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천문(檀天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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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礎(고초)
작품등록일 :
2024.05.08 10:22
최근연재일 :
2024.09.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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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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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2-3

DUMMY

장성한 손자에게 경망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 민망했던 손원은 헛기침으로 이를 애써 감췄다.


(그자가 지녔다는 쌍룡이 각인된 4척 장검은 천무문의 문주를 상징하는 용호검으로 내 아비인 손정의 상징적 물건이니라.)


"천하에 죽일 놈!"


그렇게 인자하고 후덕하며 지혜롭게 생긴 사람이 모든 일을 꾸며 자신의 아버지는 물론 온 가족을 죽음으로 몰았다니. 두 조손은 각자의 생각에 잠겨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허탈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글 문을 먼저 연 것은 할아버지 손원이었다.


(지난 20년의 일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해 줄 수 있겠느냐!)


"예, 할아버지."


어느덧 자연스러워진 할아버지란 호칭, 그 어감이 주는 친근감이 두 사람의 떨어진 세월을 하나로 엮어주었다.


20년의 과거에서 현재, 손권은 천무구양신공(天武九陽神功)의 비급을 접하며 알았던 천무문에 얽힌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이야기 도중, 사파의 천마방(天馬幇)이 살인 흉수로 지목받아 멸문지화를 당했다는 말에 손원은 혀를 끌끌 찼다.


(차도살인지계···. 끌끌···.)


손원은 손자가 겪은 많은 이야기에 때론 통쾌함과 때론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에 이입되며 이야기의 늪에 푹 빠졌다.


무려 두시진, 시간은 뜀박질하듯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지난 이야기를 모두 마쳤을 때 손원은 손자에게서 발견한 기이한 내력이 궁금해 누구에게 무공을 사사 받게 되었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이에 노도사와의 약속도 있어 대충, 어릴 적 이름 모를 도사가 흘리고 간 보자기를 통해 우연히 무공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우여곡절 끝에 터득할 수 있게 되었다고 얼버무렸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할아버지 손원의 안목이 어떤 안목인가, 그러나 굳이 진실을 감추려 횡설수설하는 손자의 밉지 않은 거짓에 더 묻지 않기로 했다.


(허허! 그 도사, 보는 눈은 있어서···.)


그는 너털웃음에 농담을 실어 가볍게 넘겼다.

그러나 내심 손자가 익힌 내공이 정순하면서도 깊이가 깊은 것으로 미루어 보통의 문파가 아닌 내력이 깊은 문파의 것이리란 판단과 가문 무공과 그 기풍이 유사한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본문의 비기를 익히는데 오 할은 이미 익힌 것이나 진배없으니 불행 중 정말 다행이다.


‘아~ 어쩌나 벌써 시간이···. 정말,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진한 혈육의 정겨움에 흠뻑 빠져 악마의 시간이 다가옴을 깜빡 잊었구나.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야. 아직 할 말을 다 하지 못했는데.’


“그렇게 돼서 우리는 그 땡추···.”


(권아! 미안하구나. 내가 먼저 내게 해야 할 말이 있구나!)


그의 말을 받아 가벼이 대응하던 손원의 손끝이 갑자기 강한 자극을 동반한 채 거칠게 써 내려갔다.


동시에 말문을 닫은 손권, 손끝의 느낌이 그를 긴장 속에 밀어 넣었다.


(우리 천무문은 네가 알다시피 무당파에 뿌리를 두고 손무(孫武) 시조께서 창건하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정통 정파다. 하남성에서 제일가는 문파로 키우기 위해 선조께서는 피나는 노력을 함께 하셨지. 수없이 많은 도전을 이겨내고 성장시켰지만, 중요한 것은 지키는 수성이었다. 따라서 네 아비와 나는 문파의 중심세력과 그것을 견제하는 또 다른 세력을 만들어 두게 되었다. 문주가 직접 관장하는 2부 5당은 장문령패에 의해 통제를 받고, 견제를 위해 세운 밀로원은 밀로원패(密老院牌)가 있어야 만이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이 두 패가 모두 있지 않으면 진정한 천무문의 주인이라 할 수 없다. 이 할아비가 암습을 받기 얼마 전 네 아비가 내게 은밀히 찾아와, 했던 말이 있다.)


그 당시의 일을 회상하는 손원의 얼굴,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회한과 후회가 무시로 교차했다.




"아무래도 사형의 낌새가 이상하오니 아버님께서는 가문의 무공과 재물을 비밀장소에 옮겨 주시고 아울러 본문이 어찌 되더라도 밀로원이 강력히 견제한다면 사형이 본문을 맘대로 어떻게 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가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은 아니라 사료 되지만 세상일이란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니···."


"서문공유, 그는 내가 직접 뽑고 가리킨 사람이다. 그런 짓을 저지를 위인이 절대 아니란 말이다."


"후~우, 이 말은 제가 제일 신임하는 사람에게서 들은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혼란스럽습니다.”


손원은 아들 손정의 말에 처음 반신반의하며 믿지 않았지만, 만 사불여(萬事不如) 튼튼이라, 일단 그 사람을 믿기 위해서라도 유비무환은 필요할 듯싶어 그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무공비급과 재물을 문주 전임 수련 장소인 천무동에 옮겨 놓고 밀로원패 또한 같은 장소에 은닉해 두었다.


그곳에 대한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부쳐 오로지 자신과 문주만 알 수 있도록 안배해놓았다.


혹 손원 자신이나 문주 손정의 신변에 변고가 생겼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그는 손자 손권의 품에 천무동의 문을 여는 지도와 그곳을 찾아가는 은패를 각기 마련 어린 손자의 목과 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밀로원에는 혹시 문파에 어떤 변고가 발생할지라도 자신이나 문주가 직접 지시한 사실이 아니면 절대 믿지 말며 또한 밀로원패가 없으면 그 누구라도 절대 인정하지 말아 달라 확답을 듣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후의 보루인 천령패를 여는 비밀 역시 자주색 보자기에 담아 손자의 품에 넣어 주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그럼 이 은패에 비밀장소가 새겨져 있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그리고 보자기에 아버님의 비밀이 담겨 있고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며 그는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 두 보자기와 은패는 자신이 어릴 적부터 풀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풀지 못했던 애물단지가 아니었던가.


황급히 품 안을 뒤진 그, 없다.


‘아뿔싸! 보자기는 아우가 갖고 있었지!’


귀중한 물건은 품에 꼬깃꼬깃 밀어 넣는 몸에 밴 습관에 그는 엉뚱한 물건만 손에 잡히고 찾고자 했던 보자기는 보이지 않는 것에 실망하다 객점에서 잡혀가며 아우에게 줬었다는 사실을 문득 상기해 내곤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혹 아우 가소운이 코라도 풀고 버렸으면 어쩌나 하는 낭패 섞인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할아버지, 급히 해야 할 말씀이 있다 하시지 않았나요!”

(응? 오, 오냐 그럼 계속 이어 말 하마···)


손원은 깜빡 잊은 시간의 촉박함에 서둘러 글을 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놈이 나의 제자가 된 지 15년 기념 잔치를 하겠다며 초청장을 보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 이중 삼중의 준비를 해 두었기에 별 걱정 없이 초청에 응해 갔는데 그놈 서문공유는 보이지 않고 사파의 괴물들만 득시글한 것 아니겠느냐. 그런 허접한 놈들이야 수십이 달려들어도 두렵지는 않았으나 언제 수를 썼는지 공력을 운기 하는 순간 천하절독인 칠점산공독에 중독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당했다면 가족들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했을 것은 자명한 사실, 죽기를 각오하고 탈출을 시도했으나 수에서 밀려 힘이 빠진데다 전신에 번진 독으로 인해 결국, 속수무책으로 제압당하며 지하 뇌옥에 갇혀 지금껏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짐승 같은 상태로 지내왔다.)



글을 마칠 때 쯤 등줄기를 타고 전해오는 이십여 년 깊은 한의 무게가 그에게도 전이되며 고통과 괴로움의 아픔에 함께 젖어들었다.


한참을 말없이 천정만 바라보는 할아버지 손원의 해쓱한 얼굴. 다시 보니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놈들은 두려움에 무공을 전폐하고 폐인으로 만들었다. 후환이 두렵다면 즉시 제거하는 것이 마땅했을 것이나 그들에겐 한 가지 찾아야할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밀로원패의 행방. 그 조직을 이끄는 수장인 내게 위임장과 권한을 상징하는 밀로원패를 순순히 내놓지 않으면 전 가족을 몰살시키겠다는 협박으로 날 겁박했다.

그 기간이 무려 20년. 별의별 간계와 고문으로 괴롭혔다.

더욱 분한 것은 그 놈이 한 번도 날 찾아오지 않고 자신의 수족만 보내 나를 감시하며 다그쳤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면서도 원한에 치를 떨던 손원, 갑자기 뇌리를 스친 두려운 의혹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지? 이 아이가 여길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단 말인가? 지난 20년 수없이 많은 간계에 당하며 속아 넘어가지 않았는데··· 손자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모두 잊었다.’


이는 속셈을 가진 녀석들이 비밀을 캐내기 위해 최대 약점을 노려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력을 알 수 없는 무공하며 무언가 꼭꼭 감추려했던 사연들. 그 모두가 아이가 모르는 배후세력의 조종이 있어 그렇지 않겠는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이야기를 풀다 말고 뜬금없이 묻는 할아버지의 말에 팽욱은 의아했으나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혹, 이곳에 들어오기 전 누가 너를 안내하지 않았느냐?)


“예, 물론 저를 안내한 사람이 있긴 있었···.”


대답하다 갑자기 입을 꽉 다문 팽욱, 들여보낼 때 협박했던 땡추의 말이 불현 듯 떠올랐다.


‘만일 안에서 누굴 만나더라도 절대 내 존재에 대해 말해서는 안 된다. 만일 입을 뻥긋하기만 하면 네 아우와 친구는.'


아차, 싶었다.

역시 예상대로 행동하는 손자를 보며 그는 자신이 생각했던 방법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끊었던 말을 이었다.



(이 할아비가 이곳에 잡혀 와 처음 한 일은 전폐된 무공과 내력을 되찾는 일이었다.

그런데 전화위복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할아비를 이렇게 만든 칠점산공독이, 내공이 없는 내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독도 자연스레 녹아 없어지고 그 독이 내력으로 화하여 사라진 공력마저 되찾게 해준 것이다.

그러나 할아비는 놈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지금껏 폐인인척 숨기며 내공 연마에 주력해 왔다.)


"그럼 회복된 이후 왜 사슬을 끊고 탈출하지 않으셨나요?"


그는 말없이 맞은 편 벽에 시선을 돌렸다.

벽, 거칠게 깎여나간 틈 사이로 가는 물줄기가 보였다.


(사람인 이상 곡기는 끊어도 물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할아비는 어쩔 수 없이 저 물을 마시게 되었는데 그 속에 또 다른 음모가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


“예? 음모라고요? 그럼, 독??”


그냥 평범한 물 같은데 무슨. 문득 뇌리를 스치는 어떤 단어, 그의 입에서 경악에 찬 독이란 말이 나오자 할아버지의 초췌한 얼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바위틈을 흐르는 물에 독을 타 넣었다. 무색무취의 독 말이다.

저 독은 나를 삼일은 정상인으로 삼일은 괴수로 돌변하게 만드는 천하에 없는 절독이다.

일단 발작이 시작되면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 놓지. 정상일 때 그 독을 없애려 무진 애를 썼다만 후~우, 소용이 없더구나.

이젠 그 주기마저 짧아져 하루걸러 하루씩 발작을 일으키는 단계에 이르렀다. 시간이 없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사실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이 할아비는 너조차도 알아보지 못하고 살수를 저지를 지도 모른다.

할아비는 그것이 두려워 탈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 내 자신 스스로를 속박해 묶어 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무서운 독이 있다니 아찔했다.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여기서 나가지 못하고 평생 갇혀 지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으윽··· 그, 그럼 제가 도와드릴 방법은 없나요?”


그는 울부짖듯 통곡했다.

오늘 처음 만난 할아버지, 구해 드리지도 못하고 마냥 바라만 봐야 한단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의 분노는 과거 기억 속, 기인 서문공유에게 돌아갔다.


“천하에 악독한 서문공유!”


손권이 치를 떨며 분노하는 사이 손원은 어느덧 시간이 다 되었음을 직감하고 서둘러 등에 손을 댔다.


(사랑하는 손자 손권은 듣거라, 밀로원패와 무공, 재물이 있는 천무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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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13-2 24.09.05 141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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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제 13 장 다시 만난 그리운 여인 24.09.03 159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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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12-4 24.08.29 164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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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12-2 24.08.27 161 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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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제 12 장 새로 찾은 조부(祖父), 그러나 24.08.23 187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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