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별곡 인생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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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에나
작품등록일 :
2024.05.08 10:03
최근연재일 :
2024.07.26 08:00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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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2
추천수 :
132
글자수 :
18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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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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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1화.

DUMMY

비스듬히 열린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니 애들이 가지고 온 것들을 한쪽에 차곡차곡 쌓고 있었다.


“그래, 내가 말한 건 가지고 왔지.”


유도부 주장인 종석의 말에 안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슬쩍 건네주었다.


“야, 뭐하냐?”


진환이가 뒤에서 놀라게 하는 바람에 하마터면 큰 소리로 욕할 뻔했다.


인기척에 누군가 밖으로 나오는 소리에 진환이의 입을 틀어막고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숨이 막히는지 발버둥을 치는 진환이를 보고 놔주지 말까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내게서 풀려난 진환이가 속삭이듯 물었다.


밖을 살피던 놈이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진환이에게 조용히 따라서 오라는 제스쳐를 취한 뒤 다시 문 앞으로 가 안의 상황을 살폈다.


“아이.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내가 너 확실하게 밀어줄게.”


“그럼, 전 형님만 믿고 가겠습니다.”


종석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한 그들이 밖으로 나오는 게 보였다.


“우리 또 숨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무슨 죄지었냐! 숨게.”


자리를 피하려는 진환이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바로 그때, 밖으로 나오려는 무리와 마주쳤다.


내 얼굴을 본 종석이 경기를 일으키듯 놀랐다.


한 손은 여전히 진환이의 뒷덜미를 쥔 채 그들과 함께 유도부실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잠가 버렸다.


내 행동에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종석의 얼굴이 보였다.


“종석이 형,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그래, 현태야. 근데 여기는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은? 형이 또 어떤 추잡하고 더러운 짓을 하는지 보러 왔지.”


내가 종석의 안부를 묻는 동안 내게서 풀려난 진환이가 한쪽에 잘 모셔 놓은 박스들을 열어 보고 있었다.


“이야. 이거 신발이며, 운동복이며 전부 메이커들이야. 여기 있는 것들만 팔아도 몇백, 아니 몇천은 그냥 건지겠는데.”


진환이가 박스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


“형이 그러고도 유도를 하는 무도인이라 할 수 있어? 내가 알기로는 무도인의 제1 덕목이 정직과 정정당당이라 들었는데, 아닌가? 아님 말고.”


내가 놈에게 다가갈수록 그의 얼굴은 더 짙은 잿빛으로 변했다.


“어쨌든 형이 하는 짓거리들 내가 봐서는 무도인과는 거리가 좀 멀어.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너는 오늘 나한테 좀 많이 맞아야 할 거 같아.”


바로 앞까지 갔을 때,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인지 털썩 주저앉았다.


“근데 다행인 게 내가 지금 너한테 손을 대면 오늘 넌 죽어. 그러니까 진환아 물어!”


신나서 박스를 뒤지던 진환이가 날 멀뚱히 바라봤다.


“뭐 해? 안 물고.”


“진짜 물어?”


“이 멍충아. 물라니까!”


순간 진환이의 눈빛이 바뀌더니 놈에게 돌진했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것인지 주저앉았던 녀석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진환이를 바닥에 그대로 메다꽂았다.


바닥에 내팽개쳐진 진환이의 몸에서 으득 하는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고 놈을 향해 2차로 돌진했다.


놈이 아무리 전국대회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우승을 했을지라도 눈이 뒤집힌 진환이를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아!”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귀를 물린 녀석이 학교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놈의 귀에선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그 피가 진환이의 입에 흥건히 묻어 있었다.


진환이의 표정을 보니 꽤 만족스러운 식사였던 거 같다.


귀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의 멱살을 잡고 유도부실을 나왔다.


밖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달려온 학생들로 가득했다.


“안에 있는 것 좀 가지고 나와.”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우식과 동민에게 안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운동장으로 가지고 나오게 했다.


“현태야. 네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저거 하나만 하면 안 될까?”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진환이를 쳐다보니 그때야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도로 내려놓았다.


“나중에 하나 새로 사 줄게. 가서 신나 같은 거 좀 구해 와.”


시무룩하게 돌아서던 진환이 내 말을 듣고는 신이 나서 뛰어갔다.


얼마 뒤, 신나 한 통을 들고 진환이 다시 나타났다.


“얘는 어디에서 이런 걸 구해 오는 거야?”


진환이에게서 받은 신나를 운동장 가운데 가져다 놓은 것들에 부어 버렸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소화기도 여러 개 가져다 놓았다.


“회장 선거에 나가는 후보들 내 말 잘 들어. 아무리 감투가 좋기로서니 벌써 저질 정치꾼들이 하는 짓을 따라 할 필요는 없어. 우리 지킬 건 좀 지켰으면 좋겠어.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러곤 그것에 불을 붙였다.


이 일이 있고 나서도 바뀐 건 전혀 없었다.


알게 모르게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의 약점을 물어뜯는 네거티브가 넘쳐났다.


거기다가 무슨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그렇게 하는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현태야, 우리 정말 수학여행 하와이나 괌으로 가는 거야?”


“쟤 학생회장 되면 네가 데리고 가서 할아버지한테 그쪽으로 보내 달라 그래 봐.”


“나 너희 할아버지 무섭단 말이야.”


종석이 녀석을 물어뜯던 깡은 어디 가고 할아버지란 소리에 진환이 녀석이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나저나 30년 전에 봤던 부조리를 2024년에 다시 보니 반갑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좀 이상야릇했다.


더 웃긴 건 그런 부조리를 보고도 선생들은 모른척해 준다는 것이다.


‘이것들 내가 이사장이 되는 날, 가차 없이 모조리 잘라 버리겠어!’ 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속 시끄럽던 선거가 끝나고 2학년들은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다.


모두의 바람대로 여행지는 하와이도 괌도 아닌 경주 불국사였다.


레트로 컨셉으로 ‘어게인 1994’라 해서 30년 전에 유행하던 곳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내 입김이 작용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것들아! 그러니까 차기 이사장님한테 잘 보이란 말이야.’


난 그렇게 부조리만 일삼던 것들에게 통쾌하게 복수했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4월을 지나 5월 중순에 다다르고 있었다.


날씨가 포근해지니 체육대회며 각종 행사로 학교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나 역시 교장의 부탁으로 할아버지를 대신해 수업시간 중에도 불려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교장과 교감에게 끌려 인사 다니기 바빴다.


그 두 사람에게 투정도 부려 보았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그룹의 오너를 할아버지로 둔 덕분이라 생각하라 했지만, 나에겐 참 고역이었다.


얼마나 고됐던지 맞아도 잘 흘리지 않던 코피를 여러 번 쏟았다.


몸이 피곤하니까 잠을 잘 때마다 내가 죽었던 때가 자꾸 꿈에 나왔다.


그런 꿈을 꿀 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나와 선영의 죽음. 그건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그날도 어김없이 악몽에 시달리다 눈을 떴는데,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괜찮냐? 물 좀 마셔라.”


평소 장난만 치던 진환이조차 심각한 얼굴이었다.


“네 얼굴 무섭다.”


진환이가 건네주는 물을 마시고, 걱정하는 친구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농담을 던졌지만, 아무도 받아 주질 않았다.


“너 오늘은 정말 위험해 보였어. 소리도 막지르고, 체온도 40도 가까이 올라갔었어.”


“걱정해 주는 건 고마운데, 나 정말 괜찮아. 요즘 조금 무리해서 그래.”


“진짜 괜찮은 거야? 병원에 안 가봐도 돼?”


“정말 괜찮다니까. 내일 학교에 가면 교장한테 얘기해 이제 그만 한다고 할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들이 고마웠다.


나와 한집에 사는 이들은 나에겐 부모요, 형제요, 친구 그 이상이었다.


그 일이 있은 며칠 후, 쉬는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애들이 복도에 있는 알림판 앞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공고 하나가 눈에 띄었다.


내용을 읽어가던 중 한 곳에 내 시선이 멈춰 버렸다.


다음 주, 새로 오는 이사장의 취임식을 한다는 거였다.


신임 이사장의 이름은 정원술이었다.


꽤 특이한 이름이긴 한데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 같았다.


어디서인지 딱히 생각나지 않았지만, 낯설거나 한 이름은 아니었다.


“할아버지한테 뭐 들은 거 없어.”


“따로 들은 건 없는데, 교장한테 가서 한 번 물어보지 뭐.”


아무 예고 없이 찾아간 교장실에는 교장과 어느 여선생이 오전부터 뜨거운 밀애를 즐기고 있었다.


현장을 들켜버린 두 사람은 몹시 놀라며 허둥대다가 여선생은 벗어 놓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으며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갔고, 교장은 당황한 나머지 바지 지퍼도 몇 번이나 헛손질한 뒤 겨우 올릴 수 있었다.


두 사람만의 지극히 사적인 일이니 난 개의치 않았지만, 교장은 나에게 약점을 제대로 잡혔다고 생각할 것이다.


교장이 너무 당황해하는 바람에 나는 그대로 교장실을 나와 버렸다.


신임 이사장 취임식 당일. 그의 얼굴을 본 나는 그의 정체를 기억해냈다.


그는 바로 내가 죽기 전 직장 상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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