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록 (죄를 지운 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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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c
작품등록일 :
2024.05.26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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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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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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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허허, 해태라서 그런가?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군.”

신수가 해태라는 대사자 말에 부장 사자와 란 부장은 긴장하며 몸에 힘을 주었습니다.

긴장한 건 사자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울타리 안에 있는 신수들 모두 잔뜩 긴장한채 해태와 신령님 망자를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해태는 크르릉 거리더니 다시 신령님 망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신령님 망자가 품에서 피리를 조심스럽게 꺼냈습니다. 해태는 피리를 보자 심기가 더 불편해진 것 같았습니다. 몸을 뒤 덮은 비늘이 부르르 일어났다 가라앉았습니다. 그 떨림을 따라 촤르르 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신령님 망자는 빠르게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해태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꼬리를 휘둘러 그 끝으로 피리를 쳐냈습니다.

부장 사자는 해태가 신령님 망자를 공격하기 전에 뛰어들기 위해 몸을 낮추었습니다. 대사자가 부장 사자의 어깨를 잡았습니다. 부장 사자는 대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해태가 잡혔어.”

부장 사자는 다시 신령님 망자와 해태를 바라보았습니다. 신령님 망자는 어느새 해태의 몸에 손을 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해태는 곧 갑옷을 입은 장수의 모습으로 바뀌었었습니다. 해태는 아무렇게나 자른 듯한 붉은 머리가 곱슬곱슬 했고 여기저기 제멋대로 뻗쳐 있었습니다. 커다란 덩치의 모습과는 다르게 날렵한 몸매의 모습이었습니다. 해태가 쳐낸 피리는 란 부장이 재빠르게 뛰어 올라 받았습니다.

“쳇! 피리는 미끼였군. 아주 약아졌어. 못 본 사이에······”

사람으로 변한 해태는 팔짱을 끼고 신령님 망자를 쳐다보았습니다.

“세월이 얼마인데······ 변해도 몇 번은 변할 시간이지. 너도 마찬가지고······”

신령님 망자는 어깨를 다친 신수 곁에 앉아 다친 곳을 어루만졌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겁 없이 덤빈 건 저 녀석이야.”

해태는 한 대 더 때리고 싶은 듯 다친 신수를 노려보았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넌 너보다 약하고 작은 것들은 절대 해치지 않으니까······ 이 녀석도 이렇게 겁만 준 거고······”

해태는 대꾸는 하지 않고 사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사자들에게 걸어왔습니다.

“뭐야? 왜 사자들이 셋 씩이나 여기에 왜 와 있는 거야? 해태가 삼도천을 건넜다고 구경이라도 오신 건가?”

해태는 밑도 끝도 성질을 냈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신령님 망자는 멧돼지 모습을 한 신수의 상처를 살핀 후 놀랐을 마음도 달래 준 후 다른 신수들 곁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해태는 ‘흥!’ 하더니 휙 돌았고 다시 본래의 커다랗고 무서운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해태는 사자들 냄새를 킁킁 맡고는 신령님 망자를 향해 한 번 그르렁 거린 후 울타리 한쪽에 드리워진 숲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큰일도 아닌데, 괜히 말씀 나누는데 방해만 되었네요.”

신령님 망자는 대사자와 부장 사자, 란 부장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여 사과했습니다. 란 부장은 신령님 망자에게 피리를 건넸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아주 큰 신수를 봤습니다. 허허.”

대사자는 해태가 사라진 숲의 그림자 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부장 사자와 란 부장에게 무심한 투로 말했습니다.

“늦었으니, 이만들 하고 돌아가지. 나도 그만 가 봐야겠어. 차 잘 마셨습니다.”

대사자는 신령님 망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까 하시던 이야기는 끝은 어떻게 되었나요? 마무리는 해주셔야죠.”

부장 사자는 뒤 돌아서는 대사자를 향해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은 혼자 돌아왔네······”

대사자는 씨익 웃고는 돌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박물장수를 만나야겠는데······”

란 부장 말에 부장 사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부장 사자는 평상시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했습니다. 부장 사자보다 사무실에 선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어?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

“아, 오셨어요? 부장님이야 말로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어, 이승에 좀 나갔다 오려고······”

부장 사자는 서랍을 열어 명패를 꺼내더니 캐비닛을 열어 노자돈을 챙겼습니다.

“마침 잘 되었네요.”

선이 잘 되었다고 하자 부장 사자가 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저도 마침 이승 출장 신청서를 쓰고 있었거든요.”

선은 부장 사자에게 경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부장 사자와 선은 인과 한에게 메모를 남겨두고 뱃나루를 향해 걸었습니다.

“이승에서도 경사자를 찾고 있지 않을까? 이 일과 관련이 있는지 여부를 떠나 죄의 무덤에서 사라졌으니 찾아야 할 테고 말이야······”

선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럴거에요. 죄의 무덤에서도 사라진 걸 확인했으니 이승에 알렸을 거에요. 당연히 찾으라고 요청도 했을 거구요.”

“아직까지 찾지 못했는데······ 어쩌면 선 사자가 그 누구보다 빨리 경 사자를 찾을 지도 모르겠군.”

선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찾으면 어쩔 생각이야?”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죄의 무덤에 끌려갔을 때, 이미 끌려간 뒤라 아무 이야기도 못했어요. 그리고 어떻게 거기서 나온 건지······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선의 목소리에서 경을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부장 사자는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뱃나루 끝에 부장 사자와 선이 섰습니다. 부장 사자는 삼도천에 노자돈을 던졌습니다. 퐁. 노자돈이 삼도천에 떨어졌습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혹시나 해서 이리로 바로 왔는데······”

부장 사자와 선이 고개를 돌려보았습니다. 란 부장이 팔짱을 끼고 둘을 노려보듯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뭐야? 자네가 왜?”

부장 사자가 못마땅한 얼굴로 란 부장을 쳐다보았습니다. 선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란 부장은 손을 들어 선에게 인사했습니다.

“반가운 척은 못해도 못 마땅한 표정을 그렇게 대놓고 지을 건 없잖아. 나도 이 일에 대해 이제 알만큼 아는데, 내가 도와주면 좋은 거 아냐?”

“아주 신 난 얼굴이야. 생기가 돌아. 누가 보면 산 사람인 줄 알겠어.”

부장 사자가 삐딱하게 말하자 란 부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팔짱을 끼고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부장들도 이승 출장을 허가 받고 가는 걸로 바꿔야 해. 아주 이승이 옆집이야.”

“자네도 부장이라 출장 허가 없이 선 사자까지 대동하고 가는 거 아냐? 허가제로 바뀌면, 지금은 자네가 더 아쉬울 걸.”

선은 아웅다웅하는 두 부장을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두 부장이 투닥거리는 사이에 뱃사공이 뱃나루에 도착했고 셋은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삼도천 뱃길은 누가 그 길에 오르는 가에 따라 소요되는 시간이 달랐습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오는 망자들에게 삼도천 뱃길은 며칠은 걸리는 것 같은 멀고 긴 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자들은 몇 시간이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같은 길이었지만 그 마음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여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삶을 마치고 이승을 떠나는 이에게 그 길은 멀고 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삼도천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밤에는 망자를 태운 나룻배의 등불이라도 보였지만 낮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박물장수 만나러 가는데 선사자까지 대동하고 가는 건 좀 오버 아냐?”

란 부장이 부장 사자에게 물었습니다. 부장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아, 저는 다른 일이 좀 있어서요.”

부장 사자 대신에 선이 대답했습니다. 란 부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선 사자가 일이 있다······? 흠······ 나 선 사자 따라가면 안 될까?”

“시끄러워. 어디를 따라간다고······”

부장 사자가 딱 잘랐습니다. 선 사자도 어색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란 부장은 쳇! 하더니 부장 사자와 다시 옥신각신 하기 시작했습니다..

말 없이 두 부장 사자를 바라보던 선이 고개를 돌려 뱃사공을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뱃사공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허름한 차림이었고 얼굴은 망토의 짙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길다란 노를 따라 시선을 옮기자 낡은 소매자락 사이로 뼈만 남은 손이 언뜻언뜻 보였습니다.

뱃사공의 손을 보던 선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바람에 나룻배가 흔들렸고 부장 사자와 란 부장이 깜짝 놀라 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은 말릴 새도 없이 뱃사공에게 다가가더니 뱃사공 팔을 잡고는 소매자락을 휙 걷어 올렸습니다. 뱃사공은 순식간에 차가운 한기를 뿜었습니다. 선은 한기를 피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뱃사공과 멀찍이 떨어지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습니다. 갑작스럽게 몸을 날리는 바람에 선은 나룻배가 아닌 삼도천으로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부장 사자가 선 사자를 잡기 위해 뛰어올랐고 선의 팔을 잡았습니다. 부장 사자가 뛰어오르자 란 부장 역시 빠르게 나룻배 끝에 몸을 지탱하고 부장 사자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덕분에 선 사자는 삼도천에 빠지지 않았지만 그 반동으로 세 사자가 나룻배에 쿵쿵 소리를 내며 쓰러졌습니다. 나룻배가 크게 휘청였지만 뱃사공이 노를 잡고 지탱한 덕에 배가 뒤집히지는 않았습니다.

“크르르······”

뱃사공이 화가 난 듯 소리를 냈고 입에서 한기가 쏟아졌습니다.

“미안합니다.”

란 부장이 빠르게 일어나 고개를 숙여 뱃사공에게 사과했습니다. 부장 사자도 일어나 고개를 숙였고 선 사자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뱃사공은 그제서야 화가 누그러진 듯 한기를 거둬들였고 다시 배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짓이야?”

부장 사자가 선에게 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이따 내려서 말씀 드릴게요.”


이승쪽 뱃나루 앞에는 갈대가 빼곡하게 서 있었고 낮이었지만 안개가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 사자는 배에서 내려 뱃사공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습니다. 뱃사공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배를 돌려 안개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까는 왜 그런거야?”

부장 사자가 채근하듯 선에게 물었습니다.

“전에 알던 사자가 있었는데, 인간의 생사에 관여하는 바람에 삼도천에 던져졌어요. 그 사자 손등에 아주 깊은 상처가 있었는데······ 그런데 아까 그 뱃사공 손등······ 뼈 뿐인 손등 위로 꼭 그 상처 같은 자국이 보여서, 저도 모르게 그만······”

선의 대답을 들은 부장 사자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란 부장은 선 사자의 어깨를 다독였습니다.

“선 사자······ 그 사자 좋아했나 보군. 그 상처가 잊혀지지 않는 거야? 그래, 그럴 수 있어.”

“아, 아니에요! 저는 그냥 아는 사자고 제 친구가······”

“괜찮아, 괜찮아. 사자가 그런 마음을 갖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야······ 마음이 많이 아프겠군. 우린 먼저 갈 테니, 마음 추스르고 볼일 보고 돌아갈 때 연락해.”

란 부장은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는 선을 뒤로 하고 부장 사자 등을 떠밀며 뱃나루를 떠났습니다.

“아, 아닌데······”

선은 한숨을 푹 쉬고는 안개 낀 삼도천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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