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가의 소드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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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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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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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왕자 5

DUMMY

“아아아아악! 사, 살려줘! 죽고싶지 않아!”


“케일, 진정해라. 놈을 자극하지 마!”


“엄마, 엄마... 너무 아파... 제발 살려줘....”


“이런 씨발....”


임시로 지어진 야영지에 온갖 비명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막 쏘아올린 조명탄이 세찬 빛을 뿌렸다. 새어나온 새빨간 핏물이 흰 설산을 붉게 물들였다.


차프 대위는 눈앞의 광경에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피로 얼룩진 이빨을 드러낸 새하얀 털의 늑대.


커다란 발 옆으로 찢어발겨진 시체가 여럿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차프 대위의 부대원이었다. 지금도 밑에 깔린 병사는 하반신이 완전히 잘려나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자신의 상관이 목숨을 구해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에 매달린 채.


검을 쥔 손아귀가 떨렸다. 흔들리는 검날을 보고 나서야 차프 대위는 이를 악물었다. 반평생 마법사로서 검을 쥐고 워커의 길을 걸어왔지만 저런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다.


서면으로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변종 다이어울프가 모습을 드러낸 건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하나 둘 잠에 들 무렵이었다. 깊은 밤이었다. 언제 몬스터가 나타날지 모르는 마당에 피로를 누적시키며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그들은 불침번을 세우고 돌아가며 숙면을 취할 준비를 했다.


느닷없이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차프 대위였다. 그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병사들을 일깨웠다. 진열을 재정비하고 기다렸다.


체계적인 훈련을 받은 병사들은 한치의 지체도 없이 차프 대위의 명령을 수행했다. 100명에 가까운 중대원 중에서도 의뢰를 완벽하게 완수하기 위해 특별히 제 손으로 차출한 병사들이다. 그중에서도 소위인 케빈은 중대 휘하의 세 소대장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소대장이었다.


이변은 없었다. 17가문의 일각인 브레일 백작가와 엮인 만큼이나 웨일 준장의 엄포 아래 완벽하게 준비된 작전이었다.


그런데, 왜.


“망할....”


“케일, 정신차려! 여기서 죽을 셈이냐!”


흰 늑대의 발에 깔린 병사의 비명이 차츰 잦아들었다.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시점부터 살 가망은 없었다. 붉은 눈밭 위로 차마 담지 못한 내장들이 흘러나왔다. 푸른 눈동자를 번뜩인 거대한 늑대가 죽어가는 병사의 머리 위로 입을 쩍 벌렸다.


콰드득!


으득거리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머리가 사라진 목덜미에는 거칠게 물어뜯긴 자국만이 남았다.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부르던 병사가 비명인지 분노인지 모를 신음을 흘렸다.


“대위님!”


항상 차프 대위의 곁을 지키던 케빈 소위가 외쳤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엘도르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합니다! 아니면 적어도 용병 분대가 합류할 때까지라도...!”


차프 대위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첫번째 기습에 명을 달리한 3명에 지금 머리가 뜯긴 병사까지 총 네명. 남은 전력은 차프 대위를 포함한 9명이었다.


수가 줄긴 했으나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마법사다. 1위계 마법사인 자신과 케빈은 아직까지 부상을 입지 않았다. 단순히 시간을 끄는 일이라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그르르르르....”


새하얀 털을 가진 늑대는 듣던대로 다른 늑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랬다. 몸길이 오미터에 높이 이미터의 거구. 정보가 틀린건지 흘러가듯 들었던 등의 촉수는 나 있지 않았다.


분명 엘도르 기사단 단장인 케이드 브레일에 의해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고 있다고 했다. 자세히 보니 배 부근에 오래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몬스터가 예상보다 훨씬 강하긴 했으나 그게 물러날 이유는 되지 않았다. 출혈은 멎었으나 내상과 장기간의 이동으로 상당히 힘이 빠져 있을 터였다.


결심이 서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차프 대위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다들 물러서! 저 몬스터에게서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대기한다. 나와 케빈 소위가 전위를 맡을 테니, 틈이 보이면 한꺼면에 뒤를 공격해!”


마음을 다잡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동료가 죽었으나 동요는 찰나에 불과했다. 용병들이 합류해 수가 많다면 네 개의 분대가 돌아가며 시선을 끌고 마법사들이 사각을 노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위험 부담이 크기에 포기했다.


여기서 더 병사를 잃을 순 없다.


중요한 건 용병 분대가 합류할때까지 시간을 버는 일.


겨울을 닮은 늑대의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했다. 다이어울프의 고요한 눈동자는 그 어떤 감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차프 대위는 그 속에서 덧없는 한 가지의 욕망을 보았다.


살고 싶다.


인간들에겐 한낱 짐승에 불과할 늑대는 오직 생을 갈망했다. 병사의 목덜미를 물고 머리를 뜯어버리는 순간에도 늑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과시했다. 더 다가온다면 죽여버리겠다고. 그러니 물러나라고.


깊게 가라앉은 늑대의 눈은 어딘가 초연해보이기도, 피로해보이기도 했다. 늙은 노인을 연상시키는 그 모습에 차프 대위는 작게 혀를 찼다. 부대원들을 넷이나 죽인 늑대에게 연민으로 길을 비켜주기엔 잃은 것도, 잃을 것도 너무 많았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다. 이 바로 아래가 사람 사는 도시라서 말이다....”


의지에 따라 일어난 마나가 푸른 불꽃으로 화했다.


1위계 마법사들 중 상위의 워커들만이 가능한 기예.


“케빈.”


“말씀하십시오.”


“내 호흡에 맞춰라. 첫 일격은 내가 막아내겠다.”


“알겠습니다.”


“준비해!”


우렁찬 목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늑대가 발을 내디뎠다. 사박거리는 함박눈 아래 붉은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차프 대위는 케빈 소위를 힐끗했다. 말없이 잠깐 시선이 맞았지만 그걸로 족했다.


불현듯 가속한 늑대가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몸집에 걸맞지 않은 무시무시한 속도. 차프 대위는 벌어진 아가리 틈으로 검을 밀어넣었다. 날카로운 쇳소리와 더불어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을 억지로 버텨냈다.


등 뒤에서 곧장 케빈이 튀어나왔다. 검날 위로 일렁이는 기운은 비록 자신만의 색을 갖추지 못했으나 짐승의 피륙을 가르기에는 차고 넘쳤다. 대기하던 일곱의 병사들이 엇박으로 늑대의 뒤로 움직였다. 차프 대위가 위화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안 돼!”


늑대의 등에서 십수개의 새까만 촉수가 솟아올랐다.


“물러나!”


하늘을 덮는 착각이 일 정도로 무수히 뻗어나간 촉수가 일제히 사방에 내리꽂혔다.


***


달리는 걸음 사이로 하얀 눈발이 튀어올랐다.


조명탄에 흔들리는 숲의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몽환적이었다.


리안을 포함한 11명의 2분대는 신호가 쏘아진 발원지를 향해 쉬지않고 두 다리를 움직였다. 흔들리는 수풀 너머 흰 빛과 검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춤췄다. 목적지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여러 소음이 들려왔다.


바람 소리, 울리는 금속성, 내지르는 고함.


그리고 늑대의 낮은 울음소리.


마나로 강화된 오감은 사방의 정보를 받아들였다. 보통의 용병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거리의 모든 것을 취득하고 취합했다. 계속해서 달리는 와중에 리안은 최선과 최악을 상정하고 있었다.


차프 대위와 그 부대가 이미 전멸했을 가능성.


아니면 다른 용병 분대와 합류해 분투하고 있을 가능성.


이미 쓰러트렸다는 가정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기엔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소음이 너무나 생생했다. 리안의 이성은 그린힐 부대의 전멸보다 다른 용병분대와 합류해 분투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의뢰에 참가한 총원 47명중에서 마법사는 단 셋. 그중 둘이 차프 대위의 부대에 소속되어 있다. 리안은 공식적으로 마법사 취급이 아니었으니 47명의 전력 중 상당수가 그의 부대에 편중된 것이다. 더군다나 차프 대위는 어지간한 1위계 마법사들보다 강한 워커였다.


그럼에도 리안은 엄습하는 불길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본능이 경종을 울렸다. 최악의 경우 적어도 절반이라도 살아있기를 바랐지만 이유모를 불길함은 시시각각 그 크기를 키웠다.


일분 일초가 급박한 상황에서 리안은 생각했다.


엘도르 기사단이 언제 당도할지 모른다. 여기서 뚫리면 그 다음은 제프가 사는 도시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러니까, 마나를 사용한다면.


여러 상념이 뇌리를 스쳤다.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12살에 마나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마법사. 그 사실이 웨일 준장이나 브레일 백작가의 귀까지 들어간다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또 그 여파는 어떨지.


귓가로 있을 수 없는 노인의 음성이 들렸다. 넌 분명 천재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만하지는 마라. 마나는 되도록이면 최대한 숨기도록 해. 노인은 마지막으로 리안이 떠나기 전 노파심에 그런 한 마디를 남겼다. 어린 나이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리안을 걱정하면서.


짧은 시간에 수많은 선택지가 오갔다. 고뇌하던 리안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순수한 마나를 외부로 방출하는 검기만 금한다.


사용하는 건 가벼운 신체 강화만. 보통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결단과 동시에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내딛는 발끝에 마나가 휘감겼다. 전신에 퍼져나가는 맹렬한 마나의 파도가 형언할 수 없는 전능감과 고양감을 선사했다. 한순간 소년의 눈동자에 찬란한 보랏빛 광채가 떠올랐다.


“대장...?”


등 뒤에서 어린 용병의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두에 선 리안이 달리는 속도를 더하고 있었다. 리안의 뒤를 겨우 쫓아가던 용병들이 한층 더 가속하는 소년에게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이런 씹....”


“뭐가 저렇게 빨라!”


“야, 야! 같이가, 이 망할 꼬맹아!”


검은 망토자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원근감이 뭉개지는 것처럼 소년의 등이 작아졌다. 저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속도가 나오는지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어느새 리안은 혼자 숲속을 내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신경쓰지는 않았다. 쓸 수가 없었다. 소년의 머릿속에는 이미 몬스터의 처리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긴 수풀을 빠져나오자 시야가 탁 트였다. 수목 사이로 메아리치던 잡음들이 사그라들었다. 넓은 공터에서는 숨길 수 없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리안의 두 눈이 재빠르게 전장을 훑었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 부러진 나무와 깊게 패인 땅바닥, 늑대를 둘러싸고 분투하는 병사들과 용병들.


그리고 그 전부를 압도하는 순백의 늑대.


먼저 합류한 1분대가 차프 대위의 부대와 함께 싸우고 있었다. 차프 대위를 포함한 세 마법사들은 제각기 늑대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급급했다. 늑대의 기세가 돌변한 건 그때였다. 커다란 두 발이 땅을 찍었다.


거친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병사들과 용병들이 밀려났다. 마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전장 한가운데서 늑대의 시선은 어느 한 곳을 맹목적으로 쫓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어서 제일 거슬리는 중년의 장교를.


일순간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보이는 모든 것과 들리는 모든 것이 느리게 흘렀다. 등에 난 촉수가 일제히 뽑혀나와 한 사람을 노리는 순간까지도 그랬다.


리안은 반사적으로 앞을 향했다.


마나를 실은 오른발로 지면을 찍어눌렀다.


콰악.


솟구친 눈송이가 피어오르는 바람에 휩싸인다. 리안은 몸을 최대한 깊게 낮췄다. 그대로 땅을 박차자 거센 바람이 온몸을 쓸어내렸다.


공터의 초입부터 늑대가 서 있는 한복판까지.


은빛 칼날이 공기를 터뜨리며 쇄도했다. 새하얀 달빛이 미끄러지듯 나선의 잔상을 그렸다. 열 개가 넘는 촉수가 일검에 베이는 건 찰나였다. 깔끔하게 베인 촉수의 단면에서 핏물이 왈칵 터져나왔다.


리안은 가볍게 착지했다. 한박자 늦게 잘린 촉수의 끄트머리가 우수수 떨어졌다. 뒤를 돌아보자 찢어질 듯 커진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차프 대위가 있었다. 여기저기 해지고 피투성이가 된 제복이 전투의 격렬함을 말해주는 듯했다.


“자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뻐끔거린 그가 물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가세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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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궁창 왕자 5 +9 24.08.01 9,692 188 12쪽
15 시궁창 왕자 4 +8 24.07.31 10,047 199 17쪽
14 시궁창 왕자 3 +10 24.07.30 10,341 210 17쪽
13 시궁창 왕자 2 +6 24.07.29 10,698 193 14쪽
12 시궁창 왕자 1 +6 24.07.28 10,865 202 15쪽
11 진흙 속에 피는 꽃 10 +10 24.07.27 10,788 214 16쪽
10 진흙 속에 피는 꽃 9 +8 24.07.26 10,523 198 15쪽
9 진흙 속에 피는 꽃 8 +6 24.07.25 10,669 167 18쪽
8 진흙 속에 피는 꽃 7 +6 24.07.24 10,892 172 14쪽
7 진흙 속에 피는 꽃 6 +15 24.07.23 11,037 17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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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흙 속에 피는 꽃 4 +12 24.07.21 11,729 201 15쪽
4 진흙 속에 피는 꽃 3 +12 24.07.20 12,604 211 14쪽
3 진흙 속에 피는 꽃 2 +10 24.07.19 14,809 201 14쪽
2 진흙 속에 피는 꽃 1 +12 24.07.19 19,769 23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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