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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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8:0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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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작성
24.07.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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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자 6

DUMMY

인은 신수의 기억에서 본 것을 한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어두운 밤, 후드를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린 자가 울타리 앞에 섰습니다. 신수들은 낯선 자의 등장에 이미 잠에서 깨어 있었고 긴장한 듯 털을 곤두세운 신수도 있었습니다. 낯선 자는 울타리 안으로는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낯선 자는 달 빛에 비친 신수들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한 곳을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입가로 가져갔습니다. 손에는 작은 피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낯선 자는 그저 피리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피리를 부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신수들은 진정이 된 듯 다시 잠을 청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얀 뱀 신수는 아니었습니다. 하얀 뱀 신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낯선 자에게로 다가갔고 얌전히 그 품에 안겼습니다.

낯선 자는 빠르게 숲을 빠져 나와 인범진 망자의 집이 보이는 곳에 섰습니다. 그리고 하얀 뱀 신수를 내려놓았습니다. 낯선 자가 다시 피리를 꺼내 물었고 이내 하얀 뱀 신수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 올랐습니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은 인범진 망자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은 금새 커졌고 인범진 망자의 집을 에워싸며 일렁였습니다. 아지랑이는 투명했지만 그 모양은 커다란 용 같기도, 뱀 같기도 했습니다. 인범진 망자의 집을 둘러싼 하얀 뱀 신수의 기운은 부장 사자가 쳐놓은 결계를 감싸 안듯 안았습니다. 그리고 뱀이 먹이를 옥죄듯이 결계를 조였습니다. 부장 사자의 결계는 유리가 부서지는 것처럼 부서져 허공에 흩어졌습니다. 강한나 망자의 기억에서 보았던 것처럼 부장 사자의 결계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낯선 자는 결계가 깨지자 다시 피리를 불었습니다. 하얀 뱀 신수는 사자의 사무실로 가 풀섶 사이에 또아리를 틀고 잠이 들었습니다.

한은 조용히 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에 제대로 이해했는지 한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후드라는 모자 같은 걸 뒤집어 쓰고 얼굴을 가린 자가 피리 같은 걸 불더니 신수를 울타리에서 꺼냈다는 거지?”

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인범진 망자의 집으로 가서 결계를 깨도록 했다······”

“네. 그런데 지난 번에 강한나 망자님 기억에서는 부장 사자님 결계가 깨지는 것만 보였지 그 아지랑이 같은 커다란 기운은 안 보였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결계가 깨질 때 그것도 보였어요.”

“아마 자네 기운이 좀 커져서 이제까지는 안 보이던 게 조금 더 보이는 거 같아.”

인은 “그런가?” 하며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한은 팔짱을 끼고 그윽한 눈으로 인을 바라보았습니다.

“왜, 왜요?”

“인 사자 쫌 대단한데······ 결계 깬 범인을 찾은 거잖아. 거기다 신수 기억까지 보고. 와우!”

한은 인의 등을 툭 쳤습니다.

“일단 사무실로 가자고. 선 사자님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 다음에 뭘 해야 할 지 알려줄 지도 몰라.”

한은 신난 발걸음으로 인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돌아왔을 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봐, 이봐. 나만 심각하다니까. 선 사자님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하······ 일이나 하자, 인 사자.”

한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업무를 챙겼습니다.


선은 다음 날 사무실이 아닌 뱃나루로 갔습니다. 그리고 탁을 기다렸습니다. 선이 물끄러미 삼도천을 바라보고 서 있는데 망자를 맞으러 온 다른 사자 몇이 선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쳤습니다. 삼도천 안개 사이로 탁이 타고 있는 나룻배가 보였습니다. 선은 뱃나루에 오른 탁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여긴 공기가 맑네. 나한테 묻어있는 죄의 무덤 냄새가 금새 싹 씻기겠어······”

탁은 언덕 위를 거닐며 산책하는 망자들을 바라보더니 선에게 웃어보였습니다. 선도 웃어 보였습니다.

“조용한 찻집이 있습니다.”

“됐어. 좋은 곳 사자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차 마시러 온 것도 아니고······”

선은 사자나 망자들 발길이 뜸한 곳으로 탁을 안내했습니다. 선과 탁은 덩그러니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벤치 앞으로 짙은 안개로 덮인 삼도천이 보였습니다. 탁이 벤치 주변을 둘러보니 풀섶이 꽤 무성했습니다.

“전망이 나쁘지 않지만 한기가 있군. 오가는 이가 없을 만해······”

“탁 사자님······ 경 사자, 언제 죄의 무덤을 떠난 건가요?”

선이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습니다.

“그 전에······ 죄의 무덤으로 와야 하는 망자 하나가 여기서 사라진 일이 있었지?”

선은 탁이 경 이야기를 하지 않고 인범진 망자 이야기를 꺼내자 조금 놀랐습니다.

“죄의 무덤에서 뱃사공을 보내는 바람에 여기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는데······ 뱃사공들이 데려간 거 아니었나요?”

선은 대답대신 확인하고 싶은 것을 다시 물었습니다. 탁이 피식 웃었습니다. 탁이 그 의중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데려가지 못 했군요······ 그 때 대사자께서 손을 떼라고 하는 바람에 그 망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손을 떼라고 했다? 그 말은 최소한 자네는 그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자네는 경 사자가 사라진 것이 그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선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맞나보군······”

탁은 팔짱을 끼고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죄의 무덤에 갔어야 할 망자가 좋은 곳에 왔다는 건 최소한 삼도천에서부터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거지. 아무리 죄의 무덤 대사자 요청이라고 해도 삼도천 뱃사공이 그렇게 빨리 움직일리 없는데 말이야. 게다가 뱃사공을 둘이나 좋은 곳에 올려 보냈어······ 여기 대사자님이 어떤 성격인지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선은 묵묵히 탁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네쪽 대사자는 그 일을 알아보고 있던 사자들에게 손을 떼라고 했어······ 그런데 자네는 대사자 몰래 그 일을 계속 알아보는 중이고······”

선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 자네가 이승에서 목격되었다는 사자 일을 캔다······ 이 일의 시작은 이승에서부터 꼬였다는 거겠군?”

선은 길게 숨을 들이쉰 후 뱉었습니다. 탁은 좋은 곳에 오기 전에 알아볼 만큼 알아보고, 생각할 만큼 생각하고 왔을 것이었습니다. 선은 탁이 자신을 통해 추론한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직 경 사자 일이 이 일과 관련이 있다는 확증은 없습니다. 게다가 죄의 무덤에 갈 망자가 어떤 이유로 이곳에 온 건지도 아직 모르구요.”

선의 말을 들은 탁은 의미심장하게 미소지었습니다.

“이유는 몰라도 방법은 알아냈나 보군······”

선은 아차 싶었습니다. 탁은 이승의 율과 달리 눈치가 빠르고 영민한 사자였습니다.

“뭐, 말 하기 어려우면 하지 않아도 되네······ 우리한테는 이 일의 이유보다는 이 일의 결과가 문제니까. 그리고 이 일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게 된 이상, 더 이상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선은 죄의 무덤도 무관하지 않다는 말에 놀라 탁을 쳐다보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죄의 무덤에 갈 망자가 사라져서 징계라도 받으시는 거에요?”

“차라리 징계 받는 정도면 다행이지······”

탁은 숨을 고르는 듯 짧고 굵게 들이킨 숨을 뱉어내었습니다.

“죄의 무덤에 가야 할 망자가 좋은 곳에 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죄의 무덤에서 형벌을 받고 있는 망자들 사이에······”

“사자들도 쉬쉬할 텐데 망자들이 어떻게?”

“소문이 어떻게 난 건지는 몰라. 지금 당장은 중요하지도 않고······ 이 일이 빨리 수습되어야 하고, 이런 일이 더 생기면 안 된다는 게 중요하지. 그래야 소문도 수습될 거고······ 아직은 믿지 못할 소문일 뿐이니······”

선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경 사자가 목격되었다는 게 1년 쯤 전이라고 했지?”

“네······”

“그 시점이 맞는 것 같아. 1년 쯤 전에 죄의 무덤에서 사라졌어. 망자들이 환생하면 위쪽에 보고한 후에 기록도 소멸되니, 기록으로 특정할 수 있는 건 없지만······ 아무튼 죄의 무덤 사자 말로는 그 쯤 경 사자가 사라졌는데, 그냥 환생했다고 생각했다더군······ 어이가 없지만 어쩌겠어, 이미 지난 일······”

“경 사자를 관리하던 사자가 있을 거 아니에요? 분명 죄를 씻지 못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죄의 무덤을 떠난지 오래 되긴 했군······ 죄의 무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선은 죄의 무덤에서 하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곳은 좋은 곳처럼 망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망자들은 온갖 고통과 죽음이 매일 반복되는 시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망자들은 앞뒤 좌우,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면 서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망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내가 받는 벌이 다른 망자보다 무겁다고 생각합니다. 반성이나 뉘우침은 없었고 죄의 무덤에 갇혀 있어야 하는 시간 내내 자신들이 무얼 잘못했냐고 울부짖었고 원망할 뿐이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형벌을 받는 망자들을 사자들이 관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망자가 죄의 무덤에서 벌을 받는 시간을 다 보내면 환생 시킬 뿐이었습니다. 그 마저도 시간이 되면 저절로 환생하기도 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도 않았습니다.

죄의 무덤 사자들의 다른 업무는 도망친 망자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가끔 망자를 옥죄는 쇠사슬이 헐거워지고 죄의 무덤에 틈이 생기는데 그 틈으로 망자가 도망을 치기도 했습니다. 죄의 무덤 사자들은 그 일을 사냥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냥이라고 불렀던 건 도망친 망자들을 사냥하듯 찾아다녔고 소멸시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냥에 재미를 느낀 사자들은 몰래 틈을 만들고 망자를 풀어주기도 했습니다. 선이 죄의 무덤을 떠난 건 다른 사자들과 충돌이 생겨서 였고 바로 재미로 하는 사냥 때문이었습니다.


“어쨌든 죄의 무덤 망자들이 그 일이 소문이 아니라 정말로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고, 자신들도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치기 시작하면 곤란해져······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어······”

선은 탁이 염려하는 것이 틈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틈이 커질 수도 있을까요? 그리고 그 틈으로 망자들이······”

탁은 안개가 자욱한 삼도천을 바라보았습니다.

“망자들에 의해 틈이 생기는 건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 때문이야······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망상 때문에 틈이 생기는 일은 없겠지. 자네도 알 거야. 좋은 곳과 죄의 무덤, 삼도천······ 우리 모두는 망자들에 의해 존재한다는 거······”

“네, 알고 있습니다.”

“망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전체가 뒤엎어질 수도 있어······ 그러니 최선을 다 해서 이 일을 해결해야 할 거야.”

탁은 뱃나루로 내려와 삼도천에 노자돈을 던졌습니다. 선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경 사자가 어떻게 이승에 갔는지는 내가 더 알아보겠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어딘가 생긴 틈을 이용하는 건데······”

“틈으로 나갔다면 사자들이 추격을 했을 텐데요······”

“그렇지······ 그런데 그 시점에 틈으로 나간 망자는 없었어. 사자들 기록 상으로는······ 뭔가 알게 되면 연락하겠네.”

“네, 감사합니다.”

탁은 뱃사공이 끌고 온 배를 타고 죄의 무덤으로 돌아갔습니다. 선은 탁이 한 말을 되뇌었습니다.

‘전체가 뒤엎어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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