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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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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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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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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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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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목격자 4

DUMMY

김희자 망자는 장희준 망자만 들을 수 있게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꼬마야, 나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너희 엄마, 아빠, 가족 모두 그 고양이들처럼 만들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장희준 망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 대답했습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여기 없어요.”

“아······ 그렇지. 맞아. 네 엄마 아빠는 여기에 없어. 그런데 어쩌지 나는 할 수 있는데? 네 엄마 아빠 뿐만이 아니야. 저기 있는 친구들도 그렇게 만들 수 있어.”

김희자 망자는 공원을 뛰어다니는 어린 망자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습니다. 장희준 망자는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김희자 망자는 장희준 망자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세워 입에 갖다 댔습니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공원을 빠져나갔습니다.

장희준 망자가 고양이가 없는지 찾게 된 것은 그 때부터 였습니다.


인의 이야기를 듣고 한은 분노했습니다.

“아니, 애를 사고까지 당해서 죽게 해놓고 여기까지 와서 애한테 협박을 한 거야? 와! 인 사자, 당장 가자!”

부장 사자와 선도 화가 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한을 말렸습니다.

“그 망자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찾아······ 대사자님이 허락은 했지만 우리가 들쑤시고 다닐 수는 없어.”

한은 답답한지 숨을 크게 뱉어냈습니다. 선이 물끄러미 한을 바라보았습니다.

“내일 희준이가 그 망자를 마주쳤던 곳에서 출발해 보려구요. 그 망자, 마주치기만 하면 알아볼 수 있어요. 산책하는 것처럼 하면 그 망자가 저를 보더라도 의심하지 않을 거에요.”

인이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인범진 망자는 꼼짝 않고 있으라고 했는데, 그 망자도 꼼짝 않고 있으면 못 찾는 거 아닐까?”

선이 물었습니다.

“인범진 망자처럼 꼭꼭 숨으려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그냥 처음 가는 장소를 두리번거리는 정도였어요.”

“두리번거리긴! 또 고양이 찾으러 다니는 거겠지.”

한이 잔뜩 성난 얼굴로 말했습니다.

“한 사자, 진정해. 그나저나 인범진 망자에게는 눈에 띄지 말라고 했는데, 이 망자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가······ 종잡을 수가 없구만······ 그 쪽 구역 사무실에 관리하는 망자 목록을 요청하면 찾는 게 쉽겠지만······ 그걸 달라고 하면 왜 그러냐고 물고 뜯을 게 뻔하니, 번거롭겠지만 인 사자가 직접 찾도록 합시다. 대신 며칠 내 못 찾으면 그 땐 그쪽 사무실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합시다.”

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장 사자에게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부장 사자는 한을 바라보았습니다.

“한 사자, 영감님 만나고 온 건······?”

“피리는 도둑 맞았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인 사자가 신수의 기억에서 본 걸 이미 알고 계시더라구요.”

“아마 신수가 말씀드렸겠지······”

부장 사자가 예상했다는 듯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한이 뜸을 들였습니다.

“그런데, 뭐?”

부장 사자가 재촉했습니다.

“신수가 피리를 훔치고 신수를 부린 자가 사자라고 했대요.”

선이 놀라 한을 쳐다보았습니다. 모두 선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사자라는 것만 얘기했고,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했어요. 아! 그리고 그 사자가 모든 길의 길목을 오간 것 같다고 했어요.”

“모든 길의 길목?”

부장 사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모두 한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은 신령님 망자가 해준 길목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모든 길의 길목은 빛은 한 줌도 없고 어둠만 가득한 곳입니다. 길목을 가득 채운 어둠은 짙고 무거워서 바로 눈 앞에 있는 내 손 조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캄캄한 어둠은 어디든 갈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줍니다. 삼도천을 건너지 않고도 이승에서 저승으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목은 아무나 지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둠은 길목을 걷는 이를 감싸고, 길목을 걷고 있는 이가 잊고 있던 기억들까지 헤집습니다. 마음 어딘가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하나 둘 부유하듯 떠오르면 걷는 이는 그 기억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걷는 이는 자신의 걸음을 잃게 되고 어둠에 먹혀 영원히 그 안에 갇히게 됩니다.”


“영감님이 그 길목은 오래 전에 막아 놔서 아는 이가 별로 없다고 했어요. 그리고 대사자님이라고 해도 그 길목을 쉽게 지나지 못할 거라고 했구요······ 도대체 그자는 어떻게 길목을 지났을까요?”

한이 팔짱까지 끼고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러게······”

부장 사자는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져 있었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 집에 들렀습니다. 강한나 망자는 생각보다 밝은 표정으로 인을 맞았습니다. 강한나 망자는 인의 얼굴을 잠시 보더니 팔짱을 끼며 슬쩍 웃었습니다.

“제가 축 쳐져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밝아서 실망한 표정인 것 같은데요.”

“하하, 망자님은 선 사자님처럼 다른 이의 생각을 읽는 능력은 없는 것 같네요. 실망이 아니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의 대답을 들은 강한나 망자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쥔 손으로 다른 손 손바닥을 탁 쳤습니다. 꼭 아는 문제를 아주 근소한 차이로 틀려 아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못 맞췄네요.”

“네, 못 맞췄습니다.”

“기운 빠져 있으면 뭐해요. 그나저나 희준이 일은 어떻게 되는 거에요? 그 망자는 찾은 거에요?”

“찾은 건 아니고······ 이제 찾아야죠. 사실 희준이 기억에서 본 얼굴밖에 몰라요.”

인은 어깨를 으쓱 했습니다.

“흠······ 어떻게 찾을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못 믿어서가 아니고, 궁금해서요.”

“네. 일단 희준이가 그 망자를 만난 곳에 가 보려고요. 거기서 주변을 좀 산책하듯 다니며 찾아 볼 생각이에요.”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몽타주 같은 거 그려주면 저도 찾아 볼게요. 희준이한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고 걱정되고 그랬는데······ 도울 수 있다면 진짜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사자님 일이기도 하잖아요.”

인은 문득 사는 동안 누가 이렇게 도와준 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장 사자, 선, 한도 그랬습니다. 인을 아무 편견없이 맞아주었고 늘 함께 있었던 것처럼 대해주었습니다. 인은 살았을 때보다 지금이 덜 팍팍하고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흠······ 그럼 저랑 같이 산책해 주시죠. 사자 혼자 어슬렁 거리는 것보다는 덜 의심스럽지 않을까요?”

강한나 망자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팔짱을 끼고 인에게서 두어 걸음 물러섰습니다.

“온 김에 연습하고 가시죠.”

손을 잡지 않고 기억을 보라는 의미였습니다. 인은 의미심장하게 말했습니다.

“어쩌죠? 연습을 할 거면 다른 걸 연습해야 할 것 같은데요.”

“다른 연습이요?”

“네. 어떤 분이 손을 잡아도 기억을 보지 않는 걸 연습하라고 하던데요.”

인의 말을 들은 강한나 망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스스로 이마를 한 대 콩 쥐어박으며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마는 왜 때려요?”

“저의 생각이 조금 짧았다는 것이 아쉽······ 아니, 부끄럽네요. 제가 너무 성급했어요. 보는 거에만 너무 급급해서 보는 걸 컨트롤 하는 걸 망각했네요.”

“뭘 그렇게까지······”

강한나 망자는 크게 한 걸음 성큼 다가와 인의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인은 깜짝 놀랐습니다.

“자······ 이제 안 보는 연습을 하시죠!”


인은 강한나 망자의 손을 서른 번도 넘게 잡았지만 계속 기억이 보였습니다. 손을 세게 잡는 건 아니었지만 강한나 망자의 손은 어느새 발그레하게 부어 있었습니다. 강한나 망자의 손을 보니 인은 그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의 손을 놓았습니다.

“저기, 사자님 손 잡을 때 무슨 생각해요?”

강한나 망자가 손을 살살 털며 물었습니다. 인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강한나 망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손을 잡은 상태에서 기억을 보여다오, 기억을 보여주지 말아다오······ 뭐, 이런 주문 같은 걸 외우나 해서요.”

“아······ 기억을 볼 때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아도 보여요. 잡으면 그냥 바로 보이거든요······ 그렇다 보니 지금은 기억을 안 보고 싶다, 기억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보이나······? 뭔가 자꾸 의식해서 보이는 건가 해서요.”

인은 강한나 망자 말을 듣고 나니 신령님 망자에게 데려다 준 신수 생각이 났습니다. 인이 신수를 내려놓을 때 기억을 보긴 했지만, 신수를 안고 숲을 걸어 들어가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인은 신수를 안을 때 아무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던 신수가 망자나 사자처럼 무언가를 보여줄 거란 기대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인은 강한나 망자의 손을 다시 천천히 잡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강한나 망자의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습니다.

“뭔데요?”

“전에 신수를 안고 한참을 걸었는데도 기억이 안 보였거든요. 마지막에 내려놓을 때 보이긴 했지만······ 기억을 볼 거라는 기대가 아예 없어서 그랬나 싶어서, 비슷하게 시도해 봤는데 안 되네요. 여전히 기억이 보이네요.”

“신수? 뭐지? 아무튼, 저는 제 기억을 안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고, 엉뚱한 생각도 해 봤는데 사자님한테 별 영향이 없나 봐요. 아무래도 기억을 가진 쪽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강한나 망자의 손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시죠. 손이 많이 붉어졌어요. 저는 매번 망자님께 신세를 지내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말하는 인을 보니 강한나 망자는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매번 괜찮다고 대답하는 것도 일이니까, 그만 고맙다고 하세요. 쫌······ 저는 저대로 재미있어요. 진짜에요.”

“네, 그럴게요······ 그럼 내일 뵐게요.”

“네. 아! 내일 데이트룩, 남친룩으로 나오세요. 사자처럼 입지 말고요.”


강한나 망자의 데이트룩 아이디어는 다음 날 아침에는 고문이 되었습니다. 인은 옷장을 열어 놓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고뇌했습니다.

“남친룩이 뭐지······?”

어릴 때는 늘 교복을 입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는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늘 셔츠와 자켓 차림이었습니다. 인의 옷장은 그런 옷들 뿐이었습니다. 생각만 하면 필요한 것이 생기는 곳이 좋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남친룩이 무엇인지 모르니 옷장 안에 새로운 옷이 생겼을 리 없었습니다. 옷장 안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쥐어 뜯던 인은 그냥 제일 사자 같지 않은 옷을 골라 입기로 했습니다.

인이 사무실에 들어가자 부장 사자, 선, 한의 시선이 인의 옷에 꽂혔습니다.

“사자복을 입는 게 강제는 아니지만······ 오늘은 자유분방하네. 허허.”

부장 사자가 웃었습니다. 한도 큭큭 거렸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그렇게 입은 거야?...... 아! 오늘 그 망자 찾으러 가는 가지······ 사복, 위장 뭐 그런 건가?”

선이 물었고 인은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네······ 강한나 망자가 사자 티 안나게 입으라고······”

“음······ 어쨌든 사자처럼 안 보이니 성공했네.”

부장 사자가 엄지 손가락을 세워 보였습니다. 인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한 것 같았습니다. 잠시 후 강한나 망자가 사무실로 왔습니다.

“와우! 전혀, 사자님으로 안 보이긴 하네요. 하하. 가시죠, 산책.”

인은 강한나 망자와 시장 근처 공원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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