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은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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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ya
작품등록일 :
2023.12.25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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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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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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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정신 붕괴

DUMMY

***


“···왜 안 왔지?”


서주가 텅 빈 집에서 중얼댔다.

인영이 말도 없이 외박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못내 찝찝한 모양이다.


그래도 먼저 연락하지는 않는다.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아직 원망이 그대로 남아있는 탓이겠지.

결국, 더는 기다리지 않았고 문밖으로 나선다.

골목을 내려가고 금세 교회까지.


“목사님, 계세요?”


오늘은 서주가 예배 준비를 돕는 날.

예현을 찾으면서도 몸은 잔뜩 움츠린 채였다.

며칠 전 일 때문에 한껏 조심스럽겠지.


“목사님?”


안쪽에 있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일찍 왔구나.”

“네, 그런데 혹시 오늘은 제가 상담할 수···.”

“예배가 끝나고 얘기할 수 있을까? 어제 바빴던지라, 오늘 준비가 모자라구나.”

“알겠어요. 그럼 저는 청소하고 있을까요?”

“그래, 수고해주렴.”


다행히 예현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예배 준비를 부탁할 뿐이다.

서주는 이에 안심하고 밖으로 나가 청소를 시작했다.



***


예배가 끝나고 예현이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러자 서주는 달려가듯이 앞에 나서서 입을 조잘댔다.

다른 신도를 제쳐서 눈총을 받더라도 말이다.


“목사님, 오늘 예배도 잘 들었어요.”

“그랬다면 다행일세.”

“아, 그리고 나중에···”

“잠깐만 기다려주겠는가?”


예현은 서주를 우선 물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무슨 고민이 있는가?”

“제 아이가 요새 야위어 보여서요. 어디 아픈 건 아닐까요?”

“허허, 걱정하지 말게나. 아버지께서 지켜봐달라고 내 기도하고 있다네.”

“정말요?”

“그렇다네. 그러니 어떤 병마가 감히 아버지를 거슬러 침범할까?”


퍽 다정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어쩌면 나이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무리 예현이 관리를 잘한 외모를 가졌다고는 해도, 중년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누군가와 잘 어우러지는 대상은 비슷한 연령대 사람들뿐이다.


“목사님, 저희 딸에게도 기도해주실 수 있을까요?”

“무슨 일이 있는가?”

“아니요, 몇 년째 타지에서 일하는 중이라···. 얼굴이 안 보이니까 걱정이 돼서요.”


낡은 손이 제 턱을 쓸어내렸다.

꼭 고민이라도 하는 듯한 손짓이었다.


“흠, 그래도 병원은 가보는 편이 좋을 걸세.”

“네? 설마 아픈가요?”


예현은 웃음을 터뜨리며 보기 좋은 얼굴을 해 보였다.


“허허, 설마 그렇겠는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그럼요?”

“아버지께서 이리 말씀하셨지. ‘감히 나를 시험하지 말라’고. 굽어보심을 믿고 방탕히 굴면, 없던 화도 입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

“제 몸도 마찬가지라네. 귀찮음과 아버지를 핑계 삼는다면, 그땐 시험을 받을지도 모를 일일세.”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그 말을 듣던 다른 신도 역시 크게 감명을 받은 얼굴이었다.


“목사님, 저도 고민이 있습니다.”

“뭔가?”

“그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계속됐다.

진작에 끝난 예배는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길어졌다.

표정이 좋지 않은 건, 한 사람뿐이었다.


“이제 다들 고민이 조금씩이나마 해소된 것 같군.”

“네. 감사합니다, 목사님.”

“날이 어두우니 다들 조심히 돌아가게나.”


이마저도 끝이 나기는 했다.

다른 신도도 모조리 돌아갔고, 남은 사람이라곤 따로 상담 얘기를 꺼냈던 서주뿐이다.


“···목사님.”

“그래, 오래 기다렸구나. 안쪽에서 얘기할까?”

“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그 사실이 못내 불편한 모양이다.

하지만 예현에게 불평을 말할 수는 없었다.

눈앞에 있는 신에게 어떻게 대들 수 있을까?

이제라도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주겠니?”


방으로 가면서 예현이 입을 열었다.


“제가 목사님을 위해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싶어서요.”


응접실.

소파에 두 사람이 털썩 주저앉았다.

긴 예배는 하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지치도록 만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니?”

“목사님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서주야, 이미 말한 일이란다. 내게 거짓말을 하는 건, 가장 의미 없이 죄를 짓는 일이라고.”


예현이 선명한 눈빛을 해 보였다.

중간에 다시 변신을 하지도 않았건만, 기세가 정정하기만 했다.


“거짓말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겠지. 그러니 그리 큰 죄는 아닐 거란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니?”

“······.”

“제대로 말해주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위압감에 눌린 걸까?

서주가 혼난 아이처럼 눈치를 살폈다.

에둘러서 말했지만, 모든 게 들킨 것처럼 굴었다.

아니, 신의 자식이 눈앞에 있으니 실제로도 그렇게 느낄 터였다.

여기서 더 거짓말을 한다면···.


“···질투 나요.”


드디어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서주는 버려지길 각오할 정도로 대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저만 알고 있잖아요, 목사님이 어떤 분인지. 제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

“어떤 일이 있다면 제가 먼저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한테만···.”


나를 봐달라는 질투였다.

합당한 말이기도 했다.

가장 아끼는 사람인 양 굴었지만, 정작 대우는 그보다 못하다니.


예현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한 미소를 은은히 입가를 맴돌았다.

그리고 만족스러운 눈빛을 내비치며 질문을 내뱉었다.


“그럼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수 있겠니?”


위험한 말이다.

사이비가 젊은 여자를 착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쉽게 대답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당연하죠!”


그렇지만 이미 세뇌는 끝났다.

서주는 언제든 자신을 희생시킬 준비가 끝났다.


“알겠단다. 먼저 바다를 갈라주겠니?”

“···네?”


그저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예현은 상황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았다.

악인일 뿐 멍청이는 아니었다.

꼬리가 밟힐 만한 짓을 삼갈 인내력과 더 먼 곳을 볼 시야도 있었다.


“다음엔 맨몸으로 하늘을 날아주렴. 시간 날 때 백두산을 서울에 옮겨줘도 좋고.”

“목사님,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서주가 불편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안단다. 너는 할 수 없는 일이겠지. 그러니 부탁하지 않는단다.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할 뿐이지.”

“아···.”

“마찬가지란다. 손이 모자라면 모를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쪽에 맡겨야겠지.”


인자한 종교지도자 같은 대답이었다.

서주도 비슷한 인상을 받을 터였다.


“가령, 네 조카라든가.”


이 말만 없었더라면 말이지.


“···네?”

“너를 버릴 일은 없을 거란다. 다만, 우선순위가 있을 뿐.”

“······.”

“인영 양에게 먼저 협조를 구해야겠지. 근처에 있는 사람 중 누구보다 이쪽 일을 잘 알지 않겠니?”


예현을 바라보는 시선이 흐려졌다.

눈동자는 어떤 빛도 반사하지 못했다.

마치 볼펜을 쥐고서 마구잡이로 그린 동그라미처럼 눈빛은 탁하디탁하기만 했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이.


“저기요! 계세요?”


마침이라고 할까?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주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사람이었다.


“인영이···.”


시꺼먼 음색이 울려 퍼졌다.

이 괴로움을 물감으로 만든다면,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서주야, 잠깐 안에 들어가주겠니?”

“······.”

“아무래도 조카와 먼저 대화해야 할 것 같단다.”


다시 한 번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작은 몸은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예현이 가리키는 대로, 구석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저기요, 계세요?”


바깥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바로 문밖까지 다가왔다.


“들어오게.”


예현이 한 마디 내뱉자, 그제야 문이 열렸다.

인영이 생각보다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시원시원한 보폭이 안으로 들어왔고, 곧바로 소파에 앉았다.

손에는 웬 케이크 상자도 들고 있다.


“무슨 일인가?”

“소개해준 사람이랑 잘 풀려서요. 감사 인사 겸해서 왔죠.”


첫 마디가 호의적이다.

납득이 가는 일이기도 했다.

녹호와 함께 대화 끝에, 예현을 용납하기로 결정했지.

그런 만큼 마냥 날을 세울 수도 없었다.


“그래, 다행일세. 그럼 앞으로 자주 보겠군.”

“뭐, 그렇겠죠.”


대화는 언뜻 다정하게 들렸다.

이제 서로 죽여야만 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적어도 속마음에 있는 칼날은 숨겨야만 했다.


‘카가각···’


이 대화 밑으로 작은 소음이 바닥을 기었다.

마치 손톱이 나무 문을 긁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유일하게 칼날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이 저곳에 숨어 있었다.


“저기 안쪽에 뭔가 있나요?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데요?” “기다란 물건을 벽에다가 세워뒀는데 서서히 흘러내리는 모양일세.”

“정리하고 오세요.”

“괜찮다네. 어차피 깨지는 물건도 아니니.”


안에는 보이지 않는 괴로움이 가득하겠지.

하지만 인영은 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설마 이모가 여기에 지금까지 있을 줄은 몰랐겠지.


“어쨌든 부탁드리고 싶은 건 하나예요. 제 이모, 건들지 마요.”

“건들다니?”

“일일이 설명할 필요 없잖아요. 그냥 서로 얼굴 붉힐 일 없도록 하자고요. 만약 이모 손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어떤 의미인지는 쉽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예현은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답했다.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 가족에게 내가 어떻게 함부로 대하겠나?”

“네, 믿도록 하죠. 이만 가볼게요. 이모를 만나러 가야 해서요.”


인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는 할 말이 없는 듯한 태도였다.

곧 문소리가 들리고 금방 발걸음이 멀어졌다.

이제 슬슬 교회 밖으로 나갔겠지.


“나와도 된단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이 스르르 열린다.

서주가 어딘가 무너진 표정으로 느릿하게 나온다.

손끝에는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인영 양이 호의적이라서 다행이야.”

“······.”

“너도 이제 슬슬 가보렴. 의문은 다 풀었잖니.”


하지만 예현은 그 모습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제 할 말만 계속해댈 뿐이다.

서주는 입을 몇 번 우물거리더니 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 참.”


그 뒤에 대고 한 마디가 더 흘러나왔다.


“조카와 화해하고 싶다면 숙취해소제 정도는 들고 가는 게 좋을 거란다. 어제 술을 마셨으니 말이야.”


잠깐 멈춰 섰던 서주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였다.

마치 감정을 누를 수가 없어, 도망치기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작가의말

우리 모두 사이비를 조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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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5화. 달란트 24.03.02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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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아득한 잘생김 24.02.26 29 0 11쪽
58 58화. 압도적인 잘생김 24.02.26 29 0 12쪽
57 57화. 법인 관리 +2 24.02.25 28 0 12쪽
56 56화. 장천선 24.02.25 26 0 11쪽
55 55화. 재회 +1 24.02.24 28 0 12쪽
54 54화. 성역 24.02.24 23 0 11쪽
53 53화. 성범죄자 목사 24.02.23 31 0 12쪽
52 52화. 타투도 패션? +1 24.02.23 25 0 12쪽
51 51화. 역겨움 24.02.22 25 0 13쪽
50 50화. 밥 +2 24.02.22 26 1 12쪽
49 49화. 보수적인 남자, 진보적인 여자 +1 24.02.21 31 1 12쪽
48 48화. 게으른 자살 +1 24.02.21 29 1 12쪽
47 47화. 혁명 마렵네 +1 24.02.20 32 1 12쪽
46 46화. 따뜻한 자본주의 +1 24.02.19 30 1 12쪽
45 45화. 따돌림 +1 24.02.16 33 1 12쪽
44 44화. 여고 앞 +1 24.02.15 44 1 13쪽
43 43화. 미련과 후련 +1 24.02.14 39 1 12쪽
42 42화. 절연 +1 24.02.13 39 1 12쪽
41 41화. 이간질 +1 24.02.12 40 1 12쪽
40 40화. 고양이 +1 24.02.09 40 1 12쪽
39 39화. 동료가 되어라 +1 24.02.08 43 1 12쪽
38 38화. 한강 다리 +2 24.02.07 44 1 13쪽
» 37화. 정신 붕괴 +1 24.02.06 4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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