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 공략집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바쿡
작품등록일 :
2024.01.15 10:31
최근연재일 :
2024.04.08 18:25
연재수 :
55 회
조회수 :
6,627
추천수 :
94
글자수 :
337,668

작성
24.03.18 18:25
조회
68
추천
1
글자
13쪽

유월(逾越)(1)

DUMMY

“이게 대체···”


현대판 노예상들도 처음 보는 끔찍한 광경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우리도 인권 따위나 이야기할 말랑한 단체가 아니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너무하네.”


“아니,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근데 왜 안 죽는 거야?”


복부를 열고 내부의 장기를 전시회장의 예술품처럼 드러낸 채로 살아있을 수 있는 건 대체 어떤 생명력인거지?

이해가 안 가지만.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이미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었으니.


“이것부터 한다. 다들 봉인해제해. 결박 풀고.”


“괜찮겠어? 작전대로 해야···”


“내가 책임져! 무조건 데려간다.”


여성은 모든 걸 책임질 각오였다.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인지도 확신이 안 서는 이 괴생명체에겐 분명 무언가 있다. 게이트국에서 이곳에 처박아둔 큰 비밀이 있을 것이다.


“시작한다. 모두 집중!”


노예상들이 새로운 노예를 포획하는 동안 경비대의 인원들은 헬멧과 이어 디펜더를 통한 내부 통신망을 활성화 중이었다.


-부장님. 저거 깨우죠?


-뭘 깨워? 응? 저거?


이철진은 1번 방의 괴인을 깨워 일단 깽판을 칠 생각이었다. 적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당해주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다.


-야. 분위기 보니까 죽이지 않을 것 같은데 그냥 조용히 있자. 월급쟁이가 왜 이렇게 사명감이 높아?


-아니, 부장님이 그러고도 자랑스러운 검은 두더지의 경비대입니까! 저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냥 깽판 치고 싶은 것뿐이잖아! 사명감은 지랄하네. 닥치고 있어!


“어이, 뭐라고 꿍얼대는 거야?”


소리가 너무 컸나 보다. 방음을 뚫고 소리가 새어나간걸 보니.


“조용히들 하고 있어.”


다행히 크게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양손목에 채워둔 마력억제기를 그만큼 믿어서겠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엔 그게 통하지 않는 인간이 하나 있었다.


-결박 다 풀었는데 어쩔까요.


-하지 말라고. 하지 마. 제발 좀 하지 마라.


-다녀오겠습니다.


-에라이.


팅. 손목을 결박한 수갑형태의 마력억제기를 풀어낸 이철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감시자에게 달려들었다.


“응?”


퍽. 퍽. 신속하게 뻗어진 주먹 두방으로 감시자를 쓰러트렸다. 아까 싸울 때 암살계열의 능력자로 보였는데, 확실히 내구력이 약했다.

이철진은 열쇠를 빼앗아 경비대원들의 수갑을 풀어주고는 1번 방의 괴인에게 다가갔다.


-진짜 할라고? 그냥 가만히 좀 있자.


-싫어요. 그 개새끼들이 다구리를 깠잖아요.


툭. 툭. 채워둔 결박을 하나 둘 풀어냈다. 어떤 형태의 구속인지 다 알고 있었기에 노예상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결박과 봉인을 풀어낼 수 있었다.


-됐나?


마지막 봉인이 제거되고 모두가 멀찍이 물러났다.

그때까지도 미동이 없던 괴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몸을 살피는 것 같은데?


-그러게요. 달려들 줄 알았는데 침착하네요.


-달려들면 어쩌려고?


-어쩌긴요. 데리고 5번 방으로 뛰어야죠.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방도 다 풀어볼까요?


-야이 미친놈아···!


그때, 괴인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심한 관절염에 시달리는 90대 노인처럼 삐그덕 거리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웠다.

괴인은 일어난 상태로 고개를 젖히고 깊은숨을 들이마시더니 천천히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


느릿한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간 괴인은 5번 방 쪽이 아닌 엘리베이터를 향해 갔다.


-야, 저거 어디 가냐?


-엥? 저러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죠?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이철진은 바로 신경을 꺼버리고는 노예상들이 들어온 벽을 향했다.

노예상놈들이 들어올 땐 모래처럼 흐물거리던 벽이 지금은 단단하게 막혀있었다.


-대체 무슨 원리야?


대충 예상해 보자면 손에 닿는걸 모래로 바꾸는 능력이 아닐까 싶은데.

땅속에서 감방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 들어온 걸 보면 탐색 능력이 뛰어난 모양이다.


“야! 너 뭐야?”


“무슨 일이야?”


복도 밖이 시끄러워졌다.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괴인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1, 1번 방에서 괴인이 탈출했습니다.”


“아오··· 가서 해결 좀 해줘.”


“알았다. 걱정 마.”


여성의 말에 노예상들 중 무력을 담당하는 덩치가 대검을 짊어진 채 복도로 나왔다.

복도 반대편 끝에서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는 괴인의 모습이 보였다.


“이봐. 거기로 나가면 안 돼.”


슬렁슬렁 걸어가며 말을 걸어보았다. 어쨌든 앞으로 한배를 탈 사이인데 다짜고짜 싸울 필요는 없었다.


“이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던 괴인이 움직임을 멈추고 돌아봤다.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너, 이걸 작동해라.>


“그거 나한테 안 통해. 밖에 나가고 싶은 거지?”


<······>


“똑바로 말을 해라. 어차피 나가고 싶은 거잖아? 우리에게 협조한다고 약속하면 내보내줄게.”


“···너흰 누구냐.”


“우린 유월(逾越)이라고 한다. 너와 같은 적을 가지고 있어. 너도 게이트 국을 싫어하지?”


“······임한수. 그를 죽여야 한다.”


“그래. 우리가 원하는 것도 그거야. 어때? 협력하겠어?”


“나를 내보내주면 그를 죽이겠다.”


“좋아. 그럼 조금만 기다리라고.”


덩치는 괴인을 이끌고 5번 방으로 향했다.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릴 모양이다.


-아, 이럼 나가린데···


-아니, 저게 말이 돼? 저렇게 말이 잘 통하는 놈이었어?


덩치와 괴인의 어처구니없는 결탁을 본 경비대의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레벨 D구역의 미친 범죄자 놈들이 전부 세상에 풀려날지도 몰랐다.

그때.


끼이익. 덜컹. 벽을 긁는 소리가 갑작스레 복도를 채웠다.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고 있었다.


-야, 이거···


-엘리베이터 올라가네요. 위에서 상황 파악한 모양인데요? 전투부대 내려오면 같이 깽판 부려볼게요.


-···좋아.


5번 방에 있던 사람들도 같은 소리를 듣고 있었다.

동시에 외부에서 작전중이던 다른 부대원들의 연락도 들어왔다.


“작전 실패라는데. 다들 물러나고 있다고 우리도 빠져나오래.”


“뭐? 안돼. 아직 시간이 필요해.”


여성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이 빌어먹을 괴생명체는 도무지 마법진이 먹히질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런 제약 없이 풀어주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시간이 없다. 곧 엘리베이터가 내려올 거고, 게이트국의 정예병들이 몰려들 거다.”


게이트 관리국 임한수 국장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각성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지상에서 작전을 펼치던 대원들이 괜히 빠르게 물러난 게 아니었다.


“젠장!”


“길 뚫자. 올라가야 해.”


덩치 큰 남성의 말을 듣고 바위를 모래로 바꾸는 모래능력자인 짧은 머리의 남성이 벽에 다가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작전이란 게 본래 이렇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상황들과 변수 앞에서 적절한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 결국 리더가 해야 할 일이었다.

이 팀의 리더는 눈앞의 여성이었지만, 덩치는 고집 센 여성을 대신해 일행을 지휘했다.


“후우··· 좋아. 가야겠지.”


“좋아 좋아. 우리 세은이가 달라졌어요.”


“닥쳐. 여기서 이름 부르지 마!”


세은은 손을 털고 일어났다.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작전이고, 고집부리다 작전을 날릴 순 없었다.


“그냥 데려가자.”


“응? 괜찮겠어? 정보에 없던 사람이야. 진짜 위험한 범죄자일지도 모르잖아.”


덩치는 우려를 표했지만 세은도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모두 결박 풀어.”


“휴우···”


5번 방의 괴생명체가 결박을 풀고 있는 사이 올라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레벨 D구역에 도착했다.

비어있던 내부엔 십 수 명의 위험한 능력자들이 차있었다.


끼이익. 덜컹.


“내려라.”


게이트 관리국. 줄여서 게이트국으로 불리는 한국 최강의 무력집단. 그곳에서도 가장 정예들만 모아둔 대한보문(大韓普門) 소속의 각성자들이 레벨 D등급에 당도했다.


“당주님. 어찌할까요?”


“모두 제압한다. 반항한다면 죽여도 좋다.”


타협 따위는 없는 대한보문의 피의 숙청이 시작되려는 순간. 양손을 바짝 치켜들고 경비대원들이 1번 방을 빠져나왔다.


-아, 저희는 경비대 소속입니다. 위에서 오셨습니까?


“아직 살아있었나? 상황은?”


-정체불명의 적이 감옥 외부 벽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지금 1번 방 죄수와 함께 5번 방에 모여있습니다.


“5번? 알았다. 위로 올라가 경비대에 합류하도록.”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쇼.


구영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드디어 이 빌어먹을 공간을 빠져나가게 생겼다.

이철진 말대로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올라가면 소장 놈한테 소금 한 바가지를 뿌리고 레벨 D등급은 다신 안 내려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절대 예상대로 행동해주지 않는 인간을 깜빡하고 있었다.


-저는 합류하겠습니다.


-야! 이철진! 닥치고 이리 와라. 올라가서 얘기해.


-싫어요. 이 새끼들 내가 반대로 다구리 놓기 전에는 못 돌아갑니다.


-야이···!


“이철진?”


구영수와 이철진의 대화를 끊고 대한보문의 당주(當主)가 관심을 가졌다.


“네가 검은 두더지의 칼이었나? 유월 놈들에게서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군.”


-뭐, 이철진인건 맞습니다.


“좋아. 합류해라. 붙잡는데 도움이 되겠지.”


당주가 눈을 빛냈다. 3등급 이상의 실력을 가진 실력자이면서 고작 경비대 소속으로 있는 이철진에 대해선 게이트국에서도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입해 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잘됐다.


“도각. 기호. 앞장서라.”


호명된 두 명의 남성이 앞장서서 5번 방을 향했고, 구영수는 혀를 차며 발만 동동 굴릴 뿐이었다.

3번 방을 지날 때쯤 거대한 대검을 짊어진 덩치가 5번 방을 나와 대한보문의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이럴 때 적절한 단어는 뭐랄까. 문답무용(問答無用)일까.

서로를 알아보는 것 같은 당주와 덩치의 눈빛엔 오직 상대를 쓰러트리겠다는 열망뿐이었다.


“흐아!”


“받아라!”


짧은 기합과 함께 두 명의 남성이 달려들며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 넓지 않은 복도를 꽉 채운 거대한 대검이 강한 파공음을 내뿜으며 두 남성을 밀어냈다. 강력한 각성자들을 가둬두기 위해 만든 특수재질의 외벽이 검압에 휩쓸리며 균열이 생겨났다.

두 남성이 다시 자세를 바로잡고 달려들었지만.


콰광! 콰과광!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튕겨 나왔다.


탁. 당주는 양손으로 날아오는 남성들을 붙잡았다. 그가 평온하게 웃음 지으며 덩치에게 달려드는 순간.


쿠웅. 복도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렸다. 쏟아지는 모래더미에 당주는 일단 뒷걸음질 치며 상황을 살폈다. 함정이 있을지 몰랐다.


“이런··· 당했나.”


마력이 멀어지고 있었다. 5번 방을 넘어 멀어져 가는 마력은 그들이 이곳을 벗어났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당주님. 어떻게 할까요?”


“위로 올라가자. 생각보다 준비를 잘해왔구나.”


“알겠습니다.”


-저···


“아직도 안 올라갔나? 같이 올라가자. 보고도 받아야 하니.”


-저 그게 아니라. 이철진 그놈이 사라졌습니다.


“뭐? 사라져? 어디로?


구영수의 벙찐 표정과 떨리는 손가락은 무너진 복도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


“이 미친놈 어쩌죠?”


“······일단 데려간다. 팔이 잘리지도 않네.”


자신의 왼팔을 수갑으로 변형시킨 이철진이 5번 방의 괴생명체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팔을 잘라내려 해도 변형된 팔이 너무 단단했고, 시간이 없었다.


“곧 도착입니다.”


단단한 땅을 물컹한 모래로 바꾸며 지상에 도달한 유월의 인물들은 대기 중인 비행선에 빠르게 올라탔다.

멀리서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경비대 병력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륙해라!”


콰과광! 콰광!


비행기가 이륙해 자리를 벗어난 순간 그 자리로 수십 발의 포탄이 떨어져 내렸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난장판이네. 근데 어쩌지? 2,3,4번 방은 다 날렸네.”


“괜찮아. 일단 가장 중요한 게 1번이기도 했고···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세은의 눈은 5번 방의 괴생명체를 향하고 있었다.

구속을 모두 제거하고, 봉인을 해제했음에도 벌려진 복부가 닫히질 않았다.

포션을 부어봐도 회복이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의료용 스킨 스테플러로 억지로 붙여두었다.


“이찬수···호사장···김민아···임진영···”


“저거 뭐라는거야?”


5번 방의 괴생명체는 미동도 없이 누워서 조그마한 소리로 끊임없이 이름들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머릿속 공략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5 마물 헌터(2) 24.04.08 33 1 13쪽
54 마물 헌터(1) 24.04.05 29 1 13쪽
53 세상을 가르는 힘 24.04.04 32 0 12쪽
52 강릉(5) 24.04.03 31 0 13쪽
51 강릉(4) 24.04.02 37 0 12쪽
50 강릉(3) 24.04.01 38 0 12쪽
49 강릉(2) 24.03.29 42 0 12쪽
48 강릉(1) 24.03.28 49 0 12쪽
47 유월(逾越)(7) 24.03.27 52 0 13쪽
46 유월(逾越)(6) 24.03.26 47 1 13쪽
45 유월(逾越)(5) 24.03.22 57 0 13쪽
44 유월(逾越)(4) 24.03.21 56 0 12쪽
43 유월(逾越)(3) 24.03.20 62 0 13쪽
42 유월(逾越)(2) 24.03.19 61 0 15쪽
» 유월(逾越)(1) 24.03.18 69 1 13쪽
40 5번방의 괴생명체 24.03.15 71 0 15쪽
39 음모(2) 24.03.14 75 0 15쪽
38 음모(1) 24.03.13 73 0 16쪽
37 랭커가 되다(3) 24.03.12 75 0 13쪽
36 랭커가 되다(2) 24.03.11 76 0 13쪽
35 랭커가 되다(1) 24.03.08 78 1 12쪽
34 새천년(2) 24.03.07 88 0 14쪽
33 새천년(1) 24.03.06 83 1 13쪽
32 침식당한 학교(2) 24.03.05 88 1 14쪽
31 침식당한 학교(1) 24.03.04 90 0 14쪽
30 두 번째 게이트 탐험(6) 24.03.01 93 0 14쪽
29 두 번째 게이트 탐험(5) 24.02.29 98 1 14쪽
28 두 번째 게이트 탐험(4) 24.02.28 104 1 14쪽
27 두 번째 게이트 탐험(3) 24.02.27 104 0 13쪽
26 두 번째 게이트 탐험(2) 24.02.26 117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