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군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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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yloolv
작품등록일 :
2024.05.09 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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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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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09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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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름 없는 영웅

DUMMY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젠 자드키엘의 울림이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 지경이었다.

‘···눈이, 감긴다.’

찰싹!

정신이 들 정도의 충격으로 얼굴을 후려친 자드키엘은 이전보다 더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눈앞이 흐려.’

눈물, 아니면 땀.

그것도 아니면 아마도 피.

뭐, 아무튼 흘렀겠지.

더는 못 버티겠다고 느끼며 서서히 입이 벌어질 때쯤, 마침내 사내의 손이 나의 등에서 떨어졌다.

“···아.”

사내의 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그리고 속에 뭉쳐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깥으로 분출되었다.

“쿠아악!”

구역질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불꽃이었다.

검은 하늘보다 더 검고, 파괴적인 검은 불꽃.

“···디아블로의 불꽃이군.”

사내의 메마른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지만, 몸을 돌릴 수는 없었다. 이대로 몸을 돌린다면 사내의 몸에 직격할 터였다.

“디아블로의 오염된 마나를 정화하고, 너의 몸에 이식시켰다. 그 불순물이 빠져나오는 과정이야.”

일 분 남짓 불을 뿜어내자 이제는 불꽃 대신 신물이 입술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닦아내고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어딘가 왜소해 보이는 사내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왜 모습이···”

“내 모든 것.”

자드키엘이 조용히 사내의 품에 안겼다.

“너에게 넘겼다.”

피에 떡져있었지만, 그래도 사자의 갈기처럼 멋지게 넘겨져 있었던 갈색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 있었다.

나의 몸 따위는 손바닥 하나로 충분해 보이던 거구는 양분이 전부 빨린 고목처럼 앙상했다.

“저··· 때문에?”

“아니, 날 위해서.”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서서히 옅어졌고, 그에 맞춰 낫들도 서서히 그 몸을 움직였다.

“엇, 하늘이!”

“내가 죽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차원과 차원의 틈이 붕괴하기 시작하는 것이지. 거기에, 사신의 결계가 이중으로 펼쳐져 있거든.”

“사신.”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자드키엘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잘 들어라. 난 실패했다.”

“···”

“세상을 지키지 못했으며.”

붉은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눈앞에서 잃었다.”

자드키엘이 천천히 손에서 빠져나와 사내의 머리 위로 움직이며 우산이 되어주었지만, 사내는 자드키엘을 다시 품에 안았다.

“모든 것을 포기했지.”

그리고 나에게 자드키엘을 넘겨주었다.

조심히 자드키엘을 받았지만, 사내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듯 몸을 계속해서 움직였다.

마치 새끼 고양이를 어미에게서 억지로 떼어놓은 듯한 반응에 내가 몸을 움찔하자 사내가 피식 웃어 보였다.

“너에게 짐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자드키엘의 검신을 마치 아기를 쓰다듬듯 조심히 매만졌다.

“그저, 나처럼 포기하지 않기를.”

사내는 그 말을 남긴 채 몸을 돌렸다.

“당신의 이름.”

“···”

“당신의 이름을 묻고 싶습니다.”

“패배자, 실패자 혹은 위선자. 어느 것이든 좋다.”

“그런 이름이 아니라, 당신의!”

사내의 등 뒤에 포탈이 열린다.

탑에서 나가는 문이며, 동시에 탑을 클리어했다는 증표였다.

“나의 이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저 너머에 있을 텐데?”

“···”

“가거라.”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지 않은 채 탑의 출구로 향했다. 떠나기 싫어하는 자드키엘의 울음소리를 억지로 참으며.


* * *


탑은 클리어되었고, 포탈도 사라졌다.

보스로 추정되던 성룡급 레드 드래곤과 조우한 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갑자기 탑이 소멸하였고, 탑에 있던 헌터들은 전부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다.

덕분에 레이드를 위해 모였던 헌터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고, 어찌 되었든 헌터협회에서는 공식적으로 탑의 클리어를 선언했다.

─ ···이상하군.

추후 탑의 잔해를 재측정한 결과, 탑의 난이도는 측정 불가였다. 오라클은 고작 성룡이 어째서 측정 불가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이미 사라진 탑에 대해 조사를 지속할 수는 없었다.

“···뭐, 이유야 알 것 같지만.”

내가 만났던 사내의 힘은 말 그대로 초월적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어받았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탑에서 나온 직후 혼란에 빠진 사이 난 몰래 그 장소에서 탈출했다. 어차피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사망 처리된 것을 해결하느라 골머리를 좀 썩였지만.”

덕분에 울고 있던 연아를 달래는 것에 하루를 통째로 소비했다. 정말 죽은 줄 알았다고 말하며 나를 때렸다.

‘아프지 않았어.’

하루 종일 잠만 자고, 훈련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연아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무력으로만 따지면 나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나가는 것을 막지 않은 이유는.

“미안해서··· 려나.”

하여튼 귀여움을 받을 줄 모르는 동생이라니까.

여튼, 오늘은 등급을 새로 측정하기 위해 헌터 협회로 향하고 있었다.

평생 D등급으로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새로 생긴 기술이 뭐가 있는지 확인도 하고 싶었다.

“몇천년 간 쌓인 데이터로 대상의 스킬을 특정시켜 준다.”

이것이 오라클이라는 조직을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이유였다.

그들은 헌터라는 존재가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했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막대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었다.

“응?”

헌터 협회의 입구 앞에 한 여성이 멍하니 간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이상한데, 그 옆에는 붉은 옷을 입은 남성들이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살짝 지나갈까.’

옆으로 살짝 지나가려는 그때, 여성이 나의 팔을 잡아챘다.

“여기 있어요. 제 파티.”

“으엥?”

“아닌 것 같은데?”

여성이 눈빛을 보내자 난 헛기침하며 잡힌 팔을 살짝 풀어내었다.

“신분증 갱신 받기로 했는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네?”

“아, 응. 안쪽은 답답해서···요.”

아니, 본인이 어색해하면 어쩌자는 건데.

“흐음···”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우릴 바라봤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한 걸음 물러섰다.

“우리의 제안은 언제나 유효하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그러도록 하죠.”

사내가 멀리 떠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으면 협회 안쪽에 도움을 요청하면 될 거예요.”

“···아.”

맹하게 대답한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조언 감사합니다.”

“저 사람들, 아마 혈화 길드겠죠?”

“맞아요.”

대낮에 꽃이 그려진 빨간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그쪽밖에 없겠지.

길드장인 김도훈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는 길드였고, 머지않아 상위 길드로 도약할 것이라 평가받고 있었다.

‘나한테는 피를 전부 사 가버린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딘가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그녀였고, 들어가기 직전 그녀를 돌아보며 살짝 질문을 던졌다.

“그런 곳에서 왜?”

“여러 가지 사정이 있긴 한데··· 말하자면 길어요.”

‘괜히 물었나.’

지금 집에서 동생도 기다리고 있으니 굳이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네에.”

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저절로 문이 열렸고, 시원한 바람이 안쪽에서 거칠게 뿜어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의 힘을 받은 후로는 딱히 덥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네.’

대기 줄 없이 곧장 등급 측정 심사대로 향하자 하품을 하고 있던 직원이 눈물을 닦고는 금세 자세를 고쳐 잡았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등급 재측정을 받으려고 왔는데요.”

“그러면 여기 신청서에 이름하고 사인을 하시고, 신분증도 같이 제출해 주세요.”

심사는 측정기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기술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측정 시간은 딱히 길지 않았다.

준비 시간 또한 없기에 그저 더미가 설치된 트레이닝 룸에 가서 측정을 실시하면 그만이었다.

다만,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비용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결제되셨습니다.”

‘진짜 빠듯하겠는데.’

사내에게 받은 것은 힘 그리고 더 많은 힘이었다.

심지어 건네받았던 자드키엘은 탑을 빠져나온 뒤 사라지고 말았다.

‘의지가 있는 검이니 때가 되면 돌아오겠지.’

“준비되었습니다. 본인의 주력기를 이용해 더미를 공격해 주세요.”

무공을 익힌 사람이라면 무공.

초능력을 타고난 사람이라면 초능력.

마법을 익힌 사람이라면, 당연하게도 마법이었다.

이외에도 더미를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쳤다.

단지, 이전에 나에게는 신체 강화밖에 없었기에 주먹을 휘두르는 것 이외에는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디아블로의 하트.’

하트의 근원에는 불꽃이 있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잿더미만 남기는 종말의 불꽃.

그리고 아직도 맹렬히, 세상을 향한 맹목적인 분노를 나를 통해 뿜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천천히.’

마나로 신체 강화를 했던 것처럼, 불꽃을 몸에 천천히 둘렀다. 당장 떠올릴 수 있는 활용법은 이것밖에 없었다.

“흐읍!”

힘찬 기합과 함께 주먹이 더미를 향해 쏘아졌다.

‘움직임이 달라.’

이전에 신체 강화를 최대로 두른 상태보다 더 빠르고, 강력했다.

그리고 주먹이 더미에 닿은 순간.

“으응?”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콰아아앙!


* * *


“···이거 큰일 날 뻔했는데?”

팔이 덜렁거리는 곰 인형을 들고 나타난 현광이 내 앞에 쭈그려 앉은 채 볼을 긁적였다.

“건물이 통째로 날아갈 뻔했잖아. 너 돈 많아?”

“어, 으윽···”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자,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게 대체?”

“내가 아니었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뻔했어.”

현광은 밝게 웃으며 시커멓게 타버린 곰 인형을 나의 앞에 내밀었다.

“윽.”

불길해 보이는 곰 인형을 손으로 살짝 밀어내고 재밖에 남지 않은 더미에게 다가갔다.

“그러면 이것들 제가 다 물어내야 하나요?”

그래야겠지. 여기 시설은 전부 오라클이 제공한 것들이니 비용은 아마···”

손가락이 하나, 둘 올라가기 시작했고, 사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번 생은 포기하자.”

“아뇨, 그건 좀.”

“그러면 다른 방법이 있는데 말이야.”

현광은 불길 속에서 용케 안 타고 남아있는 종이를 품에서 꺼내었다.

“···헌터 육성 프로젝트?”

“헌터 협회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새로운 사업이라고 해야 할까?”

현광이 종이를 툭툭 치며 나의 앞에서 흔들었다.

“헌터 사회는 고이다 못해 썩었지. 이 시설만 하더라도 몇천년의 데이터를 쌓았기에 가능한 공간이잖아?”

“그렇죠.”

“그래서! 각 나라에 설치된 협회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헌터를 양성한다!”

자랑스럽다는 듯 양팔을 넓게 펼치며 종이를 하늘로 날렸고, 천천히 떨어지는 종이를 간신히 받아내었다.

“그래봤자. 고이고 썩은 협회에서 양성하는 건데, 새로운 시대가 맞아요?”

내 말에 현광은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날카로운데?”

날 얼마나 바보로 보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지금 너에게 딱히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현광의 시선은 다 녹아버린 트레이닝 룸과 더미에 닿아있었다.

“전부 부담해 주나요?”

“협회가 부담해 줄걸? 안되면 내 사비를 쓰면 되니까.”

‘돈이 얼마나 많길래.’

“궁금해?”

“에?”

“얼굴에 쓰여있거든.”

어느새 잿더미 사이로 파고든 현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잿더미 사이를 뒤적거렸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저, 이름이라던가. 번호는요?”

“어차피 협회에 다 저장되어 있어. 곧 연락이 갈 거야. 아, 그런데 내 이름은 알아?”

“현광 맞죠? 그때 봤어요.”

“그때···? 아, 오케이. 나중에 보자고.”


* * *


신연우가 떠난 뒤 현광은 잿더미 속에서 푸른색으로 빛나는 구슬 하나를 찾아내었다.

“다행이네. 이것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어.”

더미의 심장에 설치된 하트는 충격을 흡수해 헌터의 기술을 감별하고, 수준을 파악하는 장치였다.

“이것만 안 망가졌으면, 수리비는 얼마 안 나오겠네.”

오라클의 정수가 담긴 하트는 수천년간 쌓은 데이터를 통해 어떤 기술이든 구분하는 능력이 있었고, 어지간한 충격에는 끄떡 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볼까?”

[ 등급 : 멸망 ]

[ 능력 : 파이로키네시스 계열의 무언가. 특정 불가. ]

“···이건 무슨 말이야?”

머리를 긁적이며 하트 위에 떠오른 문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글씨는 바뀌지 않았다.

“불을 다루는 능력이면 그런 거지. 특정할 수 없다는 말은 또 뭔데.”

더미의 데이터를 만지작거리던 현광은 그 위에 적힌 헌터 등급으로도 눈을 옮겼다.

“멸망? 이딴 등급은 처음 보는데. 대충 높다는 뜻이겠지?”

파삭.

한 번 더 만지려는 순간, 하트가 재가 되어 사라졌고, 그 순간 트레이닝 룸의 문이 열리며 협회의 직원들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여기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아.”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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