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마스터는 결심했다.
저 멀리 떠나가는 까불이.
그의 곁에는 프리토가 붙어 몰래 따라갔다.
“일단 저쪽은 프리토가 지켜봐 줄 테니.”
프리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저들의 조직은 제압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단 상급 마물 하나만으로도 이세계의 중소 국가 하나를 전복시킬 수 있었으니,
일개 조직 폭력 집단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조직에 찾아가 얘기를 나누려고 프리토를 보낸 것이기는 하다만,
그래도 자신이 나서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긴 했었다.
그리고 오늘 예준에게 남은 일은 한 가지 더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한 아버지를 맞이하는 것.
‘오랜만이네.’
그의 아버지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아들을 1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물론 죽었다고 생각하며 영원히 볼 수 없었던 아들을 맞이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예준이 기다린 시간은 그것의 수십 배.
그 무뚝뚝한 아버지의 얼굴이 가끔 이세계의 밤하늘에 비춰질 때가 있었다.
그리움이 극에 달했을 때.
자신의 가족이 눈앞에서 아른거렸을 때, 검을 휘두르면서 그 그리움을 잊었다.
물론 그 그리움을 잊을 때마다 전신에는 사무치는 감정이 휘돌았다.
그렇기에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중요하지.”
그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한 만큼 기쁨과 함께 어색함이 몰려올 것이었다.
안 그래도 감정표현이 적었던 아버지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 반응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그랜드 마스터로써 인생을 살아오고 사람들을 대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그는 시간을 보내며 아버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
점심시간에 가까워지자 현관문에서는 소리가 울렸다.
띠익 띡.
도어록이 움직이면서 나오는 소리.
이 소리에 하연이는 곧바로 현관을 향해 뛰쳐나갔다.
“왔어!”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 조금 당황한 듯한 얼굴.
칙칙한 먼지와 더불어 많이 삭아 보이는 듯한 아버지의 얼굴이 드러났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얼굴에는 주름이 더욱 늘어났고,
탄광의 검은 먼지가 눈에 띄게 보였다.
“오셨어요?”
예준은 천천히 걸어 나섰다.
간만에 보는 아버지의 얼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난감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습을 안 드러낼 수는 없었다.
마주치고 부딪혀야 후회의 감정이 덜하니깐 말이다.
“...”
예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다가가 손을 벌렸다.
포옹,
그는 아버지에게 포옹을 받는 것이 실로 얼마 만인가 싶었다.
아주 어렸을 적을 제외하고는 느껴본 적이 없는 아버지의 차가운 외투가 예준의 가슴팍에 느껴졌다.
“왔구나.”
그의 아버지는 짤막하게 얘기했다.
이에 예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지금은 어색함이고 뭐고 없었다.
그저 예준의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기쁨만이 있는 것이다.
다시 시간이 지나고.
점심을 대충 먹은 예준의 가족들은 한 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절망적인 가정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웃음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만나니...”
그의 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했다.
죽었던 아들이 살아돌아왔다는 생각에 말을 잃은 것이다.
“그 부분은 그만 얘기해요.”
예준은 그런 아버지에게 웃으면서 얘기했다.
“근데 오빠, 뭐하다가 이제 왔어?”
하연이의 기습질문,
그 1년이라는 실종기간 동안 무엇을 하다가 왔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좋아하던 오빠가, 그리고 자랑스러웠던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은 매우 기쁜 일이었다.
다만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지냈는지 이제 슬슬 궁금해진 것이었다.
재회의 기쁨이 지나고 나서, 감성에 지배되었던 머리가 점차 이성적으로 변하며 생기는 당연한 질문이었다.
“뭐 하다가 왔나...”
예준은 깊게 고민했다.
어차피 자신이 이세계에서 생환했다는 얘기는 믿지도 않을 것 같았다.
비정상적인 방식이기도 했고.
누가 들으면 망상증 환자의 넋두리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평범했던 자신이 이세계에서 성검을 뽑고 세계를 구원한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솔직히 가족이라고 해도, 그 사실 자체를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성검이 새겨 넣어준 참격의 술식은 다른 이들에게 들키면 안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성검이 자신의 손아귀에 있을 때는 술식의 위력이 줄어들지 않지만,
성검이 자기 손에 없는 경우에는 술식 자체의 힘으로 마법을 구현해야 했다.
그리고 술식 자체의 힘만으로는 ‘마나의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위력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에, 꽤 아픈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술식의 약점은 명확하고 단순했고,
예준의 원래 세계에서도 파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최대한 이세계에 대한 정보는 알리지 않는 것이 훗날을 위해서도 좋아 보였다.
“말하기에는 껄끄럽기는 하네.”
예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에 하연이는 말해도 괜찮다면서 그 빛나는 눈망울을 번뜩였다.
‘...’
예준은 이세계에 있었던 일들과 현실에 있을법한 일들을 적당히 꾸며내며 말했다.
“사실은 조금 이상한 일에 휘말려서 말이야.”
그의 아버지 역시 예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게이트를 이용해서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는 나쁜 놈들이 있었어.”
첫 운을 띄웠다.
비록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예준은 최선을 다해 꾸며내며 가족들에게 설명했다.
지어낸 이야기는 간단했다.
어쩌다 보니 불법적인 일에 휘말려 계약을 맺고 고생이라는 고생은 다하고.
빠져나오게 되었지만, 빠져나온 곳이 한국이 아니라 해외였다는 내용.
그리고 그곳에서 수도 없이 많은 조력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결국에는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불법적인 일이 아니라, 갑자기 생성된 마법진으로 인해 몸이 빨려 들어가며 호수의 여신을 만난 것.
그 여신과의 계약을 통해 브라타니아의 모험가가 되어 사람들을 만나고,
여정을 떠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아냈다는 것.
결국에는 숱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내며 귀환할 수 있는 자격을 마련했다는 것까지.
대충 현실 세계에 끼워 맞추며 설명하니 얼추 맞아떨어졌다.
“어떤 어떤 사람이 도와줬는데?”
“아주 나이 많은 할머니하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들.”
아리엘,
나이로 치면 천 살을 먹었으니 인간 기준으로 할머니는 맞았다.
그리고 예준에게 도움을 준 제자들 역시 인간 기준으로는 비슷한 또래이기도 했다.
전쟁을 함께 치뤘던 여러 마스터들 역시 떠올랐지만,
워낙에 개성이 강하고 현실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제외했다.
“힘들었겠다.”
“힘들었지.”
힘들긴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나누고 있는 대화를 생각하면,
그때의 고생이 지금의 상황을 더더욱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궁금한 거 없어요?”
예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신의 이야기에 허점이 있는지, 아니면 무언가가 잘못된 점이 있는지 한번 떠본 것이었다.
“괜찮아.”
예준의 아버지는 이야기를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연이는 예준의 이야기에 일일이 물어보았고.
예준은 그 질문에 재깍재깍 대답해주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고,
하연이는 슬슬 졸음이 쏟아지며 눈을 감았다.
워낙에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눈 터라 기운이라는 기운은 모조리 소모한 것이었다.
“아버지.”
예준은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이에 그의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예준을 쳐다보았다.
하연이가 잠들고, 단 둘이 남은 상황.
역시 둘이서 마주 보고 있으니 역시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
예준의 아버지는 입을 뗄 듯 말 듯 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고.
이에 예준이 먼저 말을 걸었다.
“힘드셨죠? 없는 동안에.”
“...”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공기의 무거움으로 알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그것을 아들에게 토로하고 싶지 않은 기분.
그렇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준의 질문에 침묵이 오랜 시간 흐르자,
그의 아버지는 용기를 내어서 아들에게 질문했다.
“힘들었나?”
진심을 다한 질문이었다.
아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으면서,
예준이 오늘 쏟아낸 내용이 망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걱정어린 그리고 진심이 담긴 그의 질문에 예준은 선하게 웃으며 답해주었다.
“힘들었죠. 진짜로요.”
“그리고.”
예준은 자신의 말을 덧붙였다.
“힘들고, 재밌고, 아쉽기도 했어요.”
순간적으로 많은 인물들이 예준의 눈앞에 지나갔다.
그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떠나간 이들.
자신에게 시련을 안겨주고 떠나간 이들.
그리고 자신이 그 세계에 남기고 간 이들.
마지막에는 가족의 얼굴들이 세세하게 지나갔다.
“무척이나 그리웠죠.”
그 한마디에, 아들이 던진 진심 어린 한마디에.
무뚝뚝했던, 눈물이 없던 아버지의 눈에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러냐.”
그의 아버지는 슬며시 눈물을 닦아내며 대답했다.
한순간의 모든 것을 잃었고, 절망하고 자신을 원망했지만,
아들의 입에서 자신을 보고 싶었다는 얘기를 듣자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예준은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를 보고는 다시금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절대로, 절대로 자신의 가족을 건드리는 자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그는 아버지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건네었다.
“아버지, 할 말이 있어요.”
“뭔데?”
“내일 탄광에 가지 마세요, 하연이도 마찬가지예요.”
그 말에 놀란 예준의 아버지.
“왜 그러니?”
이에 예준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답했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그러니깐 하연이도 아버지도 이 일에는 전혀 무관한 거예요.”
“이상한 짓은 하지 마라, 네가 뭘 한다고 해도···.”
대충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한 듯 모양이었다.
“그 녀석들은 놓아주지 않아, 오히려 관계없는 너만이라도 살리고 싶다.”
“저는 우리 가족을 살리고 싶을 뿐 이에요.”
그 말에 예준은 심지가 굳게 대답했다.
지금 모습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청년에 불과했지만,
예준의 정신적인 성장을 고려한다면 다 큰 어른이었다.
자신이 직접 생각하고 판단하며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식으로 수십 년을 살아왔고, 그랜드 마스터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제 처지가 어떤지는 잘 알고 있으니깐요.”
그 말을 끝으로 예준은 더 이상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이미 정한 일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