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 되기 싫어 도망쳤더니 레어 주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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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돔소짜
작품등록일 :
2024.07.22 06:26
최근연재일 :
2024.07.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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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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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트(re:boot)

DUMMY

서해안고속도로 하행선.


연식이 오래된 아반떼 한 대가 시속 140킬로미터로 2차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를 몰고 있는 강석우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방금 전 3차로를 주행 중이던 화물 트럭 한 대가 차선을 벗어나 자기 차를 덮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비어 있던 추월 차로로 회피 기동을 한 덕분에 충돌을 피했다.


위험했던 순간만 오늘로 벌써 두 번째다.


‘일진이 안 좋다!’


그럼에도 석우가 차량 속도를 줄이지 못하는 이유는, 엄마하고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이모에게 전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니네 엄마가 어제부터 의식이 없다··· 가끔 정신이 드는데 네 이름만 부르다가 또 다시 까무룩 정신을 잃어···


석우는 그런 엄마에게 익숙해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무당이었다.


남들 다 마다하는 지저분한 인연의 굿판도 덥석덥석 받으며 자신을 혹사하길 어디 한두 해인가.


벌이가 괜찮나, 굿이 쉽나, 그러면서도 쉴 날 없이 의뢰받은 굿을 다 치르니 고열을 동반한 의식불명 상태로 사경을 헤매는 게 엄마의 팔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걸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석우였기에 이번에도 늙은 여자가 입덧하듯이 늙은 무당이 신병 앓는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이모 입에서 나온 말이 석우의 뒤통수를 세게 후렸다.


“너 무당 되는 거 막자고, 니네 엄마가 맨날 이 고생하는 게 불쌍하지도 않냐?”


“이모, 그게 무슨 말이야? 무당이라니?”


“너 어렸을 때 맨날 아팠잖아?”


“그건 그냥 감기몸살이었잖아?”


“이런 빙충이를 낳고 니네 엄마 미역국 끓여 드셨나 보네. 아니, 신병하고 감기하고 그것도 구분 못해!”


어렸을 때 제일 듣기 싫었던 말··· 니네 엄마 무당이라며?


그것보다 더 생각하기 싫었던 말··· 당신 아들도 신기가 있나 보네?


왜 남자가 신내림을 받느냐고, 무당은 엄마나 이모처럼 여자가 되는 거 아니냐고 엄마에게 눈물로 하소연하면 엄마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석우야, 너 무당 아니야. 그냥 감기야.”


석우는, 엄마 말을 너무나도 믿고 싶었다.


무당만 피할 수 있다면 뭐든 시키는 건 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재미라곤 하나도 없는 학원도 빠지지 않고 다녔고, 하기 싫은 운동도 열심히 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꾸역꾸역 다 먹고, 술 먹자고 꼬시는 친구도 멀리 했다.


덕분에 서울에 있는 대학 나와 취업하고 평범하게 살았다.


내세울 건 딱히 없지만 이만하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마음가짐도 늘 조심스러웠다.


혹시나 운명의 주재자가 어디선가 날 감시할 것만 같아 밉보이지 않도록 늘 겸손하려고 애썼다.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과, 다니는 회사가 지겨워지기 시작했다는 것 정도?


그런데 이런 노력이 송두리째 부정당하고 있었다.


“이미 무당 된 사람이 평생을 자기 목숨줄 태워가며 대리 신병에 시달렸는데 이제 버틸 재간이 없는 거지. 서둘러 내려와라. 석우 니가 내림굿 받아야 엄마가 나을 거 같아.”


그렇게 말하고 이모는 전화를 끊었다.


이모 말이 맞다면 엄마가 평생 저렇게 산 건 나 때문이다.


빌어먹을!


왜!


도대체!


이 지긋지긋한 연은 끊어지질 않는 건데!


시키는 대로 다 하면서 살았는데,


왜 내가 무당이 되어야 하는데!


석우는 핸들을 쿵 내리쳤다.


그때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하늘에서 뭔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마치 손처럼 생겼는데, 사람 손은 아니고, 뽑기 기계의 집게손?


버스보다 더 큰 집게손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면 과연 믿을 사람이 있을까 싶겠지만 그건 진짜 집게손이었다!


석우가 두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본 그 집게손은 왜 하필!


왜 하필! 석우의 차량 위로 덮쳐 온 걸까?


너무 당황하여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아차, 검은 SUV 한 대가 후면에 바짝 붙어 있는 걸 못 봤다.








딱 세 번의 충격음까지는 들었지만 그 뒤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냥 무당 될 걸 그랬나?’



#



암막 커튼으로 가린 캄캄한 방이라도 자기 몸의 감각이란 게 있기 마련이다.


바스락거리는 이불의 감촉, 베개 쿠션감, 그리고 날숨을 통해 감지하는 ‘나 살아 있구나’ 하는 그런 느낌.


그런데 이 어둠, 이상하다.


신체 감각이 전혀 없다.


누워 있는 거라면 중력감이라도 느껴야 할 텐데, 아무 무게감이 없다.


손가락이 있다면 뺨을 꼬집어서 이게 꿈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팔 자체가 없다.


혹시 얼굴도 없는 걸까, 싶어 움직여보려는데··· 없다, 입도 코도 모두 없다!


그러나 눈은 있는 모양이다.


아까부터 자꾸 두 눈을 찌르듯 괴롭히는 게 있다.


암흑을 배경으로 하얗게 빛을 내는 저것.


친숙한 한글인데, 절대 친숙하지 않은 내용.


---------------------------

인생을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Y/N]

---------------------------


눈을 감으면?


그래도 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눈알을 돌리면?


그래도 글자는 따라온다.


마치 눈동자에 새겨진 문신처럼 눈앞에 그대로 맺혀 있는 글자들.


지금으로선 피할 도리가 없는 것 같다.


지금 석우의 세계에는, 생을 다시 시작할 건지 묻는 질문과, 어둠,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석우의 눈 딱 셋뿐이다.


시지포프가 바위 앞에 섰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눈앞에 바위가 있지만 시지포프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것뿐.


부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고, 타고 올라갈 수도 없다.


석우 역시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고는 끝나지 않는 일임을 깨닫는다.


예스[Y]냐, 노[N]냐.


···근데 생각해 보면 진짜 너무하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고르라니!


석우는 화가 난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누군가 때문에 너무 화가 난다.


‘다시 시작’만을 강요받는 이 기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그 인생이란 게, 또 다시 무당의 아들로 태어나 신내림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그 인생이라면?


무당 되기 싫어 이리저리 피하다가 결국에는 고속도로에서 사고로 죽을 그런 인생이라면?


그게 아니라면 ‘다시’라고 물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시겠습니까?’


최소한 그렇게 물어줘야, 뭔가 삶의 조건이 달라질 수 있겠다고 기대라도 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근데 문구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시겠습니까?


내 인생을 좌우했던 최초의 설정값이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이 더러운 기분.


내 뜻대로 결정된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인생을 반복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문득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떠오른다.


엄마를 살리려면 내가 무당이 되어야 하는구나, 하고 절망적으로 생각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아반떼가 전복하는 순간에 집게손의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기억이 뇌리를 스쳤다.


차라리 그때 죽게 내버려두었다면 좋았을 텐데.


울분은 커지지만 사태는 달라지는 게 없다.


석우는 울었다.


눈물샘이 없어 눈물 없이 울었다.


‘엄마, 너무 힘드네. 미안. 나는 평생을 아무것도 내 뜻대로 선택하며 살아온 적이 없는 것 같아. 행복한 삶이었다면 설령 반복되더라도 한 번 더 살아볼 마음이 들겠지만 ···이건 다시 하긴 좀 싫네. 미안.’


석우가 ‘N’을 골랐다.


딩동 소리와 함께 문자가 바뀌었다.


---------------------------

거절을 선택하셨습니다.

---------------------------


이제 끝이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한 번 울리는 딩동 소리.


---------------------------

거절을 선택한 그대,

[뽑기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새로운 인생으로 그대를 안내합니다.

둘 중 하나를 골라주세요.

---------------------------


석우의 눈앞에 나타난 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


눈물이 쏙 들어간다!


그렇지, 새롭게가 떴다!


조건이 달라질 수 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보기에 등장한 두 개의 선택지는 석우를 좌절케 했다.


---------------------------

1. 아반떼가 아니라 벤츠를 타고 다니는 대한민국 최고의 무당

2. 매일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는 주술사

---------------------------


무당 되기 싫어서 아니요를 골랐더니 무당이 되라고!


이게 어떻게 새로운 인생이야!


그러나 가만 생각해 보면 석우는 무당 후보였을 뿐, 무당이었던 적은 없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생이란 말이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더욱이 아반떼가 아니라 벤츠라면?


석우는 마음이 흔들렸다.


양복 차려 입고, 선글라스 쓰고, 비서 거느리고 다니는 그런 멋진 무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 2번은 뭘까?


시선이 보기 2번으로 향한다.


주술사? 저주로 유명한 부두(boodoo)가 주술 아닌가? 무당이랑 뭐가 다르지?


더욱이 벤츠 이야기는 쏙 빠져 있고, 매일 사건에 시달린다고?


석우는 난감했다.


딱히 둘 중 고르고 싶은 게 없다.


‘차악을 고른다.’


인생을 통틀어 별로 좋은 선택지가 없는 평범남이었던 석우는 짧지 않은 인생에서 배운 교훈 하나가 있었다.


가장 나쁜 걸 피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것.


보기는 두 개뿐이었지만 석우는 이를 4개로 나누었다.


1. 벤츠

2. 무당

3. 사건사고

4. 주술사


이 가운데 무엇이 가장 싫은가?


그런데 생각보다 고르는 게 어렵지 않다.


벤츠에 혹했을 뿐, 결국은 무당이 싫었던 것 아닌가?


물고기들이 그렇게 낚이는 거지?


미끼라는 작은 행복 때문에 죽음이라는 큰 불행을 선택하는 게.


인생이 내게 알려준 건 그런 거다!


석우는 마음을 굳힌다.


‘좋다, 2번이다.’


문자가 바뀐다.


---------------------------

2번 [매일 크고 작은 사건에 휘말리는 주술사]를 선택하셨습니다.

---------------------------


그런데 아무 변화가 없다.


이게 끝이야?


석우가 눈알을 굴리며 다른 문자가 없는지 찾는 동안, 다시 울리는 딩동 소리.


---------------------------

잠시 후 새로운 세계로 출발합니다.

새로운 세계의 이름은 [이름마을(Name Village)]로, 도착까지 10분 정도 소요될 예정입니다.

플레이어는 도착 전까지 캐릭터 스탯을 고를 수 있습니다.

만일 스탯을 고르지 않은 경우, 무작위로 캐릭터 설정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카운트다운과 함께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


이동을 한다면 신체가 가속도를 느끼는 게 보통이겠다.


아무리 눈밖에 없는 석우라지만 창밖의 풍경이 움직이든가 하다못해 바람이라도 느낄 법한데, 그런 건 없다.


그냥 눈앞에 디지털 타이머가 남은 시간을 알려줄 뿐이다.


09:57


09:56


1초씩 줄어드는 것으로 문자가 말한 ‘이동’이 진행됨을 짐작할 뿐이었다.


디지털시계 아래로 새 문구가 뜬 것은 그 직후였다.


---------------------------

종족을 고릅니다.

1. 인간

2. 짐승

3. 귀신

4. 외계인

---------------------------


이게 뭔가 싶은 보기들.


아니, 외계인까지는 좀 고려해 볼 만하겠지만 짐승하고 귀신은 뭐지?


석우는 별 고민 없이 1번 인간을 선택한다.


연이어 다음 선택지가 뜬다.


---------------------------

성별을 고릅니다.

1. 남자

2. 여자

3. 여자 같은 남자

4. 남자 같은 여자

---------------------------


이쯤 되면 좀 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여자라면 생각해 보겠지만 여자 같은 남자, 남자 같은 여자는 뭘까?


여자로 살아보는 건 좀 고민스러운데, 아니다!


새로운 삶인데 새로운 연애가 없으란 법은 없지!


석우가 남자를 고르자 문자가 바뀐다.


---------------------------

연령을 고릅니다.

1. 10대

2. 20대

3. 30대

4. 40대

5. 50대

6. 60대

7. 70대

8. 80대

---------------------------


아, 쫌!


아무리 그래도 70대, 80대는 뭐야!


잘 봐줘도 누가 40대 이상 고르겠어?


석우의 죽기 전 나이는 35살.


인생 경력이 긴 건 아니지만 20대부터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특히 20대는 여러모로 아프다.


약간은 철없는 나이가 되고 싶다.


좀, 욕심이 지나친가 싶지만 석우는 10대를 골랐다.


기왕이면 신체 왕성한 17세 정도면 좋겠다 싶다.


···그렇게 신체 스탯을 고르기 시작하는데 이거야 원, 끝이 없다!


몽골인 평균 시력 4.0을 고를 때만 해도 신이 났다.


안경 해방이라니!


다리 길이, 몸무게, 근력 정도를 고르는 일도 즐거운 선택이었다.


머리 크기, 피부색, 피부톤도 모두 전과 달라진 모습을 기대하며 골랐다.


그런데 신체 부위 어느 곳에 털이 몇 개인지 고르라는 얘기나, 점의 개수와 위치를 고르라는 얘기부터는 조금씩 지치기 시작했다.


또, 남자의 거기 생김새와 길이, 두께도 정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하나가 괜찮으면 다른 하나가 별로여서 고민이 깊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르고, 또 고르다 보니 도착까지 시간은 1분밖에 남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골라야 할 신체 스탯은 이어졌다.


다급해졌다.


신체 스탯 고르다 끝이라니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주술사라며?


뭔가 스킬도 줘야 하잖아?


남은 시간 10초.


그때 딩동 소리와 함께 드디어 기다리던 스킬 문구가 떴는데···


---------------------------

주술사 스킬을 부여합니다.

1. 스마트폰

---------------------------


잉?


스마트폰이라니?


이게 무슨 스킬이라는 거?


선택지도 없잖아?


오류인가?


아닌 것 같다.


문구 아래 주의사항이 하나 적혀 있다.


---------------------------

* 스킬은 최초 하나만 부여되며, 플레이 중에 새로운 스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


제길!


연예인이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신체 스탯만 주구장창 고르다가 딸랑 스킬 하나 주는 게 뭐, 스마트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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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되기 싫어 도망쳤더니 레어 주술사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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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딸을 찾아주세요 24.07.23 20 0 12쪽
» 리부트(re:boot) 24.07.22 3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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