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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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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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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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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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게으른 자살

DUMMY

도플갱어는 불행과 함께 태어났다.

그리고 또 다른 불행에게 팔려나가기도 했다.

지긋한 불행이란, 어쩌면 그와 친구일지도 몰랐다.


“뭐, 그런 얘기야. 앞으로 달라질 부분은 없어. 계속 그래왔듯이, 돈만 가지고 사업을 키워나간다고 생각하면 돼.”

“···정말 괜찮아?”

“뭐가? 사업?”

“아니, 계속 가족이랑 헤어져 왔으니까···. 아버님께서는 슬퍼할 수 있었지만, 넌 아니었잖아.”


씁쓸한 미소가 그 입에 걸렸다.


“딱히. 말했잖아, 아버지는 형한테 정신 팔려있었다고.”

“······.”

“그냥 평소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유산을 덜렁 받은 것뿐이야. 좋은 부모지.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진짜 녹호 역시 혼자였다.

마지막 순간, 편안히 죽은 이유도 그 탓이었겠지.

이제야 불행을 버려두고 떠난다는 생각에.

그건 너무나도 게으른 자살이었다.


이를 도플갱어 역시 이해하고 있던 듯했다.

지금 표정 위로 떠오른 씁쓸함은 정말 진심처럼 보였으니까.


“어머니는 남았잖아.”


인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 같이 살아도 되잖아? 어차피 가족인데.”

“돌아가긴 늦었어. 벌써 잘살고 있거든. 내가 가봐야 불협화음이지.”


아마 진짜 피녹호의 부모를 말하는 중이겠지.

재산분할이든 위자료든 넉넉히 받았으니, 모자람 없이 살고 있을 터였다.

재혼하고서 가정을 꾸렸을 확률도 높다.

도플갱어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이야기지만.


“보고 싶잖아.”


하지만 뒤이어 나온 말에는 잠시 굳어버렸다.

그 한 마디만큼은 상관이 있었다.


“참고, 모르는 척하고. 너랑 안 어울리는 짓이야.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그렇게 약해 보여?”

“아니, 별일 아니면 더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냐? 망설일 이유가 없잖아? 쫄?”


무심한 듯이 내뱉은 대꾸.

평소 유송이 보내는 걱정보다 훨씬 투박하고 어색했다.

하지만 녹호는 오히려 편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그쪽만 문제인 게 아니라, 나도 손해거든.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아.”

“내가 직접 얼굴을 마주 보래? 방법은 많잖아.”

“멀리서 지켜보는 거?”

“그것도 있고. 대화할 수도 있지. 모르는 사람인 척.”


인영은 간단한 일이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바타라고 해야 하나? 무선 이어폰 귀에 꽂게 해서 움직이면 되잖아.”


녹호는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끔뻑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들었다는 반응이다.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고선, 갑자기 작게 웃음을 뱉었다.


“좋네, 찌질하고.”



***


천선분식.

유송이 문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줬다.


“어머, 아가씨 왔어요?”

“네, 오늘은 가볍게 먹고 가려고요.”

“그래요? 뭐 줄까요?”

“음, 떡볶이 하나, 순대 하나요.”


자리에 앉아서는 자연스레 창밖을 바라본다.

한적한 거리가 그 눈에 들어온다.


“음식 나왔어요.”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 좀 피곤해 보이네요?”


아주머니는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말대로,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표정이다.

초췌한 얼굴은 아닌데 말이다.


“그냥···, 일이 힘들어서 그렇죠.”

“뭐가 그렇게 힘든데요?” “늘 똑같죠. 일 자체보다는 곁가지로 있는 인간관계가요. 애초에 그 탓에 돈을 많이 받긴 하지만요.”


씁쓸한 한 마디에 아주머니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혹시 맞았어요?”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럼요?”


유송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직장 상사가 무리한 일을 해서요. 그런 짓을 계속하면 큰일 날 것 같은데, 멈추질 않아요.”

“아···.”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해봤는데, 의미가 없네요. 차라리 최근에 합류한 사람이 저보다 나을 지경이에요.”

“그럼 기운 빠질 만하죠. 그렇게 노력했는데 다른 사람이 더 잘 해내면요.”


아주머니가 유송을 위로했다.

가깝게 지내왔던 만큼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몰랐다.

손까지 맞잡고선 따스한 눈빛을 보내올 정도였다.


“혹시 그 사람이 키 큰 여자분이에요? 얼굴 갸름해서 눈꼬리 얇아서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번에 직장 상사랑 왔었어요.”

“그래요?”


한 번 녹호가 여기로 데려왔었지.

그때, 인영을 눈여겨본 모양이다.


“근데 난 좀 별로더라.”

“···네?”

“애가 못 되게 생겨 가지고, 순진한 남자애들 홀릴 것 같더라고요. 자고로 여자는 아가씨처럼 순둥순둥하고 야무진 사람이 최곤데. 그쵸?”

“그게···, 그런가요?”

“당연하죠! 그런 여우 같은 기집애는 혼구녕이 나봐야 해요! 그걸 남자들도 알아야 할 텐데!”


오히려 유송이 당황한 표정을 들었다.

위로받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뒷담화까지 갈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하긴, 이런 방법만큼 확실한 다독임은 없는 법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알아주겠죠. 그때까진 착한 아가씨가 참아요.”

“네? 아, 참아야죠! 네, 참아볼게요!”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인지, 우울한 기색은 사라진 후였다.



***


교회.

평소 예배처럼 예현이 입장했다.

모두 근엄한 저 얼굴을 기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단상에 올라간 후까지 말이다.


“다들 들어서 알고 있겠지?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기게 됐다네.”

“와···!”

“기뻐해주니 고마운 일일세.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자네들 덕이야.”


우러러보는 눈동자에는 축하하는 빛이 흘러넘쳤다.

신앙심··· 아니, 충성심이 더욱 강해진 것만 같다.


“그런데 어찌 내가 영광의 순간을 나 홀로 누릴 수 있을까. 당연 함께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예현은 그렇게 말하며 단상에서 내려왔다.


“모두 함께 가지. 그곳으로.”

“···네? 지금이요?”

“그렇다네.”


예배 시간.

당연하게도 그동안 약속이 있을 리 없겠지.

간다고 하면 모두가 출발할 수 있었다.


“기도는···.”


누군가 딴지를 거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다만, 예배 시간이기에 이렇게 떠나도 되는가 싶겠지.


“이 발걸음은 아버지께 인사하러 가는 길을 익힘일세. 이에 경건함을 느끼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으며, 마음을 쏟지 못할 까닭이 어디에 있겠는가?”


예현은 그 앞으로 가서 근엄하게 꾸짖었다.

예상한 반응 중 하나겠지.

무작정 권위로 누르지 않았다.

오히려 신성한 이유를 대면서 자신이 옳다고 주장했다.


“더군다나 이 중에 길눈이 어두운 형제, 자매도 있을 터. 지금 가보지 않는다면, 다음에 길을 잃을 수도 있다네.”

“아···.”

“사랑을 잊음은 아버지를 잊는 일일세. 명심하게나.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낙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네.”


정설을 이어 붙은 말은 감히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던 일도 더 깊은 뜻이 있다고 납득하겠지.

이렇게 차차 권위를 쌓아간다.

자신은 언제나 옳다는, 상대를 강요할 수 있는 힘을.


“다들 출발하지.”

“예, 목사님.”


예현이 발을 옮겼다.

교회를 나가 도로로.


“다들 서로를 챙기면서 움직이세.”


늦은 저녁.

교회에서 나온 행렬이 길을 가로지른다.

30명은 되는 사람이 한 번에 움직이다 보니, 어수선한 감이 있었다.

여기엔 예현이 다소 느긋하게 나아가는 탓도 있겠지.


도착하기까지 한참 걸릴 듯했다.

예배 시간 동안 이동하겠다는 이유도 납득이 갈 정도다.

이렇게 느리게 간다면야.


“어!”


그런 어정쩡한 행렬.

짧은 단말마가 울려 퍼졌다.

곧 철퍽 소리와 함께 뒤에서 누가 넘어진 모양이다.


“누가 넘어졌는가?”

“아, 제가···.”


서주였다.

높은 힐까지 신고 있는데 너무 느리게 움직이다 보니, 오히려 불편했던 모양이다.


“걸을 수 있겠니?”

“네? 아, 네. 괜찮아요.”


잠깐 절뚝이다가 일어난다.

예현은 웬일인지, 서주를 크게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 옆으로 오렴. 아직 땅이 얼어서 더 조심해야 한단다.”

“그럼···, 감사합니다.”


서주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움직였다.

부축까지 받으며, 앞으로 조심조심 나아갔다.

멈췄던 대열도 다시 가다듬어진 후, 앞으로 향한다.

저기 새하얀 건물을 향해.


낡은 티가 나긴 하지만, 규모는 제법 컸다.

고딕 양식을 참고한 듯 지붕이 뾰족했고, 외벽은 따로 페인트 칠을 한 듯이 흰색이 선명했다.

누가 봐도 성당이나 교회로 생각할 정도였다.

하긴, 권위란 전형적인 면이 있기 마련이지.


“여기가 새 보금자리라네.”


예현은 문 앞에 섰다.

새하얀 교회를 등진 모습은 꽤 잘 어울렸다.

중후한 외모는 이렇게 오래된 곳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느릿하게 문을 밀고 나가는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들어가도록 하지.”


넓어지는 문틈으로 교회 내부가 보였다.

달동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짜 종교시설이 뭔가를 볼 수 있었다.

높은 천장과 위에서 환하게 쏟아지는 조명, 종교화와 성모 마리아 석상도 보기 좋게 자리했다.

기존에 있던 교회를 인수한 덕이다.


“와···.”


작은 교회에서만 예배를 지내던 신도들은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책상 위에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다네. 인원수는 맞을 테니, 각자 하나씩 가져가면 된다네.”

“네,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곳에 온 김에 약식으로 기도를 하고 파하도록 하지.”


예현은 그렇게 말한 후 단상으로 올라갔다.

신도들 역시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기도를 드리지 않고 끝내는 게 찝찝했겠지.

그렇게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허전하지만 열성적이었다.


“오늘 이곳까지 오는 동안 어땠는가?”


예배는 가볍게 질문으로 시작됐다.


“좋았습니다!”

“걸으면서도 설렜어요!”

“얼른 달려가고 싶었어요!”


반응은 좋았다.

새롭게 교회를 옮긴 날인 만큼, 다들 들뜬 모양이다.


“다들 기뻐 보여서 다행일세. 하지만 나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네.”


그 말에 다들 갑자기 어리둥절한 기색을 띠었다.


“낯선 길인 만큼 조심히 나아갔다네. 더군다나 관절이 좋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은가? 아마 다들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네.”

“아···.”

“하지만 한 명 넘어진 사람이 있었지. 딱히 몸이 약하지도 않은 이인데도 말일세. 서로 더 배려했다면 이렇게 됐을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네.”


들떴던 분위기가 갑자기 경건해졌다.

죄를 반성하고 회개하는데, 장난스러울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도 뜻이 있으니, 그런 사건을 만드셨겠지. 우리의 해이해진 마음을 경고하기 위해서 말일세.”

“그런 뜻이···.”

“당분간 예배는 구 교회에서 이곳으로 오는 과정을 포함하도록 하겠네. 다들 길에 익숙해질 때까지, 서로를 돌보며 노력하세.”


예현은 두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기도를 시작하지.”


작가의말

아무래도 주제가 주제인 만큼 공지문 하나를 쓰고 있습니다.

입산 주의 표지판 같은 느낌으로요.
지금 파란색 보라색 사이트 합쳐서 선호작 24명인데, 다음주까지는 세워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해자 30명 이상이면 저도 양심이 좀...

지금 여기까지 와주신 분들께는 여러모로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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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2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9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9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6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4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6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5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6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30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3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1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40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4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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