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연재수 :
74 회
조회수 :
624
추천수 :
3
글자수 :
405,848

작성
24.01.11 19:53
조회
15
추천
1
글자
11쪽

#01. 드래곤 나이트 (1)

DUMMY

#01. 드래곤 나이트


루비.


새빨갛게 타오르는 시야 너머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렸다.

그건 굉장히 상냥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는 분명 내가 잘 아는 목소리였지만, 동시에 전혀 알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루비. 루비··· 루···


그 사람은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하지만 내 이름이 반복될 때마다 목소리가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몇 번째였을까, 더 이상 그 목소리에서 내 이름을 알아듣기가 힘들어질 정도로 그 소리가 찌그러졌다. 그것은 더 이상 사람의 목소리로도 들리지 않았다. 신음.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흘리는 신음과도 같아졌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눈앞에 누군가가 새빨간 천을 올려놓은 것처럼 몇 번을 눈을 깜빡여도 좀처럼 시야가 걷히지 않았다. 그저 새빨갛게 타올랐다.

나는 소리를 따라 손을 헤집기 시작했다. 바닥에 발이 걸려 몇 번이고 넘어진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서 새빨갛게 되어 보이지 않는 채로 소리만을 따라 나아간다.


아니, 시야가 가려진 것이 아니었다. 나는 불꽃 가운데에 있었다. 새빨간 불꽃이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휘몰아친다. 그 불은 순식간에 내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뜨겁지는 않았다. 그것은 뜨거운 불이 아니었다. 고통의 화염이었다. 뜨겁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러웠다.

그 고통의 화염은 점점 날카로운 칼붙이의 형상이 되었다. 그 칼붙이가 뻗은 내 오른팔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아프다. 아프다.

새빨간 불꽃 가운데에서 고통의 칼이 내 살갗을 파고들 때마다 새빨간 피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아프다.


“하아, 하아···”


깜빡, 깜빡.

여전히 잠에 취해 멍하게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천천히 깨우듯, 온몸을 꼼짝도 하지 못한 채로 침대에 누워 한참 동안 눈을 깜빡였다.

식은땀으로 젖은 등에 침대 시트가 불쾌하게 엉겨 붙었다. 무의식중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팔의 근육이 마치 누군가에게 맞기라도 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꿈이었구나.


악몽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훌륭한 악몽이었다.

하지만 악몽 치고는 너무나 요상한 꿈이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고, 화염이 휩쓸었다. 그리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덮쳐왔다.

이 꿈은 혹시나 잃어버린 내 기억의 파편들이 아니었을까. 드래곤의 마법이 내 가족을 덮쳤을 때의 기억이라든가. 그게 아니길 바라지만, 아예 근거 없는 추측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악몽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내가 기억을 찾기 전에는 알 수 없겠지만.


“...아얏.”


무심결에 꿈에서 난도질당했던 오른팔을 쓰다듬었다가 깜짝 놀랐다. 아프다. 화끈거린다.

피로 범벅이 되었던 꿈에서의 장면이 떠올라 화들짝 놀라서 잠옷의 팔을 걷어 올렸다.


"뭐야···?"


다행히도 잠옷 아래에는 피 한 방울도, 칼로 베인 흔적도 없었다. 다만 처음 보는 이상한 문양이 피부 위에 떠올라 있었다.

팔꿈치에서 약간 아랫쪽 팔뚝의 안쪽에 길쭉한 마름모가 왼쪽, 오른쪽, 위 방향으로 세 개 모여 있는 문양이었다. 당연하지만 난 잠결이라도 이런 문신을 새긴 적이 없다. 그런 건 내 취향이 아니다.

마치 내가 자는 사이에 누가 와서 새겨 넣기라도 한 듯 손으로 살짝씩 만져 보니 여전히 화끈거리고 아팠다.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똑똑


"일어났어?"


혼란스러움에 침대에 앉아 멍하니 팔뚝만 쳐다보고 있던 차에 방 밖에서 오멜이 내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서둘러 올라간 오른쪽 잠옷 소매를 내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루비? 괜찮은 거 맞지?"

"난 괜찮아. 일어났어. 들어오려는 건 아니지?"

“이, 일어났다면 안 들어가. 혹시나 해서.”


나에게 닥친 일련의 급작스럽고 불행한 사건 때문에 나는 젠탈리온 왕실 마법사인 오멜 마나필드님의 전속 메이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오멜의 전속으로서 나를 등록 하기 위한 모든 정식 등록 절차는 빠르게 완료되었고 이제는 꼼짝달싹 할 수 없이 내 신분은 오멜 마나필드의 메이드가 되었다.

딱히 불만은 없다. 오히려 아무런 기억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의 미칠 것 같은 막막함에서는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멜 마나필드의 전속, 이라고 새겨진 작은 금속판을 받은 순간 느껴졌던 안정감과 안도감은 이루 설명할 수 없다.


오멜은 자신의 방 -나는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한 켠에 마법으로 뚝딱뚝딱 벽을 쌓아 올려 작은 침대와 책상을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쪽방을 만들어 주었다.

아무리 왕실 마법사의 전속이라고는 해도 한낮 메이드에게 커다란 왕성의 방을 내 줄 수는 없었을 거다. 오멜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이곳에서 평생 호위호식 할 것도 아니고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내가 유일하게 오멜에게 요구한 것은 내 방문에 잠금장치를 달아달라는 것뿐이었다.


나의 등록 절차가 완료되기를 기다리던 요 며칠의 여유 시간 동안 나는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느라 정말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기억은 돌아오지 않은 상태로 완전한 백지에 가까워서, 모든 것들이 다 새롭게 느껴졌다.

그중 꽤 흥미로웠던 것이 있었는데, 먼저 이곳, 젠탈리온 왕국에 대한 정보였다.


젠탈리온은 주변 나라에 비해서 상당히 강한 군사력을 자랑한다. 그 강한 군사력의 중심에는 국왕의 직속 기사단인 '드래곤 나이트'가 있다. 처음 오멜과의 대화에서도 그 이름을 얼핏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젠탈리온 왕국은 아주 오래전 ‘나이트메어’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드래곤에게 국토 대부분이 궤멸적인 피해를 받은 후 드래곤만을 토벌하는 드래곤 나이트라는 기사단을 만들어서 운용하고 있다. 그들의 역할은 국토 내의 드래곤 거주지에 대한 추적과 토벌로 왕실 기사단 중에서도 가장 엘리트들만 추려 놓았다고 한다.

어떤 나라에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변 나라들이 이를 견제하게 된다. 그러나 젠탈리온은 드래곤 토벌이라는 명분이 있어서 다른 나라들이 젠탈리온의 드래곤 나이트라는 무제한급의 군사력을 견제하지 못했다.

그렇게 역사적으로 드래곤 나이트는 드래곤 토벌을 위한 기사단이었지만, 사실상 젠탈리온의 강력한 군사력의 상징이 된 모양이다.

그리고 그 드래곤 나이트의 단원 중 하나가 바로, 오멜 마나필드. 자기 말로는 오멜은 왕실 수석 마법사이자 드래곤 나이트 수석 마법사도 역임하는 꽤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고 한다.


“......”

“왜, 왜 그래? 아무 말도 안 하고.”


뭐, 사실 그다지 믿기지는 않는다. 내성적인 범생이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정말로 이 녀석이 그 강력하다는 젠탈리온의 엘리트 마법사가 맞을까, 라는 의심이 든다.

다만 요 며칠 오멜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면서 아주 성실한 녀석인 것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내심 성실성을 인정받아 엘리트가 된 게 아닐까, 라고 스스로 이해시켰다.


“숙녀가 자던 방에 들어오려 하다니.”

“따, 딱히 들어가려 하지 않았어! 아무 대답도 없으니까 뭔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그랬던 거지.”

“걱정도 많아. 난 이제 완전히 건강해. 몸 상태는 최상이고 컨디션도 좋아. 기억은 여전히 없지만.”

“알고 있어··· 그리고 숙녀라니, 키도 작-”


-째릿


오멜은 내 눈빛을 보았는지 눈치 빠르게도 입을 닫았다. 그 이상 말했다면 아침부터 오멜을 진심으로 걷어찰 뻔했다. 눈치가 빠른 점은 칭찬할 부분이다.


그나저나 정말 성실한 녀석이다. 오멜은 항상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산책을 하든지 기사단 연습을 가든지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메이드라고 하면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이런저런 것들을 챙기는 것이 맞지만··· 오멜이 그렇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고 사양해서 기꺼이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전속 등록도 됐겠다, 오멜이 일정으로 도서관을 비우는 동안에는 부지런하게 전속으로서 일하려 한다.


-짤그락


당연히 발이 달려 도망갈 일은 없겠지만 습관처럼 목걸이처럼 목에 걸친 금속판을 몸 앞으로 슬쩍 당겨 확인했다. 오멜 마나필드의 전속, 이라는 내 신원을 보증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다시금 묘한 안정감을 느꼈다.


“그것보다 루비, 옷이 도착했어.”

"으윽···"

"대충 입어보고 올래? 사이즈가 맞는지 확인해야 할 거 같아서."

"정말로 나에게 그 옷을 입히려는구나."

"내가 음흉한 의도로 너에게 그런 옷을 입힌다는 것처럼 말하지는 말아 줄래···? 엄연히 필요한 거니까. 메이드라면서 왕실 내에서 일상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 우리 둘 다 혼난다고."


뭐, 오멜의 말에 틀린 것은 없다.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끝까지 툴툴거리며 오멜이 건넨 가지런히 접힌 옷가지를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당연하겠지만 그 옷이라는 것은 왕성 메이드의 유니폼이다. 며칠 전에 내 치수를 재어서 주문을 하였는데, 그 옷이 오늘 아침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나는 오멜의 전속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왕성안에서 일하는 메이드이다. 규정에 따라 젠탈리온 왕성 메이드는 공식적인 복장을 입어야 하고 그건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뭐, 대충은 맞아. 조금 여유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서관 한 귀퉁이에 있는 전신거울에 요리조리 몸을 돌리며 내 모습을 확인했다.

옷 자체는 지극히 평범하다. 메이드복을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평범한 메이드복이다.

넉넉한 크기의 까만 원피스에 곳곳의 흰색 레이스와 하얀 에이프런까지. 어찌 보면 왕성 메이드답게 어느 정도 격식 있는 복장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지만 스커트 여기저기 달린 주머니 같은 부분은 확실히 메이드라는 직책에 맞게 실용적으로 디자인된 옷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막상 이렇게 입으니까 상상 이상으로 민망하다. 거기에 왠지 모르게 기가 죽는다.

겉모습에 따라서 성격이나 생각이 바뀐다고 하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이 옷을 입으니 당장에라도 봉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잘됐네. 그러면 메이드로서 첫 일인 방 청소를 부탁해도 될까?"

"......"

"농담··· 입니다. 마법은 쓰지 말아 주세요. 너무 잘난 체 했습니다."


째릿.

안 그래도 메이드복도 입었으니 청소라도 해볼까,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굳이 말을 해서 손해를 보는 타입이구나.

오멜은 내 눈빛을 보더니 화들짝 손을 내젓는다. 나도 도서관에서까지 마법을 쓸 정도로 무식한 타입은 아니니까. 너의 엉덩이를 차 버릴까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작가의말

첫 번째 소제목의 시작입니다.

여러 번 느끼는 것이지만 소제목을 쓰는 게 참 쉽지가 않네요. 센스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4) 24.02.22 10 0 12쪽
13 #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3) 24.02.19 8 0 16쪽
12 #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2) 24.02.15 10 0 13쪽
11 #03. 저주는 무엇보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1) 24.02.12 7 0 16쪽
10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5) 24.02.08 7 0 17쪽
9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4) 24.02.05 6 0 11쪽
8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3) 24.02.01 8 0 12쪽
7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2) 24.01.29 9 0 11쪽
6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1) 24.01.25 9 0 13쪽
5 #01. 드래곤 나이트 (4) 24.01.22 9 1 16쪽
4 #01. 드래곤 나이트 (3) 24.01.18 9 0 17쪽
3 #01. 드래곤 나이트 (2) 24.01.15 9 0 13쪽
» #01. 드래곤 나이트 (1) 24.01.11 16 1 11쪽
1 #00. 왕실 마법사와 불행한 소녀와 전속 메이드 +2 24.01.08 73 1 1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