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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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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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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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30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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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DUMMY





중구난방 제작진들과의 첫 번째 회식.

장소는 그리 크지 않은 고기집이었다.

제작진들 단골집이며 안에 따로 내실이 있었다.


제작진 중 한 사람이 귀띔해주기를 열린 공간에서 회식을 하다 보면 자꾸 불청객들이 접근한단다.

중장년 아저씨들이 불콰해진 얼굴로 와서는 정원택이나 김여중에게 토론 대결을 걸어오기 일쑤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심지어 나 같은 삼류 시사평론가도 가끔 유흥업소에 있다 보면 알아보고 시비 걸어오는 이들이 있으니까.

진보 보수 빅 스피커들인 정원택이나 김여중한테는 오죽하겠는가.


우리가 예약한 내실에는 다섯 개의 작은 테이블이 있었다.

중구난방 제작진들 회식은 원래 서양 스탠딩 파티처럼 그룹별로 나눠 담소 나누는 식으로 진행되므로 큰 테이블 하나보다 이렇게 여러 개 테이블을 가지고 진행된다고 했다.


처음에 정원택, 김여중, 나 각각 다른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 몇 사람이 자리를 뜨고 술잔이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셋이 한 테이블에 모이게 되었다.


‘‘저기 ......’’

‘‘응, 뭐?’’

‘‘선생님들께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뭐?’’

‘‘총선이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혹시 영입 제안 같은 거 안 오시는지 ......’’


정원택과 김여중이 서로를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미 이런 류의 질문은 꽤 많이 받아봤다는 듯한 표정이다.


‘‘나야 절대 올 리가 없지 않나, 하하.’’


정원택이 껄껄 웃으며 먼저 대답했다.

무슨 의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지지난 국회에서 실지 초선 의원 생활을 했던 정원택.

하지만 허구 헌 날 목소리 높이며 타당 자당 할 것 없이 동료 의원들과 싸우고 비난하고 호통치고 하더니 결국 그 다음 국회에서는 자진 불출마를 선택해 버렸다.

이후 방송 패널로 나와 보수의 대변자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보수당 편을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는 진보 패널보다 더 목청 높여 보수당 행태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 나 같은 놈한테 다시 공천을 줄 리가 만무하지 않겠냐고. 나도 이제 방송에서 캐쥬얼한 복장으로 자유롭게 디스하는 게 더 편하고. 국회의원 4년 하는 동안 몸 정신 할 것 없이 전부 만신창이가 되어서. 당뇨에 고혈압에다 우울증 공황장애까지. 에휴, 다시 하라고 해도 나는 절대 안 해.’’


그렇게 손사래를 치고 난 정원택이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로 향했다.


‘‘쯧쯧.’’


테이블에 단 둘이 남겨진 김여중과 나.

김여중이 나에게 건배를 청하더니 혀를 끌끌 찼다.


‘‘예? 왜 그러시는 지?’’

‘‘아! 강소장님한테 혀를 찬 게 아니라 정선생님한테 한 거였어요.’’


김여중이 정원택이 방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왜요?’’

‘‘왜기는. 정선생님 평소 정선생님 답지 않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자꾸 하시니까 그렇지.’’

‘‘예? 그렇다면 ......’’

‘‘맨날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면 오늘도 당 쪽에서 연락 안 온다고 투덜대기 일쑤인데 무슨 마음을 비운 척 ......’’

‘‘아하!’’

‘‘사실은 말이에요. 정선생 지난 총선에 불출마한 것도 뒷이야기가 숨어 있지.’’

‘‘예? 어떤 뒷이야기요?’’

‘‘정선생이 자진해서 불출마 선언을 하기는 했지만, 실지로는 당에서 잡아주기를 원했어요. 그러니까 여자가 우리 헤어져, 이렇게 이별 선언을 하면서도 남자가 치마 자락 잡아주기를 원하는 것처럼 말이지, 하하하.’’

‘‘정말이요?’’

‘‘대충 눈치 채겠지만, 정선생이 어디 지역구 관리 잘 할 스타일인가. 관내에서도 돌다가 마음에 안 맞는 유권자 만나면 삿대질 하고 호통치고 그러는 양반인데. 그러다 보니 지역구 인심이 과히 좋지 않지. 그러니 자신이 먼저 선수 쳐서 불출마 선언을 한 거예요. 그리고 나서는 당에 공천관리위원회 뜨니까 바로 로비에 들어간 거고.’’

‘‘로비요? 어떤 로비요?’’

‘‘뭐 이런 로비겠지. 다른 지역구, 아무래도 불출마 철회하려면 명분이 좀 있어야 하니까 지난 지역구보다 험지인 다른 지역구로 공천 주면 못 이기는 척 하면서 자기 다시 나오겠다고 그런 거지, 뭐.’’

‘‘아하!’’

‘‘그런데 워낙 당내에서도 안티들이 많고 하니 공천관리위원회에서 끝내 기회를 안 준 거죠.’’

‘‘야! 그런 스토리가 숨어 있었군요.’’


역시 정치는 알려진 정설보다 숨겨진 비화가 훨씬 재미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얼마나 내심 기다리고 있겠어요? 근데 아직도 당에서 연락이 안 오나봐. 사실 당 연락 기다리는 게 염치없는 일이지. 현역일 때는 지역구 관리 개판으로 하고 야인일 때는 당 실세들 그렇게 방송에서 까 대놓고 무슨 염치로, 하하하.’’


김여중이 마치 쌤통이라는 양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따라서 웃음을 보였다.


‘‘그럼, 김선생님은요?’’

‘‘나요?’’

‘‘예. 정당 쪽에서 연락 같은 거 ......’’

‘‘아직은 없네요.’’

‘‘아직은요? 그럼 ......’’

‘‘당연히 영입 제의 오면 진지하게 고민해야죠.’’

‘‘아하! 그, 근데 ......’’

‘‘뭐요, 강소장?’’

‘‘김여중 선생님 같은 경우 꼭 선거 아니더라도 영입 제의 수시로 왔을 것 같은데요. 참! 지난 번 혁신위 떴을 때랑 그 전 지방 선거 참패 후 비대위 떴을 때도 위원장 후보 물망에 오르시지 않으셨나요? 신문에서 그렇게 봤던 것 같은데.’’

‘‘에이, 그건 나 안 좋아하는 쪽에서 언플한 거지. 강소장도 이 바닥 잘 알잖아요. 일부러 안 되게 하려고 먼저 선수 쳐서 남 이름 흘리게 하는 수법.’’

‘‘아! 그런 거였나요?’’

‘‘나 의외로 빛 좋은 개살구라니까. 언론에만 쓸 데 없이 이리저리 이름 오르지 실제 실속은 거의 없어요, 하하하.’’

‘‘하하하. 그러세요?’’


그때 내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정원택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양반,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웃고 떠들고들 있으셔?’’

‘‘아니, 강소장 이 양반이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기에. 글쎄 내가 진보 진영에서 혁신위 비대위 같은 거 뜰 때마다 이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거 정말 믿고 있더라고요. 정선생님도 알잖아요. 나 진짜 그런 감투 자리 하나 주면 정말 잘 할 자신 있는데 아무도 안 주는 거. 아니 진보 쪽 말고 보수 쪽에서 오히려 나 보고 그런 거 하라면 내 진짜 차도살인 잘 할 자신 있는데. 정선생님, 어디 그쪽 분들한테 나 추천 좀 해 줘요. 내가 공천심사위원회 들어가서 지금까지 방송에서 씹었던 보수당 인사들 제대로 다 잘라버리면 이번 선거 그 쪽이 압승할 걸요, 하하하.’’


약 15분 후.

이번에는 김여중이 자리를 떴다.

화장실이 아니라 모처와 통화를 위해서다.


‘‘참! 강소장!’’

‘‘예.’’


정원택이 술 한 잔을 가득 따라주며 말을 걸어왔다.


‘‘아까 나 화장실 간 사이, 김선생이랑 차기 총선 이야기 계속 했었어?’’


우리 테이블에 다른 사람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정원택이 한층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아! 예.’’

‘‘무슨 이야기 했었어?’’


정원택이 김여중이 사라진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이야기요. 김선생님 차기 총선이야기. 정치권에서 모종의 역할 맡겨만 주면 뭐든 잘 할 자신 있는데 연락이 안 오신다고 하시던데. 그냥 김선생님 이름만 다들 팔면서 언플한다고. 그런 식으로 말씀 하셨는데 ......’’


물론 나는 김여중이 정원택에 대해 뒷담화한 부분은 빼고 이야기했다.


‘‘푸훗!’’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원택이 피식거렸다.


‘‘웃기는 양반이구먼.’’

‘‘예? 뭐가요?’’

‘‘역시나 불투명한 양반이야.’’

‘‘예에?’’

‘‘내가 저 양반 내 친구들한테는 뭐라고 지칭하는지 알아?’’

‘‘뭐라고요?’’

‘‘크렘린, 크렘린.’’

‘’크렘린이라고 하면?’’

‘‘소련, 구 소련. 소비에트 연방. 자네도 소련 알지?’’

‘‘아! 그럼요.’’


그러고 보니 정원택 눈이 좀 풀려있었다.

체구나 이런 것 보면 말술을 마실 것 같은데 의외로 그는 술에 약해 보였다.

샌님 같은 외모의 김여중이 오히려 같은 양의 술을 입에 넣고 있음에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왜 김선생을 크렘린이라고 부르는 지 알아?’’

‘‘글쎄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어서.’’

‘‘아하!’’

‘‘우리 때는 그런 애들 전부 크렘린이라고 불렀었거든.’’

‘‘아! 그러시군요.’’


정원택이 씨익 웃어 보이며 건배를 청했다.

잔을 부딪치는 와중에 나는 다시금 그의 눈이 풀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근데 무슨 이유로 그런 생각을 ......’’

‘‘아니. 강소장은 딱 보면 느낌이 안 와?’’

‘‘......’’


나는 술이 그럭저럭 센 편이다.

한창 때는 술 상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뭣도 없는 놈이 술 주사 있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게 없다는 어머니 잔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수시로 들으며 자라온 터라 술자리 매너도 그럭저럭 깔끔한 편이다.

사족으로, 어머니가 말한 뭣도 없는 놈은 아버지셨다.


어른들하고 술 마실 때는 특히나 취해 본 적이 없었다.

가끔 술자리에서 무지막지하게 강권하는 어른들이 있을 때는 룸 언니들의 필살기인 탁자 아래 술 버리기까지 시전하면서 멀쩡하게 버텨 온 인생이었다.


‘‘느낌 안 오냐고, 강소장?’’

‘‘전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그래서 정원택의 미끼질에 전혀 걸려들지 않았다.

정말 무슨 말인지 이해 안 간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에이, 자슥. 남 평론질 한다는 놈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방금 전에 김선생이 그랬지? 당에서 영입 제의 오면 덥석 물 거라고.’’

‘‘예, 그랬었죠.’’

‘‘그거 완전 뻥이야. 속 생각과 전혀 반대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예에? 정말이요?’’

‘‘응. 단언컨대 김선생은 절대 정치권에 발 담글 사람이 아니야. 아! 물론 대통령 자리 같은 거 바로 준다면 이야 마음이 달라지겠지만 서도, 하하하.’’

‘‘.....’’

‘‘왜 그런 지 알아, 강소장?’’

‘‘글쎄요. 전혀 감을 못 잡겠네요.’’


다시 또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그러자 정원택이 입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입 터는 시늉을 해보이며 말했다.


‘‘이거 하는 게, 일개 국회의원 짓 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좋거든.’’

‘‘예에?’’

‘‘방송에서 입 터는 게 국회의원 하는 것보다 훨씬 영향력이 있다고. 그걸 아니까 김선생은 차기 총선에서 꿀 지역구 공천 준다고 해도 절대 안 받을 사람이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아하!’’

‘‘나나 김선생이나 방송에서 입 터는 게 웬만한 국회의원 서너 명분 일하는 것보다 미디어 조명도 더 받고 대중 소구력도 있거든. 매주 중구난방 방송 끝나고 봐 봐. 우리 기사 수십 수백 개씩 뜨잖아.’‘’

‘‘하긴, 그건 그러네요.’’

‘‘그렇다니까. 이게 훨씬 권력인지 아니까 김선생은 웬만해서는 정치권 영입 제의 안 받아들일 거라니까. 그깟 국회의원들? 우리가 이번 총선 앞두고 방송에서 마음먹고 입 좀 털면 당락 결정지을 수 있는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 줄 알아, 하하하.’’

‘‘아아! 이제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가네요.’’

‘‘이제 이해가 가?’’

‘‘예. 참! 근데 왜 정선생님께서는 ......’’

‘‘응? 나 뭐?’’

‘‘아, 아닙니다.’’


아차! 하마터면 정원택이 없었을 때 김여중이 했던 말을 발설할 뻔 했다.

그러니까 정원택이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실지로는 이번 총선에 또 출마해 보려고 당 연락을 지금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고 있다는 그 말.


‘‘선생님, 잔 비웠네요. 한 잔 또 따라드리겠습니다.’’

‘‘아! 그럴래? 참! 나 얼굴 되게 빨갛지? 오늘 또 집에 들어가면 간만에 소리 좀 듣겠구먼. 난 자네 젊음은 전혀 안 부러운데, 독신인건 솔직히 되게 부러워, 하하하.’’

‘‘예, 하하하, 하하하.’’


이날, 나는 새삼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정치 평론하는 사람들이란 정치인들 못지않게 정치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정원택과 김여중 사이에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과 달리 어느 정도 틈이 벌어져 있다는 사실.


과연 나는 그들 틈에서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최대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을까?

중구난방 회식 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나 역시 정치력 시험대에 올라서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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