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나르트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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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17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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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8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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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테미온 참사

DUMMY

구겐하임의 부관 벤냐민은 뭐가 급한지 경시총감실로 뛰어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한 건가? 누가 죽기라도 한거야?"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벤냐민을 보고 구겐하임은 가볍게 나무랐다. 벤냐민은 숨을 헐떡이느라 제대로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다.




"총감님, 오늘 어전회의에서... 어전회의에서..."




평소 약간 덤벙대는 끼가 있는 벤냐민이 또 무슨 일로 저렇게 말까지 더듬는가 싶어 구겐하임은 혀를 끌끌 찼다.




"덤벙대지 말고 좀 찬찬히 말해봐. 어전회의가 뭐 어쨌다고?"




벤냐민은 스스로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가슴에 올려 크게 숨을 몇 번 내쉬었다.




"오늘 어전회의에서 대신들간에 큰 언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어전회의에서 대신들끼리 언쟁을 벌이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구겐하임은 겨우 그 일로 그 소동을 피웠느냐는 듯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신들끼리 싸우는 게 무슨 큰일이라고 난리법석이야? 대신들이 하는 일이란 게 원래 어전회의에서 서로 잘났다고 싸우는 거야."




"총감님, 그냥 언쟁이었다면 제가 이렇게 뛰어왔겠습니까? 베르트호벤 후작과 스피글리츠 공작이 제대로 붙었습니다."




프란디아의 최고 실력자인 두 대신의 이름이 나오자 구겐하임은 즉각 자리를 고쳐 앉았다. 에전부터 사사건건 부딪히는 관계였지만 최근 들어 둘 사이에 특별히 부딪힐 만한 사안이 없었다. 그들이 어전회의에서 제대로 붙었다고 하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뭐? 베르트호벤 후작과 스피글리츠 공작이 한판 붙었다고?"




"네, 아주 대단했다고 합니다."




"자세히 말해봐. 단 한 글자도 빼먹지 말고 들은 그대로 말해."




벤냐민에 따르면 스피글리츠와 베르트호벤이 트란베스트 합병 문제를 두고 서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큰 언쟁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전날 알폰소와 만났던 스피글리츠는 더 이상 트란베스트 합병을 미룰 수 없다며 7대 가문의 요구를 즉각 수용할 것을 주장했다.




자칫 그들이 독립하기라도 한다면 트란베스트는 영원히 프란디아의 손에서 떠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르트호벤은 언제나 그랬듯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맞섰다. 근본도 알 수 없는 7대 가문이라는 작자들에게 귀족 작위를 하사하는 건 언감생심이라고 맞섰다.




둘의 언쟁은 각자를 지지하는 대신들까지 가세하면서 큰싸움으로 번졌다. 결국 겐티우스 4세가 중재를 하면서 겨우 언쟁을 멈췄다는 것이었다.




구겐하임의 머릿속이 전광석화처럼 돌아가기 시작했다. 벤냐민의 보고를 들으면서 계속 머리를 굴리던 구겐하임은 뭔가 생각이 떠오른 듯 빙긋 미소를 지었다.




"두 대신이 싸웠다는 데 총감님은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신 건가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넌 즉시 게나르츠 경부를 불러와."




"게나르츠 경부는 지금 수도경비대 사령부에서 포겔 근위대장을 심문하고 있을 텐데요?"




"더 급한 일이 있으니까 잠시 심문을 멈추고 나를 만나러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점심 시간이 지났을 무렵 구겐하임의 부름을 받은 게나르츠가 경시총감실로 들어왔다. 한창 포겔을 심문하느라 바쁜데 자신을 부른 게 못마땅했는지 게나르츠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경부, 일이 힘든가? 얼굴이 영 좋지 않은데?"




"아닙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어 절 부르신 것 같은데 그것부터 말씀해주십시오."




약간 날이 서 있는 듯한 게나르츠의 말을 듣고 구겐하임은 기분이 조금 상했다. 그래도 워낙 유능하게 일을 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질책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수사의 방향을 약간 틀어야 할 것 같아서..."




"수사의 방향을 틀다니오? 무슨 말인지..."




구겐하임은 약간 망설이다 의자를 당겨 앉으며 게나르츠에게 자기 앞으로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자넨 지난 번 말했던 대로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나? 한스란 대장장이를 범인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느냐는 말일세."




"그거야 당연히... 드러난 물증으로 볼 때 한스 이외의 범인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공범이 있는지는 더 조사해봐야 하나 현재까지 특별히 드러난 것은 없습니다."




게나르츠의 대답이 못마땅한 듯 구겐하임은 의자를 뒤로 쭉 물리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자네 슈타지에서도 그딴 식으로 수사했나?"




갑작스런 질책에 게나르츠는 난감했다. 지금껏 열심히 제대로 수사한다고 칭찬만 하던 구겐하임이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구겐하임은 갑자기 수사보고서를 책상 위에다 쫙 펼쳤다.




"난 이번 왕세자 피살사건이 자네 말처럼 단순하지 않다고 보고 있네. 세상에 대장장이가 원한을 품고 왕세자를 살해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이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한다면 우린 개망신만 당하게 될거야."




"저도 그렇게 단순하게 수사를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포겔 근위대장을 심문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포겔 수준이 아닐세. 포겔의 혐의라고 해봐야 경호를 실패했다는 죄밖에 더 있나? 이왕 시작한 건데 자네나 나나 뭔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성과를 올려야 하지 않겠나?"




게나르츠는 판을 더 키우자는 말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정도의 눈치는 있었다. 수사선상을 어디까지 확대하자는 것일까. 문제는 뒷감당이었다.




"아직 총감님께 보고드리지 않았지만 프란츠 공자에게도 왕세자 저하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중입니다."




구겐하임의 표정이 순간 확 밝아졌다. 역시 게나르츠를 수사책임자로 앉힌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준 것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난 이번 사건이 단순히 대장장이가 저지를 수준의 범죄가 아니라고 봐. 만약 그렇게 수사결과를 발표한다면 누가 믿겠나? 왕세자 저하를 살해한다는 것은 역모와 다름없는데 대장장이가 역모를 꾸몄다는 걸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나?"




게나르츠는 그제서야 구겐하임의 의중을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왕세자 암살 사건에 베르트호벤을 엮고 싶었던 것이었다.




게나르츠는 지난번 수사 상황을 설명할 때 구겐하임의 반응이 시원찮아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프란츠 쪽을 더 파헤쳐 봤었다. 프란츠 주변을 탐문해본 결과 생각보다 훨씬 큰 건수가 걸려들었다.




사실 프란츠는 알베르트 왕세자와 함께 어울리며 악행을 같이 저지르고 다녔던 5공자 멤버로 일찌감치 용의선상에서 제외됐었다. 그런데 올해 초 둘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5공자 멤버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던 프란츠가 지난해 말 성모탄신일 행사에서 코넬리아라는 이름의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스무살의 프란츠에게 처음 찾아온 첫사랑이었다.




코넬리아와 사랑에 빠진 프란츠는 5공자 모임에 점점 회의감을 느끼게 됐고, 빠지는 경우가 잦아졌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알베르트는 프란츠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매사에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알베르트는 자신을 멀리하는 프란츠에게 교훈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알베르트는 프란츠 모르게 나머지 3명의 5공자 멤버들과 공모해 코넬리아를 겁탈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프란츠는 울부짖었지만 왕세자를 대적할 수는 없었다. 결국 프란츠가 무릎을 꿇고 알베르트에게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동기가 너무 확실하군."




게나르츠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후 구겐하임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총감님, 프란츠 공자에게 살해 동기는 있지만 실제 살인에 가담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구겐하임은 껄껄 웃었다.




"살해동기도 있고,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화살이라는 물증도 있고... 내가 보기에는 경부의 상상력만 조금 더해진다면 작품이 하나 나올 것 같소."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구겐하임이 저렇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게나르츠는 자신의 귀로 확실하게 듣고 싶었다.




"문제는 뒷감당입니다. 과연 이런 방향으로 우리가 수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을까요? 상대는 프란디아 최고 권력자입니다."




구겐하임은 검지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며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뒷감당은 내가 할테니 자네는 걱정말고 작품 하나 제대로 만들어 오게. 이번 일만 제대로 된다면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곧 자네 자리가 될 거야."




매사에 조심스러운 구겐하임이 저 정도로 자신하는 걸로 봐서 분명히 뭔가 있었다. 사실 프란츠에 대한 추가 조사를 하면서부터 게나르츠의 머릿속에는 베르트호벤 가문을 엮는 거대한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슈타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경험 때문에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알겠습니다, 총감님. 포겔에 대한 조사를 마치는 대로 프란츠 공자를 다시 소환해 조사하겠습니다."




"그래, 프란츠 공자에 대한 재조사가 끝나는 대로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니 철저하게 준비하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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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로젠테미온 참사 24.07.27 18 0 10쪽
28 로젠테미온 참사 24.07.27 19 0 10쪽
27 로젠테미온 참사 24.07.27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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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7대 가문 24.07.26 2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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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쿠데타 24.07.25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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