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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동자
작품등록일 :
2023.12.26 23:13
최근연재일 :
2024.09.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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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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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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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동상이몽

DUMMY

“······까요?”



소미가 뭐라고 물어본 것 같았는데.


제가 대답도 하지 않고 있는데 그녀는 기분이 나쁘지도 않은 것일까.


진석은 소미의 작은 입이 혼자서 쫑알쫑알 말하고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였다.


결국 그녀를 보며 다른 생각을 하느라 질문에 답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아, 이미 타서 들고 계셨지 참.”


‘아, 뭐라고 해야 하는데.’


진석은 몇 번이고 입술을 들썩이다 말았다 고민했다.


이미 뒤 돌은 그녀가 고개 숙인 채 뚫어지게 보고 있는 머그잔이 보였다.


얼마나 커피 타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소미는 이제 말도 없었다.


‘커피가 많이 마시고 싶었나 보네. 쉬러 왔는데, 상사인 내가 있으면 불편하겠지?’


결국 그는 일이 끝난 뒤 정식으로 시간을 내서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아직 무슨 마음인지 모르겠는 자신을 위해 유예 시간을 주기 것에 대한 핑계에 가까웠다.


“그래. 소미씨.”


그녀를 바라보느라 찰나처럼 지나간 침묵의 시간을 끝내고, 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난 그럼 회의 준비할 게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볼게. 소미씨 그럼 수고해.”


진석은 본의와 다르게 엉뚱한 말만 하고는 도망치듯 휴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다시 일에만 열중하다 보니 어느새 밖이 어둑해지고 저녁 시간이 되어버렸다.


결국 진석은 어떤 말도 못 하고 고민만 하다가 하루가 흐지부지 지나가 버렸다.


자유로운 분위기답게 퇴근도 본인의 일만 마치면 상사를 기다리거나 하는 일 없이 바로 가능했다.


소미 역시 그렇게 허무하게 퇴근을 해버리고 말았다.


“뭐 이런 멍청이 같은 경우가 다 있어······.”


진석 자신도 이런 자신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할 말과 타이밍만을 놓고 고민하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또 하루가, 이틀이······.


모두 끝나 버렸다.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소미의 걱정스러운 나날도 잠시였다.


이제 그녀도 훌훌 털어버리고 그날의 일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지나갈 일이었는데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했었나 봐. 어차피 사귀자고 할 것도 아닌데. 서로 아무 말 안 하는 게 나은 것 같아 역시.’


소미에게는 마침내 마음의 안정에 찾아왔다.


허탈함인지 아니면 아쉬움인지 알 수 없는 약간의 감정이 남아버린 것 같긴 했지만.


애초에 사내 연애는 할 생각이 없던 소미로서는 진석이 너 좋다고 나오기라도 하면 오히려 더 곤란했다.


회사 밖에서 저런 사람이 좋다고 한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테지만.


그렇게 못닿을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시는 소미의 일상은 다시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회사생활도 자연스럽게 돌아갔다.


묘하게 이전과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요즘 유달리 팀장님이랑 자주 마주치는 것 같단 말이지?’


물론 같은 팀으로 있는 관계이다 보니 자주 마주치다 못해 출근일은 매일같이 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건 역시 어딘가 좀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녀도 제가 먼저 얘기를 꺼내길 기다리고 있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소미가 진석에게 말을 꺼내려고 찾아가면 그 일에 관해 대화를 시도해봐도 자리를 피하거나, 아예 말을 돌려 다른 얘기를 꺼내 버리기 일쑤였다.


“그래서요 팀장님. 그날 일은······!”


심지어는 소미가 직설적으로 운을 띄우면 진석은 말같지도 않은 안 들리는 척을 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소미도 상대방이 얘기 꺼내는 것을 원치 않는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소미가 가만있으니, 이제는 진석이 그녀한테 먼저 찾아와서는 영양가 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소미씨. 저 복사기는 어떻게 사용하는 거지?”


“네? 팀장님이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


“아냐, 그냥 내가 해볼게.”




생뚱맞게 진석이 모를 리 없는 복사기의 사용법을 쓸데없이 묻는다든지.


그는 너무 수상했다.


분명 직전까지 혼자 잘만 썼던 복사기의 사용법이 왜 궁금하단 건지.


뜬금없이 휴게실에 있는 커피에 관해 묻는다든지.


“소미씨는 어떤 커피가 제일 괜찮은 것 같아?”


“네? 커피요? 갑자기 저한테 왜 그런 걸······.”


“팀장님, 저는 그거 좋아해요. 배우 김가영이 광고하는 모카커피요.”


소미의 옆자리에 있던 지나가 둘의 대화에 냉큼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 지나씨.”


“제가 한잔 갖다 드릴까요? 제 일도 조금 봐주실 겸, 저희 같이 커피타임 해요. 팀장님.”


지나가 간드러진 혀짧은 소리를 섞어가며 진석에게 말했다.


“아, 고맙지만 괜찮아 지나씨. 그럼 난 회의가 있어서 이만. 단순한 실무 건은 미연 대리한테 부탁하도록 해.”


이상하게 진석의 회의가 늘어버린 것 같다.


“그래 지나씨. 뭔데, 나한테 줘봐. 단순 업무를 왜 팀장님한테까지 가?”


건너편 자리에 있던 미연이었다.


“네······.”


지나는 아쉽다는 듯 진석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안으로 말아 잘근 씹어댔다.


자리를 떠나는 두 사람이 애꿎은 소미만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한 사람은 아쉽다는 눈빛을 담아서, 다른 한 사람은 불만을 가득 담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그리고 가운데에서 끼어있는 소미는 영문도 모른 채 어색하게 웃었다.


‘팀장님은 왜 굳이 저런 걸 나한테 묻는 거지?’


그녀의 생각으로는, 쓸데없는 일들을 핑계로 진석이 저한테 꼭 한 마디씩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착각이겠지. 가뜩이나 바쁜 팀장님이 뭐 하러 그러겠어.’


그럴 때마다 지나가 방금처럼 마음에 안 드는 눈빛으로 한 번씩 쳐다보니 소미로서는 그들이 의아하고, 또 곤란했다.


‘지나 선배는 또 뭐가 맘에 안 들어서 저러는 거야?’


소미로서는 영문도 모르고 억울했다.


‘근데 팀장님.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어 보이던데. 혹시···. 그날 나한테 반했던 거 아니야?’


소미는 곰곰이 생각 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 적 얘기로 자의식 과잉이지 싶었다.


진석도 언제나 딱 거기까지만 하고 이렇다 할 말이나 행동은 더 없었기에 더 추정하기도 뭣했다.


조금 어색해 보이긴 했지만.


‘멍청한 윤소미야. 좋아했으면 팀장님이 뭐가 아쉬워서 가만히 있겠어? 자기도 맘에 들어서 저 얼굴로 들이대면 어지간히 넘어올 거 다 알고 살아왔을 텐데. 내가 자의식이 너무 과했다 이번에는.’


소미는 어딘가 씁쓸함을 삼키며 웃어 넘겨버렸다.


‘사회생활 거, 참 어렵다.’


그렇게 소미의 일들도 해프닝 정도로 흘려보내고, 어느 날 이었다.


출장 일정이 잡힌 진석이 아침 회의 시간에 그와 함께 나갈 팀원을 찾고 있었다.


“긴 출장은 아니고, 학생들한테 강의에 당일 보조역할 해줄 인원 한 명만 있으면 돼."


지인의 부탁으로 진석이 학생들에게 현장에 관한 강연을 하러 나간다고 했다.


이에 보조가 필요하다며 함께 갈 사람을 요청하고 있다지만, 사실상 그는 소미에게 제안하는 중이었다.


“괜찮은 학생이 있다면 인턴으로 데려올 거야. 회사 일하고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부분이야. 그러니 소미씨도 직접 가서 보면 괜찮은 경험이 될 거야.”


현재 팀에서 굵직한 일을 담당하지 않고 있는 것도 그녀뿐이었고.


합당한 제안이었다.


하지만 소미는 자신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보니 진석에게 민폐만 끼칠까 봐 우려를 표했다.


“팀장님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직 신입이고 능숙하지 못한 부분이 많아요.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일에 의욕이 많은 소미였지만 진석의 커리어도 걸려있는 문제다 보니 이번에는 한 발을 살짝 빼보았다.


“맞아요. 소미씨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팀장님 서포트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요? 그냥 제가 일정 조율해서 같이 따라갈게요.”


그러자 옆에 있던 지나가 이때다 하고 냉큼 나섰다.


“그렇지? 소미씨도 그렇잖아?”


“네? 아, 네! 맞아요. 지나 선배가 실무에는 더 능숙하니까 팀장님한테 더 도움이 되실 거예요.”


동의를 강요한다 싶은 지나의 말에 소미는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지만, 얼떨결에 그대로 대답을 해버렸다.


“거봐요 팀장님. 소미씨도 그렇다고 하잖아요.”


“아니, 이번에는 소미씨가 따라가는 걸로 합시다. 지나씨는 사무실에 있어. 미연 대리, 그날 특별한 일정 없나? 다녀와서 봐줄 것 있어?”


“아니요. 괜찮아요. 필요하면 연락할게요. 편히 다녀오시죠!”


미연이 일정을 확인하더니 명쾌하게 대답해줬다.


그렇게 다소 어색했던 회의가 평화롭게 끝나는가 싶었다.


“이대리님! 아니, 팀장님! 어째서요? 왜 제가 아니라 소미씨랑 가시는 건데요?”


지나가 진석의 말에 신경질적으로 불만을 표하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날카롭게 벼려졌다.


“소미씨도 자기보단 제가 더 도움이 될 거라고 하잖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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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갈증은 한잔으로 NEW 5시간 전 0 0 9쪽
14 14. 입이 방정2 24.09.20 2 0 9쪽
13 13. 입이 방정 24.09.18 2 0 9쪽
12 12. 하찮은 인간 24.09.16 3 0 9쪽
11 11. 거울 효과 24.09.15 4 0 9쪽
10 10. 착각 24.01.09 16 0 9쪽
9 09. 가시방석 24.01.08 14 0 9쪽
» 08. 동상이몽 24.01.05 12 0 9쪽
7 07. 어린애 24.01.04 12 0 9쪽
6 06. 제 발 저리는 도둑 24.01.03 18 0 9쪽
5 05. 짐승같은 여자 23.12.30 20 0 9쪽
4 04. 진상이라면 이 정도는 23.12.28 14 0 9쪽
3 03. 오늘의 진상 23.12.27 12 0 9쪽
2 02. 안전 귀가 23.12.27 11 0 9쪽
1 01. 어쩐지 기분 좋은 날 23.12.26 1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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