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시사평론가 강대구, 토론의 신에 등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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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완결

엘멕스
작품등록일 :
2024.05.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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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9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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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9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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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DUMMY





총리실과 비서실로부터 감사 전화를 받은 이야기를 곧바로 나는 최웅에게 문자로 보내 자랑했다.

목적은 최웅이 아니었다.

한소라였다.


혹시나 내가 또 이전처럼 이현호에게 굴욕을 당한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을까 봐.

내게 더 이상 방송 중 가슴골을 보여주지 않을까 봐.

아니, 조만간 내게 가슴골이 아니라 가슴 전체를 보여 달라는 은연중의 압력이기도 했다.


‘‘응, 신변.’’


이어서 내친 김에 우리 귀염둥이 신선혜 변호사와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한소라와 한참 저울질을 하고 있던 그녀인지라 자연스럽게 그리고 본능적으로 안부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나, 오, 오빠!’’


여전히 그녀는 나의 연락에 열광했다.

원래부터 팬이었던 터에 최근 내 신분이 급상승하고 있으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일 테다.


‘‘어험! 그래, 요즘 신변 별 일 없고?’’

‘‘그럼요. 참! 저 어제 시사팩폭쇼 봤어요.’’


그녀는 언제나처럼 자기이야기 하기보다 내 이야기를 화제로 삼고 싶어 한다.


‘‘아! 그랬었어?’’

‘‘근데 어제는 생각보다 오빠, 좀 부진한 느낌이 ......’’


음, 그녀도 어제 내가 이현호에게 판정패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신변!’’


내가 정색 조로 그녀를 불렀다.


‘‘예?’’

‘‘이거 좀 실망인데.’’

‘‘뭐, 뭐가요?’’


그녀의 당황하는 빛이 느껴졌다.

영통하자고 할까?

하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사이가 아니다.

게다가 숙녀의 사생활은 보호해줄 줄 아는 신사이고자 한다.


‘‘토론에 승패가 어디 있나. 부진이라는 말은 스포츠에서나 어울리는 워딩이지, 토론에 쓰일 표현은 아니지 않을까? 토론의 진짜 목적은 누가 말싸움에서 이겼냐 지느냐를 가리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해 얼마나 유효한 거대 담론을 생산해내는가가 아니겠는가? 그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천번 만번 져도 상관없다네, 어험.’’

‘‘어머나!’’

‘‘반면 어제 내 상대였던 이현호, 이기자, 그놈은 지 호칭 그대로 어떻게든 나 한 번 이겨보려고 엄청 발악을 떨더만. 방송 끝나고도 나를 보고는 낄낄대고 여자 엠씨한테는 껄떡대고. 하지만 정녕 나는 그런 소인배들 짓거리에 관심 없다네, 어험.’’

‘‘역시나.’’


빌드업을 제대로 했으니 이제 본론에 들어가야 겠다.


‘‘참! 이런 내 토론 철학에 아까 전에 총리실과 비서실도 동의해 주더만.’’

‘‘예에? 그건 또 무슨 소리 ......’’

‘‘아! 이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따로 좀 필요하겠군. 아까 전에 대한민국 국무총리실 직원과 비서실장 지인인 대학교수 분한테 차례로 연락이 왔었거든.’’

‘‘어머나! 저, 정말이요?’’

‘‘그럼, 정말이지. 명색이 그래도 중구난방이라는 정론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내가 이런 걸로 구라를 까겠나, 또 어험.’’

‘‘뭐, 뭐라고요?’’

‘‘뭐라고는. 어제 내 시사팩폭쇼 발언 너무 고맙다고 연락이 온 거지. 하도 요즘 각종 미디어에서 너나 나나 총리실 비서실 사이 불화와 갈등이 장난 아니냐고 떠들어대서 많이들 힘드셨나 보더라고. 그런데 요즘 가장 뜬다는 시사평론가가 그렇게 자기들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해 주었으니 고맙지 아니 할 수 없다고, 뭐 대충 그런 말씀들이셨지.’’

‘‘아아아!’’


그녀의 감탄사를 못 들은 척 하며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가만 보면 정말 울 나라 시사평론가들 문제가 많지. 평론을 통해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보다 자기 입신양명이나 꾀하고 말이야. 평론 좀 잘 하면 여야 정당에서 선거 때마다 영입 제의 오니까 그거 노리고 평론하는 놈들이 한두 놈이 아니거든. 그렇게 개인 욕망을 투영한 평론이나 하니 진정성 있는 비판이나 해법이 나올 수 있겠어? 평소 그런 사감을 가진 평론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었다네, 어험. ’’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애초 평론 철학 같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냥 어쩌다 연이 닿아 시사평론 쪽에 들어왔고, 시사를 잘 모르는 시사평론가라는 독특한 캐릭터 하나 겨우 잡아 연명하고 있는 주제에 무슨 놈의 평론 철학은.


‘‘와아! 역시나! 세상에나!’’


하지만 내 말에 신변은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얘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인기 프로 중구난방 출연에 총리실 비서실 전화까지. 오빠, 진짜 너무 잘 나가시는 거 아니에요? 호호호. 참! 오빠! 다음에 보면 저 사인 몇 장만 해 주실래요? 제 친구들한테 오빠 이야기 했더니 몇몇 사람이 사인 좀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참! 오빠! 근데 왜 오빠는 아직 저서가 없어요? 시사평론가들 책 많이 내던데. 얼른 책 좀 한 권 쓰세요. 그냥 종이보다 책에다 사인 받는 게 훨씬 떼깔 나잖아요, 호호호.’’



+++



한소라와 신선혜만으로 이미 족하다고 생각했다.

월드컵 개최 주기로 한 번 씩 여자를 사귈까 말까 하는 내 인생에 있어서, 미모의 두 명의 여자와 동시에 썸 타는 것만으로 이미 고마운 나날들이라 생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세 번째 여자가 등장했다.

그것도 놀랍게도,

미스코리아 출신이었다.


이게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이러다 누가 지금까지 몰래 카메라였어! 하고 구석에서 카메라 들며 나타나면 순간 살인 저지를 용의도 충분히 있다.


세 번째 여자는 다름 아닌 송주나.

뉴스 채널 WTN의 메인 앵커이다.


이미 지난 번 내가 MZ 세대 대표 정치인 이천식의 차기 총선 지역구 출마 예정지를 맞추었을 때,

그녀 쪽에서 인터뷰 요청을 해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전화 연락이 아니라 이메일 연락이었고,

또 나의 인터뷰 역시 스튜디오 직접 출연이 아니라 전화나 화상 인터뷰로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직접 그녀가 전화를 걸어왔고,

또 스튜디오 직접 출연을 제의해 왔다.


‘‘근데 이번에는 제 뉴스에 출연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예에? 그, 그럼요?’’

‘‘제가 다음 달부터 새로운 라디오 시사 프로 런칭 들어가거든요. 모르지죠?’’

‘‘아! 그, 그러세요?’’

‘‘예. 아직 보도 자료가 안 나가서 아는 분이 별로 없죠. 대신 지금 제작진들과 함께 몇몇 뉴 페이스 패널들을 스카우트 하려고 동분서주 하고 있답니다.’’


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실 내 이 비명은 기시감이 있는 비명이었다.

약 15년 전, 미스코리아에 막 입상한 그녀를 브라운관에서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지금과 거의 같은 데시벨 비명을 질렀으니까.

다른 점은 한 가지, 그때는 입 밖으로 대놓고 내질렀다는 점이다.


둘 다 이십대 한창이던 시절, 그렇게 그녀는 나의 이상형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미국 명문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있던 그녀는 이후 한국에서 미스코리아 활동을 하면서 어렵지 않게 언론사 시험에 합격을 하게 되었고, 기자 생활과 진행자 활동을 병행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잘 나가는 벤처 사업가와 결혼했다는 비보를 전해온 그녀.

하지만 내가 기대하고 기도한 대로 몇 년 안 가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지금껏 돌싱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어떠세요, 저희랑 파일럿 코너 한 번 같이 해 보시는 게.’’


속으로 너무 미안했다.

진심으로 너무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불가항력과도 같았다.

자기 심장 고동소리의 볼륨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없으니까.


한소라와 신선혜, 그녀들에게 속으로 너무 미안했다.

그녀들과 대화할 때는 단 한 번도 이만큼의 심장고동 소리를 느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아! 예. 뭐, 그, 그러죠. 어, 어디서, 미팅부터 해야, 언제, 음, 아아! 미치겠네.’’



+++



중구난방 두 번째 녹화날.

룰루랄라 룰루랄라 양 손에 주전부리 거리를 가득 들고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도 나를 위한 희극은 멈출 줄을 모른다.

지난 첫 번째 녹화를 끝났을 때만 해도 나에 대해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 김피디 이하 제작진들.

하지만 방송 중 내가 딱 한 번 제대로 의견 개진했던 장성동 안청래 이야기가 국회의원의 불성실 문제로 여기저기 공론화되면서 프로그램 브랜드를 한층 높여놓았다고 재평가 각에 들어간 듯하다.


무엇보다도 고무적인 건 정원택과 김여중이 첫 번째 녹화 때보다 한층 더 살갑게 나를 대한다는 점이었다.


‘‘강소장은 일본어도 해요?’’

‘‘예에?’’

‘‘그 한일 친선 축구 대회 건 말이에요. 일본 어느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 가지고 이야기했던 거라면서요?’’

‘‘아아. 그, 그랬었죠. 그런데 그게 사실 제가 일본어를 잘 하는 건 아니고요. 요즘에는 번역 사이트가 엄청 잘 발달되어 있잖아요. 그냥 기사 문장들 넣어도 바로바로 한국말로 제대로 번역 나오니까요.’’


참고로 나 일본어는커녕 영어도 잘 못한다.

일편단심 모국어만 사랑한다.


‘‘아! 그래요? 야! 나도 시대에 좀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강소장님처럼 그런 것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갈수록 공부도 안 하면서 무슨 평론질을 한다고. 아무튼 강소장, 정보 고마워요, 하하하.’’


이미 정원택이 김피디에게 간접적으로 나를 칭찬한 것을 알고 있던 터.

이번에는 방송 대기실에서 김여중이 나에게 엄지 척을 해 보였다.


녹화 시작 5분전.

평상시대로 그제야 막 정원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스튜디오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김여중과 나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네는 정원택.

김여중과는 악수를 나누더니 나에게는 장난스럽게 어깨를 툭, 쳐댔다.

그와 나 사이 어느 정도 벽이 허물어졌다는 방증이었다.


녹화가 시작되었다.

이번 녹화에서도 나는 지난 첫 녹화와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다.


나대지 않고 두 선배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적재적소 맞장구 추임새를 넣어주는데 치중했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눈앞에 프롬프터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녹화 중 세 번 정도 프롬프터가 떴다.

하지만 그걸 다 발설하지는 않았다.


지난 번 말했듯이 아직까지는 속도조절 수위조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프롬프터에 나오는 걸 전부 말해 버리면 모난 돌이 되어 정에 맞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세 번의 프롬프터 중 딱 하나만 선택했다.

그것도 정원택이나 김여중 두 사람 중 누구의 의견과도 크게 대립되지 않는 걸로다가.


사실, 오늘 나의 목적은 녹화도 녹화지만 녹화 후 스케줄이었다.

평소에는 녹화 후 중구난방 팀은 차담회를 가지지만, 오늘은 한두 달에 한 번 씩 있는 회식 날이라고 했다.


지금 내 당면과제는 방송 시청자들 눈에 각인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구난방 제작진과 인맥을 다지는 것.

특히나 정원택, 김여중와 선린 우호 관계를 확실히 정립하는 것.


인맥은 일시적이지만 실력은 영원하다.

그러나 실력은 나를 잘 나가게 해줄 수도 있지만, 때로는 거꾸로 몰락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의 자만심이든, 혹은 남들의 질투, 시기 등에 의해서.


인맥은, 그때 보험이 되어 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99 ma******
    작성일
    24.06.07 08:27
    No. 1

    그놈의 가슴 가슴 가슴…여미새 태그는 조연에게 좋은 롤이지 주인공에게는 그다지 좋은 롤이 아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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