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 씹어먹는 괴물 육상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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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정하일
작품등록일 :
2024.05.08 11:43
최근연재일 :
2024.06.15 08:30
연재수 :
42 회
조회수 :
22,015
추천수 :
522
글자수 :
281,222

작성
24.06.13 08:30
조회
326
추천
12
글자
17쪽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DUMMY

EP5.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파바바박!!

[출발했습니다!!]


“흡!”


무릎들이 일제히 팡 솟아올랐다.

어느 때보다도 더욱 거칠다.


추진력.

그 실낱같은 추진력을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 사정없이 치고 나왔다.


팡! 팡!

[빠르게 치고 나오는 6레인, 4레인!]

[5레인도 빠릅니다, 거의 동시에 튀어나왔습니다!]


모두가 절박한 숨소리를 삼키며,

스타트 구간을 벗어났다.


[빠릅니다!! 빨라요!]

[지금까진 모두 비슷하게!]


이내.

내 옆에서 무시무시한 가속이 느껴졌다.


준결승 때까지도.

단 한 번도 내 옆을 비등하게 들어서는 느낌이 없었는데!


고개를 들어 상체를 편 순간.

다시 내 곁눈에 녀석의 다리가 잡힌다!


‘도재철!’


계속 나와 엇비슷하게 다리가 교차한다.

지금도!


파바바박!!


[기가 막힌 대쉬!! 4레인과 5레인!! 각축입니다!]


도재철이 더욱 날렵하게 길쭉한 다리를 연신 뻗어댔다.

그만큼 내 보폭을 좁혀 피치를 올렸다.


절대, 절대.


[벌어집니다, 점차 벌어져요!]

[현재 한길, 도재철! 돌파합니다, 앞서고 있어요!]


“후욱, 후욱!!”

“씁, 흑, 씁, 흑!”


절대!!


이제 40m, 아니 30m!

여기서 끝장을 봐야 한다, 끝장을!


여기서부터 거리를 벌려야 한다.

확실하게!


[자!! 4레인의 한길이 먼저 치고 나옵니다!!]

[함께 더 빨라집니다! 도재철!! 도재철!!]


타다다다다닥!!

파바바바밧!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20m를 생각한 순간, 이젠 10m!


[아, 아!! 다시 치고 나옵니다!!]

[하안길!! 도재처어얼!! 한기이일!!]


코앞의 피니시 라인!


‘흡!’


눈을 부릅떴다.


안 되겠다.

이 방법밖엔.


힘차게 마지막 뒷발에 하중을 실어 튀어 나갔다.

그렇게 흉부를 내던졌다.


표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날았다.



* * *



선장, 이홍섭이 뼈와 근육이 한창 다져지고 자랄 어린 선원들에게 이걸 알려줄 리는 만무했다.


어설프게 따라 하다가 크게 다치는 수가 있으니까.

또 이걸 고작 초등부 경기에서 행할 이유도 상황도 없을 터.


당장에 경기 하나를 진다 해도, 지금은 중요한 건 튼튼한 신체를 만들어가는 게 먼저니까 말이다.


혹여 잘생긴 얼굴에 흉터만 생겼다면 그건 양반이다.


넘어져 본 놈이 잘 넘어진다고.

자칫 잘못 고꾸라진다면, 지면과의 충격이 고스란히 몸 곳곳에 전해진다.


달궈진 트랙과의 마찰열에 얼굴에 화상을 입을 수도, 잘못 짚다가 팔과 무릎 관절에 무리가 갈 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이가 아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달리기 결승선.

피니시 라인.


그 라인에, 먼저 닿아야 할 것은?

먼저 들어왔다는 판단 기준은?!


누구는 가슴을 내밀기도, 누구는 머리와 손을 내밀기도 한다.

어떤 이는 기다란 다리를 뻗어 발가락 끝을 먼저 들이민다.


하지만, 너무 비슷하게 선수들이 라인을 통과했다면-

눈여겨보는 부위는 단 하나다.


동체(動體).

사람의 몸에서 머리, 팔, 다리, 손, 발을 제외한 몸 가운데 부분.

다시 말해, 몸의 중심!


그 뭐 있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엄청 잘 그린 해부도.


커다란 원에 내접하며 사지를 뻗고 있는 남자.

그 사람의 복부 쪽 무게 중심!


빳빳하게 든 머리, 허우적거리는 팔과 다리가 결국엔 모이는, 그 몸의 중심!

몸통!


“후욱!”

타다닷, 탁-!!


그래서 난 날았다.


나를 던졌다.




츄와아아악-!!


[한기이이일!!]

[도재처어얼!!]


파바밧!!


[100m 남초부 결승! 초등부에서 이런 피니쉬 동작을 볼 줄이야!! 마지막 코앞에서 날았습니다!! 날았어요!]

[거침없습니다, 거침없어요! 저 동작을 어떻게 구사하죠?!]


[아 이게 선수들에게 되도록 추천하지 않은 동작인데요!]

[영리하다 못해 처절하게 피니시 라인을 넘은 한기이일!!]


지금 내 시야는 암흑이다. 새까맣다.


그야, 트랙에 얼굴을 처박고 있으니까.


[한길 선수, 일어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많이 다친 건 아닐지!]


늘 아픔은 나중에 덮쳐 온다.

하, 쓰리다.


연이어 들어온 선수들의 거친 숨이 들려온다.


“하, 하······.”

“후우, 하, 하악······.”


[아니, 충분히 1등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한길 선수 대체 왜 그런 걸까요?!]

[예, 지금 한길 선수 기록도 상당히 좋을 것 같긴 한데, 아마도 5레인 도재철 선수를 의식한 행동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후반부부터는 강세로 밀어붙였는데 아무래도 긴장했나 봅니다!]


뭐?

내가 앞서고 있었다고?


그나마 트랙이 어제의 빗물에 살짝 젖어있어서 다행이었다.


한여름 무더위에 프라이팬처럼 한껏 달궈진 트랙이었다면, 지금 난 이렇게 있을 수 없었을 터.


몇 초 뒤.

엎드린 내 뒤통수를 누군가가 세게 가격했다.


빡-!


“아!”


올려다보니, 역시.


“새끼가 얼탱이가 없네.”


“아오, 아파라······.”


나는 콧잔등과 눈 주변에 무참히 묻은 작은 모래조각을 떼어냈다.


“왜 혼자 똥꼬쇼 하냐?!”


“질 뻔했어, 진심.”


오승탁 손을 잡고 겨우 일어나니, 옆엔 도재철이 호흡을 고르며 서 있다.


상당히 분한 모습.

하지만 몸을 던져 통과한 날 보며 의아한 눈빛도 교차했다.


“지랄, 안 그래도 1위면서.”


[뭐가 됐든, 1위로 들어선 한길의 모습입니다! 멋지게 돌파하고 마지막에 몸까지 내던졌어요!]

[이번 초등부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투지가 불타오릅니다, 이미 그건 기록부터가 말해주고 있죠?!]


애석하게도.

전광판에는 기록이 나오기 전, 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마지막 20m를 앞두고 이미 앞섰음에도, 추진력을 얻어 날아버리는 나.


그렇게 철푸덕, 피니시 라인을 먼저 들어온 나.


엎어진 채 미동이 없는 나.


그런 날 향해 다가오는 오승탁.

까지.


“무, 뭐야, 나 이럴 필요 없었어?”

“개쪽팔리네.”


“······”

“븅신. 관종 새끼.”


아니, 정말 지는 줄 알고 그랬는데.

정말 저 도재철이 날 앞지를 줄 알았는데.


“이미 1등인데, 그걸 어떻게든 아득바득 이기려고. 지독한 새끼.”


부랄탁의 아낌없는 힐난이 이어진다.


하나, 일일이 그 비난에 답할 수 없었다.


곧장 내 주변으로 카메라 세 대가 모여들었다.


아, 총 네 대다.

어제 저녁에 만났던 강승훈의 카메라까지.


강승훈은 기자들과 반대쪽에서 내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큰 카메라에 반쯤 가려진 강승훈의 얼굴에선 쭉 째진 반쪽짜리 미소가 보였다. 앵글을 쳐다본 나와 눈이 마주쳤는지, 왼손으로 살며시 엄지척을 내보였다.


그 옆의 백영호도 마찬가지.

모자를 반쯤 헐벗은 채 날 응시하고 있었다.


[자, 한 번 공식기록을 봐야겠습니다!!]

[몸을 내던지기 전의 질주가 인상적입니다! 이게 영상으로 제대로나 담길까란 생각부터 듭니다, 정말 빠르네요! 보폭이나 주법도 안정적입니다.]


[이게 어떻게 초등학생이란 말입니까? 제 눈엔 그냥 노련한 선수입니다, 마지막도 보십쇼! 몸 하나를 불살라버립니다, 아주!]

[정말 뭔가 많이 뛰어본 느낌이 드네요, 그만큼 훈련을 독하게 했단 뜻이겠죠?! 하하.]


정말 눈뜨기 부끄러운 내 둔부 영상이 끝이 나고.

전광판 화면은 경기 결과로 바뀌었다.


[자, 자 이제 곧 전광판에 결과가- 우오오오오옥!!]

[오오오오! 여, 역사가 오늘 써집니다아악!]


나는 그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귀에 피가 나도록 욕을 퍼붓던 오승탁도 멈췄다.


[예선전의 기록이!! 예선전 때의 광경이 재현됐습니다, 초등학교 100m가 11초대를 만들어낸 것도 모자라-!!]

[11초58!! 11초58입니다!! 보이십니까!!]


‘11초58.’


[한길 선수, 혜성처럼 등장한 한길! 슈퍼 루키가 분명합니다!!]

[11초58! 부별 신기록을 넘어 초등부 한국 신기록을 세웁니다!]


그 밑으론.


5레인의 도재철이 12초08.

6레인의 오승탁이 12초22.


둘 다 절대 가벼운 성적이 아니었다.


단체로 모두가 각성이라도 한 듯.


대회 기록이 제정신이 아니다.


지난 생, 이맘때쯤.

내 기억으론 나 말고는 모두가 12초대 중반을 기록한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 극초반대가 둘이나 더 있다.


그런 생각 끝에, 오승탁을 돌아봤다.


“새삼 존나 빠르네, 이 새끼.”


오승탁 화법에선 이건 가히 극찬이었다.


오늘에서야 내 이름을 안 이들마저, 난간에 기대어 찬사를 보냈다.


모르는 형, 누나들.

다른 학교 선수들.

코치석에서 기웃기웃 나와 고갤 내보이는 고글 클론들까지도.


그렇게, 11초58이란 숫자가 화면에서 꺼질 때까지 지켜보던 가운데.


뒤에서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백영호였다.


백영호는 천천히 모자를 벗었다.

고작 내게 예를 갖추듯 말이다.


다시 얹었으면 했다.

정리되지 않은 기름진 머리가 제법 비위생적이었다.


그런 백영호는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찬찬히 살피다, 미처 내가 털어내지 못한 귓가의 모래를 털어줬다.

그러곤 다시 입을 열었다.


“하, 한길. 길아.”


“네, 네?”


대답하면서 보니, 입술도 조금 까진 것 같다.

하나, 나는 백영호의 씰룩이는 입술만 쳐다봤다.


백영호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우리 나중에 얘기 좀 할까?”



* * *



어쩌면 여기가 트랙보다 내게 더 어려운 자리였다.

실상 매번 그랬던 것 같다.


두 번을 살아도, 역시 사람이 쉽게 바뀌진 않는다.


하루 만에 날 수식하는 단어들이 줄지어 늘어진다.


“남자 초등부 100m 경기의 챔피언! 슈퍼 루키! 떠오르는 육상 샛별! 오늘 금메달의 주인공! 한길 선수! 소감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웃어야겠지, 아 근데 마냥 헤벌쭉?

그냥 그럼 내 모습 그대로?

그래도 좀 진지해야 하지 않나.


말 한번 잘못했다가 저번 안경잡이 기자처럼 날 이상한 놈으로 만들면 어쩌지?

아니, 이 사람은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모이가 모여.


번뇌에 휩싸이는 뇌 내의 소용돌이가 표정으로 드러났다.


매우 어색한 뒤틀린 웃음이 얼굴을 덮었다.


“호호호, 한길 선수! 방금 멋진 경기를 펼쳤음에도 부끄러운 모습이네요! 마지막에 몸을 던지던 그 모습과는 너무 다른데요?”


그래도 리포터는 능숙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사코 내가 말을 아끼니, 리포터는 대답하기 가장 쉬운 질문을 택했다.


“이 예천 경기장에서 초등부 한국 신기록을 수립했습니다! 피니시 라인을 가장 먼저 돌파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좋았어요, 하하.”


“에이, 답은 간단하지만 사실은 엄청 많은 감정이 복받쳤을 것 같은데요?”


이에 묵묵히 고갤 끄덕였다.


그다지 내게 뽑아먹을 색다른 인터뷰가 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노련한 리포터는 도재철 순서를 앞당겼다.


“자, 다음은 은메달, 12초08의 주인공! 도재철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도재철 선수?”


도재철은 천천히 인터뷰 자리에 들어섰다.

특유의 비릿한 미소와 함께.


1등을 거머쥐지 못했다고 성질을 부릴 줄 알았지만, 예상외였다.


“12초08! 이게 중등부 선수들 사이에서도 꽤 경쟁력 있는 기록이거든요! 정말 대단합니다, 소감이라도 간단히 해줄 수 있을까요?”


나와 달리 도재철은 언변에 능했다.

인제 보니, 도재철의 저 뱀 같은 혓바닥은 그 시작이 초등부였나보다.


리포터의 질문은 아주 가볍게 무시한 채, 옆에 서 있는 날 향해 돌아봤다.


“야, 한길. 너 굳이 그랬어야 했냐, 크크큭. 얼굴 엉망인 게 왜 이렇게 웃기냐?!”


누가 보면 나랑 엄청 친한 줄 알겠어.

질문에 답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하하, 도재철 선수 지금 심경은 어떤가요?”


재차 질문하는 리포터의 고집이 성가셨는지, 일순 도재철의 표정이 굳는다.


“뭘 계속 물어요, 그런걸. 당연히 안 좋겠죠, 눈앞에서 1등 놓쳤고 쟤 한길이 몸까지 던져대는데, 기분이 좋겠어요?”


“······.”


순식간에 파국이 내려앉았다.

지난 떡볶이집과 그 양상이 아주 비슷했다.


하나, 도재철은 그렇게 어른인 리포터를 제멋대로 흔들어 놓고서.


“아, 아 장난이에요! 아쉽습니다! 아쉬워요! 인터뷰 끝!”


그렇게 무책임하게 끝내버린 도재철이었다.


모두가 이상히 쳐다봤지만, 도재철은 그런 시선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아, 아. 음······.”


리포터는 이번 인터뷰의 난이도가 역대급임을 직감했다.

상황 파악에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금메달을 딴 아이는, 어수룩하게 답을 아꼈다. 그래서 대충 얻어야 할 장면만 얻고 차례를 넘겼다.

한데, 은메달을 딴 아이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다 제멋대로 인터뷰를 종식했다.


하여, 리포터의 눈은 재빨리 마지막 아이를 찾아 나섰다.


그, 그럼!

동메달! 동메달 어딨어!


하나, 찬란한 구릿빛 메달의 주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시선에 있지 않았을 뿐.


“우리 선수들의 개성이 정말 돋보입니다, 하하······! 선수들이 얼마나 이번 대회에 진심이었는지 볼 수 있네요! 기록이, 12초22! 동메달을 거머쥔, 어, 어디 있을까요, 이 선수는······.”


“아, 여기.”


미친놈.

리포터 바로 뒤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터뷰 천막 뒤였다.


“꺄악!”


“왐마.”


“오, 오승탁 선수? 언제부터 거길!”


“쭉?”


“대체 왜 거기서 나오는 거죠?!”


“천막 뒤가 시원해서요.”


“하······ 하하하! 네, 그럼 오승탁 선수는 오늘 경기 소감이 어떨까요?”


모두가 마지막 희망, 동메달 선수를 지켜봤다.


지켜본 리포터의 눈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오승탁의 입술만 한사코 응시하고 있었다.


제발 간단해도 좋으니, 모범답안 하나만이라도 시원하게 말하라는 듯이 절규의 눈빛이었다.

급기야 목소리마저 메였다.


“오승탁 선수? 하고 싶은 말 있을 거 아니예요오오······.”


기대를 품기엔, 벅찬 상대.

오승탁이었고.


리포터는 그렇게 홀로 애를 태우다, 그만 금기의 선을 넘어버렸다.


“뭐 부모님,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이라도?”


“······.”


아, 안 돼!

그 선을 넘지 마!


바로 앞에서 팔짱을 낀 채 구경하던 백영호도 나와 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 우리의 우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 네.”


‘음?!’


“그, 그쵸? 이렇게 멋진 아들을 두었는데, 부모님께 한마디라도 할까요, 오승탁 선수?!”


오승탁은 지난번처럼 눈썹이 파도처럼 씰룩이더니, 곧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을 할까 곱씹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술을 뗐다.


“흐음······.”


오승탁의 떨리는 눈동자는 카메라를 향하지 못했다.


삐까뻔쩍한 자기 육상화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순간이 마치 처음인 것처럼.


“······여, 여기 예천까지 태워줘서 고마워, 엄마.”


“네, 그렇겠네요! 멀리 예천까지 태워다주시고, 보러와 주신 엄마에게 오승탁 선수가 진심 어린 말을 전합니다! 자, 이렇게 남초부 100m의 주인공 선수 세 명을 만나봤습니다-”


“흐이익······!”


오승탁은 고백이라도 한 양, 그 말을 뱉고선 자신도 놀랐는지 부리나케 뛰쳐나왔다.


귀여운 마음에 내가 몇 번이고 역으로 놀려댔지만, 오승탁은 무어라 받아치지 못한 채 얼굴만 새빨갛게 붉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그 인터뷰를 목도한, 오승탁 엄마는 떨리는 호흡을 가까스로 다스리고 있었다.


이틀 전과 달리.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간혹 오승탁 엄마의 콧소리만 잠깐 들릴 뿐.


오승탁은 그새 조수석 창문에 고갤 기댄 채 잠든 지 오래였고, 오승탁 엄마는 지금까지 별다른 말이 없다.


잠이나 잘까 하는 찰나에 문득 백미러로 확인한 오승탁 엄마의 표정은,


오랜 결핍이 해소된 것처럼 옅게 웃고 있었다.


그렇게.

유달리 길었던 대회의 막이 내렸다.



* * *



평온하던 주말 저녁.

이라고 해봤자, 고작 대회 직후 하루가 지난 일요일.


똑같은 주말이었다.


아빠는 불굴의 의지로 내가 달린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 보고 있었고, 엄만 그런 아빠를 핍박했다.

그런 억압 속에서도, 아빤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못했고 엄만 관심 없는 척 그 영상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그런 평범한 저녁이었다.


나는 편안한 안식에 이르렀다.

뽀송뽀송한 침대 안에 파고들어 애니만 흥얼거리며 보고 있었다.


이런 휴식이 정말 필요했다.


바로 다음 주면, 또 반복되는 학교생활에 이 악물고 올라서야 하는 강당 단상부터.


대회 직후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흘러갈 이홍섭호의 일정까지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나는 지금 애니를 시청하며 여유를 만끽해야 마땅하다.


근데.

그래야 하는데.


똑똑-


“길아, 들어가도 되겠니?”


“아뇨, 아빠.”


“-한길.”


“네, 엄마 들어오세요.”


들어선 아빠와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무슨 비행 청소년이라도 발견한 듯, 침대에 널브러진 날 내려다본다.


“왜, 왜 그래······ 다들.”


“사실대로 말해.”


엄마가 진실의 눈을 개안했다.


몸이 절로 굳었지만, 발악했다.


“무, 뭐를!”


엄마는 대답 대신 내게 핸드폰을 들어 보였고.

모르는 번호가 화면에 떠 있었다.


근데, 통화 중이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엄마는 스피커폰으로 바꿨다.


그제야 수화기 너머 또다시 증명을 요구하는 한 남자의 애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불과 안 지는 이틀 정도밖에 되지 않은 사이였지만.


“누, 누구세요?!”


“-어머님, 어머님! 으음?! 길이니? 나 백영호다!”


백영호?


“어, 엇? 피디님?”


“약속했잖냐, 우리! 기, 기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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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EP4. 이홍섭호, 날개를 달다. 24.06.01 351 11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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