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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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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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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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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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커가 되다(2)

DUMMY

“꺄하하하하하~”


“······”


사람들을 벗어난 이유라는 처음 들어보는 밝은 소리로 크게 웃었다.

나는 혹시나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보며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멀리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지만 다행히 우리를 알아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후우···”


“하하하···.아···.”


한참을 웃다 지쳤는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이유라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거야. 망한거 같구만.”


“그러게. 왜 이렇게 웃었지··· 그냥 같이 도망치는 게 재밌었나 봐.”


이제야 조금 차분해진 이유라는 스마트폰을 켜고 영상을 하나 보여주었다.


“이거 안 봤나 봐?”


영상에선 ‘말콤의 푸른 잔’이라는 명칭을 가진 연합체의 출범과 동시에 전 세계 각성자들에게 랭킹을 부여하고 지원할 것을 약속 중이었다.


한국 시가총액 1위에 빛나는 금성의 회장도 연합체의 발족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랭킹은 일종의 신분이었다. 그들은 랭킹에 따른 지원을 약속하며 랭킹의 구간을 정하고 구간별 티어와 지원금액을 세분화해서 공표했다.


가만히 있던 각성자들로썬 갑자기 붙여진 순위에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상위 랭킹에 오를수록 가만히 있어도 돈과 명예가 들어오는 구조였기에 반기는 각성자들도 있을 터였다.


“태오 너는 랭킹 7위야. 랭킹 10위 안에 드는 사람들은 진짜 혜택이 엄청나던데. 좋겠네.”


아무것도 안 해도 매달 들어오는 돈이 20억.

만약 팀을 꾸려 게이트를 탐험한다고 하면 원하는 게이트를 배정해 주고, 대신 나오는 재화의 20%를 대가로 받는다. 80%는 탐험가의 몫이었고, 장비나 재료를 최저수수료로 구입해 준다.

연합체에 속한 기업들이 하는 모든 것들에 할인 혜택이 있었고, 공짜로 받는 것도 끝도 없었다.


조만간 사려고 마음먹은 SUV도 70% 할인된 금액으로 사는 게 가능했고, 사실 만약 산다고 하면 공짜로 줄 확률이 높았다.

비행기는 평생 무료나 마찬가지였고, 공짜로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도 넘쳐났다.


“물론 게이트 관리국 소속이라 제한되는 게 있겠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그래. 근데 내가 왜 이렇게 랭킹이 높은 거지?”


“몰라서 물어? 자이언트 앤트를 혼자서 잡았잖아. 국내에 그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아?”


“그런가.”


“그래. 하아... 뛰었더니 배고프다. 밥 먹으러 가자.”


우리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다.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길을 거닐었다.

어느새 포근해진 날씨와 푸릇푸릇해진 주변을 둘러보며 한가롭게 하루를 보냈다.


“저녁은 너희 집에서 먹자.”


“싫어.”


“왜? 어머니가 음식도 잘하시던데. 나 집에 가면 혼자야.”


“···가족들이랑 같이 안 지내?”


“응. 사이가 별로야. 다들 내 돈만 보거든. 얼굴 보기 싫어서 나와 살고 있어.”


가정 내 불화가 있었나. 전혀 몰랐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이유라가 얻은 마정에 대해 캐물으려 했지만···


“알았어. 가자.”


지금 분위기에서 갑자기 마정이니 외부인이니 해봐야 말해줄 것 같지도 않고.

어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 집을 향했다.


“어머~ 같이 올 줄은 몰랐네. 미리 얘기 좀 해주지!”


어머니가 내 어깨를 찰싹 때렸다. 이유라의 등을 토닥이며 소파에 앉힌 어머니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나도 도울게요.”


“됐어! 가서 얘기 나눠. 근데··· 아니다.”


나는 어머니의 등쌀에 밀려 이유라와 같이 소파에 앉아 TV를 보았다.

놀랍게도 뉴스에 내 영상이 나오는 중이었다.


-이제 각성자가 된 지 3개월 차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맞습니다. 기초 수료반이 시작된 이후로 굉장한 재능을 가진 각성자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인터뷰가 힘들었는데, 오늘 용산에 있는 영화관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인데요.


이유라의 손에 이끌려 도망치듯 달려가는 내 뒷모습이 보인다.


함께 도망치는 연인으로 소개되었는데, 그림이 꽤 그럴듯했다.


“우리 커플이라네. 공식 연인인가.”


“···뭔 소리야?”


“영광이지? 한국 최고 스타와 열애설에 휩싸이다니. 캬~ 나였으면 심장 두근거려서 잠도 못 잤다.”


“자기 입으로 한국 최고 스타라고 하는 거 안 부끄러워?”


“왜? 사실이잖아. 나 찾는 곳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게이트 한 번 들어갈 때마다 놓치는 광고가 몇 갠데. 나는 항상 손해 보면서 살고 있다고.”


“그래. 잘났다.”


영상 속 우리는 아주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흔들리는 카메라속에서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진 우리를 보며 촬영자가 한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와, 더럽게 빠르네 진짜···


“꺄하하하하하~”


이유라가 또 빵 터져버렸다.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나. 소파에 대충 널브러져 낄낄거리는 모습이라니. 찍어다 어디 올리면 조회수 좀 나오겠는데.


“저녁 먹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반듯한 자세로 일어난 이유라는 밝게 대답하며 식탁으로 걸어갔다.


“집에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차린게 얼마 없네. 다음에 오면 맛있는 거 해줄게~”


“어머, 어머니~ 완전 진수성찬인걸요! 먹다가 배 터지겠어요!”


어느새 말을 놓은 건지 편하게 말하는 어머니와 쿵작이 잘 맞는 이유라였다.

그 광경이 너무 어색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어느새 떠오른 누군가의 얼굴 때문이었다.


‘이혜진···’


잘 살고 있을까. 나와 같이 아직 고등학생일 그녀를 상상해 본다.

더 밝고 더 아름다웠을까. 티끌하나 없는 순백의 설원 같은 그녀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언제나 주변을 총천연색의 공간으로 바꾸던 밝은 미소가 떠오른다.

가볍게 잡은 손끝으로 전해지던 가슴 충만한 따뜻함이 떠오른다.

그녀 옆에선 언제나 웃고 있었던 바보 같은 내 얼굴이 떠오른다.

나는······


“뭐 해? 얼른 먹어.”


“···그래야지.”


생각을 멈추고 젓가락을 움직여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다.


“컥···”


무슨 맛인지 모를 고기와 반찬이 목구멍에 틀어 막혔다.

탁.탁. 가슴을 두드리며 물을 마시자 목에 끼여있던 음식이 식도를 타고 천천히 내려갔다.


“천천히 먹어~ 배고팠구나.”


“그러게. 태오, 배고팠나 보다. 여자 친구한테 맛있는 것도 안 사준 거야?”


나는 밥그릇을 노려보며 말했다.


“여자친구 아니에요.”


“어머나. 그랬어? 내가 주책이었네~ 이거 더 먹어라.”


무던하고 평이하게 살 수 있다면, 그건 그 나름대로 축복받은 삶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큰 변화를 맞이할만한 사건이 없었다는 이야기이니 말이다.


하지만 커다란 사건이 닥쳐왔을 때.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을 때. 인간은 그 민낯을 드러내고, 스스로의 밑바닥을 내비치곤 한다.

그때 보이는 모습이 내가 지금 것 알아왔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지라도. 놀라면 안 된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


***


나는 이유라를 대충 돌려보냈다.

그리고 며칠간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일어났다.


같은 학년에 있던 강연학이 외부인이자 게이트 침식을 일으킨 주범으로 알려지며 한차례 난리가 났다.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는 전에 없이 커졌고, 모두가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각성자들의 랭킹도 요동쳤다. 자신의 랭킹을 인정하지 못한 각성자들이 상위 랭커들을 찾아가 시비를 걸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싸움이 벌어졌고, 도시 내에서 싸움을 벌이는 미친놈들이 있어 민간인 사상자도 생겨났다.

‘말콤의 푸른 잔’ 에서는 각성자들이 조금 더 안전하게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경기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새천지’의 만행도 세상에 드러났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신공양이 자행되고 있었고, 놀랍게도 그 본류이자 본부가 있는 곳이 한국이라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됐다.


일신 고등학교에선 단체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고, 모든 학생들이 가까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피비린내 가득한 일신 고등학교는 그대로 폐쇄됐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나는 간간히 정보를 수집하고, 머릿속 공략집을 살피긴 했지만. 대체로 누워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난 뒤. 이독 팀장의 체육관을 찾아갔다.


“왔나. 오랜만이군.”


“네. 몸이 찌뿌둥해서요.”


“잘 왔다.”


몸을 극한까지 단련시킨다.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머릿속엔 횟수를 세는 기능만 남게 된다.


“아홉···열!”


마지막 횟수를 채우고 나서 바닥에 드러누워 숨을 들이켜면 세상이 맑아지며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잡생각 안 하는데 운동만 한 게 없네요.”


“생각이 많나 보군.”


“뭐, 그런 편이죠. 자고 일어났더니 다니던 고등학교가 폐교를 하고, 외부인인지 뭔지가 이렇게 가까이에서 난리를 치고 있으니···”


탁. 이독 팀장이 갑자기 대검을 꺼내 들었다.


“내 오리지널 기술을 궁금해했었지?”


“네? 맞아요. 그거 이름이 유성검이라고 했죠? 저도 그런 필살기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필살기라··· 일어나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독 팀장이 건넨 중검을 들고 마주 섰다.

검끝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머리털이 쭈뼛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은 어려울 거다. 하지만 개념을 잡아둔다면 언젠간 너만의 기술을 만들 수 있을 거다.”


이독 팀장의 설명이 시작됐다.


“먼저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마력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요리로 예를 들자면, 재료 본연의 맛과 향, 조리방식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다른 재료와 조합했을 때 맛과 향이 어떻게 변하는지,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요리는 좀 하는데. 대충 알 것 같네요.”


“훌륭한 요리사는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거지.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들이 기본 재료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몸도 마찬가지야. 근육과 관절이 움직임, 기능을 이해하고, 다양한 움직임들을 수련해야지만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거다.”


“그래서 매일 이렇게 훈련하시는 거군요.”


“그래. 유성검은 그런 이해와 내가 좋아하는 움직임이 결합되어 생겨난 기술이다. 결국은 중력강화와 무게중첩, 속보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조합한 움직임이지.”


“그렇군요.”


개념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궁금한 게 많다. 다른걸 다 떠나서 그 모든 걸 결합하는 방법이 궁금했다.


“마력의 운용이나, 그 모든 걸 통합하여 찰나의 순간에 빚어내는 건. 일종의 깨달음과 같다.”


“깨달음이요?”


“그래. 정확한 개념을 설명해 줄 수 없는 스스로 느끼고 깨우쳐야만 하는 영역이지.”


“으음···”


결국 알려줄 방법이 없다는 건가?

하긴 그렇게 간단한 거였다면 고유오의(固有奧義)가 그렇게 드물게 나타나진 않았을 거다.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높게 평가받았던 거겠지.


“지금부터 거기에 이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훈련할 거다. 각오하도록 해라.”


“지금보다 훨씬 빡세다는 거죠?”


“비교할 수 없을 거다.”


그 정도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만.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고유오의를 배울 수 있는 기회이지 않나. 정말 목숨을 걸더라도 포기해선 안 됐다.


“해보시죠.”


정말 제대로 된 훈련의 시작이었다.


***


“후우··· 죽겠네.”


어두컴컴한 밤하늘 아래서. 나는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는 조용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 중이었다.

변태나 관음중 환자 같아 보이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한가연. 연강대학교 3학년이던가.”


나는 연쇄살인마의 다음 피해자를 감시 중이었다.

낮에는 극한까지 몰아치는 훈련을 하고, 밤에는 여대생을 감시하는 인생이라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띠링. 스마트폰이 울려 급히 껐다. 이유라의 전화였다.


“왜 자꾸 전화야.”


스마트폰을 무음모드로 바꾸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이제 곧 한가연이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나올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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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강릉(5) 24.04.03 31 0 13쪽
51 강릉(4) 24.04.02 37 0 12쪽
50 강릉(3) 24.04.01 38 0 12쪽
49 강릉(2) 24.03.29 42 0 12쪽
48 강릉(1) 24.03.28 48 0 12쪽
47 유월(逾越)(7) 24.03.27 52 0 13쪽
46 유월(逾越)(6) 24.03.26 47 1 13쪽
45 유월(逾越)(5) 24.03.22 56 0 13쪽
44 유월(逾越)(4) 24.03.21 55 0 12쪽
43 유월(逾越)(3) 24.03.20 62 0 13쪽
42 유월(逾越)(2) 24.03.19 61 0 15쪽
41 유월(逾越)(1) 24.03.18 68 1 13쪽
40 5번방의 괴생명체 24.03.15 71 0 15쪽
39 음모(2) 24.03.14 75 0 15쪽
38 음모(1) 24.03.13 72 0 16쪽
37 랭커가 되다(3) 24.03.12 74 0 13쪽
» 랭커가 되다(2) 24.03.11 76 0 13쪽
35 랭커가 되다(1) 24.03.08 78 1 12쪽
34 새천년(2) 24.03.07 88 0 14쪽
33 새천년(1) 24.03.06 82 1 13쪽
32 침식당한 학교(2) 24.03.05 87 1 14쪽
31 침식당한 학교(1) 24.03.04 90 0 14쪽
30 두 번째 게이트 탐험(6) 24.03.01 93 0 14쪽
29 두 번째 게이트 탐험(5) 24.02.29 98 1 14쪽
28 두 번째 게이트 탐험(4) 24.02.28 104 1 14쪽
27 두 번째 게이트 탐험(3) 24.02.27 103 0 13쪽
26 두 번째 게이트 탐험(2) 24.02.26 11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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