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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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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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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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테미온 참사

DUMMY

스피글리츠는 즉각 구겐하임 경시총감을 불러 이번 사건의 중차대함을 설명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수사할 것을 지시했다.




구겐하임은 자신이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구겐하임은 출세를 위해서는 부모도 팔 수 있을 만큼 출세지향적인 데다 깊이 신뢰하기 힘든 뱀 같은 인물이라는 평판을 받는 인물이었다.




법관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구겐하임은 수완도 좋았지만 관운도 따르는 인물이었다. 여러 차례 독직 사건에 연루됐지만 뇌물과 연줄을 동원해 혐의를 벗어난 것은 물론 올해 초 경시총감이 갑자기 지병으로 물러나면서 경시총감 대리를 맡게 됐다.




베르트호벤이나 스피글리츠 어느 쪽에도 확실한 연줄이 없었기 때문에 경시총감 자리는 사실 꿈도 꾸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연찮게 굴러들어온 것이었다. 게다가 알베르트 왕세자 피살사건이 벌어지면서 특별수사본부장 자리까지 올랐다.




왕세자가 그냥 말에서 떨어져 죽었어도 이와 관련된 여러 사람이 다치는 게 왕조국가에서는 일반적이었다. 하물며 화살에 목을 관통 당해 죽었다는 것은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권력 자체가 재편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구겐하임은 일단 일선 수사를 담당할 책임자로 슈타지 출신의 게나르츠를 지명했다. 선수가 선수를 알아보듯 구겐하임은 게나르츠를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어느 연줄을 잡고 있지는 않고 있지만 출세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인물이라고 구겐하임은 평가하고 있었다.




"게나르츠 경부, 이쪽으로 앉으세요."




"네 총감님. 저를 어쩐 일로..."




구겐하임은 자신보다 나이가 세 살 많은 게나르츠를 부려야 한다는 게 사실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게나르츠만한 적임자가 없어보였다.




그는 오랜 수사경력뿐 아니라 슈타지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정무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왕세자 저하 피살사건은 경부도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구겐하임은 자신이 왕세자 피살사건의 수사본부장을 맡게 됐다는 점과 게나르츠가 실무 수사책임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에게 이런 막중한 일을 믿고 맡겨주시다니... 총감님,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게나르츠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듯 보였다. 실제 슈타지에서 밀려나 경시청으로 온 이후 게나르츠는 사건다운 사건을 제대로 맡아본 적이 없었다.




슈타지에서 근무했다는 경력 덕분에 경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동안 내부 알력에 밀리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구겐하임으로부터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부여받았으니 없던 충성심도 절로 생길 판이었다.




"슈타지에서 근무해봤으니 이런 일의 중요성은 물론이고 그 파급력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물론입니다. 삐끗 하면 곧바로 목이 날아갈 수 있는 사안이죠."




"역시 긴 말이 필요없구려. 하하하. 그래서 말인데 이번 사건을 조사할 때 모든 보고는 나에게 직접 하시오. 경부는 이제 수사본부장 직속의 수사책임자란 걸 명심하시오. 그 누구와도 수사상황을 공유해서는 안 되오."




"명심하겠습니다, 총감님."




대화를 나누다보니 게나르츠를 수사책임자로 임명한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았다. 수사에 대한 식견뿐 아니라 정치적인 감각도 고루 갖추고 있어 보였다.




"총감님, 그런데 이번 수사에는 어떤 커트라인이 있습니까?"




어디까지 수사할 수 있느냐는 것과 고려해야할 사항은 없는 지 묻고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하라는 게 스피글라츠 공작 각하의 지시요. 여기서 지위고하를 막론하라는 건 정말 뜻 그대로 모두가 수사대상이라는 것이오. 여기에는 왕실 친인척도 예외가 될 수 없소. 친인척은 사실 수사대상 1순위가 될 것이오."




구겐하임이 스피글리츠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게나르츠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 베르트호벤 후작과 함께 국정을 양분하고 있는 스피글리츠가 뒤를 봐주고 있으니 거리낌 없이 수사하라는 무언의 지시였다.




구겐하임은 이번 사건수사를 통해 큰 업적을 쌓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경력을 발판삼는다면 꿈에 그리던 공안국장 자리도 멀지 않아 보였다.




"총감님, 수사 인력은 어떻게 할까요?"




"요원들은 경부가 알아서 선발하도록 하시오. 경부가 요청하면 최우선적으로 요원을 보내주겠소."




게나르츠는 곧바로 수사인력 10여명을 선발한 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범행에 사용된 화살에 대한 분석 등 주변에 대한 조사도 병행돼 진행됐다.




당시 사냥에 참가했던 모든 귀족 자제들에 대해 예외없이 조사한다고 하자 귀족 사회가 술렁였다. 당시 사냥에 참여했던 귀족 자제가 모두 60여명에 이르는데 그들을 모두 조사한다는 것은 너무 과해 보였다. 이들은 재상 베르트호벤 후작에게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베르트호벤도 귀족 자제를 모두 조사한다는 건 너무 심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렇다고 스피글리츠에게 부탁했다가는 오히려 책만 잡힐 것 같았다. 구겐하임에게 직접 압력을 넣기로 했다.




베르트호벤은 비서관을 구겐하임에게 보내 재상부에서 보자고 한다는 뜻을 전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구겐하임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스피글리츠에 이어 국왕을 제외하고는 프란디아의 1인자라고 할 수 있는 베르트호벤을 독대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재상 각하, 저를 찾으셨사옵니까."?




구겐하임은 거수경례를 한 뒤 부동자세로 문 앞에 섰다.




"오 총감, 오셨소. 이리 와 앉으시오."




구겐하임은 재상 집무실 소파에서 베르트호벤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시게 되자 꿈인지 생시인지 얼떨떨했다. 그러나 막중한 수사를 맡고 있는 책임자로서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표정관리에 애썼다.




베르트호벤은 수사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물은 뒤 여러 신변잡기적인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구겐하임은 베르트호벤이 무슨 말을 할 지 잘 알고 있었다.




"재상 각하, 무슨 중요한 전달 내용이 있어 저를 보자고 하셨던 것 아닌지요?"




구겐하임은 얼른 본론을 말하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중간에 툭 끊었다. 재상이 말하는 걸 중간에 끊는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는 무례였다. 그런데 베르트호벤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긴커녕 오히려 사과했다.




"아, 이거 바쁜 사람 불러놓고 내가 실수를 했군. 미안하네, 총감."




자신이 말해놓고도 실수한 게 아닌지 마음 졸였던 구겐하임은 베르트호벤의 이 같은 자세를 보자 한껏 의기양양해졌다. 마치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 된 것마냥 목에 힘이 들어 가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최근 특수본에서 상류귀족 자제들을 무차별적으로 소환조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네 저희 특수본은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관련자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상류귀족 자제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구겐하임의 잇따른 무례에 베르트호벤은 약간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낱 경시총감 주제에 감히 재상이 하는 말을 두 번씩이나 잘라먹다니...




"내 말을 좀 끝까지 듣게. 귀족 자제 중 조사를 받아야 할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조사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포함돼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럴리가요. 저희 특수본은 철저하게 관련자들만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우저 가문의 랜돌프, 베어링거 가문의 오토 등은 그날 사냥터로 간 적도 없는데 조사대상에 올랐어.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 게나르츠가 가져온 명단에는 귀족 자제 32명의 이름만 올라 있었다. 나머지 30여 명은 당시의 행적이나 여러가지 이유로 충분히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구겐하임은 직권으로 이들을 모두 조사대상에 포함시켰다. 보다 세밀한 조사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 거만한 상류귀족의 자제들을 한 번 골탕먹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들을 조사하면서 우월감을 느껴보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재상 각하, 저희 특수본의 조사대상에 올랐다면 분명 무언가 조사할 만한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사를 그렇게 나쁘게 생각할 것도 아닙니다.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지낼 확실한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니까요."




사실 베르트호벤은 둘째 아들 프란츠가 조사대상에 포합돼 있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을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엉뚱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어 자제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네 말은 끝까지 귀족 자제들의 조사를 강행하겠다는 건가?"




"네, 이건 제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입니다. 워낙 윗선에서 철저한 수사를 강조하고 있어서..."




윗선이라는 말에 베르트호벤은 참고 있던 분노가 폭발했다.




"윗선이라니. 이 프란디아에 국왕 전하를 제외하고 나보다 윗선이 또 있다는 말인가? 철저한 수사를 하는 건 칭찬해줄만 하네만 이런 식으로 융통성 없이 일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구먼."




구겐하임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음을 알고 당황했다. 적당히 버티다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볼 생각이었는데 쓸데없는 말실수 하나 때문에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재상 각하, 제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실수한 걸 알고 있긴 한가보군. 앞으로 수사상황 예의주시해서 지켜보겠네."




"재상 각하, 노여움을 좀 푸시고... 재상 각하의 둘째 아드님도 조사대상에 포함돼 있던데 그건 제가 힘써보겠습니다."




둘째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베르트호벤은 더욱 불 같이 화를 냈다.




"네놈이 나를 아들 문제로 청탁이나 하는 쫌생이로 만드는구나. 당장 물러가거라. 내 둘째 아들을 조사대상에서 빼지 말고 철저히 수사하여라. 나도 널 이제부터 유심히 조사해보기 시작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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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로젠테미온 참사 24.07.27 19 0 10쪽
27 로젠테미온 참사 24.07.27 23 0 12쪽
26 7대 가문 24.07.26 20 0 9쪽
25 7대 가문 24.07.26 21 0 9쪽
24 7대 가문 24.07.26 22 0 10쪽
23 7대 가문 24.07.26 19 0 11쪽
22 7대 가문 24.07.26 2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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