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공략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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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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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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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유월(逾越)(5)

DUMMY

“그거 좀 벗어라.”


“왜? 잘 보이는데.”


“사람이 눈을 보고 말해야 할거 아냐!”


“승질머리 하고는. 알았다.”


김로우는 눈을 가리던 VR기기를 벗었다. 그리고 언제나 시누이처럼 잔소리하는 박요한에게 말했다.


“현실만 살지 말고 VR도 좀 하고 그래라. 진짜 인생을 왜 그렇게 사는 거야?”


“미친놈. 너야말로 현실을 살아라. VR좀 그만하고!”


아무리 세계가 첨단기술로 변해간다지만 저건 잘못된 거다. 두 눈으로 직접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필터 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건 진실에서 눈을 돌리는 회피나 다름없었다.


“그만. 대금은?”


신림을 지배하는 거대한 호원상가의 주인. 호사장은 결제 대금을 확인하며 금액을 맞추고 있었다.

예전처럼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며 물건을 파는 재미를 잃은 대신 얻은 새로운 취미였다. 하루에도 수억씩 꽂히는 잔고를 보고 있으면 지루할 새가 없었다.


“베타코인 50개 들어온 거 확인했습니다. 여기요.”


박요한이 건네는 기기를 받아 든 호사장은 전자지갑에 코인을 옮겨 담았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대금을 돌려받고는 했다. 그렇게 아낀 세금만 1년에 수십억이었다.


“흐흐흐. 아무리 봐도 질리지가 않아. 재밌네. 재밌어.”


“저도 봐도 돼요? 왜 사장님만 재밌어요?”


“아이고, 이 미친놈아.”


헛소리하는 김로우를 타박하는 박요한. 그런 두 명을 앞에 두고 돈 세기 바쁜 호사장.

호원상가 대표실의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그런 일상적인 풍경에 오늘 이질적인 피사체가 추가되었다. 그건 풍경 전체를 어그러뜨리는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끼이익. 탁.


“응? 뭐야, 왜 갑자기 들어와?”


호사장의 대표실은 잡상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상시 경비 중인 경비의 숫자만 10명이 넘었다.

대체 어떻게 아무 제지도 없이 여길 들어온 건지 의문스러웠다.


“너 뭐야? 누구야?”


풍선처럼 부푼 거대한 몸집. 뒤로 넘겨 묶은 긴 머리는 빗자루처럼 거칠고 뻣뻣했고, 푸르댕댕한 얼굴은 살 때문에 눈과 입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김로우와 박요한은 범상치 않은 존재감에 자리에서 일어나 호사장 앞을 가로막았다.

둘은 그저 떠들고 헛소리나 하려고 대표실에 눌어붙어있는 게 아니었다.


“돌아나가. 아직까진 아무 일도 아니다.”


“그래. 대표실 난장판 만들지 말고 나가라. 청소하려면 귀찮아.”


박요한은 얇은 검을 김로우는 개틀링건을 꺼내 들었다.


“···개틀링건?”


“응? 알아보는 거야? 캬··· 이거 스미스사에서 나온 신품이야. 마력을 끝없이 잡아먹는 괴물 같은 놈이지만 성능은 확실하지. 1초에 12발이 발사되는···”


“닥치고 집중해라. 보통 놈이 아니다.”


박요한은 신중했다. 뒤뚱거리며 몇 걸음 다가온 오드가 보통인간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어쩌면 인생 최대의 위기일지도 몰랐다.


“허허. 내가 호사장이요. 내게 볼일이 있어 온 것이오?”


긴장한 박요한을 눈치채고 호사장이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일단 피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래. 호사장. 오랜만이야.”


“나를 아시오? 내가 기억력이 상당히 좋은 편인데 기억이 안 나는군. 잊기 힘든 인상인데 말이야.”


“곧 기억날 거다.”


오드는 한걸음 더 걸었다.

거기에 반응하듯 박요한의 검이 치켜세워지고, 개틀링건의 총구가 정확히 겨누어졌다.


“너희도··· 악을 쌓았구나.”


눈에 보인다. 저들을 휘감고 있는 불길한 검은 기운들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다. 수년간의 고문 때문일까. 아니면 내게 수많은 것들을 남겨주고 떠난 스승들 때문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알았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가 선하게 살아왔는지 악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유월에 합류하기로 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곳은 밝았다. 사람들을 휘감은 기운이 대부분 밝고 아름다웠고, 그 선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에 반해 이곳에 있는 인물들은.


‘더럽군.’


지저분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개틀링건을 든 남자는 온몸에 똥처럼 색이 묻어 있었다. 이렇게 더럽고 지저분한 빛깔은 오랜만이었다.


‘아동성범죄자였나.’


개틀링건을 든 남성의 비릿한 표정 속에서 음울한 색욕을 읽어냈다.


‘암살자.’


얇은 검을 든 남성은 선명한 붉은색을 띠었다. 전형적인 살인청부업자들의 색이었다.

그리고.


‘수전노.’


검은빛이 진흙처럼 들러붙은 노란색을 지닌 호사장은 돈에 미친 게 분명했다.


“너흰 날 기억하게 될 거다. 네놈들의 악몽이 되어주마.”


“개소리를!”


오드가 한 발짝 뗀 순간 김로우의 개틀링건이 불을 뿜었다.

마력을 한계까지 집어삼킨 개틀링건이 미친 듯이 마탄을 쏟아내었다.


쿠쿠쿠쿠!


그냥 걸었다. 이 정도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다. 따끔한 느낌도 주지 못한다.

왼쪽에서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 검을 손으로 잡아챘다.

동시에 놀란 표정의 박요한의 몸통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퍽!


“커억···!”


피를 토하며 날아간 박요한은 벽을 뚫고 멀찍이 날아갔다. 동시에 뒤로 물러나는 김로우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김로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뒤뚱거리던 돼지 같던 놈이 공간을 뛰어넘듯 갑작스레 눈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콰직! 쿵!


개틀링건을 손짓 한 번으로 휴지조각처럼 구겨버린 오드는 김로우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김로우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을 뚫고 지상으로 떨어졌다.


“꺄아아악!”


“뭐야! 무슨 일이야!”


천장을 뚫고 떨어진 사람 때문에 사람들로 가득 찼던 상가내부는 난리가 났다.


“뭐, 뭐야? 사람이···”


“경찰 불러!”


“마물 아냐? 위에 마물 나온 거 아냐? 시발!”


호사장은 난장판이 된 상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거구의 남성이 왜 찾아왔는지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을지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빠르게 고민했다.


‘누구지? 누구인지 알면 방법이 있을 텐데. 젠장!’


기억나질 않는다. 저렇게 생긴 인간을 기억하지 못할 수가 있나. 그럴 리가 없다.

떠올려야 한다.

누굴까. 저렇게 생긴, 아니 저렇게 변할 수 있는 인간이 누가 있을까.


저벅. 저벅. 뒤뚱거리며 그가 다가온다. 상상을 초월하는 압박감에 다리에 힘이 풀린 호사장은 다시 의자에 주저앉았다.


손발이 덜덜 떨렸다. 바지 한가운데가 젖고 있었다. 호사장은 자신이 오줌을 지린 것도 알지 못하고 두려움에 가득한 표정으로 오드를 올려볼 뿐이었다.


“대, 대체 왜···”


살점에 파묻힌 가느다란 실금 안에서 오드의 안광이 빛을 뿜었다.

그건 처절한 살기였고, 응어리진 분노였다.


“나를 기억 못 하나. 호사장.”


“······!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얼굴도 목소리도 완전히 바뀌었지만. 눈빛을 본 순간 알 수 있었다.

왜 이 사람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확실하다.

김태오. 눈앞의 인간은 게이트국 최고의 추문을 만든 그 인간이 분명했다.


“기, 김태오···!”


“흐흐흐흐.”


웃음이 터졌다. 이런 모습이 되어도 알아보는구나. 다행이었다.

나를 잊었을까 두려웠다. 오직 복수심만으로 버텨온 생이 너무 허탈해질 것 같아 두려웠었다.


“그래 나다. 호사장. 오랜만이야.”


“너, 넌 분명 죽었어. 이독과 김어수. 그 반란분자 놈들과···!”


꽈악.


더럽게 떠드는 입을 틀어막았다. 저 쓰레기의 입에서 스승들의 이름이 나오는 걸 견디기 어려웠다.


“위증으로 거짓을 말한 자에겐 어떤 벌이 필요할까.”


“읍···읍!”


“그 거짓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


호사장은 두려움에 발버둥쳤다.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남자의 발버둥이었다.


“처음엔 죽이고 싶었지. 전부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관련된 모든 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할 생각뿐이었다.”


처음엔 오로지 살의뿐이었다. 내가 죽여야 할 이름들을 되새기며 머릿속으로 수없이 죽였다.

찢어 죽이고, 태워 죽이고, 짓밟아 죽였다.

하지만 분노의 시간이 길어지며 생각은 점차 달라졌다.


“죽는 건 너무 쉬운 일이야. 그렇게 편리하게 떠나버리면 아쉽잖아?”


그렇기에 생각해 냈다. 이들을 지옥 속에서 살게 할 하나의 기술을 만들어냈다.

낙인(烙印). 이들에게 내려질 최악의 형벌이었다.


치이익.


“끄아아아아아악!!!”


이마에 새겨진 세 글자.

[사기꾼]

이 낙인 지워지지 않는다. 가려지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고통을 준다.

불규칙적으로 예상치 못하게. 고통이 찾아왔다 사라진다.


이걸 없애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던가, 아니면.


“낙인을 지우고 싶다면. 너의 죄를 고하라. 세상 앞에 모든 죄를 고하고 벌을 받아라. 낙인을 지울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다.”


“으으으!! 으아아아악!!”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정신을 잃지 못한다. 낙인이 지닌 효과 중 하나였다.

나는 발버둥 치는 호사장을 내버려 두고 다른 둘에게도 낙인을 새겼다.

김로우의 생식기엔 [아동성착취]를 박요한의 왼쪽 목덜미엔 [살인청부업자]를 새겨주었다.


“이제 시작이다. 흐···흐흐흐···흐하하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웃음이었다.

속시원히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어 그냥 계속 웃었다.

지난 삶을 모두 토해내듯 웃음은 아주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


“이거 왜 가려지지가 않아?”


“뭘로 가려도 밖으로 튀어나와요. 원리를 모르겠네요.”


정보부에선 간신히 살아온 4호를 며칠째 확인 중이었다.

이마에 새겨진 글씨가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았다.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헬맷을 씌워도 겉으로 낙인이 드러났다.


거기다 끔찍한 고통은 덤이었다. 불규칙적으로 찾아오는 고통 때문에 4호의 눈빛은 이미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었다.

끔찍한 훈련으로 단련된 4호조차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위험한 능력이에요. 이걸 아무 때나 쓸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었다. 만나는 모든 정보부 사람들에게 낙인을 찍는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정도 힘을 그렇게 무분별하게 쓰지는 못하겠지. 사용 제한이 있거나 많은 마력이 필요할 거야.”


“그렇다 해도 위험해요. 하루에 한 명씩 낙인을 새기고 다녀도···”


“3명··· 3명 더 생겼어요.”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온 연구원이 소리쳤다.


“글자가 새겨진 사람이 3명 늘었습니다!”


“···뭐?”


정보부에겐 끔찍한 재앙으로 여겨질 능력이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


“이건 심각한 문제예요.”


“알고 있다.”


“미안하다고 끝낼 일이 아니에요.”


“미안하진 않다.”


“그래요.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로··· 뭐라고요?”


조세은은 어이가 없었다. 사라졌다 갑자기 돌아온 오드 때문에 화가 나 죽겠는데. 미안하지도 않다니. 적반하장이란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걸까.


“저기요. 미안하지 않다니요? 그런···”


“저녁을 먹는 중이었군.”


자리에 앉은 오드가 식사를 시작했다.

이두한과 이철진은 조세은의 눈치를 보며 수저를 내려놓고 있었다.


“이봐요! 지금 밥 먹을 때에요?”


“응. 저녁 시간이다. 먹는데 말 걸지 마라.”


“아니, 뭐야!”


“자, 잠깐만···!”


이두한과 이철진이 조세은을 뜯어말렸다. 한쪽씩 팔을 잡고는 뒤로 질질 끌고 간 다음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있던 게 아닐까?”


“맞아. 뭔가 분위기나 말투가 변한 것 같은데. 일단 넘어가고, 내일 이야기하자. 응?”


“그래그래. 오랫동안 고문당했잖아. 오락가락할 수 있어. 암. 그렇고 말고.”


필사적인 두 남자의 마음을 느낀 것일까. 조세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어요. 근데 본부엔 어떻게 얘기했어요?”


“아직 이야기 안 했어. 일단···”


삐빅. 삐빅. 삐빅.


세 사람의 호출기가 동시에 경보음을 울렸다.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한 셋의 얼굴이 동시게 굳어졌다.

총공격. 기습. 낯선 단어들이 보였다.

유월의 본부에 적이 쳐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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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마물 헌터(1) 24.04.05 28 1 13쪽
53 세상을 가르는 힘 24.04.04 32 0 12쪽
52 강릉(5) 24.04.03 31 0 13쪽
51 강릉(4) 24.04.02 37 0 12쪽
50 강릉(3) 24.04.01 38 0 12쪽
49 강릉(2) 24.03.29 42 0 12쪽
48 강릉(1) 24.03.28 48 0 12쪽
47 유월(逾越)(7) 24.03.27 52 0 13쪽
46 유월(逾越)(6) 24.03.26 47 1 13쪽
» 유월(逾越)(5) 24.03.22 57 0 13쪽
44 유월(逾越)(4) 24.03.21 56 0 12쪽
43 유월(逾越)(3) 24.03.20 62 0 13쪽
42 유월(逾越)(2) 24.03.19 61 0 15쪽
41 유월(逾越)(1) 24.03.18 68 1 13쪽
40 5번방의 괴생명체 24.03.15 71 0 15쪽
39 음모(2) 24.03.14 75 0 15쪽
38 음모(1) 24.03.13 72 0 16쪽
37 랭커가 되다(3) 24.03.12 74 0 13쪽
36 랭커가 되다(2) 24.03.11 76 0 13쪽
35 랭커가 되다(1) 24.03.08 78 1 12쪽
34 새천년(2) 24.03.07 88 0 14쪽
33 새천년(1) 24.03.06 83 1 13쪽
32 침식당한 학교(2) 24.03.05 88 1 14쪽
31 침식당한 학교(1) 24.03.04 90 0 14쪽
30 두 번째 게이트 탐험(6) 24.03.01 93 0 14쪽
29 두 번째 게이트 탐험(5) 24.02.29 98 1 14쪽
28 두 번째 게이트 탐험(4) 24.02.28 104 1 14쪽
27 두 번째 게이트 탐험(3) 24.02.27 104 0 13쪽
26 두 번째 게이트 탐험(2) 24.02.26 11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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