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나니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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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희
그림/삽화
윤종희
작품등록일 :
2024.07.23 08:31
최근연재일 :
2024.09.19 10: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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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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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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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이틀 밤 사흘 낮

DUMMY

최이현의 집.......



“내가 안 그랬어.......”



모작도 황당하다는 듯이 꺽쇠에게 하소연한다. 그가 담 넘어 들어왔을 때는 이미 상황이 끝난 후였다. 윤서가 증인이다. 그녀 역시 이들보다 일각(15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부모를 구할 수 없었다.


조찬한의 짓이다. 모작은 희생양이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 현장에 두어야 했고 그의 칼이 필요했을 뿐이다. 피가 흐르지 않게 정확히 급소에만 칼자국이 나 있는 걸로 봐선 몽골족 사람들 짓이다. 조찬한이 보낸 몽골 살수이다.


여기를 떠야 한다. 모작을 따라온 용병들은 막란이 없앴지만 조찬한이 추격할 것이다. 모작의 짓이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는 윤서도 데려가야 한다. 죽은 최이현을 붙잡고 하염없이 슬픔을 토해내는 윤서를 꺽쇠가 강제로 떼어 낸다.


“아씨 여기를 벗어나야 합니다.”


“안됩니다. 아버님 어머님을 두고.......”


“대감마님을 해한 자들이 다시 올 겁니다. 위험해요.”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토포사 조찬한의 짓입니다.”



모작을 믿지 못해 몽골 용병을 투입한 것이라고 윤서에게 설명한다. 그러나 윤서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다. 부모가 눈앞에서 자객의 칼에 죽어 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제멋대로 세상을 살아도 아버지 최이현은 다 받아 주었고, 그녀가 기침이라도 하면 세상 다 잃을 듯 밤새 지켜준 어머니였다. 아버지가 반위에 걸려 자식 된 도리로 간병을 하려했는데....... 하늘이 무너지고 가슴이 찢어진다.



“모두들 피하세요. 부모님을 이대로 둘 순 없어요.”



윤서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녀만 남겨두고 철수하려는데 인기척이 들린다. 모작이 반사적으로 쪽문 뒤에 숨는다. 관군들의 소리....... 조찬한의 무리다. 막란이 윤서의 입을 틀어막고 강제로 나무 뒤에 숨는다. 모작이 빨리 피하라고 손짓을 한다. 꺽쇠도 막란에게 먼저 가라고 신호를 준다. 윤서를 데리고 자리를 피하는 막란.......


조찬한이 밖에서 자신의 몽골 용병들이 죽은 것을 확인한다. 백정 놈을 죽여야 한다. 관군들을 이끌고 집 안으로 들이 닥친다. 이들 앞으로 모작과 꺽쇠가 버티고 있고 그 뒤로 막란과 윤서가 도망가는 모습이 보인다.


조찬한의 명령대로 일시에 모작과 꺽쇠에게 달려드는 관군들....... 모작이 백정의 칼로 관군들을 베어 나간다. 짐승 외에 한 번도 칼을 휘둘러보지 않은 모작이다. 낙엽처럼 쓰러지는 사람들의 눈을 본다. 죽음을 맞이하는 눈들이 모작의 가슴에 슬픔으로 꽂힌다. 그의 칼이 점점 힘이 빠진다.


도망가는 막란과 윤서를 관군 서너 명이 쫒는다. 윤서가 짐이 된다. 그래도 관군들에게 넘길 수는 없다. 그녀가 모작의 결백을 증명해서가 아니다. 처음 본 순간 신분의 차이로 넘볼 수 없는 아름다움에 절망했지만, 지켜줄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기에 막란은 그녀의 곁에 남기로 한 것이다.


모작이 칼을 맞는다. 아니 칼을 받았다. 모작은 백정의 칼을 버리는 대가로 관군의 칼에 베인다. 꺽쇠가 죽어가는 모작을 등지고 결사적으로 관군들과 싸운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한 없이 밀고 들어오는 관군들.......


막란은 윤서와 떨어져 관군들을 상대한다. 그녀를 위해 짐승에게만 사용하라는 모작의 말을 지키지 못하고 관군들을 순식간에 베어 버린다. 얼굴에 관군들의 피로 덮여져 헉헉거리는 막란의 눈에 살기가 가득하다.


그런 막란을 보고 무서워 뒷걸음치는 윤서. 그런 그녀의 뒤에서 갑자기 관군이 나타나 윤서를 덮치려 하자 막란이 칼을 던져 쓰러트린다.


꺽쇠도 힘이 부쳐 관군들에게 위기에 빠지는 순간 모지리가 화적들과 함께 들이닥친다. 조찬한과 거리를 두고 따라온 것이다. 싸움은 순식간에 역전되어 조찬한의 무리가 밀리기 시작한다.


꺽쇠는 모작을 데리고 안전한 곳에 옮겨 누인다. 그러나 가슴을 칼에 베인 모작은 숨이 가빠지고 팔 다리에 힘이 빠져 나가고 있다.



“모작 아우 정신 차려!”


“형님 어서 피해요.”



모작 겨우 말하고 눈을 감는다. 거친 숨이 잦아들며 눈꺼풀이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린다. 꺽쇠가 모작을 안고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고맙네....... 내 아내를 사랑해 줘서.”



꺽쇠는 모작이 자기 아내를 사랑해서 떠나지 못하고 백정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작이 막란을 기꺼이 맡아 자식처럼 키웠던 이유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 오는 꺽쇠의 아내를 보며 평생 해바라기로 살아왔던 것을.......



“잘 가.......”



바우 엄마를 만나서 가정을 꾸려 보기도 하였지만, 꺽쇠아내에 대한 연정은 모작의 가슴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화적들이 조찬한의 무리들을 쫒아내고 집안 곳곳에 불을 놓는다. 관군들과 싸워 죽은 동료의 얼굴과 신분을 가리기 위해서다. 관군들이 언제 또다시 인원을 보충해서 쫒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철수를 해야 한다. 꺽쇠도 모작을 놓아야 한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이 모작의 얼굴을 덮는다.



“거기서 내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아.......”



저승에서는 자기 아내를 평생 사랑해 주었던 모작에게 양보해 주고 싶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다. 꺽쇠가 모작의 손을 놓으려는데....... 꺽쇠를 잡은 모작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자기 마음을 알아준 꺽쇠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처럼....... 눈꺼풀이 떨리는 것도 멈추고 모작의 손이 꺽쇠의 손에서 힘이 풀리면서 빠져 나간다.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막란을 보고 윤서는 겁에 질려 말뚝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관군들의 피로 덮인 얼굴로 막란이 그녀에게 다가간다. 윤서를 노려보는 막란의 눈이 피로 반쯤 가렸다. 윤서가 자기도 모르게 소매로 막란의 눈을 닦아 준다.



“고맙습니다. 살려줘서.”



비록 꼽추이나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화적이다. 일단 비위를 맞춰 부모님 같이 비명횡사하는 일은 모면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님을 죽인 놈에게 복수할 기회가 생기니까.......


그래도 살려준 걸 고마워 할 줄 아는 처자이다. 부모가 죽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안쓰럽고 불쌍하다. 비록 재상의 딸이긴 하나 나와 같이 언제 목숨이 달아날지 모르는 위태한 세상에 살고 있다. 백부인지 뭔지 하는 놈은 그녀의 부모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녀는 내가 지켜야지.......



“업히세요!”



다리가 풀려 한 걸음도 걷지 못하겠다. 남녀가 유별해도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상관없지 않은가....... 더구나 싫다고 하면 이 무지막지한 화적 놈이 또 어떤 욕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괜찮지만....... 정 원하신다면 업으세요.”



윤서를 업었다. 깃털처럼 가볍다. 땅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를 위해 허리를 더 숙였다. 한참을 가니 무거워 진다. 잠이 들었나 보다. 좋은 것도 한 순간이라는 것을 막란이 비로서 깨닫는다.


꺽쇠가 모작을 방에 옮겨놓고 불을 지른다. 모지리를 비롯한 화적들은 이미 떠났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자신보다 더 아내를 사랑했던 모작을 이젠 놓아주어야 한다. 산으로 향하는 꺽쇠 뒤로, 모작은 연기가 되어 밤하늘로 날아간다.




*




토포사 조찬한의 관청.......

화적이 든 참봉집으로 갔던 관군들도 대부분 죽고 몇 명만 살아 돌아왔다. 조찬한의 무리도 최이현의 집에서 화적의 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고 도망치듯 돌아왔다. 사주한 백정을 도운 놈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한다.


참봉집으로 유인하려던 놈들도 한패임이 분명하다. 최이현을 죽인 백정을 용병으로 없애려한 계략을 알아채고 먼저 선수 친 것이 분명하다. 참봉집으로 유인한 놈들부터 쫒아야 한다.


조찬한은 서둘러 관군들을 모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솔개와 돈두의 무리들을 쫒는다. 화적들은 처음부터 관군들을 유인하려 흔적을 남겼다. 참봉집을 불태우고 일정간격으로 일반 백성의 집을 태워 쫒기 쉽도록 길을 안내한 것이다.


관군들이 당한 계곡에 도착했다. 퇴로를 막으면 도망갈 길이 없었다. 더구나 계곡이 깊어 달이 뜬다 해도 밤에는 칠흑처럼 어둡다. 오랜 산속 생활에 익숙한 놈들은 밤눈이 밝은 것을 이용해, 관군들이 안으로 들어오면 그물을 쳐 난도질했음이 분명했다.


오래되지 않은 발자국이나 놈들의 똥오줌 등을 발견해서 흔적을 쫒는다. 아무리 화적들이라도 먹은 것은 배설할 것이다. 인간의 똥오줌은 백보가 떨어져도 냄새가 진동한다. 화적 놈들 무엇을 쳐 먹었는지 양이 많고 산에 질질 흘려 놓아 코가 마비될 정도다. 놈들은 길이 없는 곳을 이용해 이동했다. 같은 곳을 다시 찾지 않았다. 한쪽으로 움직이지 않고 퍼져서 이동한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화적 놈들의 흔적이다.




*




최이현의 집.......

관군들이 뒷정리를 끝내고 타다 남은 대문을 고쳐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 못질하고 있다. 최이척이 수하들과 나타난다. 재만 남은 최이현의 집을 보고 아연실색한다.


그는 간밤에 명나라 파병문제로 임금이 급히 불러 궁으로 들어가야 했다. 최이현 집에 가까이 있는 그의 관심을 궁으로 돌린 것이다. 조찬한의 부탁으로 장인 윤호산이 한 짓이다. 그 뒤에는 임금이 비호하고 있다.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는 것을 최이척은 알고 있다.


최이척을 알아본 관군들이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한다.



“간밤에 도적이 들었습니다. 저희들도 막아보려 했으나 좌상대감과 마님이 그만 놈들에게 당하셨습니다.”


“너희들의 피해는 얼마이냐!”


“출동인원 구 할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생각 외로 조찬한의 꾀가 뛰어나다. 관군들의 피해를 많이 입게 하여 자신을 향한 의심을 피하려 들었다.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간밤에 이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일 것이다. 집에서 급히 온 연통에 의하면 윤서가 이곳으로 왔다고 하는데, 죽은 사람들 중에는 윤서가 없다. 조카 윤서를 찾아야 한다. 윤서는 조찬한 일당이 한 짓을 알고 있을 것이다.




*




화적의 산채.......

모작의 이야기를 들은 막란이 대성통곡한다. 백정으로 살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길가의 풀 한포기도 함부로 밟지 않고, 배고픈 자에게는 허기를 때울 것을 주고, 추운 자는 입은 것을 벗어 줄 수 있는 세상 착한 사람이다. 막란에게도 아비 꺽쇠를 대신해 각별한 애정을 주었다. 자신의 아들 바우보다도 더.......


어미를 잃고 아비 같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막란의 모습을 보며, 윤서도 같이 슬퍼해 주었다. 막란이 가슴을 치며 울분을 토할 때, 윤서도 주저앉아 땅이 꺼지듯 엉엉 울었다. 나중에는 서로 붙잡고 죽은 이들을 부르며 슬퍼했다.




*




화적의 산채에서 얼마 떨어진 어느 산기슭.......

이틀 밤을 움직이고 사흘 낮을 대기하면서 조찬한의 무리가 화적의 산채에 접근했다. 임시로 만든 움막이지만 백여 채 정도 되는 규모에 놀란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옮겨온 듯하다. 더구나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들어가는 입구도 좁아 매복이 있다면 침략할 수 없는 천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조찬한은 밤을 이용해 몰래 삼면의 절벽으로 올라가 포위를 해서, 화살로 마을에 불을 놓아 화적들이 출구로 나오면, 대기하고 있던 관군들이 몰살시킨다는 계략이다. 일단 장인 형조판서 윤호산에게 지원 요청을 한다. 인원은 지금의 곱은 있어야 하고 절벽으로 올라가려면 사다리 수 십 개가 필요하다. 사다리와 사다리를 연결해 올라가면 된다.


들어갈 수 없으면 나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조찬한이 사주한 백정과 소통하고 있는 놈들이다. 최이현을 암살하는데 현장에 있었던 놈들이니 모조리 말살시켜야 한다. 화적들과 함께 있는 윤서도 없애 후한을 없애야 한다.


다시 이틀 밤 사흘 낮이 지났다. 인원이 보충되고 사다리도 마련되어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그믐밤을 기다린다. 때가 되어 놈들이 나오는 길목을 관군들을 겹겹으로 배치하고, 밤안개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벽으로 수십의 관군들이 오른다.


모두가 잠든 칠흑같이 어두운 밤....... 불화살이 높이 솟구치고 누군가 ‘관군이야!’ 하는 소리와 함께 집집마다 연결되어 있는 종소리가 요란히 울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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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어느 부부의 이야기 24.07.24 43 0 11쪽
13 삼월 열 이틀 24.07.24 36 0 12쪽
12 돌밭이네 어여 바라쉬! 24.07.24 39 0 12쪽
11 슬픔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어지다 24.07.24 4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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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장독을 깨다 24.07.24 41 0 12쪽
7 간장종지와 봄동나물 24.07.24 41 0 12쪽
6 동백꽃 피어 있는 마당에 24.07.24 45 0 14쪽
5 메추리 한 마리 24.07.24 53 0 12쪽
4 눈 위에서 길을 찾다 24.07.24 62 0 13쪽
3 달 밝고 별이 많은 밤에 24.07.24 89 1 12쪽
2 아내가 죽었다 24.07.24 140 1 15쪽
1 까마귀 날아오르다 24.07.24 28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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