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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렛
작품등록일 :
2024.07.19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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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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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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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에 피는 꽃 8

DUMMY

종소리가 들린 건 저녁 식사가 끝날 무렵이었다.


평소보다 많은 손님을 상대하느라 지친 여관의 사람들은 주방을 정리하고 약간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투숙객의 상대하느라 먹지 못했던 늦은 저녁식사를 겸하면서. 대화의 주제도 비슷했다. 최근들어 부쩍 늘은 병사들과 좋지 않은 전선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러다가 진짜 도시를 떠나야 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가긴 어딜 가. 땡전 한푼 없이 피난을 가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고, 이 사람아. 일단 목숨을 건져야 뭘 하든 말든 하지요.”


하지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이름없는 도시는 러스틴 왕국 중부에서도 조금 후방으로 처져 있었고, 주요 요충지나 거점도 없는 산맥에 둘러싸인 시골이었다. 병사들이 보급을 위해 가끔 들리긴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이런 곳까지 제국군이 쳐들어왔다는 건 전선이 완전히 밀려 왕국이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도시 사람들은 걱정은 하되 전쟁은 온전히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지금까지는 그랬다.


데엥— 데엥— 데엥—


“뭐야?”


“종소리?”


갑작스레 들려오는 종소리에 식사를 이어나가던 종업원들이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막 주방에서 나온 여인의 얼굴에 눈에 띄게 일그러졌다.


“또 뭔 일이야?”


“아, 네리아 씨!”


“하... 어떤 망할놈이 또 장난을 치나 보네. 이 썩을 놈들. 경종은 위급할 때만 울리니까 절대 하지 말라고 말을 해도...!”


네리아가 질색하며 내뱉었다. 저마다 시선을 돌려 서로를 쳐다보던 종업원들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네리아의 말대로 제국군의 침입에 대비해 설치한 경종이 장난에 의해 울린 전례가 한번 있었다.


또 장난이겠지. 그러한 생각으로 종업원들은 식사를 재개했다. 몇몇이 불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긴 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개의치 않자 안심하고 놓았던 스푼을 집어들었다.


기우가 현실이 되어 닥친 것은 그때였다.


“도망쳐! 도망치라고!”


여관 밖에서 처절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잠깐....”


“이거 혹시 진짜 아니야?”


“내가 보고올게요.”


어린 여급 하나가 여관 밖으로 나왔다. 거리에는 이미 종소리를 듣고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궁금증에 못이긴 종업원들이 여급을 따라나왔다.


“제국군... 제국군이다!”


또다시 같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거리 저편에서 다급하게 뛰어온 남자는 목이 터져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제국군이 몰려오고 있어. 빨리 도망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대개는 못 믿는 눈치였다. 그러나 남자의 뒤에서 차츰 거리를 좁히는 무언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은빛 갑옷의 기사가 있었다. 제국군의 깃발을 하늘 높이 세운 기사는 손에 쥔 검을 빙글 돌리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하얀 실선이 허공에 그어졌다. 필사적으로 내달리던 남자의 몸뚱이가 멈췄다.


푸확!


베인 목이 날았다. 잘려나간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터졌다.


“어...?”


한박자 늦게 사람들이 상황을 파악했다.


“제국, 제국군이다!”


“으아아악!”


“도망...!”


목이 베인 남자의 근처에서 또다시 피분수가 일었다. 들불처럼 번져나간 혼란이 거리를 잠식했다. 평온했던 도시가 삽시간에 살육의 장으로 바뀌었다.


기병들 다음으로 뒤늦게 도착한 제국의 병사들이 도시 이곳저곳을 쑤시며 약탈을 시작하고 있었다.


***


한순간 사고가 정지해버린 것만 같았다.


리안은 만들던 저녁을 내팽개치고 마리에게 달려갔다. 건초더미에 쓰러진 마리는 달뜬 숨을 내쉬고 있었다. 늘어진 팔다리를 비롯한 온몸이 펄펄 끓었다. 머리를 살포시 들어올려 이마에 손을 얹자 맞닿은 살갗이 불에 데인 듯 뜨거웠다.


“마리 누나, 마리 누나! 정신 차려!”


리안은 애타게 마리의 이름을 불렀다. 지금까지 쓰러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심한 고열이었다. 리안의 필사적인 부름에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마리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두 눈에 초점이 맞질 않았다.


“리안...?”


힘겹게 내뱉은 한마디가 이상할 정도로 힘이 없었다.


“마리 누나, 갑자기 왜....”


리안은 떨리는 눈으로 중얼거리다 지난 일주일을 상기하고선 입을 다물었다.


여관에서 쫓겨나고 촌장에게 일을 주선받던 7일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기간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3년 가까이 몸을 의탁하던 여관에서 쫓겨났다. 좁지만 천장이 있던 방이 아니라 비바람도 막을 수 없는 헛간에서 잠을 청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마리를 말려들게 했다는 죄책감과 불안한 미래에 떨었다. 다행히 촌장의 배려로 일감을 받게 되어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3일째가 넘어가자 오히려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에 취하기도 했다.


빠듯하지만 이제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다는 현실이 행복했다. 네리아의 눈치와 손찌검도 없다. 아이들의 괴롭힘도 없이 마리와 단 둘이서 살 수 있다.


돈도 적지만 착실히 모아두고 있으니 언젠가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헛된 희망을 품었다. 칼로스 왕국의 수도인 엘리시온까진 아니더라도 국경지대에 도착하면 삶이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바뀔 줄 알았다.


아니었는데.


마리와 리안이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사람들의 허드렛일을 대신하는 것뿐이었다. 받을 수 있는 보수도 턱없이 적었다. 리안과 마리를 측은하게 여긴 사람들도 있지만 반대로 눈엣가시로 여기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두 사람을 부려먹었다. 그럼에도 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촌장이 주선하는 일에도 한계가 있었다. 원래부터 리안과 마리의 도움 없이도 살던 사람들이었다. 괜히 이런 시국에 돈을 추가로 지출하면서 일손을 부릴 이유가 없었다.


헛간을 꾸미고, 저녁 장을 보고, 미래를 위한 저축을 하고. 전부 리안 혼자서라면 불가능한 일들이었다. 마리가 무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괜찮다는 그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내가....”


마리는 무리를 하고 있었다.


“나 때문에....”


리안은 작디작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자신이 이기심이 마리를 무리하게 만들었다. 자신의 무력함이 마리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고 나서야 괴로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았다.


마리는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 오래 머물지 못할 거란 사실을. 리안이 떠나자는 제안을 하기 전부터 피난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었다. 억지로 무리하며 몸을 혹사시킨 것도 그 즈음이었다.


데엥— 데엥— 데엥—


종소리가 들렸다. 스스로의 나약함에 자책하던 리안은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올렸다. 도시 전체에 길고 높게 울려퍼지는 맑은 소리가 있었다. 이전에 장난으로 한번 울린 적이 있던 적습을 알리는 종소리가.


귓가에 누군가의 음성이 메아리쳤다. 노파심일지도 모르지만 요 근래 정세가 심상치 않다는 해리 아저씨의 말. 요즘들어 도시에 흐르는 심상치 않은 불길한 기류와 전운.


“.......”


스산한 공기에서 채 숨기지 못한 비릿한 혈향이 묻어났다. 어느덧 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마리 누나.”


마리는 여전히 몽롱한 눈길로 리안을 올려다보는 중이었다.


“잠깐 쉬고 있어. 밖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서 확인해보고 올게.”


“리안... 가지 마....”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금방 돌아올 테니까.”


리안은 마리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린 후 헛간을 나왔다.


헛간은 도시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리안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구불구불한 도시 변두리의 골목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어 있었다. 검은 하늘 중천에 떠오른 새하얀 보름달 덕분에 시야를 확보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도시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타는 냄새와 피 냄새가 진해졌다. 간헐적으로 두려움과 고통에 찬 비명소리가 울렸다.


설마.


있어서는 안될 가능성 하나를 떠올리면서 리안은 네리아의 여관이 보이는 대로 근처에 도착했다. 만에 하나를 감안해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리안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사람들이 창칼에 죽어나가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 커헉!”


“아빠, 아빠!”


“다니엘, 도망쳐! 절대로 잡히지 마!”


“아아아아악!”


불길이 타오른다. 거리를 집어삼킨 전화가 새빨갛게 솟아올랐다. 대낮처럼 밝아진 대로 위로 또 한구의 시체가 쌓여나가고 있었다.


발 밑으로 질척질척한 핏물이 흘러들었다. 죽은 사람들 중에서는 여관에서 묵고 있던 병사들도 상당수 섞여 있었다. 리안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 떨었다. 때마침 여관 안으로 들어간 제국 병사가 숨어있던 모자 한쌍을 밖으로 끌어내렸다.


“쥐새끼 같은 놈, 이리 나와!”


“꺄악!”


그들은 리안이 잘 아는 얼굴이었다. 여관의 주인인 네리아와, 그의 하나뿐인 아들인 매튜. 먼저 죽어나간 사람들의 시체를 힐긋한 둘의 눈동자에 죽음의 공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 살려...”


푸욱!


네리아의 눈이 부릅떠졌다.


정확히 심장을 관통한 칼날이 느릿하게 뽑혀져나왔다.


“엄마...?”


검을 완전하게 뽑아낸 제국의 병사가 핏물을 무심하게 털어냈다. 눈에 생기가 급격하게 사그라든 네리아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아, 아아....”


매튜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입을 뻐금거렸다. 애꿎은 네리아의 얼굴을 몇번이고 매만졌지만 네리아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다.


“엄마, 엄마...!”


재미있다는 듯 서로 낄낄거린 병사들이 매튜의 몸을 뒤집고 목덜미를 짓눌렀다. 도시에서 제일 몸집이 크고 발육이 빠른 매튜지만 성인 남성의 근력에는 일말의 저항도 없이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스르릉.


옆에서 날카로운 금속성이 청아하게 울렸다.


“꼬맹아, 너무 울지 마라. 내가 곧 네 어미한테 보내줄 테니까.”


매튜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리안과 시선이 맞은 건 그때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매튜가 가까스로 들어올린 시선을 저 어둠 너머 골목길을 향해 던졌다. 그곳에는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발을 떼지도 못한 리안이 숨어 있었다.


“리... 안...?”


매튜의 얼굴 위로 한차례 알 수 없는 의아함이 스쳤다.


서걱!


매끄러운 호선을 그린 병사의 칼날이 아이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버렸다.


“......!”


리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숨이 가빠올라도 애써 무시했다. 떨어지지 않는 두 다리를 억지로 채찍질했다.


제국군이 쳐들어왔다. 도시는 불타올랐다. 병사를 포함한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리안을 그토록 괴롭히던 매튜와 네리아마저 그들의 칼에 찔리고 베어 죽었다.


그 모든 것보다 먼저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마리.


유일하게 나를 차별없이 대해주었던, 그 무엇보다 소중한 한 사람.


쾅!


“마리!”


리안이 되돌아온 헛간의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마리는 나갈 때와 같이 헛간에 누워 뜨거운 숨을 내뱉고 있었다.


리안은 지체없이 그녀에게 다가가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린 마리가 리안을 흔들리는 눈으로 응시했다.


“리안....”


“누나, 가자. 빨리 일어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이럴 때가 아니야!”


리안이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호소했다.


“전쟁이 일어났어. 제국군이 쳐들어왔다고!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죽어!”


마리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머리의 열로 인해 자신이 들은 얘기가 정말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축해줄게. 걸을 수 있지?”


리안은 신경쓰지 않았다. 당장 일분 일초가 급박한 상황에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었다. 리안은 늘어진 마리의 몸을 어거지로 지탱했다. 걸을 수 있는게 아니라 있어야만 했다. 아니면 제국군의 창칼에 찔려 죽는다. 방금 보았던 매튜와 네리아 모자처럼.


그동안 모아왔던 돈을 챙긴 리안은 헛간 밖으로 나왔다. 도시 중심부에서 일어난 불길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외곽까지 번져나갔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와 약탈로 인한 살기에 마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흐리텅멍했던 검은 눈동자가 또렷해졌다.


“전쟁...? 진짜로...?”


리안은 현실을 부정하는 마리를 채근했다.


“누나, 가자. 이제 시간이 없어.”


마리가 맥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천천히, 그러면서도 빠르게 도시를 빠져나왔다. 처음에는 비틀거리던 마리도 리안의 속도에 적응했는지 나름 걸음을 따라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제국군이 야밤을 틈타 기습하는 건 예정에 없는 일이었지만, 살기 위해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리안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칼로스 왕국이 있는 동쪽이 아니다.


그 위 북쪽으로.


리안은 그 어느때보다 맹렬하게 머리를 회전시켰다. 오늘 저녁까지만 해도 평소보다 많이 병사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다치고 우울해보여도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다.


도시에서 최전선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최소한 병사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기 전까진 최전선이 뚫리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설령 곧바로 뚫렸다고 한들 이 도시에 당도하기까진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단서는 둘이었다. 지금 마을을 습격한 제국군은 정상적인 부대가 아니다. 러스틴 왕국을 크게 우회하는 별동대이거나, 따로 빠져나온 부대가 보급을 빙자한 약탈을 위해 도시를 들렀을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 이 도시는 전략적으로 하등 쓸모가 없는 시골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동에 필요한 물자를 보충하고 나면 그대로 떠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까 북쪽으로 가자.


열이 오른 마리를 데리고 아이의 걸음으로 놈들을 따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이제부터 살지 죽을지는 운에 달렸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확률이 높은 쪽을 고른다면.


“후욱... 후욱....”


봄의 저녁은 쌀쌀했으나 리안은 땀을 줄줄 흘렸다. 호흡이 거칠다. 입에서 단내가 풍겼다.


도시 북쪽의 야산에는 버려진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거기라면 마리의 열이 식을 때까지 시간 벌이는 될 터였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길게 이어졌다. 갈수록 시간 개념이 흐릿해졌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리를 반쯤 업다시피한 채로 산을 오르던 리안은 리안은 멀지 않은 곳에서 버려진 오두막을 하나 발견했다.


참을 수 없는 안도감이 솟아올랐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가슴을 쓸어내린 리안은 약간은 밝아진 음성으로 말했다.


“마리 누나, 저거 보여?”


“응... 응....”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힘내자.”


낑낑대며 남은 거리를 이동한 리안은 낡은 문을 발길질했다.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오두막의 문은 리안이 문고리를 여러번 돌리고 발에 힘을 주어 걷어차자 비로소 내부의 풍경을 드러냈다.


오두막 안은 아담하면서도 휑했다. 식탁으로 추정되는 테이블 하나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살림살이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


“누나, 다 왔어. 쉬어도 돼.”


“하아... 하아....”


침대를 찾던 리안은 어쩔 수 없이 부엌 한켠에 마리를 내려주었다. 부엌의 하부장에 기대앉은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리안은 열린 오두막의 문을 닫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


여기서부터는 운의 영역이다.


리안도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장작으로 사용할 나뭇가지를 구하러 다니느라 도시 근방의 야산은 모조리 꿰고 있는 리안이었다. 어지간하면 여기까지 제국군이 오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당장 도시만 해도 약탈할 물건들이 한가득에 동쪽으로 도망치는 사람들도 있으니 제국군 입장에서는 북쪽까지 시선이 분산될 여유가 없었다.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거기까지 걱정하기엔 리안은 너무 지친 상태였다. 안타깝지만 그뿐이다. 리안에게는 자신과 마리의 안전이 더 중요했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깨부수듯 희미하게 들려오는 말굽 소리가 있었다.


리안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 아니길 바랬던 말발굽 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머릿속으로 수만가지 상념이 오갔다.


왜지? 보급을 위해 도시에 들린 게 아니었나? 아니면 단순히 도주하는 민간인을 찢어 죽이기 위해서? 혹여나 정보가 새어나갈까 우려해서 보는 눈을 없애려고?


그보다 어떻게 따라온 거지?


아, 발자국.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국의 병사들은 브라알라스의 연합군보다 정예들이 많았다. 적들을 추적하는 것도 능숙할 터였다.


8살된 아이의 몸으로 아픈 마리의 몸을 이끄느라 흔적이 남는 걸 고려하지 못했다. 리안은 입을 틀어막고 문틈으로 바깥 상황을 살폈다.


제발, 제발.


도시 아래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건 숲을 내달리는 세명의 기병이었다. 그들은 리안과 마리가 숨어있는 오두막을 신경도 쓰지 않고 그 옆에 나있는 넓은 숲길을 빠르게 올라갔다.


말굽 소리가 처음과 같이 멀어졌다. 미친듯이 뛰던 심장이 점차 원래의 박동을 되찾았다. 조심스럽게 참고있던 숨을 내쉰 리안이 마리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잠에 든듯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다. 세상 평온한 모습에 리안은 쓰게 웃었다.


과정은 어찌되었건 다행인 일이었다. 일단 제국군의 눈을 피했으니 마리의 열이 내려갈 때까지 이 오두막에서 휴식을 취하자. 뭣하면 해열제에 쓸만한 약초를 구해서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서 칼로스 왕국까지 돌아가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그렇게 계획을 세우고 리안 자신도 휴식을 취하려던 무렵이었다.


돌연 문이 벌컥 열렸다.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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