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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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출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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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3:48
최근연재일 :
2024.07.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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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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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카 유튜버 김덕수 2

DUMMY

7.


김덕수는 먼저 이 사건을 어떻게 해야 자극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제 나름대로 구상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평소에 하던 대로, 누군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끄적거린 허무맹랑한 소리와 이민수의 실종을 부풀려서 잘 버무리기만 하면 됐으니까.

제목: 이민수의 실종에 대한 진실!

표지: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김진환의 사진 중 가장 못 생기게 나온 사진을 골라 눈만 검은색으로 칠한다. 그리고 말풍선을 만들어 ‘사실···내가 형을 죽···.’이라고 적는다.

내용:

영상 초반부에서 커뮤니티의 글을 보여줌으로 이런 의혹이 있었다고 말하며 살인 사건일 수도 있겠다고 시청자의 흥미를 이끈다.

중간부에서는 김덕수가 직접 이민수가 살았던 옥탑방으로 가서 영상을 찍는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정말 이민수가 김진환에게 살해당한 거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옥탑방 바닥에 무슨 자국이 있다고. 핏자국 같았고 가져간 루미놀 시약으로 확인을 해보니 정말 핏자국이었다고. 말하면 된다. 거기서는 따로 챙긴 피를 쓰면 될 거 같았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피를 체취해서 그럴싸한 연구기관에 맡겼다고 거짓말을 할 거다. 시청자들한테는 이게 누구의 피인지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고 다음 영상을 찍겠다고 말하면 된다.

“좋은데?”

구상을 마친 김덕수는 씨익 웃었다. 이거 돈이 될 거 같았다.

물론 이런 영상을 찍는 것은 복잡한 법률에 걸려 불법이겠지. 그러나 김덕수는 걱정 없었다. 그는 이미 수차례 이런 짓을 해본 경험이 있었고 그로 인한 제재도 숱하게 받았다. 역설적으로 그 제재를 어떻게 빠져나오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미리 다음 영상을 찍어두고 해명을 하면 돼. 조사 결과 그것은 이민수의 피가 아니었다고. 이민수는 정말 스스로 잠적한 것이 맞는 거 같다고.’

그 다음 장면에서 카메라 앞에서 허리를 꾸벅 숙이며 김진환에게 의심해서 죄송하다고 하면 됐다. 운이 좋다면 김진환과 사적인 통화 녹음본까지 얻어내어 새로운 영상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게 전부 돈이었다.

“흐흐.”

김덕수는 쓰레기가 가득한 책상을 등지고 사악하게 웃었다. 요새 이슈가 되는 일이 별로 없어서 벌이가 시원치 않았는데. 살인 정도의 이슈면 편집이나 대본은 대충 지어도 상관없이 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수익은 꽤나 쏠쏠할 건데, 촬영 비용은 인터넷에서 3만원도 안하는 루미놀 시약과 약간의 기름 값이 전부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루미놀 시약이 온 그 다음날. 김덕수는 김진환과 이민수가 살았던 옥탑방으로 갔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거 같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이곳에는 주인이 있을 거다. 주인 몰래 이곳에 피를 뿌리고 영상을 찍은 것이 들통이라도 난다면, 그래서 분개한 집주인이 고소를 한다면 그 고소를 피할 수 없었다. 약식으로라도 영상에 대한 허락을 받아야 안전했다.

김덕수는 1층으로 내려와 초인종을 눌렀다. 그리고 여기 옥탑방 집주인이 어디 사는지 물었다. 멀리 있지 않았다. 곧, 내가 이 주택 주인이요! 라고 말하는 노인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덕진일보 기자입니다.”

김덕수는 자신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신문사의 기자라고 소개하며 위조한 명함을 건넸다.

“덕진일보? 거긴 또 어디야?”집주인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받은 명함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노안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 옥탑방 주인 맞으시죠?”김덕수가 물었다.

“응? 그렇다니까. 에잉. 쯧.” 집주인은 옥탑방이라는 단어에 혀를 차며 인상을 구겼다. 노인은 기다리기라도 한 듯, 허울 멀쩡한 놈 하나 실종 된 게 소문이 나서 몇 달 동안이나 옥탑방에 세입자가 안 들어온다고 툴툴 거렸다.

“그 소문 때문에 제가 온 겁니다.”김덕수는 어깨에 메고 있는 크로스 백에서 무언가 찾는 연기를 했다. “제보가 하나 들어와서요. 실종된 청년이 사실 동거인에게 살해당할 수도 있다고.”

“응? 진환이가? 하이고~풉!”

집주인은 그 말을 듣자마자 풉하고 비웃었다. 김덕수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크로스 백을 고쳐 메었다.

“헛수고요. 걔네가 조금 멍청하기는 해도 얼마나 착하고 순진한데. 그리고 사이는 좀 좋았어? 2~3살 터울이어도 웬만한 죽마고우는 저리 가라였다고. 서로 죽이 잘 맞았어.”

“그런가요?”

“그렇다니까? 내가 이 나이 먹고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한데! 서로 곤충 한 마리도 못 죽일 정도로 착한 애들이었어. 쯧, 실종이라니 안타깝긴 한데. 하여튼 걔네가 누구를 죽일 깜냥은 못돼. 그리고 서로 죽일 정도의 원한도 없었고.”

“그래도 저희 입장에서는 제보가 들어온 이상 뭐라도 하긴 해야 해서요. 잠시 올라가서 조사를 해봐도 괜찮을까요?”

집주인은 잠시 김덕수를 쳐다봤다. 그의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그는 김덕수가 꽤나 근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쓰는 기사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으리. 그리고 잘만 하면···옥탑방에 붙어있는 헛소문도 지울 수 있으리.

“하고 싶은 대로 하쇼. 문은 열려 있을 거요. 어지르지는 말고. 대신 사실대로! 알지? 크흠. 그리고···”집주인은 입고 있는 티셔츠의 주름을 피며 말했다. “그거 끝나면 나한테 와서 인터뷰 좀 해줘. 응? 요새 집이 잘 안 나가. 늘그막에 수입이라고는 집세밖에 없는데.”

“네. 조사는 30분 정도 간략하게 하고 내려오겠습니다. 인터뷰 준비 해 주세요.”

“그래. 그래. 말이 좀 통하네.” 집주인이 김덕수의 어깻죽지를 팡하고 가볍게 내리쳤다. “테레비에 나오는 거니까. 말끔히 씻고 다려놓은 옷으로 갈아입을게.”

“하하. 네.”

김덕수는 얼굴에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약간 숙이고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고는 옷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방금 집주인과 한 대화가 잘 녹음 됐는지 확인했다. 편집만 잘하면 영상의 분량을 늘릴 수 있어 보였다. -응? 하이고~ 안타깝긴 한데. 사실. 서로 죽일 정도로 원한이···사이는 좀···진환이가 멍청하기는 해도 순진했는데. 쯧, 취재하쇼. 사실대로!- 이렇게 말이다. 겉보기에도 유튜브보다는 어디 소극장이나 들락날락 할 거 같은 노인네니 거침없이 편집해도 괜찮을 거 같았다.

그렇게 옥상에 도착한 김덕수는 크로스 백에서 미리 챙겨온 것들을 꺼냈다. 분홍색 액체가 들어있는 텀블러, 루미놀 시약이 들어있는 분무기가 그것이었다. 그는 분홍색 액체를 만들기 위해 거친 휴지로 후볐던 왼쪽 콧구멍을 훌쩍거렸다.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레이션으로 대체하는 게 더 편했으니까. 그는 테라스 중앙에 분홍색 액체를 흘리고 루미놀 시약을 뿌렸다. 루미놀 시약은 소량의 피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알고 있는데, 날이 밝아서 그런지 약간의 푸른빛만 맴돌았다. 상관없지. 집 안은 어두울 테니까. 유튜브에서도 어두운 곳에서 반응이 더 잘 보였고.

옥탑방의 내부는 먼지만 쌓여있을 뿐이었다. 그 외에는 깨끗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김덕수는 전등을 켜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만들고 바닥에 분홍색 액체를 흘렸다. 그리고 칙-칙- 루미놀 시약을 그곳에다 뿌리고 손전등을 껐다. 루미놀 시약은 환한 푸른빛을 내며 반응했다.

됐다. 이 정도면. 김덕수는 루미놀이 반응하는 장면을 여러 군데에서 촬영했다. 이제 뒷정리를 하면 됐다. 챙겨온 과산화수소로 루미놀 시약을 지우는 것이다.

전등 스위치가 어디 있지. 핸드폰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췄다. 스위치는 현관에도 있고 화장실 앞에도 있었는데, 뭐를 켜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 누르려고 하는 게 거실 전등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 손전등에만 의지하던 김덕수가 낮은 거실 탁자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강이를 찧어 넘어졌다. 그로 인해 그가 손에 들고 있는 텀블러와 루미놀 시약이 담긴 분무기가 저 멀리 바닥으로 떨어졌다.

“에이, 씨. 아파!” 그는 신경질적으로 정강이를 매만지며 탁자를 내리쳤다. 되레 손만 아팠고, 얼른 전등을 켜서 욱신거리는 정강이에 피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개를 올리자 무언가 이상한 점이 눈에 띄어 더 이상 정강이를 신경 쓸 수 없었다.

‘내가 저기에도 희석한 피를 뿌렸나?’분무기에서 새어나오는 루미놀 시약이 푸른빛을 환하게 내고 있었다. ‘아닌데? 저기는 안 뿌린 거 같은데?’

설마. 김덕수는 조심히 걸어가 분무기를 들었다. 금이 갔는지 안에 내용물이 훨 가벼워졌지만 아직 뿌릴 정도는 남아있었다. 칙- 확인을 위해 현관부터 거실로 향하는 길에 루미놀 시약을 뿌렸다.

“흐.” 그가 웃었다. “흐하하하하!!”아주 호탕하게.

“아이고. 이 병신아.”그리고 욕을 했다.“이 모자란 놈아.” 고작 영상 2개만 뽑으려고 한 자신에게.

“로또 맞은 줄도 모르고. 넘어갈 뻔 했네.”

어두운 집안에 환한 푸른빛이 야광처럼 빛났다. 김덕수는 그것을 바라보며 어떻게 이용해야 자신에게 이득이 될지 생각했다.

경찰에 신고는 안 돼. 그러면 나한테 뭐가 돌아오는데? 김진환···요새 한시연이랑 커플 유튜브도 하는 거 같은데 돈 좀 만졌겠지? 만졌을 거야. 올리기만 하면 인기 급상승 동영상이니까. 크크크···좋아. 너무 좋아. 이거야. 협박 조금만 하면 돈이 절로 굴러 들어오겠구나. 연금처럼 매달 받을까? 아니면 일시불로 받을까?

김덕수는 연금처럼 매달 받는 것을 선택했다. 일시불로 받기에는 큰 액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서였다.


8.


김진환은 이민수와 같이 유튜브를 했을 때 원초적으로 자극적인 영상만 찍었기에 높은 확률로 영상에 수익 제한이 걸렸다. 그로 인해 영상으로는 충분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인지도는 쌓을 수 있었고, 부족한 수익은 그 인지도를 통해 얻어낸 광고 업체의 외주로 충족했었기 때문에 유튜버가 되기 이전의 삶보다는 훨 나은 삶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었다. 그리고 한수연과 같이 유튜브를 하는 지금은 만족 그 이상의 삶이다.

김진환은 한수연과 같이 유튜브를 하면서 신세계를 느끼는 중이었다. 수익 제한은 이제 먼 나라 이야기이고, 조회수는 영상이 늘어가는 것과 비례적으로 급격하게 올라갔다. 구독자는 벌써 100만이 가까워졌고, 광고 업체의 외주는 매일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는 광고 외주의 단가가 이렇게 높아질 수 가 있구나 하고 매일 감탄했으며, 이제는 서울 근교에 25평짜리 아파트를 전세로 들어와도 무리가 없음에 감탄했다.

“이게 전부 시연이 네 덕분이야.”

김진환은 유튜브 성장 그래프를 가리키면서 이 모든 공을 한시연한테 돌렸다. 겸손은 아니었다. 캡사이신같은 자극적인 것을 영상에 담지 않아도, 이런 빠른 성장세를 이룰 수 있던 이유가 그녀였으니까. 대중에게 그녀의 외모와 몸매 그리고 목소리는 캡사이신보다 자극적이었다.

“아니야. 다 오빠 덕분이지. 오빠가 잘 도와줘서 그런 거야.”

한시연은 이 모든 공을 독차지 할 생각이 없었다.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김진환의 기획과 편집 능력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빠른 성장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체 하나 처리해서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사랑해.”

“나도. 사랑해. 오빠.”

김진환은 턱을 들어서 그녀에게 키스했다. 이미 이민수를 죽였다는 죄책감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오히려 이민수가 죽어서 한시연을 만났고, 그녀와 함께 유튜브를 시작해서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큰 성공을 누렸으니, 잘 죽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여보세요?”그러나 가끔씩은 사라진 죄책감이 고개를 내밀 때가 있다. 오늘이 그랬다.

“아, 아주머니···네. 저한테 따로 연락 온 건 없었어요.”

때때로 이민수의 어머니는 김진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용건은 간단했다. 아들의 행방. 아들과 가장 친했던, 그리고 유튜브도 같이 했던 김진환에게 아들이 따로 연락이라도 했을까 싶어 인사도 없이 아들의 행방부터 물어보는 것이었다.

“네, 경찰 쪽에서는 따로 연락 없었어요?”

“없어···진환아···.”

“네.”

“없다고.”

근래 들어. 정확히는 이민수가 세상에 사라진지 1년이 넘은 직후부터, 이민수의 어머니는 김진환에게 연락하는 빈도가 잦아졌다. 경찰이 성인 남성의 실종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민수의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들의 얼굴이 프린트 된 종이를 한아름 가지고 매일 지방으로 내려간단다.

“혹시라도···정말 혹시라도. 연락이 오면 우리한테 숨기지 말고 알려줄래? 아들이 아빠를 무서워해서···그래서 우리한테는 돌아온 걸 숨기는 거 같아서.”이민수의 어머니는 흐느끼면서 말했다.

“네···꼭 그럴게요.”김진환은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 죄책감을 느끼며 전화를 끊었다.

“또 그 여자야?”한시연이 말했다.

“응···.”

김진환은 순순히 대답 했지만,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그러나 속으로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럴 때마다 한시연이 죄책감을 잊을 수 있게 위로해줬기 때문이다.

“잘 죽었어. 이거 봐.” 한시연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새끼랑 2년 동안 유튜브 했는데도 못 이룬 걸 우리는 1년 만에 이뤘잖아. 오빠는 족쇄를 푼 격이야.”

“그렇지.”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말로만 하는 위로는 여기까지였다.

“침실로 갈까?”

위로가 끝나고, 짧은 낮잠을 자면 김진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똑같다. 과정은 조금 달랐지만.


9.


시끄러워요. 어느 순간 시끄러운 술집에 제가 있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익숙한 곳이네요. 민수 형을 처음 만났던 장소에요. 여기.

“야, 진환아. 여기 아는 형 불러도 되냐?”

애가 누구였죠? 얼굴은 아는데 이름이 기억 안나요. 군대 가기 전에 잠시 일했던 곳에서 친해진 동갑내기였는데···아무튼 애가 민수형을 소개시켜준 장본인인 건 확실해요.

“민수 오빠? 나 그 오빠 재밌어서 좋아.”

“성대모사 잘하는 그 사람 말하는 거야?”

“맞아. 소주 원샷하던.”

“으, 난 그 사람 별론데.”

“왜?”

“저번에 술 마시고 나한테 고백했어. 자기는 술김에 한 거라고 하던데. 풉.”

익숙한 목소리가 여럿 들렸어요. 그걸 인식하고 나서야 목소리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요. 여자 3명 남자 2명.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요. 이때 이후로 연락을 거의 안했던 사람들이라.

“그럼 부른다?”

민수 형을 불러도 되냐는 허락을 맡은 남자애가 핸드폰을 귀에다 가져다 댔어요. 제 입은 이상하게 열리지 않더라고요. 말을 내뱉을 수 있게 된 순간은 저기 입구에서 민수형의 형체가 어렴풋이 보였을 때였어요.

그때 알았죠. 아, 이건 꿈이구나. 꿈이 확실하구나. 현실일리 없어요. 절대로 말이죠. 문이 열리고 들어온 민수 형은 온전하지 않았으니까. 목에는 나무토막이 박힌 채 피를 뚝뚝 흘리고, 마치 교도소에 복역 중인 죄수처럼 손에는 쇠고랑을 차고 있었어요. 민수 형이.

“입장샷? 얼마나 마셔야 해? 한 병? 에이~너무 많잖아. 맥주잔에 소주 가득 채운 걸로 끝내주라.”

민수 형이 두 손으로 소주를 맥주잔에 따랐어요. 단숨에 들이켜고 제 맞은편에 앉네요.

“누구야?”민수 형이 옆 사람한테 물었어요. “아, 아는 친구?” 그리고 저한테 손을 내미네요. “반가워. 동생.”

저는 손을 잡지 않았어요. 표정으로 알 수 있거든요. 저 표정. 저한테 화낼 때마다 꺼내는 표정이에요. 입술을 입안으로 말아 넣고 턱 끝 살에 주름을 주는, 자기가 화났다는 걸 알리는 표정. 이곳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어도, 저는 저 표정에 겁을 먹은 적이 없었죠.

“···진환아.”민수 형이 말해요. “행복해?”

“응.”저는 퉁명스럽게 답했어요.

“나를 죽여 놓고?”

“정확히는 내가 죽인 게 아니지. 형이 무거워서 죽은 거잖아. 그러니까 살 좀 빼라니까.”

“네가 시켜서 그런 거잖아.”민수 형이 쇠고랑을 자랑하듯 올리며 말했어요.“네가 죽였어. 나를. 이걸 차야 하는 건 내가 아닌 거 같은데.”

이럴 때 옆에 시연이가 있다면 뭐라 말해야 하는지 알려줬겠죠. 아쉽게도 지금은 저 혼자네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그녀가 저를 위로하면서 해줬던 말. 그 말을 인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니?”제가 말했어요.“형이 차는 게 맞아. 전부 형이 잘못했어.”

“응? 정말로?”

“응. 정말로. 나랑 있을 때 형이 했던 짓을 생각해봐. 나는 매일 매일 어떤 영상을 찍을까, 편집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는데. 형은 밤새 게임하고, 딸치고, 잠만 자고···.”

“캡사이신 같은 건 내가 먹었잖아.”

“겨우. 그것만 했잖아.”말을 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겨우 그것만 하면서 수익은 형이 더 가져갔잖아.”

“5대5로 나눈 거 아니었나?”

“편집비는? 기획비는? 형은 언제나 그건 쏙 빼놓더라?”

“······그런가?”

“그래. 형은 만날 이런 식이지. 잘 죽었어. 형은. 정말로 잘 죽었다고.”

“그래도 우리 엄마 아빠는···.”민수 형의 전매특허가 나왔네요. 자기가 불리하면 말 돌리기. 평소였다면 넘어가줬겠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해요.

“말 돌리지 마.” 제가 민수형한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어요. “아까 나한테 행복하냐고 물었지? 어, 맞아. 나 행복해. 형이랑 유튜브 할 때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연이는 형이랑 다르게 나를 많이 도와주고, 내가 힘들면 영상을 안올리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쉬게 해줘.”

“수익 분배는?”

“나눌 필요가 없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거든. 수익의 90% 공용 통장으로 들어와. 나머지는 절반씩 개인 통장으로 들어가고.”

“나중에 걔가 너 버리면 어쩌려고?”

이 말에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어요. 이 새끼가 시연이를 모르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제가 사랑하는 그녀를 사기꾼으로 낮잡아도 된다는 건 아니니까요.

“형이 뭘 아는데?”

“응? 갑자기 왜 그렇게 정색해.”이 새끼의 전매특허가 또 나왔네요. 자기가 말 잘못 뱉어놓고 어리둥절한 표정 짓기. 아주 역겨워요.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기는 뭐가 그럴 수 있어!”

저는 책상을 쿵! 하고 내리치며 시연이가 저한테는 얼마나 천사 같은지 설명했어요.

“공용 통장이 왜 공용 통장인지. 멍청한 형은 모르지? 공동 명의라는 뜻이야. 그 안에 들어가 있는 돈은 내 명의기도 한다는 뜻이라고. 그리고!”

다시 쿵! 하고 책상을 내려쳤어요.

“사실 지금까지 시연이는 수익을 나눠줄 필요가 없어. 내가 영상에 다시 나온 건 최근이거든. 그 전까지는 뒤에서 편집이나 기획 같은 걸 도와줬을 뿐이야. 그런데도 시연이는 다 내 덕이라고 나한테 수익을 나눠줬어. 심지어는 내가 7을 가지래! 공용 통장은 서로 수익을 미뤄주려다가 싸우기까지 해서 만든 거고. 이제 형이 얼마나 멍청한지. 이해가 가?”

“······.”

대답이 돌아오지 않아요. 그저 멍하니 저를 바라보고만 있어요. 그때 알아차렸죠.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목에 박혀 있던 나무 파편이 사라지고 구멍이 생겼거든요. 입은 뻐끔거리는데 말이 나오지 않던 거였어요.

저는 형이 이기적이다고 생각했어요.“형은 진짜 이기적이야. 살아있을 때도 그렇게 빌붙어서 괴롭히더니. 죽어서는 꿈에 나와서 나를 괴롭히니까.”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생각하던 게 입 밖으로 나왔죠. 그러면 안 됐어요. 제 실수예요. 꿈에서 꿈인 걸 인지하고 ‘여기는 꿈이지?’라고 말하는 게 왜 금기가 되는지, 피부로 느끼게 됐으니까.

“꿈? 꿈? 꿈?”

“꿈? 꿈? 꿈?”

제 옆에서, 주위에서 가만히 있던 것들이 전부 민수 형으로 변했어요. 이것들은 목에 구멍이 없네요. 고개를 비 이상적으로 꺾으며 “꿈?”이라는 말을 반복해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저는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죠.

하지만 이때, 누군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어요. 한시연이에요. 그녀가 저를 구해주러 왔어요. 그녀는 저의 구세주가 분명해요.

“오빠.” 그녀가 천천히 걸어와 발로 이민수를 걷어차며 말했어요. “이 개···돼지 새끼한테 오빠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어.”그리고 저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일어나.”


저는 그녀의 손을 잡았죠. 그리고 눈을 떴어요.

“오빠. 일어났어?”

그녀가 옆에 있네요. 저는 두 팔로 그녀를 껴안았어요.

“악몽을 꾸는 거 같던데. 괜찮아?”

“응. 괜찮아.”


10.


정신을 차린 김진환은 세수를 하고 책상에 앉았다. 마우스를 딸칵거려 자동으로 절전 모드로 들어간 컴퓨터도 깨운 그는 아까 하지 못한 업무를 위해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다음 영상은 이거 어때?”김진환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에는 광고 업체가 보낸 외주 내용이 적혀있었다.

“무슨 광고인데?”한시연은 그의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며, 무슨 광고가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음. 하지 말자. 이건.”

“왜? 커플 유튜브에 쓰면 좋을 거 같은데.”

“입욕제 광고는 너무 선정적이잖아.”

“너는 영상에 목소리만 나와도 돼. 조건을 보니까. 영상에는 내 몸만 나와도 괜찮다고 적혀있거든. 영상 마지막에 같이 쓴 후기를 말하면 될 거 같아.”

한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하지 말자.”

“페이가 엄청 센데?”

김진환은 그녀가 왜 거절하는 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선정적인 이유? 정말 그거라면 연인으로서는 좋지만, 이미 그런 선정적인 영상은 많이 찍지 않았는가? 그리고 새로 개설한 커플 유튜브 채널은 그녀의 본 채널에 비해서 덩치가 많이 작았다. 덩치를 키우려면 수익 제한이 걸리지 않는 정도의 선정적인 영상을 올리는 게 가장 좋았고, 입욕제 광고는 업체한테 돈도 받고 덩치도 키울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였다.

“초반에는 어쩔 수 없이 구독자를 늘리려고 찍었지만··· 이제 우리 본 채널에 구독자가 많잖아? 본 채널은 백만 구독자가 코앞이고. 이런 광고를 찍지 않아도 조금만 기다리면 커플 채널도 구독자가 많아질 거야. 그리고···”한시연이 김진환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이제 오빠도 영상에 나오잖아. 변태들이 나랑 오빠 몸을 보면서 흥분한다고 생각하면 짜증나. 나도 선정적인 영상은 더 안 찍을게.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도···.”

“쉿. 그만.”그녀가 그의 입술에 손가락을 올렸다. “오빠는 내거야. 아무도 못 줘. 그깟 돈. 오빠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시연아···.”

“뭐야. 그 표정? 또 반했어?”

“응. 사랑해.”

“히히. 나도 사랑해. 오빠.”

키스를 하려던 순간, 한시연이 마우스를 뺏었다. 다른 광고 업체가 보낸 메일을 열었다. 여행사 광고였다. 이 추운 겨울, 무료로 따뜻한 해외로 여행을 보내준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어때?”한시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3박 4일 세부로 여행가자. 마침 갈 때 됐잖아.”

“좋아. 근데 조건은 뭐야?”

“별거 없어. 여행 영상 2개만 올리면 된대.”

“흠.”

김진환은 이 광고를 어떻게 영상에 녹여낼지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한시연은 그런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신은 모르지만,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럴 때마다 그녀는 그를 한시적으로 사랑했다.

“해변가에서 수영하는 것도 찍을까?”

“수영복은 뭐로 하지?”

“비키니나 래쉬가드로 하자.”

“훗. 그래.”

방금까지 선정적인 걸 찍지 않겠다고 못을 박아 넣어도, 단순하게 잊어버리고. 오직 영상을 위해, 자신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또 한시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그녀였다.


한편, 김덕수는 카메라 앞에 앉아서 영상을 찍고 있었다. 돈벌이가 별로 되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영상이었다.

정치권에 대한 영상을 다 찍은 김덕수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시선을 천장에서 벽면으로 옮겼다. 낡은 원룸이었다. 35살이나 먹었는데 이런 집에 혼자 사는 이유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게 아니어서 그런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부모라는 작자들이 가난해서, 자신이 대학을 못 갔고. 부모라는 작자들이 아무것도 안 남기고 죽어서, 35살인 자신이 결혼도 못하고 쓸쓸하게 이런 원룸에 살고 있는 거다.

하지만 김덕수는 이제 이런 인생을 청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민수의 죽음을 조사하고, 스스로 진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하사받은 격이었다. 여태껏 광땡을 주지 않은, 플러쉬를 주지 않은, 하늘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인생을 화려하게 살 수 있는 기회이고, 그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잘 비축해놓은 사료를 주면서 황금알을 충분히 뽑아낼 것이다. 그리고 황금알의 순도가 조금 낮아졌다 싶으면 배를 갈라서 맛있게 요리할 것이다. 김진환이 강하게 나온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서 김진환이 관리하는 한시연의 유튜브 채널이 100만을 찍고, 그들의 커플 유튜버 구독자가 50만이 되는 것을 기다릴 거니까. 가지고 있는 게 많은 김진환은 잃을 게 없는 자신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드릴 수밖에 없을 거다.

김덕수는 자세를 고쳐 잡고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이어 모니터에 그가 준비한, 황금알을 낳는 오리에게 줄 사료들이 펼쳐졌다. 푸른빛이 야광처럼 빛나는 옥탑방의 바닥과 화장실 사진, 조작한 유전자 감식 검사 결과지 등등···이것을 어떻게 이용해야 오리가 순도 높은 황금알을 낳을지 따져봤다. 질 좋은 협박. 그는 해야 할 일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것에 씨익 웃는다.

‘협박하기에는 김진환이 이민수를 죽였다는 증거가 부족하지 않아?’이때, 김덕수의 머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그런 건 상관없어. 진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으니까.” 김덕수는 이 말에 웃음을 유지하며 고개를 저었다. “김진환은 유튜버야. 유튜버가 뭔데? 대중의 관심으로 밥 벌어 먹고 사는 것들 아니야? 대중들이 인식하는 이미지가 유튜버들한테 가장 중요해.”

머릿속에서 따지던 존재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슈 유튜버로서, 그들의 사소한 실수 혹은 사고 그것도 아니면 거짓을 이용하여 그 이미지를 철저히 박살 낼 수 있지. 실수나 사고를 부풀리거나 진실을 조작해서 말이야.”

‘대중이 그런 걸 믿어?’

“응. 믿어. 대중은 멍청하거든. 괜히 개돼지라고 불리는 게 아니야. 그것들은 자극적인 것에만 반응하고,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자극적이면 일단 달려들고 물어 뜯어버려. 김진환도 그걸 잘 알고 있을걸. 이건 프로 유튜버라면 무조건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 진리니까. 아무리 결백하다고 해도 내가 협박하면 무조건 받을 수밖에 없어. 결백이 밝혀진다고 해도···”그는 마우스 커서로 모니터에 비치는 사진을 클릭하며 말했다.“이 사진이 있는 이상, 개돼지들 중 대부분은 처음 찍은 살인자라는 낙인을 지우지 않을 거니까.”

그의 머리에는 호의호식하는 미래가 그려졌다. 총 합 구독자 150만 명 이상의 유튜브 채널을 관리하는 김진환의 월 수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그 수익의 일정 부분을 매달 연금처럼 받는다면 허황된 미래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질 좋은 협박과 김진환이라는 유튜버가 더 성장할 수 있게 방해하지 않는 것일 뿐이니 이 얼마나 수지맞는 장사인가? 일이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김덕수는 더 이상 유튜버를 하지 않아도, 일을 하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김덕수는 유튜버를 계속 할 것이다. 협박의 효력을 유지하기 위함도 있지만, 김진환의 성공가도가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기 때문도 있었다. 유튜브 세상이 원래 그러니까. 인기가 하늘을 뚫을 기세였던 익명의 유튜버도 어느샌가 대중들에게 잊혀졌다. 김진환도 그와 별 다르지 않을 거고, 김덕수는 그때가 온다면 자신의 유튜브에 이민수의 살인이라는, 전에 기획했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 할 생각이었다. 하락세를 걷고 있는 김진환은 반박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라질 거고, 유튜버의 살인은 대상이 누구든 자극적인 사건이니, 황금알을 낳는 오리는 마지막까지 일용할 양식을 주고 죽는 꼴이다.

여기서 아쉬운 게 있다면 딱 하나였다. 한시연. 그녀 때문에 매달 얻을 수 있는 황금알의 순도가 낮아졌다. 김진환이 그녀와 연인이라고 해도, 기획과 편집 그리고 출연을 한다고 해도, 불가피하게 수익이 나눠질 수밖에 없었다. 김덕수는 김진환이 나눠가진 수익의 일부를 황금알로 받아야 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속으로 외치며 뺨을 가볍게 쳤다. 그녀가 있기에 김진환이 성공한 것이다. 만약, 그녀가 김진환을 살인자라고 생각해 그와 헤어지고, 커플 유튜브도 접고, 새 편집자를 구해서 자신의 유튜브만 운영한다면 김덕수의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충분히 얻지도 못하고 오리의 배를 가른 꼴이니, 이 일은 그녀가 하락세를 걷기 전까지 철저히 김진환과 자신만 알고 있어야 했다.

충분해. 욕심 부리지 말자. 김덕수는 제 뺨을 치며 생각했다. 아직 백 만도 되지 않은 채널의 추정 수익이 5천을 넘어간다. 여기에 광고도 추가한다면 자신이 얻는 황금알의 값어치는 최소 500만원 이었다. 그 이상을 바랄 수 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더 유명해졌을 때의 이야기다. 욕심은 그때 부려야 탈이 없었다.

‘김진환이 진짜 살인자면? 너는 지금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살인자한테 삥을 뜯으려고 하는 거일 수도 있잖아. 직접 만나는 건 위험해.’가만히 있던 머릿속의 존재가 김덕수에게 말했다.

“직접 만나서 얼굴도 보고 그래야 협박이 잘 먹히지. 그리고 난 오히려 그 새끼가 살인자면 좋겠어. 뉴스에서 사실 확인까지 해주면 나중에 올릴 영상은 몇 백만 조회수는 그냥 찍을 수 있으니까.”김덕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안 무서워? 그러다가 너 죽을 수도 있어.’

“무섭기는.”

김덕수는 너저분한 책상에서 무언가를 집어 올렸다. 카메라였다.

“이게 있는데. 왜?”


그로부터 3개월 뒤, 꽃샘추위가 심하게 온 계절, 김진환과 한시연은 집 근처로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적당히 비싼 샴페인과 케이크는 책상에 차려진 상태였고, 벽에는 ‘구독자 100만 달성!’이라는 내용의 화려한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앞에 설치 된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화면에 담았다.

“라이브 방송 시작할게?”

“응!”


11.


김덕수는 김진환의 개인 메일로 사진 1장을 보냈다. 자신의 연락처와 이민수에 대해 할 말이 있으니 한시연 모르게 따로 만나자고 적힌 글과 함께 말이다. 그는 자신의 철두철미함을 자화자찬하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메일로 보낸 사진은 한시연과도 관련이 깊었고, 김진환은 그녀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거, 걸렸나?”충격을 크게 받은 김진환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는 검지를 덜덜 떨며 사진을 가리켰다. “내, 내가 전에 살던 옥탑방이잖아. 부서진 신발장···맞아. 화, 확실해.”

“자기야. 일단 진정해봐.”

한시연은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어깨에 손도 올려봤고, 다정하게 포옹도 해봤다. 그러나 그는 진정하지 못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그때 봤던 핏자국 그대로 푸른빛이 맴돌았고, 그것이 영화에서 보던 루미놀 시약의 반응이라는 것과 이 메일의 발신자가 악명 높은 렉카 유튜버 김덕수라는 것을 말이다.

“망했어. 다 망했다고···.”김진환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김덕수가 얼마나 끈질기고 잔인한데···나를 조리돌림 하는 영상으로 돈 좀 만지면 바로 신고할 거야. 그럴 거야. 아. 망했어. 난 끝이야. 끝이라고. 김덕수가 경찰에 신고하면 끝이라고.”그리고 흐느낌과 함께 중얼거렸다. “내가 자살하기 전까지 안 멈추겠지. 그런 놈이야. 어떡해. 어떡해.”

이 상태면 무슨 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한시연은 그가 스스로 진정되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분명 일이 잘못 된 건 맞았다. 악명 높은 렉카 유튜버한테 이민수를 살해했다는 의심을 받았으니까. 그러나 그녀가 생각하기에는 최악까지는 아니었다. 직접 만나자는 메일을 보냈다는 건 무슨 의미겠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거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었으면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 원하는 게 뭘까? 돈. 돈만 주면 시간을 벌 수 있다. 옥탑방으로 가서 증거를 인멸하고, 김덕수를 조용히 처리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렉카 유튜버인 그를 죽일 정도로 원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고, 이번에는 자주 애용하는 표백제의 성분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으니까 절대로 걸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김진환은 조금 진정된 듯 보였다. 한시연은 뒤에서 그를 다정하게 안았다.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말을 잘 해야 했다. 김진환이 김덕수와 대면했을 때 시킨 대로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안심시키지 않으면 약점만 늘어나는 꼴이니까.

“자기야.”한시연이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걱정할 거 없어. 이 새끼는 우리를 신고할 생각이 없어 보여.”

“정말?”김진환은 눈물을 훔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옳은 답만 내려줬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걱정할게 없다는 그녀의 말은 그에게 안정제와 같았다.

“응. 정말로.” 그녀가 말했다. “신고할 생각이었으면 이미 했겠지. 왜 직접 만나자고 했겠어?”

“영상을···찍고 그 다음에 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

“아니. 그건 말이 안 돼.”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주 잠깐 한심한 눈빛도 스쳐지나갔다.“그럴 거면 예고 영상이라도 올렸겠지. 그러는 편이 조회수가 더 잘 나오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

“그러면 왜···? 신고할 정도로 증거는 충분하잖아.”김진환은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킨 것은 국과수가 출동할 정도로 충분한 증거였다.

한시연은 이 질문에 잠시 생각하는 척을 했다. 충분히 시간을 끌고, 충분히 생각했다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준 뒤 입을 열었다.

“루미놀 시약으로 혈흔을 검출한 거뿐이야. 겨우 이 정도로 자기를 살인자로 몰아갈 수 없어. 누구의 피 인지 애가 어떻게 알건데? 막말로 전 세입자 피 일수도 있잖아.”

“그, 그건···체취해서 DNA 검사를 국과수에 맡기면···”김진환은 범죄 수사극에서 보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민수···피라는 걸 알 수 있잖아. 그러면 나는 영락없이 살인자로 몰리고···.”

한시연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민수 실종은 접수 됐잖아. 그렇지?”

“응···그렇지?”

“만약에 아주 만약에. 김덕수가 어떻게 잘, 아주 잘, 마룻바닥 틈에 끼어있는 피를 체취해서 국가수에 DNA검사를 맡겼다 치자?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이···민수의 피라고···나오겠지?”그녀의 문답법에 김진환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맞아. 그런데. 그러면 국과수는 실종된 사람의 피라는 검사지만 의뢰인한테 줄까? 국과순데?”

“아.”

김진환은 깨달았다는 듯 약하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이런 비논리적인 대화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하기야, 이런 면 때문에 사랑스러운 건데.

“애는 자기를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 같아.”한시연이 다시 모니터를 가리켰다. “살인자라고 생각했으면 직접 만나자고도 안했을걸.”

“그, 그러면 왜? 왜 나한테 이런 메일을 보낸 거야?”김진환은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돈이겠지. 이 사실을 비밀로 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할 거야. 매달 받을 수도 있고, 일시불로 받을 수도 있는데···매달로 받는 거면 좋겠는데.”

“돈?”김진환은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방금 네가 말했잖아. 김덕수는 내가 살인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그냥 직접 만나서 나랑은 연관이 없는 일이라고 말하면 안 될까?”

“오빠.”한시연이 호칭을 바꿨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멍청함에 구역질이 치밀어서였다. “죽인 건 맞잖아. 그러다가 수틀려서 신고라도 하면 우린 끝장이야. 실종이 아니라 살인으로 신고가 접수되면 아무리 내가 증거를 잘 지웠다 해도 걸릴 수 있다고.”

“아.”

“잘 넘어가도 문제야. 우리가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는 건 꽤 오래 걸릴 거고, 그전까지 김덕수는 영상으로 우리를 물어뜯겠지. 그걸 본 사람들은 어떨까? 예상가지 않아?”

“그렇지.”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우리 유튜브는 망해. 본 채널이 이제야 100만을 찍었는데.”

“그럼 어떡하지?”

“일단 만나서 뭐를 원하는 지 들어보자. 아마도 돈일거야. 제작비에 피해가 가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주자.”그녀가 껴안고 있는 손을 그의 가슴팍으로 천천히 올렸다.“돈은 중요하지 않잖아. 또 벌면 되지. 중요한 건 인기야.”

“그···그렇지.”그는 머뭇거리며 마지못해 대답한다.

“오빠.” 나는 오빠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한시연은 그것을 눈치 채고 말했다. “돈은 우리 공용 통장에서 빼가.”

“지, 진짜?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오빠를 지킬 수 있으면 나는 대출까지 받을 생각이 있어.”

“시연아···.”

“어머. 또 반했어? 후훗.”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서였다. 서로의 혀를 맞대고 사랑을 나누고 난 뒤에 그녀가 말했다.

“내일 만나자고 연락해. 거기서 했던 대화는 빠짐없이 나한테 말해주고.”

“응. 꼭 그럴게. 녹음기도 가져갈까?”

“괜히 건드리지는 말고. 기억만 잘 해. 미리 겁먹고 들어가지 말고. 먼저 말 꺼내지 마. 물어보는 거에만 대답해. 알겠지?”

“응!”

“내일 어떻게 해야 할지··· 내가 알려줄게. 운이 좋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녀가 그의 볼을 쓸어내렸다. 3살짜리 애기를 강가에 내놓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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