면 안 될까요?”


작가의말

그..., 이 소설이 하렘물인 이유를 아십니까?

한 작가가 있었습니다.

순애물을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피카레스크를 쓰게 된....


순애가 정의라고 생각하지만 이루지 못한 슬픈 짐승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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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6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9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2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9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9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6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3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6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5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6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9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2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0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9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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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4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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