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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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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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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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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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좋은 곳에 와서는 안 되는 망자 1

DUMMY

살아있는 자들이 천국이라 부르는 좋은 곳에, 죄 많은 망자가 있었습니다. 이 망자는 지옥이라 불리는 죄의 무덤에 가야 할 망자였습니다. 만약 이 망자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망자는 좋은 곳에 온지 49일이 되는 날,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그 어떤 벌도 받지 않고 무사히 환생 했을 것입니다.


한이 책상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문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인도 멀뚱멀뚱 모니터만 쳐다보고 키보드만 톡톡 두드렸습니다.

“일 없으면 일찍 퇴근해.”

“아! 진짜요?”

부장 사자 말이 떨어지자 마자 한이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 인도 부장 사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래. 어차피 곧 퇴근이잖아. 그 사이 혹시 무슨 업무가 오면 내가 처리하지.”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가······ 감사히 퇴근하죠! 감사합니다!”

한이 능글능글 부장 사자의 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머뭇거리는 인의 팔을 잡아 끌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저희 먼저 갑니다.”

한과 인이 나가고 부장 사자가 선에게 말했습니다.

“사양 한 번을 안 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는구만. 자네도 그만 가봐. 별 일 없을 거 같으니.”

선도 짐을 챙기며 말했습니다.

“안 그래도 가려구요.”

“그래 보이는구만.”

“그나저나 인 사자가 좀 늦어요.”

“뭐가?”

“능력이요. 기억을 보는 건 연습 자체가 쉽지 않으니 그렇다 쳐도······ 염력이나 순간 이동은 열심히 연습은 하는 것 같은데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느리긴 하네······ 뭐, 그래도 언젠가는 되지 않겠어?”

선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 그 시커먼 뱀 봤다는 망자는 그 뒤로 더 없었지?”

“네. 그러고보니 최근에는 뱀을 봤다는 망자가 없네요.”

“삼도천 물괴 같은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제 삼도천으로 돌아가서 안 나타나는 거고······”

“그럼 다행이구요. 저도 이만 갈게요.”


인은 집에 돌아왔다가 순간이동을 연습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습니다. 날이 저물어 어둑했지만 다니는 망자들이 없어 연습하기엔 더 나을 것 같았습니다. 목적지 없이 순간이동 연습에만 집중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인범진 망자의 집 근처였습니다. 인은 마중 나갔던 날 이후로 인범진 망자를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다른 망자들은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기도 하는데 인범진 망자는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인범진 망자의 집은 다른 집과는 달리 모든 창문에 커튼이 쳐져 있어 어두컴컴했습니다. 인은 잘 지내는지 안부나 물을까 했다가 인범진 망자를 마중 나갔던 일이 떠올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인이 사자 계약을 한 다음날이었습니다.

“으악!”

잠에서 깬 인은 침대 맞은편에 서 있는 검은 형체를 보고 기겁했습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사자복이었습니다. 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놀란 가슴을 부여잡았습니다. 잠시 진정을 하고 나니 허탈한 웃음이 났습니다. 시커먼 사자복을 보고 자신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미 죽은 데다가 사자가 되었으니까요. 인은 출근 준비를 하고 사무실로 갔습니다. 사무실 문 위에 ‘큰 나무 근처 사무실’이라고 쓰인 명패가 붙어 있었습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큰 나무때문에 지어진 이름이 분명했습니다. 이름이 일차원 적이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인은 어깨에 힘을 꽉 주고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인이 자리를 정리한 후 앉자 부장 사자가 들어왔습니다. 인은 부장 사자에게 꾸벅 인사했습니다. 부장 사자는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습니다.

“눈이 빨개요······”

“아······ 그래?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나 삼십분만······”

부장 사자는 하품을 하고는 터덜터덜 회의실로 들어가더니 회의실 테이블에 엎드렸습니다. 부장 사자가 회의실로 들어간지 일분도 되지 않아 한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습니다.

“아직, 안 늦었어요. 지각 아니에요!”

인은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 회의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두 손을 합장하듯 모아 귀에 갖다대고 자는 시늉을 했습니다. 한은 회의실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보았습니다.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부장 사자가 보였습니다.

“흠······ 또 학자나 작가 망자가 온 건가······?”

인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한을 쳐다보았습니다.

“아······ 부장님은 학자나 작가 망자들과 이야기 하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그 망자들이 선물하는 책도 좋아하시고······ 아마 밤새 책을 읽었을 지도 몰라요.”

“와······ 밤새요?”

“난 업무 관련 서류도 겨우 보는데, 부장님은 책 읽고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하세요. 아, 그러고보니 전에 어떤 신부님 망자와 스님 망자를 환생을 못 하게 하고, 몇 년을 붙들고 매일 말씀을 들으러 다니신 적도 있었어요.”

“사자가 망자를 환생 못 하게 할 수도 있어요?”

“아니, 그렇게는 못 하죠······ 그냥 부장님이 매일 찾아가서 질문을 하고 답을 달라 애걸복걸 한거에요. 그 바람에 그 스님 망자랑 신부님 망자가 환생을 미루게 된 거죠. 부장님을 내치지 못해서······ 나중에 대사자님이 알게 되는 바람에 시말서까지 쓰고 엄청 혼났어요.”


자리에 앉은 인은 뭘 해야 될지 몰라 괜히 서랍을 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무 용품들 사이에 붉은 매듭 장식이 달린 검은 나무 패가 놓여 있는게 보였습니다. 인은 나무 패를 집어 들었습니다. ‘인’ 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아, 그게 사자 명패에요. 업무 차 어디 방문할 때나 쓰는 거라 그냥 서랍에 넣어두면 됩니다.”

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패를 있던 자리에 두고 서랍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고 시스템에 접속한 후 업무에 관련된 것들을 살폈습니다. 삼십분쯤 지나자 부장 사자가 회의실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사무실을 들어올 때 피곤함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띵동, 인의 노트북 화면 오른쪽 아래에 알림 메시지가 떴습니다.

‘망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인이 알림 메시지를 선택하자 새 창이 열리고 업무지시서가 나타났습니다.

“오! 인 사자 첫 번째 업무네요.”

한이 고개를 빼고 인의 업무 지시서를 보고 있었습니다. 업무지시서는 꽤 고급스러운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서체도 꼭 명필이 쓴 것처럼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지시서의 내용은 간결했습니다.


- 업무지시서 -

수신자 : 사자 인

업무명 : 망자 인도

망자명 : 인범진


“사진이랑 이름, 망자가 살 주소 잘 확인하고······ 업무지시서 출력하면 다 나오니, 출력해서 뱃나루로 가봐요.”

한이 출력 버튼을 가리켰습니다. 인은 한이 가리킨 출력 버튼을 클릭했습니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프린터기에서 지잉 하더니 종이가 한 장 나왔습니다. 화면으로 보았던 업무지시서에는 없던 망자의 사진과 지낼 집 주소, 망자에게 전달할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은 망자가 지낼 주소의 위치를 인에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인은 어디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인은 뱃나루로 갔습니다. 좋은 곳에 왔을 때처럼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인은 업무지시서를 꺼내 보았습니다. 사진 속 망자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습니다. 인은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누군지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 때 추르르 삼도천을 가르는 물소리가 들리더니 안개 속에서 뱃머리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검은 망토를 뒤집어 쓴 뱃사공이 보였습니다. 뱃사공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노를 잡은 뼈뿐인 손가락만 보였습니다. 인은 자신을 데려왔던 뱃사공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뱃사공 뒤로 망자가 보였습니다. 배가 멈추자 인범진 망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라도 묻은 듯 옷을 툭툭 털었습니다. 뱃나루로 망자가 올라오자 뱃사공은 안개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은 뱃사공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인범진 망자에게도 인사를 했습니다.

“어서오세요.”

인범진 망자는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이상하게 인사를 받았습니다.

“나 알아요?”

인은 망자의 얼굴을 보자 낯이 익다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요.”

인범진 망자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표정이 좋아지더니 뱃나루 끝에 서서 삼도천에 침을 퉷 하고 뱉었습니다. 침은 삼도천에 비친 망자의 얼굴로 떨어졌습니다. 무언가 떨어지면 물결이 일텐데 삼도천은 잠잠했습니다.

“앗!”

그 때 인범진 망자의 얼굴에 무언가 묻었습니다. 인범진 망자는 손으로 얼굴을 닦았습니다. 자신이 뱉은 침이었습니다.

“아, 씨. 뭐야?”

인범진 망자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손에 묻은 침을 쳐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분 나쁘게 씩 웃더니 인의 옷 가슴팍에 슥 닦았습니다.

“아, 미안. 기사들한테는 이렇게 해도 괜찮았거든······ 버릇이 돼서······ 괜, 찮, 지?”

인은 불쾌했고 순간 화가 났지만 꾹 참고 인범진 망자를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인범진 망자는 차는 없냐, 언제까지 걸어야 하냐며 가는 내내 짜증을 냈습니다. 이상한 건 짜증을 내다가도 다른 망자와 마주치면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인범진 망자가 지낼 집은 언덕 밑 아담한 집이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사자 사무실 근처의 나무 만큼은 아니지만 꽤 큰 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여기가 이제 지낼 곳입니다. 들어가시죠. 들어가시면······”

“집 사이즈가······ 딱 내가 살던 집 화장실만 하네······”

인범진 망자는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서서 집을 쳐다보았습니다. 인이 지내고 있는 집은 어렸을 때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집 모양이었습니다. 인은 인범진 망자의 표정을 보니 모든 망자가 원하는 집을 갖는 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을 때 싸갈 수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살아서 돈 버느라 아등바등하면 뭐하나 해서. 어차피 죽은 뒤에는 아무 쓸모가 없으니 말야. 게다가 이렇게 코딱지 만한 집에서 살게 되잖아. 안 그래?”

인범진 망자는 인을 뒤로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놓인 거실, 거실에 붙은 작은 부엌이 보였습니다.

“뭐야? 설마 내가 밥까지 해 먹어야 하는 거야?”

“그래도 되고, 식당도 많이 있으니 가서 드시면 됩니다. 돈은 안 내도 됩니다. 이곳은 ······”

“됐어. 피곤하니 그만 가 봐. 좀 쉬어야겠어.”

“아, 네. 아! 49일이 지나면 환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49일이 지나도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있습니다. 아······ 제가 있는 사무실은······”

인범진 망자는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손을 휘휘 저었습니다. 인에게 나가라는 의미였습니다. 인은 주먹을 꽉 쥐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선과 한만 있었습니다. 인이 자리에 앉자 마자 한이 의자를 드르륵 밀어 인 옆에 착 붙었습니다.

“어땠어요, 첫 업무? 어? 옷에 뭐 묻었는데······”

한이 인의 옷에 묻은 얼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인은 얼른 화장실로 가 화장지에 물을 묻혀 툭툭 닦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선이 물었습니다. 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망자가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인은 뱃나루에서 인범진 망자를 만났을 때부터 인범진 망자의 집에서 나올 때까지 있었던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흠······ 흔치 않은 망자긴 하네요. 그래도 그런 괴팍한 망자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니까······ 여기가 개미 한 마리 안 죽인 망자만 오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괴팍해도 크게 나쁜 짓은 안 했다면 올 수 있는 곳이죠.”

선이 말하자 한이 인상을 팍 쓰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개차반이 왔어도 사자 옷에 침 닦는 망자는 없었던 것 같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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