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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최근연재일 :
2024.09.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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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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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안전 귀가

DUMMY

누구나가 즐겁다는 금요일 출근길인 덕분일까.


소미의 출근길은 발걸음부터가 이미 들떠있었다.


이미 3개월을 다닌 회사라지만, 새로 배정받은 팀으로의 정식 출근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이런 날을 출근하자마자 존경하던 선배의 축하 메시지로 시작하려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대리님 제가 언제나 감사하다 생각하는 거 다 아시죠? 꺄~ 저 너무 좋아요!]


소미는 신나서 감탄사까지 섞어가며 제 기분을 한껏 담아 한 번 더 답장을 보냈다.


잠시 좋지 못했던 옛 시절을 주마등처럼 떠올려보며, 그녀 스스로가 대견하다 맘속으로 거듭 칭찬해주었다.


짝짝!


“자자, 다들 오늘 업무 끝나고 회식 있는 거 알고들 있죠?”


퇴근 시간을 삼십분가량 앞뒀을 무렵, 경쾌하게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호쾌한 성격의 팀 내 분위기 메이커인 이미연 대리가 박수 소리와 함께 팀원들을 주목시키고 있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늘부로 팀에 윤소미씨가 정식으로 들어왔으니, 환영 회식하는 거 알죠? 내일 주말이니까! 다들 뺄 생각 말고 코가 삐뚤어지게 달릴 준비들 합시다.”


“아유, 미연대리님은 그냥 소미씨 핑계로 또 달리고 싶은 거 아니에요?”


“어머, 날 뭐로 보고? 다 겸사겸사 그런 거지 뭐.”


누군가의 대답과 장난스러운 농담들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요즘은 저녁 회식은, 특히 금요일 회식은 꺼리는 분위기라지만,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있던 덕분인지 이 팀은 분위기가 좋았다.


내빼기는커녕 이미 달릴 준비 정도는 가뿐히 마쳤다는 듯, 몇몇의 책상 위에는 녹색의 숙취해소제 병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팀장님! 저의 오늘 꽃등심으로 달리는 거 맞죠?”


“자, 갑시다. 이런 날은 칼퇴죠. 칼퇴!”


회사에서부터 시작된 들뜬 분위기는 회식 자리까지 이어져 점점 고조되어 갔다.


덕분에 가뜩이나 기분이 좋았던 소미의 텐션도 분위기에 취해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것도 과하면 독이 된다고.


“하하.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팀장님도 한 잔 주세요. 아하하하.”


누군가가 강력히 주장했던 꽃등심과 함께 열 명 남짓한 팀원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잔을 채워갔다.


사람들의 축하와 환영 인사말 속에서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또···.


그리고 언젠가부터 몇 잔인지 세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부어라 마셔라 끊임없이 들어가는 술들이 피로한 직장인들의 목을 축였다.


개중에 오늘의 텐션왕을 꼽자면 단연코 소미였다.


회식 자리에 가기 전부터 기분이 잔뜩 들떠 있었던 그녀는 사람들이 주는 축하주를 좋다고 여과 없이 몽땅 받아 마셔댔다.


제 주량이 모를 나이도 않은 나이건만.


잔뜩 들떠버린 심장이 쉴 새 없이 쿵쾅대며 술을 외쳤고 긴장이 함께 풀어져 버렸다.


법인카드로 먹는 최고급 꽃등심과 함께, 나에게 내일은 없다는 듯 신명 나게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고···.


이대로 먹다 죽어도 여한이 없었다.


“어머, 소미씨.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헤헤 괜찮아요. 더 마쉴···, 수 있거드뉴···.”


“그으래? 그···, 렇다면 한 잔 더! 마쎠!”


이제는 왜 마시기 시작했는지도 잊어버리고 천둥벌거숭이처럼 그저 신이 났다.


그렇게 깔깔거리며 시시한 농담에 빵 터졌다···, 고 생각한 다음 순간은.


아침이었다.


“응?!”


***


“으으······. 어제 언제까지 달렸더라?”


소미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는 아침이라기보단,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시간이었다.


길가에 뻗어 드러눕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 해야 할까.


기억이 끊긴 이후, 그녀가 는 뜬 곳은 낯선 곳이 아닌 내방, 내 침대 위였다.


침대 위로 손을 더듬어 스마트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미친. 오래도 잤다. 아으윽···, 토 할 것 같아. 그래도 용케 집은 잘 찾아왔나 보네.”


전날 과음의 여파로 극심한 갈증과 숙취가 몰려왔다.


잠도 숙취도 아직 덜 깼는지 온몸이 젖은 이불이 된 것같이 무거웠다.


“역시 기특한 윤소미 사원님. 흐흐 윤소미 사원이래.”


머리에 돌덩어리가 든 듯 지끈거려 왔지만, 천근 같은 다리를 들어 올려 기분 좋게 이불을 팡팡 걷어찼다.


그럼에도 소미는 제 입으로 말한 윤소미 ‘사원’이라는 말에 그저 마냥 기분이 좋았다.


거지 같다고 생각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언제 끝날지 모르겠던 백수 생활도 완전히 청산했겠다.


보증금 압박에 완도까지 내려가서 이상한 선이나 봐야 할 뻔했던 위기도 이겨냈는데.


고작 이깟 숙취 따위에 질 수는 없었다.


소미는 으쓱거리며 탱탱 불은 반쪽짜리 눈으로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우선 잠을 깨기 위해 냉수부터 한 컵 따라 마셨다.


“크아···! 살 것 같다.”


목이 타는 듯했던 갈증을 뚫고 시원한 물 한 모금이 소미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정수리 끝까지 얼얼한 느낌이 들자, 이제야 몸이 좀 살 것 같았다.


“아, 어제 거기 진짜 맛있었는데.”


숙취로 괴로운 와중에 콧노래와 함께 혼잣말을 흥얼거렸다.


공짜 회식 최고다.


함께 하는 대리님도 재밌었고, 재미는 없어도 얼굴이 유잼인 팀장님은 회식 자리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소미는 비식비식 새는 웃음을 삼키며, 남은 냉수를 생명수라도 되는 마냥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한 번에 많은 양의 차가운 물이 갑자기 들어오면서 띵 하고 머리가 울렸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가운 기운이 온몸의 세포를 깨우는 듯 짜릿짜릿했다.


손끝 발끝이 뻣뻣해질 만큼 찌릿한 감각이 전해져 오며 이번엔 확실히 잠이 깨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제법 어른답게 잘했어. 좀 흥분하긴 했지만, 실수도 없었고. 사고도 하나 안 치고 얌전하고 예쁘게 택시 타고 집에 잘 들어왔지.’


흐리멍덩했던 정신이 또렷해지며 끊어진 기억을 하나씩 복기했다.


들떠서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술을 마셨고, 그래도 별 사고 없이 집에 얌전하게 들어왔고.


‘그래. 그러니까 택시 타고, 그래, 택시가 음······.’


혼자서 자신의 기특함을 칭찬하던 소미의 뿌연 머릿속을 무언가 찝찝한 기억 하나가 뚫고 들어왔다.


‘근데, 누가 같이 왔었나? 택시 안에 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택시. 음, 택시···. 택시라고?’


[응. 알겠으니까 팀장님. 그러니까 이제부터 가만히 좀 있어 봐요.]


불현듯 떠오른 기억의 한 조각.


열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한번 물꼬를 튼 기억의 범람은 막을 길이 없었다.


‘응? 팀장님? 잠깐만. 팀장님······. 팀장님이라고?! 택시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왜 여기서 팀장님이 나와? 팀장님이 나 따로 챙겨줬나? 그분이 이 동네 살았나···. 근대 난 왜?


마음이 다급해져 감에 따라 생각들이 줄줄이 쉼 없이 흘러나왔다.


물음표뿐인 머릿속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팀장님한테 대체 뭘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거야!”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한 장면이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야, 이 씨···, 미친!”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머리가 차갑게 식어 내렸다.


컵을 든 손가락에 힘이 쫙 풀렸다.


툭. 데구르르······.


“으악! 젠장. 흡. 어윽. 내 발가락! 아흡.”


묵직했던 유리잔이 그녀의 발가락을 내려찍고는 한쪽 벽으로 굴러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기습적으로 가해진 공격에 통증으로 숨이 막혔다.


온갖 괴성들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 뱉어지지도 못하고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소미는 쭈그려 앉아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발가락을 부여잡았다.


발가락 속에서부터 고통이 나 여기 있다며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코끝이 매워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으엉. 발가락에서 심장 뛰어.’


그러나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바닥에 흥건히 고여 버린 물보다도.


깜빡이 없이 머릿속을 훅 치며 쉴 새 없이 들어오는 기억들이 더 숨을 막히게 했다.


소미 인생의 새로운 흑 역사가 탄생했다는 축포와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그래, 여기가 본인 집이 맞는 것 같네. 이제 들어가서 푹 쉬라고. 기특한 윤소미 사원님.]




‘안돼. 제발 멈춰 윤소미. 더 이상의 퇴사는 없어.’


소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자신을 챙겨주는 웬 남자의 목소리였다.


‘하, 맞아. 가까이서 들으니 목소리까지 섹시하더라. 가 아니라! 팀장···, 하진석 팀장님?!’


“이런 빙···! 아니, 미친 것 아니야? 아니긴 뭘 아냐, 미쳤지. 나 돌았나봐! 허, 무슨 짓을 한 거야?”


소미는 폴짝 띄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제발 이것까지 꿈이길 바라며, 다시 절규하다가 물이 흥건해진 맨바닥 위에 그대로 뻗어 누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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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갈증은 한잔으로 NEW 5시간 전 1 0 9쪽
14 14. 입이 방정2 24.09.20 2 0 9쪽
13 13. 입이 방정 24.09.18 3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3 0 9쪽
11 11. 거울 효과 24.09.15 5 0 9쪽
10 10. 착각 24.01.09 17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5 0 9쪽
8 08. 동상이몽 24.01.05 12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3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1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3 0 9쪽
» 02. 안전 귀가 23.12.27 12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2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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