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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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최근연재일 :
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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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302

작성
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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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2

DUMMY

좋은 곳에 큰 지진이 있던 날 부장 사자는 회의를 마치자 마자 사무실로 달려갔습니다. 인과 한이 걱정되어 갔는데 차광호 망자와 서진옥 망자만 사무실에 앞에 앉아있었습니다.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우르르 땅이 울리며 흔들렸습니다.

“아들! 위험해. 이렇게 막 다니면 안 돼!”

서진옥 망자는 몸을 잘 가누지 못하면서도 잔뜩 걱정스런 얼굴로 달려와 부장 사자를 안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부장 사자는 마음에 무거운 것이 떨어진 것처럼 쿵 했습니다.

“허허. 돌봐준 나는 신경도 안 쓰이나 봅니다.”

차광호 망자가 웃었습니다. 부장 사자는 잠시 서진옥 망자를 그대로 두었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서진옥 망자는 고개를 들어 부장 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부장 사자가 웃어주자 서진옥 망자는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지 안고 있던 팔을 풀었습니다.

“응! 걱정 안 해. 우리 아들 씩씩하니까.”

부장 사자는 사무실에 결계를 쳐 지진에 흔들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이제 안에 들어가셔도 됩니다. 결계를 쳤으니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차광호 망자는 고맙다고 하고 서진옥 망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어. 그 뒤로 부장님이 자주 서진옥 망자를 돌보러 가는 덕에 사무실까지 찾으러 오지 않는 것 같아.”

그 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부장 사자가 들어왔습니다.

“왜 아직도 사무실에 있어. 집에 안 가?”

“어이쿠! 집에 갈 시간이네. 전 갑니다.”

한이 기다렸다는 듯 총알같이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인은 부장 사자를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뭐, 할 말 있어, 인 사자?”

“아, 아뇨. 하하. 저도 그만 가보겠습니다.”

인까지 나가고 불 켜진 사무실에 부장 사자만 남았습니다. 부장 사자는 말 없이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있었습니다. 어느새 밤이 깊어 달이 중천에 떴습니다. 부장 사자만 남아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습니다. 부장 사자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선이었습니다.

“고생 많았어. 몸 상한데는 없는 거지?”

부장 사자는 선의 어깨를 다독였습니다.

“네. 괜찮아요.”

선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사자, 인 사자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닦았어. 선 사자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는데 내일 보면 둘 다 엄청 반가워하겠어.”

“하하. 저도 한 사자, 인 사자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아요.”

선은 손으로 책상을 만져보고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부장 사자는 빙긋이 웃더니 차를 내려 선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탁 사자에게 선 사자를 살펴달라고 부탁했었어. 덕분에 자주 선 사자 소식을 들을 수 있었지.”

“아······ 그래서 탁 사자님이 풀방구리 드나들듯 저한테 왔던 거군요.”

선은 웃음이 났습니다.

“이런······ 선 사자를 귀찮게 했던 건 아니지?”

선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버티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선은 차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따뜻하고 향긋한 차를 입에 잠시 물었다가 천천히 삼켰습니다.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기······ 좋은 곳에도 큰 지진이 있었다면서요?”

부장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때······ 탁 사자한테 대강 이야기는 들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여기까지 지진이 일어날 만큼 죄의 무덤은 크게 요동쳤다고 하던데······”

“경 사자가 그렇게 되고······ 좋은 곳에 왔던 망자들도 모두 죄의 무덤으로 돌려보냈으니······ 그대로 그 일이 끝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경 사자는 어쩌면,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선은 두 팔목에 쇠고랑을 찬 채 어둠 속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매일 뱀과 전갈, 지네가 온 몸을 기어 다녔고 살을 물어뜯는 벌레들이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선은 신음 소리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쿠르르. 땅이 울리는 게 느껴졌습니다. 점점 울리는 강도가 커졌습니다.

“이봐, 거기.”

선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둑한 곳에서 칼날이 가시처럼 박힌 덤불에 휘감겨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망자였습니다. 선은 대답은 하지 않았습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는 걸 보니, 나보다 나은 형벌이군······ 하긴 여기에서 나보다 힘든 사람은 없어. 나는 크게 지은 죄도 없는데······으악!”

죄의 무덤에서 망자들을 괴롭히는 것 중 하나는 내 앞, 내 옆의 망자가 나보다 덜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각자의 눈에 씌어진 허상일 뿐 누구의 고통이 더하고 덜하고는 없었습니다. 허나 망자들이 그런 것을 알리 없었습니다. 망자들은 자신만을 가여이 여기고 주변의 망자들이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운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저주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저주가 서로의 고통을 배가 시켰습니다.

삼도천에서 안개를 실은 바람이 불어왔고 선은 대답도 없이 다시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망자가 다시 말을 걸었습니다.

“그 얘기 들었어? 좋은 곳에 갔던 망자들······ 윽! 어쩌면 우리도 이 형벌에서 벗어나 좋은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몰라. 악! 아파!”

망자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은 좋은 곳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느라 닫고 있던 귀를 열어 주변의 소음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망자들의 헛된 망상과 몸부림치는 소리가 뒤엉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도 나도 죄 지은 자가 좋은 곳에 갔었다는 일을 떠들고 있었습니다.

선은 소음이 아니라 망자들의 생각을 듣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망자들은 자신들도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망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선의 머리 속으로 수 십만, 아니 수 십억의 생각들이 밀려들어왔습니다. 생각이 많아지고 커지자 쿠르르 땅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어둠으로 가득한 천장에서 무언가 부서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습니다. 죄의 무덤을 둘러싼 어둠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땅이 울리고 두터운 쇳덩이 같은 어둠이 망자들 위로 떨어지는데도 망자들은 계속해서 그 생각만 했습니다.

‘억울하다. 나도 좋은 곳에 갈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형벌의 괴로움보다 좋은 곳에 갈 수 있다, 죄의 무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열망이 커져갔습니다. 진동에 쇠사슬에 묶인 선의 몸도 가누지 못할 만큼 크게 흔들렸습니다. 선을 묶어두고 있는 쇠사슬이 어둠속에서 요란하게 흔들리며 부딪혀 철커덩 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죄의 무덤 사자들이 조용히 하라고 망자들을 다그치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불안을 느끼는 사자들의 생각도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선 사자, 괜찮아?”

탁이었습니다.

“전 괜찮습니다. 사자님이 얘기했던······ 일어나면 안 된다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요?”

탁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 좋은 곳에 있다가 끌려온 망자들이 떠벌리는 바람에······ 죄의 무덤 전체로 퍼져 버렸어. 이대로 가면 죄의 무덤을 둘러싼 어둠이 모두 무너지고도 남겠어. 거대한 어둠 조각에 먹히는 망자들이 많겠지만 ······ 꽤 많은 망자들은 죄의 무덤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게 될 거야······ 어쩌면 죄의 무덤 자체가 사라질 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방법은 있는 거에요?”

“망자들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 손 쓸 도리가 없어······ 죄의 무덤을 둘러싼 어둠이 무너지면 빠져나간 망자들을 찾는다고 해도 데려올 곳이 없을 텐데······ 이런······ 난 다른 곳을 더 살펴야겠어. 상황이 안 좋으면······ 여길 벗어나도록 해.”

탁은 선 앞에 시커먼 열쇠 하나를 던져놓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선은 열쇠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망자들의 생각을 읽으면서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습니다.

‘아!’

선에게 좋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열망이 아닌 다른 생각이 들렸습니다.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그게 된다고 한들 그런 게 소급될 리가 있어. 무식한 것들······’

선은 망자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탁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칼날 같은 가시 덤불에 뒤엉켜 있는 망자를 불렀습니다.

“이보시오!”

망자는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중얼거릴 뿐 선의 부름을 듣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선은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망자들이 여기 저기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웃기시네. 죄 지은 것들이 좋은 곳에 갈 수 있게 된다고 해도 여기 있는 자들은 못 갈 걸!”

선이 소리쳤습니다. 가시 덤불에 뒤엉켜 있던 망자가 고개를 들어 선을 보았습니다. 흐릿하게 형체만 보이던 망자들도 동요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습니다.

“무, 무슨 소리야?”

“여기 규칙이 그래. 규칙이 바뀌어도 그 이전에 형이 집행된 망자는 해당이 없어······”

선은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게 정말이야? 윽! 당신 말을 어떻게 믿어? 으악!”

“난 사자였어. 사자도 죄를 지으면 여기로 끌려오지······ 당신이 믿건 말건 여기 법이 그래. 당신 같으면 이미 형벌을 받고 있는 자들을 풀어주겠어?”

선의 이야기를 들은 망자들이 다른 망자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자였는데 죄를 지어서, 사자도 끌려와서 여기에서 벌을 받고 있대.”

“죄 지은 자들이 좋은 곳에 가게 되더라도 이미 벌을 받고 있는 자들은 해당이 없대.”

여전히 땅이 울리고 있었지만 망자들 사이에 선이 한 이야기가 천천히 퍼지고 있었습니다.

“좋은 곳에 갔던 자들도 결국 여기로 끌려왔잖아! 아마 살아서 지은 죄에 죽어서 지은 죄까지 더해져서 더 큰 벌을 받고 있을 걸!”

선은 크게 소리친 후 다시 망자들의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망자들이 동요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선은 동요하는 망자들 생각에 쐐기를 박을만한 것이 필요했습니다.

‘난 조금만 있으면 환생한다고 했는데······’

‘이러다 남 좋은 일만 하는 거 아니야······ 난 계속 여기서 형벌을 받고 있는데······’

‘이거다! 이거면 망자들이 생각을 바꿀 지도 몰라.’

선이 크게 소리치려는 순간 선의 머리 위로 커다란 어둠 조각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다행이 어둠 조각은 선 바로 위로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둠 조각의 한쪽 모서리가 선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선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굉음을 내며 바닥에 떨어진 어둠 조각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봐! 이봐!”

칼날 같은 가시 덩굴에 감겨 있는 망자가 선을 불렀습니다. 망자는 어둠 조각에 부딪혀 정신을 잃은 선을 보자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자신의 머리 위로 어둠 조각이 떨어질까 싶어 두 눈을 부릅뜨고 깜깜한 하늘 위를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선은 한참이 지나서야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더 이상 진동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선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망자들의 생각을 다시 살폈습니다.

“하······ 다행이다······”

선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신이 들었군.”

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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