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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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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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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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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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9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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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얘기 하자

DUMMY

12.


다음날, 택시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문자에 김진환은 택시를 탔다. 비용이 꽤 나갈 정도로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잘나가는 유튜버에게 돈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녀가 어제 밤새도록 알려준 행동 강령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벼락치기의 고됨을 느꼈다.

택시는 어느 원룸 촌의 입구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택시기사는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달린 것을 사과했다. 이 길이 일방통행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기사는 여기서 내리면 걸어서 금방 도착하고, 택시를 계속 탄다면 10분 정도 더 걸릴 거라고 백미러를 보며 말했다. 벼락치기를 하고 있던 뒷좌석의 학생에게는 호재였다.

10분이 지나고, 택시는 한 원룸에서 멈췄다. 김진환은 기사에게 카드를 건네면서도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창 밖에 검은색 가죽 재킷을 입고 정돈되지 않은 수염을 달고 담배를 피우는 김덕수가 보여서렷다. 영상으로 보던 것보다 체격이 건장한 그를 본 순간 방금까지 입으로 달달 외운 모든 게 사라지는 거 같았고, 머리는 새하애졌다.

“아이고~ 좀 늦었네?”김덕수가 입에 담배를 물고 택시에서 내린 김진환에게 말했다. “차가 좀 막혔나?”

“아, 그, 그게. 택시 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서···죄송합니다.”

“응? 아이, 아니야, 아니야.”김덕수는 저 멀리 언덕을 넘어가는 택시를 바라봤다.“보니까 늙은이 새끼가 대한민국 길 다 안다고 나대다가 그런 건데. 신경 쓰지 마.”

“아, 하하.”김진환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위해 손을 뻗었다.“아, 안녕하세요. 저는···.”

“에이, 서로 얼굴 다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는 무슨.”김덕수는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재킷 안주머니를 뒤적거리며 담뱃갑을 꺼내들어 그것을 입구방향으로 돌리고 김진환에게 건넸다. “담배는 피나?”

“아, 제가 담배는···.”

“안 핀다고?”

“네. 안 펴···.”

“안 펴?”

“피겠습니다.”

김진환은 마지못해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어떻게 피는지도 몰랐다. 상대가 퐁! 하는 소리를 내는 고급 라이터를 갖다 대며 “빨아야 불이 붙지”라고 알려줄 정도로.

김진환은 콜록 콜록 기침을 하며 받은 담배를 억지로 다 피웠다. 누군가 뒤통수를 배트로 후려친 거 같은 어지럼증이 돌아 잠시 휘청거렸다.

벌써부터 겁을 먹네. 찔리는 게 있나? 김덕수는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속으로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강하게 나오면 어쩌나 했던 고민이 사라지고, 어떻게 협박해야 오리가 순도 높은 황금알을 낳을까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김덕수가 새로운 담배를 꼬나물고 김진환의 뺨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귀엽네. 몇 살?”그리고는 스윽 어떤 반응이 나올까 살펴봤다.

“아, 하하하.”

좋은 반응이었다. 겁먹은 똥개새끼처럼 잔뜩 움츠린다. 앞으로의 일이 수월하게 흘러갈 거 같았다.

“크크. 그래. 그래. 일단 들어가서 얘기할까? 할 얘기가 많은데.”

그들이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쉰내가 풍겼다. 김진환은 이 냄새가 친숙했다. 옛 동업자의 몸에서 나오던 냄새였으니까.

“누추하지? 귀한 분을 이런데다 모셔서 미안하네.”

“아,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이 원룸은 누추하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정도로 누추했다. 벽지는 바랬고, 바닥은 마루가 아니라 노란 장판이었다. 싱크대와 화장실도 그와 수준을 맞췄고, 검은 곰팡이가 희끗하게 묻어있는 낡은 에어컨 아래의 컴퓨터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그나마 멀쩡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원룸 정중앙에 위치한 김덕수의 영상에서 나오는 식탁처럼 넓은 책상이었고, 책상 뒤에 있는, 카메라 앵글에 담기는 부분의 벽지뿐이었다.

김진환은 원룸을 살펴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렉카 유튜버한테는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김덕수는 렉카 유튜버 사이에서도 꽤나 입지가 있는 편이고, 구독자도 몇 십만이나 되잖아. 그런데 왜 이런 누추한 원룸에서 살고 있지? 렉카 유튜버는 수익 제한도 잘 걸리지 않는데. 영상 조회수로만 벌어도 번듯한 집하나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나? 그러나 추리하기에는 지능이 높지 않았다. 시간도 없었다.

곧이어 김덕수가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로 옆 창가에는 카메라가 컴퓨터와 연결된 채 설치되어 있었고, 이 원룸을 비췄다.

“앉아.”김덕수는 손짓으로 김진환에게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말했다. 김진환은 창가에 있는 카메라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순순히 그의 말에 따랐다.

흡사 취조실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두 사내는 사이에 나무 책상을 두고 대립하고 있었다.

“저 카메라 다른 곳으로 송출 중이야.”상대의 시선을 의식한 김덕수가 엄지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했다.“송출이 끝나면 24시간 이후에 내 채널로 영상이 자동으로 업로드 되게 설정해놨어.”

“네? 왜···굳이.”

“살인자 앞에 서는데 이런 보험은 필요하잖아?”

“저···는 살인자가 아닌데요.”

어젯밤. 한시연은 김덕수가 지금 김진환이 이민수를 죽였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어서 이런 짓을 하는 거 같으니 처음부터 모른 척 연기를 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 상황을 잘 빠져나가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는데, 실제로 김덕수의 입장에서 김진환이 계속 이민수의 죽음에 대해서는 모른 척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면 낭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살인을 은닉해주는 조건이 아니라 고작 이 사진들을 가지고 영상을 찍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받는 황금알은 순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몰아세우면 결백한 오리가 먼저 공격할 수도 있어서다.

그러나 김진환은 자칫 잘못하면 인생이 끝날 수도 있는 이 상황에서 연기를 잘 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피운 담배가 니코틴 함량이 높은 측에 속해 어지러워 더욱 그랬다. 어색한 연기는 김덕수에게 정말 이민수를 죽인 게 맞는다는 확신을 줄 뿐이었고, 결과적으로 상황은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래? 정말로 네가 이민수를 안 죽였다고?”김덕수가 상대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 왜 왔는데?”

김진환은 시선을 살짝 내려 깔았다. 겁에 질려 덜덜 떨리는 왼손을 부여잡으며.

“그게···그걸로 영상을 찍지 말라고 경고···하기 위해서···.”

“정말로? 겨우 그거 때문에?”

“그거 말고 또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민수형은···안 죽었어요. 실종이라고요. 나중에 돌아올 거예요.” 김덕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의자를 돌려 책상 위에서 있는 한 봉투를 집어 들어 내용물을 꺼내 책상에 펼쳤다. 자신이 조작한 유전자 감식 검사 결과지였다.

상대방 쪽으로 의자를 당겼다. 분위기도 이제 취조실로 완전히 바뀌었다.

“국과수. 으이? 국과수 알지? 거기서 직접!”취조관이 범인에게 겁을 주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책상을 쾅 내려치면서 말했다. “그 피가 이민수의 피라고 결과를 냈다 이거야. 어? 알아들어? 그 피가 어? 사람이 이 정도 피를 흘리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리고 봐봐.”

취조관은 다시 의자를 돌렸다. 사진 하나가 책상에 놓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김진환이 메일로 받았던 것과 흡사했지만 이번에는 보다 꼼꼼히 푸른빛이 발라져 있었다.

“흥건하지 흥건해.” 취조관이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다시 가서 뿌려보니까. 이거 영화에서 보던 거랑 똑~같더라고.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이 그대로 보여. 야! 이래도 발뺌해?”

“······하하.”

이때, 김진환은 결과지를 보고 웃었다. 결과지 맨 끝에는 국과수 인증마크가 찍혀있었고, 그녀가 말한 대로 이것이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온 웃음이었다. 의뢰를 언제 했나 살펴보니 정말 국과수에 의뢰를 했다면 벌써 경찰이 출동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아, 이 새끼가 나한테 사기를 치고 있구나. 이번에도 그녀가 맞았다. 방금까지 쿵쿵 거리던 심장이 원 상태로 돌아왔다. 긴장도 풀렸다. 니코틴의 효력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만 하면 여기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민수형은 실종 신고가 된 상태예요.”김진환은 결과지를 조심히 내려놓고 책상에 놓인 사진을 손가락으로 콕콕 찍으며 말했다.“이게 정말 민수형의 피라고 국과수가 확정 지었으면 당연히 경찰한테도 연락이 갔겠죠. 거짓말로 무고한 사람 살인자로 만들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아 그래? 그건 몰랐네. 보기보다 똑똑하구나?”

김덕수는 태연하게 결과지가 조작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조금 돌아갈 뿐이다. 그는 이미 심증으로는 김진환이 살인자라는 것을 확신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런 국가 문서 조작하는 거 불법이라는 건 아시죠?”

상대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편안해졌다. 어제 연습했던 모든 것이 술술 나왔다. 마치 처지가 역전된 거 같았다.

이 모든 것은 그녀 덕분이다. 그녀가 말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그녀가 지금 옥탑방에서 증거들을 인멸하고 있다. 그녀가 알려준 대로만 말하면 다시 원래의 일상을 살 수 있으리. 멍청한 김진환은 이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거 보여?”

당당한 만큼 김덕수가 주머니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흔들어 대니 패닉에 빠졌다. 그 안에 들어있는 거무죽죽한 먼지와 때가 “이건 그때 내가 따로 빼놓은 마루 사이에 낀 것들인데.” 이라는 말을 들으니 다시금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루미놀 시약이 참 신기해서. 혈액을 일만 분의 일로 희석해도 반응한다고 하더라고? 유전자 검사도 그래. 여기에 들어있는 피로도 충분히 누구의 피인지 검출 가능하다네?”

검사지 위에 놓인 먼지와 때가 한 액체를 만나니 푸른빛을 발산했다. 보였던 희망이 사라지자 김진환은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푸른빛이 맴도는 종이를 낚아채 구겼다.

“어차피 많아. 알고 있는 친구한테 내가 오늘 밤까지 연락이 없으면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고 가지고 있는 유리병 전부 국과수에 보내라고 해놨어.”김덕수는 낚시에 걸린 오리를 보며 씨익 웃고는 말했다. 확신이 더욱 강해지는 순간이었다.“이민수 죽인 거 맞지?”

“아, 아, 아닌.”

오리는 말을 더듬었다. 머리는 거짓말을 내뱉으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공황에 빠진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럼 여기 있는 거 다 가지고 경찰에 신고해도 되겠네?”

“그, 그건 안 되는데.”

“왜 안 돼? 너도 찝찝하잖아. 살았던 집에 살인 사건이 났다는 게 확실한데. 범인은 잡아야 하지 않겠어?”

“그, 그러니까.”

“네가 죽였지?”

“아, 아닌데요!”김진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 반응에 김덕수는 세상에 이렇게 다루기 쉬운 인간이 있나 감탄하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웃고 있었다.

“오케이! 그래! 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믿을게! 아멘!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김덕수가 두 손을 포개 기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김진환은 순간적으로 그가 악마로 보였다.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자신의 영혼을 빨아갈 악마로. 이제 대답은 ‘네.’ 밖에 할 수 없었다.

“진환아.”김덕수가 김진환의 뺨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네.”김진환은 덜덜 떨며 대답했다.

“너무 겁먹지 말고. 응? 내 말 좀 들어봐. 알겠지?”이번에는 김덕수가 상대의 뺨을 꼬집으며 말했다.

“네.”

“너는 이민수를 안 죽였어. 그렇지? 맞지? 난 그렇게 믿었다?”

“네.”

“하하. 그래. 맞아. 너는 안 죽였어. 무고해! 아주 무고해!”

“네.”

짝- 따귀 소리가 원룸에 메아리쳤다. 짝, 짝, 짝. 손바닥이 얼얼해질 때까지. 거기에 반항은 없었다.

“진환아. 그러면 주제를 좀 바꾸자.”김덕수는 붉게 부은 상대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내가 이 사건에 대해 영상을 찍지 않는 다는 조건으로 얼마를 줄래?”

김진환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겁먹지 말라니까? 나도 상도덕이 있는 사람이야. 매달 얻는 수익의 일부! 그 정도만 주면 충분해. 응?”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김덕수는 상대를 더 몰아세우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네가 돈을 안주잖아? 그러면 나는 이것들을 몽땅 가져가서 경찰에 신고할 거야. 그러면 경찰은 어떻게 할까? 그 집에 살았던 세입자를 전부 용의자로 세우지 않을까? 너를 포함해서 말이야. 살인 사건이니까! 누군가가 죽은 건 분명하니까! 그게 이민수가 됐든, 어떤 새끼가 됐든! 하하! 그러면 신고자인 나는, 이슈 유튜버인 나는 그때 뭘 할까? 영상을 찍지 않을까? 지금 인기 유튜버 김.진.환씨가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다는 내용의 영상을 말이야. 내용은···그래. 이민수의 실종을 엮는 게 조회수가 더 잘 나오겠다. ‘사실 김진환과 이민수의 사이는 사무적인 관계였다. 사적으로는 그리 좋지 않았다. 듣기로는 수익 관계에서 불화가 생긴 거 같았다. 이민수가 실종 된 지금, 경찰이 조사 중인 살인 사건의 피해자가 이민수일 수 도 있겠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나는 모르겠다···.’라고 하는 게 좋겠네. 아참! 너는 안 죽였다고 했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서 자유의 몸이 되면 이런 영상을 올린 나를 고소해. 할 수 있으면 말이야. 나는 영상에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너를 살인자라고 확정짓는 표현을 쓰지 않을 거니까. 경험상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에서 그 정도로는 고소가 성립이 안 되더라고. 얼마나 좋은 세상에 살고 있는지. 하하. 씨발.”

김진환은 말을 들으며 움찔거렸다. 그러나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김덕수가 목소리를 낮게 깔며 그를 불렀다.

“진환아.”그리고 다시 몸을 숙여 뺨을 가볍게 쳤다.“내 영상이 올라가면 네 유튜버 인생은 끝이야. 경찰이 증거불충분으로 하루 만에 너를 무고한 시민이다! 라고 외쳐도 내 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그걸 믿지 않아. 내가 그렇게 만들 거거든. 선동과 날조가 먼저 선수를 치면 나중에 나오는 진실은 신경 쓰지 않는 존속들이 인터넷에는 차고 넘쳐. 걔네는 너를 이민수를 죽인 살인자로 굳게 믿을 거고, 마치 욕해도 되는 권리라도 얻은 양 너와 네 주변의 사람들을 죽일 듯이 욕할 거야. 버틸 수 있어? 내 생각에 너는 못 버틸 거 같은데?”

“저는···민수형을 죽이지 않았어요.”김진환이 힙겹게 입을 열었다. 이 말은 그녀가 알려준 말이 아니었다. 그의 진심이었다. “죽일 생각도 없었고요.”

“그래. 죽일 생각이 없었어? 그래서···아. 아니다. 안 죽였다고 했지?”김덕수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죽였나보다.“근데 있잖아. 진환아.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오로지 중독될 정도로 자극적인 것에만, 응? 그리고 상대적으로 도파민이 철철 흘러넘쳐서 흥분되는··· 그런 거에만 신경 쓴 다~이거야. 응? 진환아.”

“네.”

“내가 올릴 영상이랑 네가 올릴 해명 영상. 뭐가 더 자극적일까? 시청자들이 어디에 몰릴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김덕수의 영상이었다.

“진환아?”

“네.”

“생각해봐.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내가 영상을 올리고 나고 얼마 안돼서···그래. 한 한 달 정도로 할까?”

“네.”

“한 달 뒤에 진짜 살인자가 잡혔다고 치자. 그것도 아니면 네가 살인자가 아니라는 아~주 명확한 증거가 나오고 실종된 이민수가 돌아왔어! 이야~뭐가 됐든 경사지 경사야. 그렇지? 그러면 너는 나를 허위 사실 유포 죄로 고소도 할 수 있고. 응?”

“······.”

“근데. 있잖아. 진환아. 이번에는 상상해봐. 그 한 달 사이에 너한테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진실을 알아낸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응?”

김진환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대답하지 않았다. 김덕수가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변하는 건 없어. 그 한 달 사이에 너를 욕했던 사람들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네가 받았던 모욕의 보상은‘어머, 억울했겠다. 어떡해.’로 끝나.”

‘그렇게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라는 말이 김진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경험적으로, 그는 수긍했다.

“이것도 운이 좋은 경우지.”김덕수가 말했다.“만약 한 달이 아니라 그 이후에 진실이 밝혀지면 이런 것도 못 받아. 사람들은 너를 잊은 지 오래일 거거든. 이미 너를 살인자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네가 관리하는 유튜브 채널을 ‘관심 없음’, ‘추천하지 않음’으로 등록해놨을 거야. 그런 상태에서 영상을 올린다고 노출이 될까? 아닐걸. 알고 있잖아. 유튜브 알고리즘은 한 번 망가지면 끝이라는 걸. 크크. 그러면 뭐 다른 커뮤니티에서 장문의 글이라도 써야겠네? 3줄로는 요약 안 되는 글을 말이야. 사람들이 읽어줄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진환아.”김덕수가 돈을 의미하는 손 모양을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되기 싫으면 나한테 돈을 달라고. 나만 입 싹 닫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거야. 한시연이랑 유튜브도 계속 해야지?”

여기서 김진환이 할 말은 아주 명확했다.

“네.”

“요새 얼마 정도 벌어?”

곧, 매달 천만 원 현금으로. 그리고 그 달에 광고를 했으면 추가적으로 돈을 더 줘야 한다는 구두 계약이 성사 되었다. 구두로 한 것이지만 효력은 어느 계약 못지않았다.

“혹시 몰라서 하는 말인데. 물론! 너는 살인자가 아니지만! 내 목숨은 소중하니까. 응? 이제부터 매일 생방송을 켜서 내 영상 시청자한테 생존 신고를 할게? 너무 떨지 말고. 응. 절대 네 얘기는 안 할 거니까. 우리는 이제, 어? 공범이잖아?”

“네···.”

“한시연한테는 잘 숨기고. 유튜브 잘해. 하하. 다음 달에 보자?”


김진환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는 공황에 빠져있었다. 울먹이면서 한시연의 폼에 안겨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어떻게 됐어?”

김진환은 김덕수와의 일을 모두 말했다. 어순이 어긋나 있어 이해하기 힘들었고, 중간에 공백도 많았다.

“잘했어. 많이 무서웠을 텐데···고생했어. 오빠.”

한시연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과 공백을 그냥 넘어가며 그를 다독이기만 할뿐이었다. 애초에 멍청한 김진환에게 거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김덕수가 요구하는 금액이 예상보다 적어서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최악이라 할 정도로 좋지 않았다. 김덕수.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까다로운 상대였다. 매일 생방송을 해서 생존 신고를 한다니.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고 있는 그를 죽일 수 없지 않는가? 몰래 철물점에서 산 도구들도 쓸모가 없어졌다.

“어떡해. 신고하면···시연아. 미안해. 처음. 만나. 너를···이민수 말고. 음.”

더 큰 문제는 김진환의 상태였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숨도 헐떡였다. 이 상태가 유지된다면 앞으로 유튜브가 어떻게 될 지는 뻔했다.

“괜찮아. 오빠.” 한시연은 붉게 부어오른 그의 뺨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들이 밀었다. “충분히 감당 할 수 있는 액수잖아. 오빠의 안전을 생각하면 오히려 싼 값이야.”

“그, 그래도. 시, 시연. 아.”

“섹스 할까?”

어떻게 얻은 인기인데.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한시연은 천천히 옷을 벗고 몸을 숙여 그의 가랑이에 있는 지퍼를 내렸다. 이게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13.


그렇게 봄이 지나 여름이 왔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듯싶었다. 김덕수는 매달 약속한 돈만 받으면 가만히 있었고, 김진환은 원래했던 업무를 곧잘 해나갔다. 물론 한 달에 한 번 김덕수의 집에 갔다가 돌아오면 김진환의 상태는 급격하게 안 좋아졌지만 그럴 때마다 한시연이 옆에서 달콤한 위로를 해주었기에, 그들은 여름이 끝날 때까지는 매달 천만 원의 손해를 제외하고는 평화롭게 지냈다.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유튜브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가을이 오자 시간은 더 이상 해결사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매달 말에 받는 그 어마어마한 돈을 도대체 어디다 쓰는 건지, 김덕수가 한 달에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김진환에게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버티지 못한 김진환의 정신은 한시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깨지고 부서져버렸다.

겨울이 왔다. 그는 이제 완전히 망가졌다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신 상태가 안 좋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알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했고, 경찰이 자기를 잡으러 올 거라는 불안감에 김덕수가 부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으며, 집 안에서조차 한시연이 옆에 없다면 경찰이 자신을 찾지 못하게 붙박이 옷장 안에 틀어박혀 일을 마치고 돌아올 그녀를 기다렸다.

그는 이맘때쯤부터 그녀에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였다. 그녀가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구원자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가 그를 이렇게 만든 원흉 중 하나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그는 매일 밤 그녀의 치료를 받으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영상의 기획자이자 편집자가 이러니 자연스레 그가 관리하는 유튜브 채널의 성장도 멈추었다. 커플 유튜브 채널은 3달 동안 영상이 올라가지 않았고, 본 채널인 한시연의 유튜브도 110만 이상으로 구독자가 오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채널이 하락세를 걷고 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김진환이 예전처럼 돌아오지 않는 이상 하락세를 맞이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었다.

한시연은 이 하락세를 막기 위해 김진환을 버려야만 했다. 그가 미쳐버린 가장 큰 원인인 김덕수를 죽인다고 해도 (매일‘생존 신고’라는 제목으로 생방송을 진행하는 탓에 죽일 수도 없지만.) 이미 그의 정신은 회복이 불가능 할 정도로 망가졌다. 설령 회복이 된다고 한들 그때가 되면 이미 사람들에게 잊혀 인기 없는 100만 유튜버로 남을게 분명했다. 얼른 버리고 새로운 편집자와 기획자를 찾는 게 하락세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버릴 수 없었다. 정말로 그를 사랑해서는 아니었다. 자신을 100만 유튜버로 만들어준 사람이 김진환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커플 유튜브 채널에서 보여준 그와의 애틋한 연애 과정, 성장을 멈추고 하락세에 접어 들어가는 유튜브 채널이 합쳐지면 사람들은 그녀에게‘배신자’라는 의미를 가진 갖은 욕설을 쏘아붙일게 분명했다. 얼마나? 여태 사력을 다해 쌓아온 인기만큼.

‘차라리 그때 바로 버려버릴걸. 멍청하게.’그녀는 올해 초에 그를 버리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랬으면 어떤 일이 펼쳐졌을지 생각하고 나온 결과였다. 그때는 그의 정신이 비교적 멀쩡해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뱉었으니까. 버림받아 독기가 가득 찬 인간이 폭로를 한다면 배신자가 아니라 살인자로 낙인찍힐 수 있었다.

‘아, 김덕수.’생각이 깊어지자 김진환을 버릴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지금 그는 김덕수가 폭로 영상을 올려도 제대로 된 변호도 하지 못할 정도로 미쳐버렸지만, 살인자와 같이 유튜브를 하고 사귀기까지 했다는, 자신의 인기에 치명적인 사실을 숨기려면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그를 통해 김덕수에게 폭로 영상을 올리지 말라는 돈을 줘야만 했다.

‘어쩔 수 없네.’결국 한시연은 좋은 수가 떠오르기 전까지 김진환을 버리지 않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옛 재주를 활용하여 가지고 있는 인기를 유지하는 것을 택했다. 그녀는 과거의 일이 되풀이되기 전에 좋은 수가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일 밤마다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정성이 닿았던 것일까. 정확히 한 달 후, 그녀의 기도는 결국 이루어졌다.

“여보세요?”

“한시연. 맞지?”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잘못하면 네 유튜버 인생을 끝낼 수도 있는 제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비록 악마가 이루어줬지만.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할까?”


14.


매달 천만 원 이상의 현금을 받으면 호의호식하는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건만, 이슈 유튜버 김덕수에게 돈은 언제나 부족한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저축도 하고 평소에 못 먹었던 음식도 마음껏 시켜먹었다. 그러나 꾸준히 했던 취미 생활이 문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천만 원으로는 한 달도 버티지 못했고, 추가로 돈을 뜯어내야 겨우 집세 정도를 낼 정도가 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하늘의 탓으로 돌렸다. 하늘이 황금알을 낳는 오리를 하사해준 것은 까맣게 잊은 지 오래였다. 그저 취미 생활을 방해하는 하늘이 미울 뿐이다.

김덕수는 돈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를 때가 아니었다. 오리의 유튜브는 성장이 멈췄지만 현상유지는 잘 되고 있고, 조회수도 잘 나오는 편이니까. 아직은 황금알을 얻는 게 더 이익이었다.

“보자···이번 달에는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김덕수는 오리의 유튜브에 들어갔다. 선정적으로 변해버린 오리의 유튜브 채널. 출연자는 오리의 연인만 나왔다. 광고도 끊긴 것 같아 보이고 몇 영상은 수익 제한도 걸린 거 같았다. ‘이번 달은 천만 원도 간당간당 하겠는데?’ 김덕수는 혀를 찼다. 한시연의 몸매에 열광하는 다른 이들과는 정반대의 반응이다. 그는 김진환과 한시연이 채널의 수익을 절반으로 나눈 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문에 매달 받는 황금알의 순도가 낮아져 그녀를 싫어했다.

‘차라리 한시연이 이민수를 죽인 거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양쪽에서 돈을 뜯어낼 수 있고, 남들처럼 이 몸매에 흥분할 수 있었을 텐데. 협박만 잘 한다면 이 섹시한 몸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생각은 상상이 되어 그의 아랫도리를 묵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일 뿐. 몸은 흥분했지만 정신은 그녀를 보고 흥분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 때문에 돈을 더 받지 못한 것에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실뿐이었다. 아랫도리는 아무런 자극이 없으면 자연스레 수그러질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아랫도리가 수그러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김덕수는 이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거니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오늘 할 일인 생방송과 정치권에 연관된 이슈를 다루는 영상을 올리고도 진정되지 않으면 그때는 오랜만에 연락처를 뒤져 한 명을 고르면 됐다. 그 전까지는 돈을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그는 습관적으로 자신의 메일함으로 마우스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때, 그의 눈에 한 메일이 눈에 띄었다. <덕수 형. 한시연 과거 알아?> 라는 매혹적인 제목의 메일이. 김덕수는 뭐에 홀린 듯 그 메일을 열었다. 메일에는 사진 여러 장이 첨부되어 있었다.

“흐하하하!!”메일을 본 순간 그는 웃었다. 아주 흐뭇하게. 아랫도리는 땡땡해질 정도로 부풀었다. 그는 자신에게 들어온 메일을, 정확히는 첨부된 사진을 보고 바지를 내리고 손으로 아랫도리를 진정시켰다.

진정이 되고 난 후, 김덕수는 스크롤을 올려 메일을 자세히 읽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맞아떨어져갔다. 가슴의 점이 판박이 아닌가? 멍청한 한시연. 숨기려면 가슴이 파이는 옷을 입은 영상을 올리지 말았어야지.

메일 첫 문단과 마지막 문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실 나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덕수 형. 내 번호 알려줄게. 더 알고 싶거나 조사할 거 있으면 연락해.>


그는 한시연의 인기가 최절정으로 치달을 때는 건드리기 무서워 가만히 있었으면서, 조금 주춤거리니 자기가 뭐라도 된 듯 나타나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혐오했다. 물론 자기는 이런 부류 사람들이 보내주는 제보를 받아먹고 사는 이슈 유튜버지만, 이것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용기가 없어서 혹은 일이 잘못되어도 책임을 지기 싫어서 자신한테 제보하는 쓰레기들보다는 용기 있게 영상을 올리는 자신이 훨씬 나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김덕수는 전화번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굳이 이런 쓰레기랑 전화해서 조사를 더 하지 않아도 됐다. 그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다. 메일에 있는 사진만으로도 한시연을 협박하기에 충분했다. 시간은 알차게! 어떻게 한시연을 협박해야 하는지 고뇌하는데 써야 했고, 그녀의 연인을 협박할 때와 별 다르지 않는다는 결론은 금세 나왔다.


다음날, 밤새 세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김덕수는 김진환에게 얻은 한시연의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한시연. 맞지?”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잘못하면 네 유튜버 인생을 끝낼 수도 있는 제보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돈 말고도 뜯을게 참 많았다.

“우리 만나서 얘기 좀 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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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서 얘기 하자 24.07.19 7 0 29쪽
4 렉카 유튜버 김덕수 2 24.07.19 7 0 39쪽
3 렉카 유튜버 김덕수 24.07.19 8 0 47쪽
2 내일 가자 24.07.19 14 0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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