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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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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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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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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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4)

DUMMY

-


“이만하면 됐나···”


나는 서문 밖에 무성하게 자란 질긴 식물의 줄기를 모아서 의식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진 남자의 손목과 발목을 단단하게 묶었다.

혹시나 정체를 알 수 있을까 해서 여전히 기절한 상태인 남자의 옷을 수색해 봤지만, 품에서 나온 거라곤 예상대로 마나를 전부 소진한 텅 빈 마법석 하나가 전부였다.


아무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진가 보다. 나머지는 왕성의 높으신 분들이 조사를 하든 뭘 하든 철저하게 마무리해 줄 거다.

싸우면서 생긴 마법의 폭발도 그렇고, 왕성의 서문도 이렇게 화려하게 부서졌으니 바닥에 옴짝달싹 못 한 채 널브러져 있는 이 남자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을 거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은 서둘러 몸을 숨기는 것이다. 사실 얼떨결에 여기까지 관여한 것도 선을 꽤나 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까지나 왕실 마법사의 전속 메이드. 이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행동을 조심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두 명의 습격자를 제압한 것이 나라는 사실은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 된다. 몬스터의 사건과 똑같다.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은 꽃밭 앞에서 만난 그 여자인데··· 복장도 평소와 달랐던데다 밤이 어두워 제대로 얼굴을 보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른 날에 왕성에서 서로 마주치더라도 아마 서로 알아보지는 못하겠지. 이 정도면 깔끔하다.


“......”


사실 깔끔하다, 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젠탈리온의 왕성에 암살자가 두 명이나 침입한 사건이니까. 거기에 타겟은··· 상대는 나의 존재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한 반응이었던 걸 보면 아마 보름꽃을 보러 나온 그녀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누구냐에 따라 이 사건이 얼마나 큰 사건인지, 또 누가 어느 목적으로 침입한 것인지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유능하신 분들이 할 일이다.


"-라는 사건이 어젯밤에 있었어."


그렇게 간밤에 있었던 여러 사건을 어떻게든 마무리한 이튿 날 아침, 책상에 앉아 책에 집중하다가 옆구리에서 배어 나온 피로 범벅이 된 내 실내복을 보고 기겁한 오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였다.

지난밤에 도서관으로 돌아왔을 때에는 오멜은 밖에서 자고 오는지 방에 없었다. 그 틈을 타서 방으로 들어가 나름 처치를 한다고 붕대로 상처 부위를 둘러 싸기는 했는데, 생각보다 상처는 더욱 깊었다. 상처에서 올라오는 통증에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아침이 되어 일어나 보니 옷과 침대보가 피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뭣···"


사실 들키지 않았더라도 오멜에게는 모든 이야기를 할 작정이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더라도 오멜에게는 그럴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난 오멜의 호의로 이 왕성에서 지내고 있는대다 오멜이 나 때문에 괜한 사건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자각은 있다. 하지만 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나도 피해자였으니까.

거기에 솔직한 마음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왕성에 오래 있었던 오멜이라면 이 사건의 내막에 대해 뭐라도 알지 않을까. 더군다나 지난밤에 방에 없었기도 했었으니까 보나 마나 기사단 어쩌고로 이 일과 연관이 없지는 않았을 거다.


"그,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 상처는?! 괜찮아? 잠깐 보여줘."

"아, 아, 아니. 됐어···! 옆구리니까···"

"그럴 때가 아니잖아··· 지혈이 아직 안 된 거지? 일단 소파에 앉아봐."


엉거주춤하게 소파에 앉으니 오멜의 손끝에서 마나가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바닥에 커다란 원이 펼쳐지듯 천천히 그려지고, 그 안으로 복잡한 무늬의 마법진이 새겨졌다.


“그래도 회복 마법에는 나름 자신 있으니까··· 괜찮은 거 같아?”

“...응, 훨씬 나아. 이런 마법을 연구하고 있는 거야?”

“전에도 말했지만 난 로웨나처럼 전투 쪽에 빠삭한 건 아니라서··· 오히려 연구자에 가깝거든. 사정이 있어서 이 분야는 잘 알아.”


묘한 기분이었다. 마법진에서 마나가 내 몸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멀미라도 하듯 살짝 어지러운 기분과 함께 옆구리에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밤새도록 나를 괴롭혔던 통증이 빠르게 가시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깨어났을 때에도 오멜이 회복 결계를 쳐두었던 게 떠올랐다. 확실히 이 분야에 대해 잘 안다는 오멜의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말이야··· 뭐라도 들은 거 없어? 왕실 기사단 수석 마법사님이시잖아."

"안 그래도 어젯밤에 네가 없는 새에 왕실 기사단에 비상이 걸려서 불려 갔거든. 그게 바로 네 일이었을 줄은 몰랐지··· 그런데 가자마자 금방 복귀하라고 하더라고. 아직은 아무것도 못 들었어."

"수석 마법사라더니 어떻게 아무것도 모를 수가 있어? 따돌림당하는 거 아니야?"

"말이 심하네··· 뭐, 나는 말해주지 않는 일을 굳이 캐묻지는 않아서··· 나 빼고 다른 모두는 눈치껏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네 말대로 그렇게 큰일이 있었다면 오늘이라도 전달해주지 않을까?"


하긴 주변에서 아무리 전속 메이드 이야기를 했지만 끝까지 들이지 않았다고도 했으니까. 무심한 성격이라고 할까.

오멜은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전형적인 학자 타입이다. 꽤나 사회성이 떨어지는 녀석이지만 거꾸로 그만큼 신뢰할 수 있는 부류이기도 하다. 거기에 능력도 있다고 하니까.


"나중에 왕실 기사단의 채널을 통해서도 공지는 되겠지만 일단은 왕성 경비대에서 일차적으로 조사하지 않을까 싶어. 그것보다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누구를 만났다고?"

"누구냐니?"

"그, 꽃밭에서 만났다는···"

"보름꽃."

"그래, 보름꽃."

"잘 몰라. 밤이기도 해서 얼굴도 잘 안 보였고···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에 조금 큰 키였어. 너만큼은 아니었지만. 목소리가 되게 특이했는데, 몽실몽실? 양털 같은 그런 느낌의 사람이었어."


내 설명을 듣고 마치 머릿속의 책장을 뒤져 보듯 오멜은 의자에 허리를 깊게 기대고 한참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로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정말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그 사람이-"


-똑똑똑.


오멜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차에 누군가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다.

당연하지만 내가 어제 침입자들과 싸웠다는 것은 오멜을 빼고서는 절대적으로 비밀에 부쳐야 한다. 잔뜩 피칠갑을 한 상태로 ‘내가 싸웠어요’라는 상태를 아무에게나 보일 수 없다. 나는 서둘러 소파에서 일어나 도서관 한 구석의 내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오멜님, 엘리샤 레퍼티입니다. 오멜님께 전언이 있습니다."

"아, 응. 들어와!"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조, 조, 좋은 아침입니다, 오멜님."

"좋은 아침이야."

"다름이 아니라 기사단장님께서 10시에 임시 왕실 기사단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수석 기사와 수석 마법사는 반드시 참석하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응, 알겠어. 참석한다고 전해 드려줘. 고마워."


엘리샤도 바쁜지 웬일로 오멜에게 다른 잡담도 하지 않고 실례했습니다, 라는 짧은 인사와 함께 도서관에서 나갔다.


"루비."

"응?"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네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게 누군가에게 들켰을까?"

"글쎄··· 최소한 얼굴은 들키지 않았을 거야. 옷도 기사단 훈련복을 입고 있어서 메이드였다는 건 꿈에도 모를 거고."

"아마 기사단이나 경비대에서는 침입자도 침입자지만 그들과 싸운 사람의 정체도 밝히려고 할 거야. 최근의 몬스터 사건도 있었으니까."

"그때의 일도 아직 모르는 거지?"

"응, 아직 신원 불명이야."


그건 다행이네.

난 중얼거리며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소파에 다시 주저앉았다. 따뜻한 마나의 흐름이 몸을 진정시켜 주었다.


"난 사실 조금 신경 쓰이는 게··· 그 남자들이 마법이 새겨진 마법석을 사용했다고 했지?"

"응, 한 녀석은 하나만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 녀석은 마법이 새겨진 마법석 하나와 마나를 공급하는 마법석 하나."

"젠탈리온에서 그런 마법석은 잘 사용하지 않아. 마법석에 그 정도의 상위 마법을 새길 정도의 마나 공학자가 거의 없어. 대신 젠탈리온 바로 옆에 위치한 엘 메이아라는 나라가 마법석 가공이 굉장히 유명하거든. 엘 메이아의 마나 공학은 세계적으로 알아 주니까."


확실히 마법석으로 발동한 마법의 위력은 상당했다.

첫 번째 얼음 계열의 마법은 내가 대처만 하지 못했더라면 틀림없이 나와 그녀를 순식간에 얼음 동상으로 만들어 버렸을 거다. 두 번째 화염 계열의 마법도 나무로 된 성문이라고는 했지만 왕도 서문을 순식간에 부쉈다.

모르긴 몰라도 확실히 마법석에 새겨진 마법은 시시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건 엘 메이아에서 공급받은 마법석이거나 혹은 엘 메이아에서 직접 보냈을 거야. 아직 어디에도 증거는 없지만."

"그 남자들을? 엘 메이아와 젠탈리온은 사이가 나쁜 거야?"

"사이가 나쁘다고 할까··· 좋을 수 없는 관계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보니 역사적으로 전쟁도 잦았고 엘 메이아에 비옥한 토지가 많아서 국경 근처의 젠탈리온 마을에서 자주 침범을 했었나봐. 그래서 꾸준히 마찰이 있었어."

"젠탈리온이 나빴네."

"부정은 안 할게. 좋은 역사는 아니었어. 거기에 엘 메이아에 비해 젠탈리온의 군사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저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고···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는 건 엘 메이아에서 과연 이렇게 노골적으로 싸움을 걸 수 있을까 하는 거야. 원하는 게 전쟁이라면 이길 수가 없을 텐데."

"뭐, 당한 게 있으니 복수라도 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렇다기에 이건 너무 본격적이란 말이지···"


오멜은 깊게 한숨을 내쉬다가 소파에 기대어 있는 내 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목은 왜 그래?"

"아, 이것도 어제··· 목은 깊지 않았어. 봐봐, 다 아물었잖아··· 아, 자, 잠깐."


오멜은 갑자기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얼굴을 나에게 바짝 가까이 들이댄다.

그건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차마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할 수도 없었다. 얼어붙은 나를 두고 오멜의 시선이 관찰하듯 내 목 위를 훑어보는 것이 느껴졌다.


"...너, 정말로 죽을 뻔했어."

"...알아. 그런데 안 죽었잖아."


오멜의 새파란 눈동자와 마주쳤다. 무모한 짓을 한 것에 화를 내고 있는 걸까. 잘 모르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이번에는 난 그저 휘말렸을 뿐이라구.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찰나가 흘렀다. 오멜은 휴, 하고 길게 한숨을 쉬고 나에게서 몸을 돌렸다.


"네 말대로 상처가 깊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이건 흉터가 남겠어···"

"어쩔 수 없지 뭐. 이건 영광의 상처라는 것으로."

"그러니까···"


오멜은 내 말에 무어라 한 마디 하려다 말을 말자, 라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그나저나 슬슬 갈 거지? 메이드로서 외출에 도움을 드리면 될까요?"

"됐어, 됐어··· 다쳐서 자기 몸도 잘 못 가누면서 누가 누구한테 도움을 준다는 거야. 어디 나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회복하고 있어. 우선 지혈 먼저 한 후에··· 혹시라도 상처가 감염 됐을지 봐야 하니까.”

"응."


적당하게 자기 짐을 챙긴 오멜은 여러 번 나에게 당부했다. 어지간히 나를 말괄량이로 보고 있나 보다.

사실 그다지 그런 타입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조금 여러 일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오히려 얌전하게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할까··· 오멜에게는 이상한 오해를 산 것 같지만.


작가의말

세 번째 타이틀의 끝입니다.

여러 사건이 있어서 그런가 유독 뭔가 빠르게 끝나버린 것 같네요...? 기분 탓일까요.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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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1) 24.02.12 7 0 16쪽
10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5) 24.02.08 7 0 17쪽
9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4) 24.02.05 6 0 11쪽
8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3) 24.02.01 7 0 12쪽
7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2) 24.01.29 9 0 11쪽
6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1) 24.01.25 8 0 13쪽
5 #01. 드래곤 나이트 (4) 24.01.22 8 1 16쪽
4 #01. 드래곤 나이트 (3) 24.01.18 9 0 17쪽
3 #01. 드래곤 나이트 (2) 24.01.15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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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 왕실 마법사와 불행한 소녀와 전속 메이드 +2 24.01.08 73 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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