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 죽이기 (Kill the Dr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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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CE
작품등록일 :
2024.01.08 19:44
최근연재일 :
2024.09.1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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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15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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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드래곤 나이트 (2)

DUMMY

"그나저나 난 오늘 온종일 기사단 회의 일정이 있는데, 루비 너는 어떡할래? 며칠째 내 방 안에만 있는 것도 힘들지는 않아?"

"아침에도 기사단 일로 나갔던 게 아니었어?”

“맞아. 아침에는 회의는 아니었지만···”

“글쎄··· 도서관에서 얌전히 책 읽고 있어도 상관은 없지만 너만 괜찮다면 밖을 조금 돌아다녀 봐도 돼?"

“밖을? 왜···?”

“왕성 생활에 익숙해질 겸 해서 말이지. 언제까지나 전속 일을 도서관 안에서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이제는 메이드복도 받았겠다, 정말 오멜의 전속으로서 왕성을 돌아다닐 수 있다.

이미 몇 번 오멜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닌 적은 있었지만 정말 제한적이었다. 전속 등록도 되기 전이었고 옷도 일반 옷 밖에 없었던지라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멜은 내 말에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내 말대로 전속 일을 하려면 결국 왕성을 내 집처럼 돌아다녀야 한다. 그렇지만 아직 루비는 불안하다, 이런 생각이겠지.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불안한걸.”

“난 오멜의 전속이에요, 이건 다 오멜이 시킨 거예요. 문제 생기면 이렇게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무리 내가 왕실 마법사라지만 그게 만능 열쇠도 아닐뿐더러 정말 그렇게 말해 버리면 문제가 커진다니까···”

“농담이야.”

“그것참 무서운 농담이네··· 잠깐 기다려 봐.”


오멜은 난처하다는 듯 조금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나를 두고 후다닥 도서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멜은 웬 낯선 소녀와 함께 돌아왔다.


“자, 여기에 좋은 선생님을 데려왔어.”

“...선생님?”


나도 당황했지만 나 못지않게 당황한 것은 그 여자애였다.

여자애··· 라고 할까, 메이드였다. 나와 똑같은 젠탈리온 왕성 메이드복을 착실하게 갖춰 입고 있는 메이드였다. 가슴 위로 달려 있는 붉은 배지가 누군가의 전속이 아닌 왕성 소속 메이드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키는 나보다 컸지만 나이는 나보다 조금 어려 보였다. 아마도 십 대 정도일까. 아직 젖살이 덜 빠진 얼굴이었지만 오멜이 선생님이라고 칭한 만큼 확실히 어엿한 메이드의 분위기가 났다.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빗으로 잘 빗어 정돈된 갈색 머리카락에 동글동글한 눈동자까지, 강아지 같이 순한 인상이 있어 정말로 착해 보이는 여자애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엘리샤 레퍼티(Elisha Rafferty)입니다. 견습 메이드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 응··· 안녕. 나는 루비."


굉장한 메이드 정신이네··· 엘리샤는 처음 보는 나에게도 깍듯이 인사를 해 보였다. 괜히 내가 입고 있는 메이드복이 민망해질 정도로 메이드력이 높다.


"엘리샤, 여기는 조금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 전속으로 막 들어온 루비. 왕성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오늘 네게 좀 소개를 부탁해도 될까?"

"왕성의 소개 말씀이시죠···?"

"응.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애니까 이곳저곳 마음 내키는 대로 소개해 주면 고마울 거 같아. 둘이 나이도 비슷하니까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해서."


엘리샤는 살짝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오멜과 나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나는 나의 무해함을 증명하기 위해 오멜 옆에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혹시라도 이 애가 겁을 먹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

내가 거울을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나는 인상이 조금 날카롭다. 인상이 좋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를 열심히 증명해 보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누가 봐도 착해 보이는 인상의 엘리샤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아 그리고, 루비.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마법은 되도록 사용하지 말아줘. 괜한 이목은 끌지 않았으면 해서."

"걱정 마. 이해했어."

"무슨 일 있으면 내 이름 대고 곧장 나를 찾아."

“알겠어, 알겠어.”


오멜은 엘리샤에게 들리지 않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 귀에 살짝 속삭였다.

괜한 걱정을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만큼 오멜의 이름에 폐를 끼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자각은 있다.

왕성의 다른 사람들에게 오멜의 전속이 마법을 쓴다고 떠벌리고 다닐 이유는 없다. 그건 의미 없는 경계심만 만들 뿐이다.

그리고 나는 심지어 왕성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완전한 외부인이다. 스스로의 기억도 증명하지 못하는 애를 왕성에 데리고 있다는 것이 들키면 오멜이 곤란해진다.


어린 애를 바깥에 내 놓는 부모님처럼 여전히 걱정근심 가득한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나에게 엘리샤라도 붙인 오멜은 그제서야 회의 갔다 올게, 라며 외투를 걸치고 도서관을 나섰다.


"저기··· 루비씨···"

"편하게 불러도 돼."

"아, 네. 그러면 루비 언니로."


언니라니, 귀엽네~

허둥지둥하지만 착실하게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눈에 보여서 정말 기특한 애다.

여기저기서 이쁨 받겠구만. 조금 삐뚤어진 성격인 나랑은 결이 달라서 신기할 따름이다.


"오멜님의 전속으로 오셨다고 들었는데, 정말인가요?"

"아~ 음~ 뭐··· 그렇지. 그렇게 됐어."

"아··· 신기한 일이네요."

"신기한 일이야? 전속 한 둘 쯤 있는 왕성의 높은 사람들이 꽤 계시다고 들었는데."

"네, 보통은 그렇기는 하지만··· 오멜님은 이전에도 왕실에서나 주변 분들이 여러 번 전속을 붙여주겠다고 했을 때에도 항상 거절하셨거든요. 마법에 엄청나게 몰두하시는 분이라 주변 사람들을 방해로 생각하셔서요."

"...그래?"


그건 조금 의외인 이야기다.

자기 말로 꽤나 엘리트인 마법사라고는 했지만 조금 얼빠진 면이 있어서 믿음이 잘 가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자신의 일에 굉장히 몰두하는 성격이었나보다. 심지어 주변에 누가 있는 것까지 싫어할 정도로. 보기보다 더 괴짜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하긴, 생각해 보면 자신의 방부터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도서관을 자신의 방으로 쓰고 있다니. 거기서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야 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를 전속으로 머물 곳을 주었다는 것이 더욱 신경이 쓰인다.

그는 그것이 개인적인 이유라고는 했고 나도 그것을 더 캐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건 그가 박애주의자기 때문이라거나 곤란한 사람을 아무나 전속으로 들일 정도로 쉽고 평범한 일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는 거다.

가족과 기억을 잃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여태껏 유지했던 생활 방식을 포기할 정도로 그에게 가치가 있었다는 뜻이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멜님은 사실 여성에게 성적으로 관심이 없다는 소문도 있었···”

“흐응, 그런 소문이?”

“...아앗, 죄, 죄송해요. 이건 실언이었어요··· 오멜님께 말하지 말아 주세요···”

“아냐, 아냐. 안 말해. 걱정 마. 나 이런 소문 좋아하는 걸. 재밌잖아. 오멜이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는 소문이라.”

“우우···”


하긴, 그런 소문은 꽤나 나올 만도 하다. 엘리트 마법사에게 왕실에서까지 나서서 붙여 준다는 전속이라면 외모로는 분명 날고 기는 애들일 텐데 그걸 거절한다라. 확실히 평범하지는 않다.


실언을 했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엘리샤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손을 휘저어 보였다.

떠도는 풍문을 본인에게까지 전할 정도로 내가 눈치 없는 사람도 아닐뿐더러 그다지 의미도 없는 행동이다. 거기에 오멜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들 불같이 화를 낼 성격도 아니다.

거기에 엘리샤에게 말한 것처럼 정말로 그런 소문, 재밌잖아. 서로 모여서 그런 잡담하는 것만큼 재밌는 것도 없지. 음.


"그래도 그런 소문까지 돌 정도면··· 의외로 오멜은 인기 있는 타입이야?"

“엄청나게 인기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오멜님은 왕성 메이드들 사이에서 평판은 좋으신 분이에요. 거기에 머리도 좋으시고··· 메이드들에게도 상냥하게 대해 주시니까···”

“...그런가?”


정말로 오멜이 그런가를 가만히 고민하다가 엘리샤의 묘하게 헤실거리는 표정을 보고 의미 없는 고민임을 깨달았다.

아마도 모든 메이드들의 평판이라기보다는 엘리샤 개인적인 평가일 확률이 높겠지.


그래도 성격이 좋냐, 나쁘냐, 라고 하면 괜찮은 성격인 것은 인정한다. 조금 얼빠진 부분은 있지만 엘리샤가 말한 대로 상냥하다는 것도 조금 알 것도 같다.

얼굴은··· 잘생긴 얼굴이라기보다는 샌님 같은 스타일이다. 항상 머리카락도 부스스한 채로 다니고. 왕실의 수석 마법사라고 하니 머리가 좋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지만.


"...하지만 루비 언니, 저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요."

"...포기라니?"

"비록 언니가 먼저 오멜님의 전속이 되셨지만, 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


뭔가 크게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원한다면 가져가라지. 난 그런 마음 하나도 없으니까.

화이팅, 응원하고 있어, 라며 적당히 반응해주자 여전히 내 속마음을 모르는 엘리샤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왠지 모를 각오를 다진다.


“그래서 오멜이 뭐라고 했어? 조금 부끄럽지만 나 정말로 이 왕성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거든. 왕성 뿐만이 아니라 메이드도 사실 처음이라 일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도하고···”

“오멜님께서는 그냥 왕성 이곳저곳을 알려 달라고만 하시기는 하셨는데요··· 어라, 그러면 루비 언니는 어디서 오신 거예요?”

“어디서?”

“네에. 젠탈리온 출신이 아니신 거죠? 혹시··· 실례되는 질문이었을까요?”

“아냐, 아냐. 출신 말이지···”


사실 기억을 모두 잃어서 어디 출신인지 몰라,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엘리샤가 믿음직스러운 아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나와 오멜 사이의 신뢰의 문제다.

엘리샤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를 왕성에 머물게 해 준 오멜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은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없다.


“아~ 음, 그러네. 젠탈리온 출신은 아니야. 음··· 조금 먼 곳에서 말이지···”

“그럼 역시 아네즈 왕국 출신이시죠?! 저 사실 첫눈에 바로 알아봤어요!”

“아··· 네즈?”

“언니 같이 붉은 머리카락은 젠탈리온 근처에는 없는 독특한 색이니까요. 아네즈 사람들은 머리카락 색깔이 아름답고 독특하다고 들었거든요. 물론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꼭 한 번은 여행하고 싶은 나라에요.”

“아, 뭐, 음, 그, 그래. 좋지.”


엘리샤가 무슨 착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착각에 얼렁뚱땅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당연하지만 아네즈 왕국이 어디에 있는 왕국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랑 비슷한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거니까 한 번 도서관에서 정보를 찾아 둘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

아무런 기억도 없는 나에게는 거짓말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먼저 오해해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 좀 더 머리를 길러 보는 건 어때요?

“지금도 꽤나 길다고 생각했는데··· 별로야?”

“아뇨! 그게 아니라! 지금도 엄청 예쁘지만··· 사실 제 로망이거든요.”

“머리를 기르는 게? 엘리샤 머리카락 이미 충분히 긴 걸. 더 기르면 허리까지 닿겠는데.”

“그냥 머리카락을 엄청 기르는 건 의미가 없어요··· 제가 원하는 건 예쁜 색깔의 머리카락을 기르는 거거든요. 제 머리카락은 그렇게 예쁜 색깔은 아니라서요.”

“그래? 난 네 머리색 좋은걸. 정말 우아한 갈색이야.”


하앗, 하고 엘리샤가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가, 감사합니다.”

“진심이야. 나이도 어린데 예쁘고, 메이드로서도 나보다 선배니까 오히려 네가 부러운걸.”

“으아앗, 아뇨, 아뇨! 아니예요! 루비 언니야말로 예뻐서 보자마자 깜짝 놀랐으니까요! 언니야말로 작고 소중한 타입이니까요!”


엘리샤는 칭찬에 굉장히 약한 타입인지 얼굴이 새빨게져서 고개를 푹 숙이고 마구 손을 휘저었다.

귀엽네~ 나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 만약 엘리샤가 내 여동생이었다면 나보다 키가 크니까 올려다봐야 하는 여동생이었겠지만. 그래도 여동생으로서 보호 본능이 마구 치솟는다.


자신감을 가지렴 엘리샤. 자신감을 가져서 얼른 오멜을 낚아채버려. 언니로서 응원할 테니까.


작가의말

기특한 캐릭터는 언제나 좋아합니다.

열심히 하는 모습만큼 매력적인 게 또 없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목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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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2) 24.01.29 9 0 11쪽
6 #02. 우리는 예언으로부터 조국을 지킨다 (1) 24.01.25 9 0 13쪽
5 #01. 드래곤 나이트 (4) 24.01.22 9 1 16쪽
4 #01. 드래곤 나이트 (3) 24.01.18 9 0 17쪽
» #01. 드래곤 나이트 (2) 24.01.15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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