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예천으로 향하는 길.
오승탁은 그날 아침, 잠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일부러 자는 척을 하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원래 상황이란 게 그렇다.
그러려고 하지 않았는데, 애꿎게 휘말릴 때도 있다.
예천으로 향하는 그 차 안이, 오승탁에게 그랬다.
굳이 그런데도 눈을 뜨지 않는 이유를 말하라면, ‘타이밍을 놓쳐서’겠다.
“오홍홍, 우리 승탁이는 이렇게 꿈나라인데, 길이는 푹 잤나 봐~ 아주?”
옆에서 이미 그렇게 말을 던지니, 오승탁은 당장에 깬 척을 하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어차피 잠이나 청하려고 머리를 기댔으니 눈만 감고 있었다.
근데 도무지 저 둘의 이야기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네······ 그냥 잠이 안 와서요, 하하.”
“근데 원래는 엄마가 태워 주려 하셨다면서? 갑자기 왜 바꾸셨지?”
“믿기지 않겠지만, 치과 예약이라네요, 하하.”
“흐음~ 그래? 길이 달리는 모습 한 번이라도 보시면, 예약은 단번에 옮기실 거 같은데······ 아쉬워서 어떡해?”
“익숙해요, 이젠.”
“익숙하다니?”
“엄마는 원래 제가 달리기하는 걸 좀 싫어하셔요.”
“싫어하신다고? 이렇게 허락까지 해 주셨는데?”
“그냥······ 그렇다고 해 두죠.”
그렇게 둘의 대화를 듣다가 오승탁은 의식이 차츰 멀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어져만 가는 의식을 확 깨우는 말이 오승탁 귀에 날아들었다.
그 말이 대화의 시작점인지, 중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길이 어머니가 길이 사랑하는 만큼이지 뭐, 나도 승탁이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이젠 선명하게 들린다.
그만큼 잠이 깼다.
“흠, 전 그 얘기가 아닌데-”
뒷좌석에 낭창하게 앉아 나불대는 한길에게 잠이나 자라고 일침을 놓으려 할 때.
다음에 이어지는 엄마의 말이 기회를 앗아 갔다.
“그래 맞아, 길아. 나는 무조건 우리 승탁이 육상 도와줄 생각이야, 어떻게든.”
“무조건이요? 말이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음······ 사실 굳이 육상이 아니어도 되겠네, 뭐가 됐든 승탁이가 하는 거면, 나는 꼭 도와주려고, 내 힘이 닿는 만큼.”
대충 어떤 이야기로 흘러갈지 예상한 오승탁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또 타이밍을 놓쳤다.
“근데 그건 여느 엄마들이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요?”
“여느 엄마······ 승탁이도 길이처럼 그렇게 생각하려나 모르겠네.”
그 후론, 한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적 속에 자동차 엔진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이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으음, 길이는 승탁이랑 그래도 친하게 잘 지내니까 말해도 되겠지?”
“······뭐를요?”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마음이 그렇긴 한데, 나 승탁이 두 번째 엄마야. 놀랐지?”
오승탁은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딴 얘길 왜 한길에게 아무렇게나 얘기하냐고 눈을 뜬 순간, 운전하는 엄마의 옆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자신이 예상했던 얼굴과는 결이 달랐다.
목소리는 분명 웃음기가 살짝 묻어나 있었지만, 돌아본 엄마는 입술을 꾹 깨물고 있었다.
느닷없이 솟구치는 감정을 겨우겨우 그렇게 진정시키는 것 같았다.
“9살 때. 승탁이가 9살 때 처음 만났어. 하지만 승탁이가 워낙 성격이 세지 않니. 나름대로 충격이라면 충격이었겠지? 그래서 지난 2년 동안은 승탁이가 내게 말도 잘 안 붙였어.”
“······.”
“근데, 전학 후로 뭔가 차츰 바뀌더라구,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이 말이야. 자기 아빠한테만 했던 달리기 얘기를 나한테도 하고, 학교에 있었던 일도 조금씩 얘기하고. 특히 길이, 네 얘길 그렇게 즐겁게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것저것 고마운 게 많아.”
오승탁은 이젠 절대 깰 수 없었다.
차라리 쿨쿨 잠에 빠진 게 더 나을 뻔했다.
“······스, 승탁이도 저한테 가족 얘길 많이 해요.”
입술에 침 한 번 묻히지 않고 거짓말하는 한길이었다.
“정말? 이런 얘기 들으면, 그것보다 행복한 게 없어. 난 이제 다른 욕심도 없거든. 예전에는 언제쯤 내게도 ‘엄마’라고 말해 줄까 내심 기대하고 기다렸었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괜찮아. 이렇게 승탁이랑 승탁이 친한 친구인 길이 너까지 내가 편하게 태워 줄 수 있는 상황도 되었잖니?”
오승탁은 머리를 차창에 더 세게 짓눌렀다.
차창의 진동이 오승탁 머리를 강하게 울려 댔지만, 지금은 심중에 요동치는 파도가 훨씬 더 거셌다.
‘······.’
그렇게 이미 감은 눈을 더욱 짓눌러 감을 때-
오승탁은 저도 모르게 눈가에 고인 눈물을 떨어뜨렸다.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때 아닌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나, 오승탁 엄마가 방금 말실수처럼 내뱉은 것도 아니었다.
정말 큰마음을 먹어야 간신히 꺼낼 수 있는 얘기만 잘라 내며 말한 느낌이랄까.
그야 전학을 온 순간, 이런저런 일들로 엉킨 우리였지만 결국엔 이렇게 같이 붙어 다니는 사이가 되었지 않은가.
백미러로 오승탁 엄마 눈과 마주쳤다.
짧은 사이, 오승탁 엄마는 어려운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는 듯 눈웃음을 지었다.
“-그냥 이대로만 같이 잘 지내 줬으면 좋겠어, 길아. 승탁이가 길이 만나고 나서 많이 밝아진 것 같아서 무척 고맙다는 말이야.”
이젠 그 특유의 깃털 같은 웃음소리도 없었다.
때 아닌 고백에 나도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얘기 덕분에 그간의 오승탁이 이해가 된 것도 사실이었다.
한동안 멍하니 차창 밖에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구름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 역시 천천히 입술을 뗐다.
“비밀 하나 알려 주셨으니, 저도 하나 말씀드릴까요?”
“음? 길이도 비밀이 있니?”
“우리 엄마 관련된-”
“에이······ 괘앤찮아, 호호호.”
말은 에둘러 괜찮다고는 하지만, 곁눈질로 뒷좌석을 쳐다보는 것을 보니 얼른 해달라는 눈치처럼 보였다.
“아, 괜찮으시면 안 하고요.”
“해 줘.”
다시 한번, 우린 백미러로 눈이 마주쳤다.
나는 옅은 웃음을 짓고서 말을 이어 나갔다.
“흐음, 우리 엄마도 학생 때 육상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뭐 아빠한테서 듣기론 도 대회까지 나갈 정도로 잘 달렸다는데······. 엄마도 지금의 저처럼 예전엔 트랙에서 뛰셨던 분이라서요. 그래서 그래요, 오늘도 안 오신 이유가.”
“아, 아······?”
거울에 반사된 오승탁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 커진다.
“뭐, 똑같은 길을 걸을 게 뻔하니까. 내 아들도 무슨 그런 억척스러운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참 야속하셨겠죠. 왜 하필이면 그런 걸 닮았을까 하셨겠죠. 그래서 제가 뛰는 건 안 보시는 거예요, 허락만 겨우 해 주시는 거고. 매번 제가 뛰는 걸 지켜보시는 것 자체가 고통이실 테니까요-”
일순 오승탁 엄마의 눈썹이 씰룩였다.
“음, 아니? 내 생각은 좀 달라, 길아.”
“네?”
“야속은 무슨. 정말 기쁘셨을 걸? 진짜 내 아들 같으면서도 뭐 한편으론 걱정도 되셨겠지, 엄마로서. 그 뿐일 거야. 길이, 네가 힘차게 뛸 때마다 엄마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생각해 봐봐.”
“······”
“나를 닮은 내 아이가 내가 한때 쏟아부었던 것을 한다니 무서우셨겠지. 그리고 내심 정말 뿌듯하셨겠지. 하지만 뿌듯함을 내비칠 때, 두려움도 함께 나올까 봐 그러실 거야.”
“······그러실 수도 있었겠네요.”
오승탁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다시 슬슬 피어올랐다.
“그나저나 정말 길이는 얘기할수록 느끼는 건데 애 같지가 않네? 신기하다, 정말. 아줌마도 너 앞에서 이런 얘길 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우리 더 가까워진 것 같애~”
한동안 그 웃음소리가 다시 차 안을 떠다녔다.
그런 와중, 오승탁은 이젠 아예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잠자고 있다. 그 시간 동안 한 번을 깨질 않는다.
‘어휴.’
부랄탁, 저런 엄마 심정은 알기나 하고 자는지.
조수석에 앉아 잠이나 자는 오승탁을 보며 혀를 찼지만, 이내 나도 그 생각을 거두었다.
그간 오승탁의 표현 방식이 왜 그리도 서툴렀는지 알 것 같았기에.
그리고 오승탁 엄마의 마지막 말은,
몇 시간 뒤, 트랙 앞에서도 불현듯 떠올랐다.
* * *
-야속은 무슨.
-기뻐하셨을 거야, 걱정도 되셨겠지.
-엄마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생각해 봐.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
자연스레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다시 봐도 예쁘다.
새빨간 운동화······.
첫 대회를 무사히 마친 내게 건네준, 엄마가 직접 고른 신발이다.
가볍게 놀면서 뛰는 거랑 육상을 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했던 엄마가 사준 신발.
신발 맛을 들인답시고 훈련할 때마다 맨날 이것만 신어 댔다.
그 탓에, 이미 그 영롱했던 빛깔도 바래진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이 붉은 빛이 마음에 든다.
모래와 먼지 구덩이를 그렇게 덮어 썼지만, 내 눈엔 늘 그 어떤 육상화보다 예뻤다.
-야속은 무슨.
“하, 야속은 무슨.”
지난날, 교감이 직접 사비를 털어 지원한 육상화 박스는 채 뜯지도 않았다.
나는 정말 이거 하나면 아무래도 됐었으니까.
오승탁 엄마의 말에 뒤이어,
엄마 말도 겹쳐 들렸다.
-제대로 신고 달려 봐, 이제.
“······!!”
어찌 보면······
나는 또 혼자만 달리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전생에도 그랬다.
* * *
[자, 이어서 100m 남자 초등부 예선 8조의 경기입니다.]
[예, 이번에도 여덟 명의 선수들이 스타팅 블록에서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인데요. 눈여겨볼 선수가 있습니다.]
[네, 경남 모현초 이혁우 선수가 있겠습니다. 지난 경기 때 아마······ 12초20을 기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예, 그 선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4레인 선수를 콕 집어 말씀드리고 싶군요.]
[아, 아! 4레인, 한길 선수 저도 익히 들었습니다, 이 선수 최근 성적이······ 예에?]
[허허, 놀랍죠?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아마 현재 초등부 기록 중엔 가장 기대되는 선수일 겁니다.]
[어······ 위원님, 이게 비공식 기록일까요?]
[아뇨, 불과 작년 10월 경기일 겁니다.]
우레탄에서 물씬 피어오르는 열기가 다시금 내 코를 압박한다.
“하! 후우······.”
“8조 대기.”
스타팅 블록에 발을 대면서도 차분히 되뇌었다.
왜, 매번 이 트랙을 나 홀로 뛴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에야 이홍섭도 있다지만, 전생엔 왜 엄마가 사준 그 운동화 의미를 몰랐을까.
왜······.
그날 난 왜 건네준 신발만 기억했을까.
신발을 건넨 엄마의 표정은 왜 이제야 떠오르는 걸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케이크에 꽂힌 초가 비춘 엄마의 얼굴은 그랬다.
고개를 치켜들어, 피니시 라인을 쳐다봤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어깨에 하중을 실었다.
“차렷.”
야속하게도,
나도 이제야 생각이 정리됐다.
탕-!!
[8조 출발합니다!!]
들이박듯 치고 나아갔다.
파바바박-!!
타다닷!!
서로 다른 리듬이 제각기 트랙을 힘차게 두드린다.
텁텁한 열기가 볼기를 스치고, 아우성치는 관중의 소음이 귀에 끊겨 들릴 때쯤.
고개를 들었다.
‘피니시 라인.’
그곳을 향해 운동화를 더 힘차게 내디뎠다.
파바박-!!
[자! 빠르게 치고 나오는 7레인과 4레인!]
[7레인의 이혁우, 4레인의 한길!]
[빠릅니다, 빨라요!!]
[5, 6 통합부 8조!!]
승탁아, 너나 나나.
좋은 엄마 뒀네.
[또 치고 나오는 하아안길! 무한 가속입니다!]
[4레인, 4레인, 4레이이인!!]
피니시!!
흉부를 앞세우며 날갯짓했다.
[이야아아! 한기이일! 속도를 잃지 않고 마무리합니다아!]
[각 조마다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8조는 4레인, 한길이 조별 예선 1위를 차지합니다! 더 정확한 기록은 지켜봐야겠습니다.]
모두가 전광판을 향해 고개를 들 때.
나는 이번만큼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결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그만큼 비슷하게 들어온 선수들이 없다는 말일 테고.
근데.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예선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기록입니다!!]
[초등부 6학년, 그것도 예선에서 신기록이 나왔습니다!!]
······정철민,
그 선생 말이 사실이었다.
[8조 4레인, 한길 선수 11초88! 보이십니까, 11초88!]
다시 한번, 엄마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까와는 또 달랐다.
-고생했다 아들. 뛰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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