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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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최근연재일 :
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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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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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달란트

DUMMY

여자는 뒤를 돌아보면서도 뚱한 표정을 지었다.

대화도 섞기 싫은 얼굴이다.


“혹시 안에서 이상한 소리 안 났나요? 막 칸막이를 두드린다거나.”

“······.”

“아이가 혼자 들어갔거든요. 혹시 사고라도 났나 싶어서요.”


그 말에 역시나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꾸했다.


“모르겠는데요.”

“아, 혹시나···”


경찰이 뭐라고 덧붙이기도 전에 쌩하고 나아갔다.

시간 낭비하기 싫다는 듯이.


“···싸가지.”


등 뒤에서 나지막한 불평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저 바쁜 일이 있다는 듯이 발을 옮길 뿐이다.

금세 응급실이 있는 1층을 지났다.

빠른 발걸음은 이제 바깥바람을 쐬기 직전이었다.


“···잠깐만 들어갑시다!”

“응급실에는 아무도 출입하면 안 됩니다!”

“우리 기자야!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움직이는데 막아서?! 당신 누구야···!”


겨우 입구를 빠져나가려는데도 시끄럽다.

이미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탓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들어가 시체라도 찍어서 돌아가겠다는 기색이다.


“나가는 건 되죠?”

“아, 예! 다들 비켜요! 사람 지나가잖아요!”


여자가 그런 인파를 가로지르며 나아갔다.


“에이, 공치게 생겼네.”

“선배님,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여긴 제일 먼저 나오는 기사 복붙하고, 우리는 경찰서 쪽으로 붙어야지.”

“그런다고 뭐가 돼요?”

“야, 거긴 무조건 뚫려! 잘 아는 형사한테 양주 한 병만 찔러주면 수사 정보까지 털어낼 수 있다고!”


다들 바빠서 그런지, 이쪽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시끄러운 무심함 속에서 여자는 유유히 주차장으로 향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모시겠습니다, 천선 씨.”


유송은 여자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차로 이끌었다.

완벽히 탈출에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


수요일 저녁.

예현이 신도와 함께 예배하는 시간대이기도 했다.

다만, 그게 꼭 교회 건물에서 이뤄진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모든 게 목사 뜻대로 되는 사이비니 말이다.


얼마 전에도 그랬듯, 사람의 행렬이 우르르 움직였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규모가 더욱 컸다.

거의 80여 명은 될 듯하니까.


“항상 고민했다네. 그대들이 보이는 신앙심을 어떻게 화답해줄 수 있는가.”


예현은 가장 앞에서 대열을 이끌며 한 장소로 향했다.

그곳은 손님이 없는 카페였다.

새하얀 내부가 아름답기만 한.


“그래서 한 사업가와 만났다네. 제휴를 맺어서, 낸 헌금의 일부를 이 건물에서 쓸 수 있는 재화로 바꾸기로 했지.”


녹호의 사업체.

그 안으로 다 같이 우르르 들어왔다.

미리 얘기가 됐던 건지, 직원은 이미 배치된 상태였다.


어색한 일은 예배 시간에 이곳을 왔다는 사실뿐이다.

하긴, 이제는 기행조차 익숙해졌겠지.

무언가 속뜻이 있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말이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어느 정도까지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말일세.”

“아···.”

“자세한 일은 앉아서 듣게나. 미리 준비해뒀으니.”


확실히, 평소와는 카페 좌석 배치가 달랐다.

이 인원을 받기 위해서 훨씬 의자를 많이 가져다 두었다.

게다가 뭔가 설명할 것이라도 있는지, 거대한 스크린도 함께 갖추었다.


그래, 발표용 화면.

농구 골대 같은 형태에 케이블과 전선을 연결하는 장치였다.

작정한다면 어디든 가져가서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다.

준비한 PPT를 보여준다든가, 방송화면을 송출한다든가.


“설명은 신도 한 명이 수고해주기로 했다네.”


그 말과 함께, 서주가 앞으로 나섰다.

화면 역시 곧바로 빛을 내며 제목을 띄웠다.


‘예현 교회 달란트, 적립과 사용’


교회에서 쌓는 포인트, 그건 당연하다는 듯이 달란트라는 단위를 사용했다.


“우선, 새로 오신 형제자매님들 손을 들어보시겠어요?”

“저요.”

“저도요.”

“네, 다들 기억하시나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목사님께 인도하신 날 말이에요.”


서주는 가볍게 운을 띄우며 시작했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분노해도 괜찮으나, 자신을 사랑하는 선 내에서 하라.’”

“아, 그때···.”

“목사님께선 항상 저희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세요. 이 달란트는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드신 시스템이에요.”


찬양과 개인적인 해석을 섞어서 말한다.

예현도 만족하는 기색이다.

타인의 입을 통해 나온 칭송은 큰 설득력을 가지는 법이니까.


“사용법은 간단해요. 매달 적립해드리는 달란트를 돈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그냥 편하게요. 체크카드를 쓴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심지어 그냥 혜택을 준다는 말인데, 의심할 필요가 어디 있을까?

화면은 계속해서 넘어갔다.


“교회 운영비에서 할당하는 일이에요. 그래서 적립은 활동을 누가 충실히 했는지에 따라 차등 지급할 거예요.”

“기준은···.”

“예배 참석이랑 봉사 비용도 있어요. 물론, 이 체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헌금 비중도 크고요. 어쨌든 여러분께 이익이에요. 평소대로 지내면 아무 대가 없이도 달란트를 드리는 거니까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했을 일이니 맞는 말처럼 들리겠지.

죄다 헌금으로 유지되는 체계일지라도.


“당장은 이 건물 내에서만 쓸 수 있어요. 여기 카페를 포함해서, 미용실이나 네일샵, 헬스장도 이용 가능해요.”

“와···.”


화면이 넘어가며 여러 사진이 나온다.

대부분 자기 관리와 관련되 업종이었다.

카페와 통일성 있게 리모델링을 하자, 더욱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꼭 호텔 리조트 같다고 할까?


“놀라긴 일러요. 아직 개점을 안 한 층도 있거든요. 갈수록 사용처는 늘어갈 거예요. 새로운 빌딩에 지점을 내면 더욱 더.”


이어서 층마다 어떤 업종이 열릴지, 그 예정이 적힌 화면이 나온다.

확장과 정비는 계속되겠지.

더 좋아진 시설을, 더 접근성 좋게 누리게 될 터였다.


“혹시 질문 있으세요?”

“아, 저! 그럼 카드는 언제 받나요?”

“그건 발표가 끝나고 나눠드릴 거예요. 다음 사람?”

“얼마를 받게 되죠?”

“그건 요청하실 때 산출식을 보여드릴게요.”


가벼운 질문 세례가 지나갔다.

대답은 수월했고, 금세 끝이 다가왔다.


“그럼 발표를 마치고, 이제부터 카드 나눠드릴게요.”


서주가 물러났다.

그후, 챙겨온 카드를 배부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주네?”

“이걸로 머리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거야?”

“네일샵, 가보고 싶어도 못 갔었는데···.”


카드는 다 똑같이 생겼으련만, 신기하다는 듯이 자랑해댔다.

이런 걸 받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태블릿 PC를 받은 학생들이 떠오를 정도로, 다들 해맑기만 했다.


“다들 기분 좋은가?”


예현은 모두가 기뻐할 때 등장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네. 아, 그래. 이곳의 간식도 먹어봐야겠지.”


직원에게 눈짓을 하자, 쟁반을 들고 신도에게 향한다.

마카롱과 과일 주스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제품이기도 할 터였다.


“이 카페는 내일부터 정식 개장한다네. 자리가 있다면 원할 때에 와서 쉴 수 있지.”

“감사합니다.”

“아닐세. 항상 속상했다네. 가족을 위해 어느 부분은 항상 포기해왔을 것 아닌가? 이제 달란트로 자기 자신도 챙기길 바란다네.”

“아···.”


식구가 딸렸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은 못 하지만 참고 사는 부분이 많을 터였다.

돈 몇 푼은 안 하지만, 자식 얼굴이 생각나면 못 하는 법이지.

아까 했던 말처럼, 네일샵 한 번만 가고 싶었는데 참았다거나.


“만약 스스로 다독이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면 자멸하기 마련이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과격한 방법으로 저지른다든가.”

“확실히···.”

“다들 수긍하는 기색이군. 혹 그런 사건을 들었는가? 최근 유독 시끄러웠던 일 말일세.”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교육청에 불난 거···.”


웅성대듯이 한 마디가 나온다.

당연하게도 그건 최근 일어난 방화 사건을 가리켰다.


“그래. 사고가 일어난 당일, 그런 뉴스가 나왔지. 한 교사가 학교 폭력 가해자를 감싸는 자살 테러를 벌였다고 말일세.”

“네, 맞아요.”

“어떻게 그런···.”


대화가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 예상했을까?

영상은 일찌감치 준비되어 화면으로 나왔다.


-속보입니다. 어젯밤 벌어졌던 교육청 방화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건물로 다시 들어가 사라졌던 범인이 다음날 태연히 출근했다고 합니다. 경찰은 이를 확인하고서···


현묘의 얼굴은 교육청에 근처에 있던 모두가 확인했다.

심지어 대화를 나눴던 사람도 있었으니 신원도 확인했겠지.

다만, 살아있을 거라는 생각은 도저히 하지도 못한 채.


“공범은 도주 우려가 있어서 긴급 체포도 했다지.”


동영상이 멈추고선, 새로운 사진 몇 장이 연이어 나왔다.

외투에서 생수병을 꺼내는 CCTV 장면.

그리고 범행을 도운 학부모를 구속 수사한다는 보도자료까지.


현묘보다 더 우선순위가 높았다.

CCTV에 찍힌 공범 말이다.

여긴 살아있으니 언제든 달아날 수 있었다.


“테러범도 뒤늦게 붙잡았고 말일세.”


가장 늦게 현묘.

사건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서, 아침이 되어서야 학교와 집으로 찾아갔을 터였다.

그런데 찾아가보니 멀쩡히 살아있다니.

경찰이나 언론이나, 다들 경악할 만했다.


“여기서 공범이란, 학부모를 말하는 걸세. 혹 그 이유를 아는 이가 있는가?”

“네, 자기 자식이 학교 폭력 저지른 걸 옹호하기 위해서라고 들었어요.”

“그런 추측이 합리적이겠지. 학부모와 교사가 테러를 일으키고, 대놓고 그런 담론을 나눴다면 말일세.”


복수와 선행.

그 두 가지를 모두 해낼 방법이란, 이것을 의미했다.

현묘는 교사로서 이룩한 모든 업적이 무너졌다.

동시에 학부모에게도 날벼락이 떨어졌으니, 그 자녀들도 상당히 곤란할 터였다.

이제 일진 노릇 따위는 꿈에도 꾸지 못하겠지.


“다들 이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교사와 부모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말일세.”

“요즘 세상에 참···.”

“애 잘못 감싸려다가 부모 인생까지 망해버린 거죠.”

“부모가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애한테는 인과응보겠죠. 이제 학교 폭력도 조사가 이뤄질 거고요.”


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평범한 반응은 이러리라 싶겠지.

그게 상식이니까.

하지만 옥상에서 도플갱어가 말했던 바는 가식이 아니었다.


“한 가지 묻고 싶네만, 혹시 범죄자가 ‘살인은 나쁘다’라고 주장한다면 코웃음을 칠 건가?”

“네? 당연히···.”

“당장 살인을 저지르러 갈 생각이고?”

“그건 아니죠.”


다들 무슨 소리냐는 듯한 태도다.


“맞는 말일세. 악인이 말한다고, 진리는 더럽혀지지는 않는 법이지.”


작가의말

(댓글 알람 꺼둔 작가는 아마 지금쯤 이불을 털고 있을 겁니다. 청소, 청소.)


웬만하면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확인하고 쓰려고 합니다.

수사 정보가 기자에게 유출 얘기는, 최근 마약 수사를 당했던 한 배우님 사건에서 가져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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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66화. DJ뭐야 +2 24.03.02 36 0 12쪽
» 65화. 달란트 24.03.02 33 0 12쪽
64 64화. 탈출 +1 24.03.02 31 0 12쪽
63 63화. 테러리스트 24.02.29 26 0 12쪽
62 62화. 불 필요한 건물 24.02.28 26 0 12쪽
61 61화. 불가해한 잘생김 24.02.27 29 0 12쪽
60 60화. 숨막히는 잘생김 24.02.27 32 1 12쪽
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9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9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6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3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6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5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6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9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2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0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9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40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40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3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4 1 13쪽
37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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