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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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컨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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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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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쿨라의 결단, 새로운 로마황제

DUMMY

<44>


“어떻게 되고 있느냐?”


흰머리, 쭈글쭈글한 주름, 그리고 얼굴 곳곳에 생겨난 노화의 흔적들.


촛불 하나가 밝히고 있는 서재.


어느덧 목이 앞으로 조금 굽은 세네카는 펜을 들고서 뭔가를 파피루스에 쓰다가 고개를 들고서 쿨라를 쳐다봤다.


낡은 망토 두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있는 쿨라.


아그리파 호숫가에 있는 이곳 별장은 세네카가 종종 찾는 곳.


그러나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여 주로 밤늦은 시간대에 서로가 만날 수 있다.


최근 들어선 야경꾼들이 이 주변에 몰려들면서 시선을 피해 이곳까지 오는 게 쉽지 않다.


조금 전, 부총관 바르카의 도움으로 이곳에 몰려 있던 야경꾼들의 시선을 분산시킨 뒤, 쿨라는 부랑자 모습을 하고서 기어이 별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


“카리우스님께선 대장간에서 계속 숙식하고 있고, 마르쿠스님이 호출하면 만난 뒤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무기를 제작한다며?”


“얼마 전까진 식기 제작에 몰두했으나 최근엔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강철 생산을 하고 있고, 이걸 바탕으로 각종 무기와 무구 제작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로마군단에 납품할 것들인가?”


“그건 아닙니다. 로마군단에 납품하는 무기들은 기존 방식대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검투사들이 받은 검이 명검이라고 했던가?”


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릭수스와 세베루스가 그런 검을 선물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기들도 그런 수준인가?”


“몇 번 제가 확인해봤는데, 그에 걸맞은 수준들입니다.”


그러자 세네카의 눈빛이 조금 싸늘해진다.


“그런 강력한 무기들을 사적으로 소유한다는 건, 로마에 큰 손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쿨라는 반발했다.


"그런 무기를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지금 이 상황에선 카리우스님이 위험해집니다. 로마군단은 그런 무기들이 없더라도 충분히 강합니다. 세네카님, 제발 모른 척 해 주십시오."


"으음. 그렇다면, 그 무기들을 은밀하게 제작하는 목적은?"


"똑똑한 분이다 보니, 아무래도 로마를 떠난 이후, 그 이후의 상황을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암살자들은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니까. 로마를 벗어난다고 해서 위험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지."


"세네카님! 그래서 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낡은 두건을 깊이 눌러 쓰고 있는 쿨라.


그의 짙고 새카만 눈썹이 꿈틀거린다.


늘 무표정하던 쿨라의 표정이 지금 다변하고 있다.


"앞으로 폐하께선 세네카님의 모든 걸을 빼앗아갈 작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대로 당하실 작정입니까?”


그러자 고개를 숙이며 다시 펜을 들고서 뭔가를 쓰는 세네카.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세네카는 피식 웃었다.


“자넨 일개 상인 주제에 정치에 큰 관심이 있군.”


“송구합니다. 세네카님. 하지만 저는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근위대장 티겔리누스는 앞으로 검투사 경기의 전권을 빼앗아갈 생각인 것 같습니다. 내일 저에게 독대할 시간이 주겠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생사의 결정을 하라는 뜻이겠죠."


어느덧 이틀 앞으로 다가온 검투사 제전. 그 준비 때문에 쿨라는 번번이 황궁 근위대장 티겔리누스를 만나야 했다. 그때마다 티겔리누스는 검투사 경기 주관 권한을 자신에게 양도하길 요구했고, 이제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전언을 근위대 대원을 통해 보내왔다. 문제는 권력 양상이 바뀐 터라 그 요구를 함부로 거부할 수가 없다. 자신이 거절하면, 어떤 수순으로 그 요구가 관철될지 너무나도 뻔하기 때문.


티겔리누스는 아마 자신이 뇌물을 바친 원로원 의원 명단을 확보한 뒤, 부정부패 혐의로 칼을 휘두를 수가 있다. 그런 명분에 걸려들게 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아직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진행형일 뿐이다.


그러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현자만이 하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지금 상황에선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로마를 떠날 생각만 하는 카리우스.


점점 나약해지고 있는 세네카.


그 사이에 끼어있는 자신.


물론, 이런 격변기가 영원히 없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나, 다만 이전과 좀 달라진 것은 이 시점 자체가 굉장히 아쉽다는 점과 새로운 강철 사업이 시작되는 시점에 모든 게 위축될 거라는 예상은 쿨라의 마음을 무척 무겁게 만들었다.


본래 상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는 것. 그래서 쿨라는 다시 물어봤다.


-----


“세네카님! 정말 이대로 당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나 세네카는 쿨라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로마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라면 이 몸뚱이 하나가 뭐가 중요한가. 난 이미 늙었어. 로마를 위해서라면 이 몸뚱이 정도는 바칠 수 있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시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로마가 이토록 안정된 것은 오로지 세네카님이 있어서입니다.”


“쿨라, 넌 똑똑한 녀석이다. 자신을 숨길 수 있는 자는 비범한 자야. 허나 그 똑똑함은 반드시 로마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세네카님! 당신을 죽이려는 폐하의 뜻이 정당하다는 것입니까?”


“폐하께선 장성하셨고, 스스로 로마를 통치하길 원하신다. 이건 오래전부터 진행된 일이고, 나 같은 구세대는 사라져야 하는 게 순리다.”


“그렇다면 로마를 지키신 부루스님이 그런 식으로 살해당하신 게 정당한 일입니까?”


쿨라가 계속 따지자, 세네카의 표정이 저절로 굳어진다.


“마르쿠스님에 대한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로마를 지키신 분들이 그런 처지가 되는 게 당연한 일입니까?”


그러자 세네카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자신이 작성한 파피루스를 돌돌 말아 쿨라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나한테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이건 자네가 마르쿠스에게 전해주게. 검투사 제전이 끝날 무렵, 폐하께선 개전 선포를 하시면서 브리타니아 총독 파견에 대한 것도 그때 명하실 거네. 마르쿠스가 로마를 떠나면, 그걸 그때 건네주면 되네. 그리고 이건 카리우스에게 건네주게.”


이번에는 자신의 인장을 힘껏 찍은 뒤, 그 파피루스를 돌돌 말아 쿨라에게 내밀었다.


“이건 임명장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살아남기 위해선 로마에 헌신하는 길밖에 없어. 갈리아 파견 임명장이네.”


순간, 흠칫 놀라는 쿨라.


“그나마 파르티아 전쟁의 본거지가 될 시리아 속주보단 낫겠지. 갈리아 군단으로 가서 군을 두루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이 될 거네. 그리고 갈리아는 브리타니아와 그리 멀지 않으니 기회를 봐서 브리타니아로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고."


그러니까 이 파피루스는 바로 갈리아 속주 로마군단에 배속되는 백인장 임명장이었다.


이런 임명장을 들고서 갈리아 군단으로 가게 되면, 당연히 그 군단에선 카리우스를 받아줄 것이다.


세네카의 권력은 아직 소멸된 게 아니다. 또한, 세네카가 실각하더라도 이런 작은 임명장 정도는 계속 유효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넨 당분간 티겔리누스의 밑으로 들어가 목숨을 부지하도록 하게. 그게 자네의 살 길이야.”


그렇듯 평화적으로 모든 걸 정리하려는 세네카.


그 모습에 쿨라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역시 세네카는 온건파이자 진정한 친황파, 로마의 충신이다.


안토니아 공주를 구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충신.


그래서 그 모든 게 물 흐르듯 흘러가는 듯하지만, 쿨라의 입장에선 발등에 갑자기 큰 불이 떨어진 격이다.


“밤이 깊었으니 자넨 이제 나가보게. 앞으로 자넬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아. 그간 고마웠네.”


그 말에 쿨라는 깊이 탄식한 뒤 머리를 숙였다.


세네카에 대한 답답함, 그리고 현 상황에 대한 울분.


그러나 세네카가 저런 태도를 견지한 이상, 자신에겐 더는 방법이 없었다.


-----


"어떻게 됐습니까?"


한적한 숲 속.


저 위 하늘 위에 핏빛 그믐달이 떠올라 있다.


그래서 숲은 더 어둡다.


낡은 망토 두건을 깊게 눌러 쓴 쿨라.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부총관 바르카를 쳐다본 뒤 다시 좌우를 살폈다.


어느덧 야경꾼들의 청동 호루라기 소리가 사라졌고, 바르카는 추격하던 그들을 멀리 떼어 놓은 모양이다.


"우선, 돌아가자."


"그럼 제가 주변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바르카가 먼저 움직였다.


그사이 쿨라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걸었고, 내내 그의 머릿속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선, 대장간으로 가야겠어.'


다시 카리우스를 만나야하고, 그와 뭔가 대화할 필요가 있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 뿐만이 아니라 어느덧 검투사 제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터라 뭔가 대비책도 필요하다.


그러면서 쿨라는 이런저런 생각들도 계속 이어나갔다.


역시 지금 상황은 무척 난해하다.


카리우스의 혈통을 알고 있음에도 함부로 나설 수가 없다.


세네카의 예상대로 그 누구도 젊은 황제를 거역할 수가 없다.


로마 시민들은 젊은 황제에게 열광의 환호를 보내고 있다.


특히, 수시로 검투사 경기를 열어주는 황제에게 로마 시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거기다가 별다른 정치적 실책도 없는 황제.


지금 상황에선 무조건 황제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렇다면 결국 세네카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굳어 있던 쿨라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쿨라는 갑자기 멈춰섰다.


정말 중요한 순간에 떠오른, 정말 기막힌 비책.


반란을 일으키지 않되,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카리우스가 황제가 될 수 있는 길.


그 비책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45>


“페르투스님! 저 갈대숲 너머에 세네카님의 별장이 있습니다. 야경꾼들이 주변을 지키고 있으니 접근하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신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그리파 호수.


그믐달이 호수 물살에 어렴풋이 자리잡고 오늘따라 유독 안개가 짙은데,


야경꾼 복장에 허리에 검을 소지하고 있는 페르투스는 날카로운 눈으로 갈대숲 너머의 한적한 별장을 쳐다봤다.


황궁 근위대 대대장이자 법무관 마르쿠스의 차남인 페르투스가 서 있는 곳은 거대한 뗏목.


껍질이 벗겨진 나무들을 이어서 만든 투박한 뗏목.


근위대 대원들은 천천히 노를 저으며 뗏목을 움직였고, 그사이 갈색빛 머리카락의 페르투스는 아그리파 호숫가를 예의주시하듯 살폈다.


그러나 안개와 호숫가 수풀 때문에 세네카의 별장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눈을 떼지 않고 주시하던 페르투스.


갑자기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별장.


어두운 그늘 사이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왔고, 빠르게 숲으로 사라졌다.


“벤툼! 봤느냐?”


페르투스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그러자 근위대 백인장 벤툼은 정색하며 그쪽을 쳐다봤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무언가.


호숫가의 짙은 안개마저 그 무언가를 금방 감추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찰랑이는 물소리 뿐.


"도대체 야경꾼들은 어디에 있어?"


눈매가 일그러진 페르투스.


재빨리 그 주변을 계속 주시하며 살펴봤으나 뭔가가 나타났다가 사라졌으나 어떤 청동 호루라기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결국, 야경꾼들은 그 주변에 없다는 뜻.


참을 수가 없는 페르투스가 즉각 호수에 뛰어들려고 하자, 벤툼이 페르투스의 팔을 잡았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그사이 근위대 대원들은 재빨리 노질을 했고, 뗏목이 뭍에 닿자마자 페르투스는 훌쩍 뛰어 쏜살같이 달렸다.


갈리아 군단에서 큰 전공을 세웠던 페르투스.


그는 무척 날렵하다.


그 모습에 백인장 벤툼 등도 재빨리 뗏목에서 벗어나 페르투스를 뒤따랐다.


그러나 너무 빠른 페르투스를 따라잡기 힘들다.


백인장 벤툼은 씩씩거렸고, 그러면서 인상을 썼다.


황궁 근위대장 티겔리누스는 야경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세네카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그런데 세네카의 별장을 감시해야 할 야경꾼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고, 그들의 횃불조차 보이지 않았다.


벤툼은 다시 뛰었고, 마침내 어둠 속 숲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페르투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페르투스님!"


"여기 발자국들."


지금 페르투스는 뭔가 발자국들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벤툼은 황급히 다가갔다.


그 역시 그 족적을 쳐다봤으나, 별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저 어수선한 발자국만 남아있을 뿐.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다른 외부인을 발견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 누군가를 이미 놓친 것이다.


-----


“흠. 페르투스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혹시 아까 봤던 게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안개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고, 저것 역시 야경꾼들의 발자국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어둠 속에 있는 뭔가를 계속 주시하게 되면, 이때 시야가 교란되어 헛것을 볼 수도 있다. 벤툼은 그걸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페르투스는 좌우를 살피더니 차갑게 고개를 저었다.


시력이 뛰어난 자신. 자신이 절대 잘못 볼 리가 없다. 다만, 아쉽게도 거리 때문에 지체되었고, 그 때문에 뭔가를 놓친 것 같다.


다만, 당혹스러운 점은 야경꾼들이 주변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들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순간적으로 페르투스는 갑자기 화가 났다.


이런 중요한 일들을 정예 병력에게 맡기지 않고, 한낱 야경꾼 따위에 맡긴 것 자체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티겔리누스. 황궁 근위대장의 명령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걸 감히 따질 수는 없다.


“페르투스님, 저흰 감시 업무가 아니라 확인차 이곳에 온 겁니다. 이쪽 발자국들을 보면 여기에 야경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정인지 그들이 돌아오면 물어보면 될 겁니다. 잠시 기다리시지요."


그러나 페르투스는 그 의견에 절대 동의할 수가 없다.


생사가 엇갈리는 전장. 그런 곳에서 첩자가 출몰하고 사라지는 것은 아주 흔한 일. 그러나 그 첩자를 놓치게 되면, 다음 전투에서 아군의 생사가 갈릴 수도 있다. 귀족가 출신으로서 전투 경험이 없는 벤툼 같은 자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금 여기 서서 마냥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벤툼. 너는 지금 즉시 달려가 티겔리누스님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


그러자 벤툼은 뭔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썼다.


“페르투스님, 좀 더 기다려 보심이 어떻습니까? 상황이 어떤 건지 확인하고 대처하는 게 맞습니다. 페르투스님은 근위대 경험이 아직 없으셔서···."


그 순간, 페르투스는 즉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서늘한 검날이 번개같이 벤툼의 목에 닿자 벤툼은 놀라며 눈이 커진다.


근위대 경험보다 더 심한 걸 전장에서 경험했던 페르투스. 그는 지금 상황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티겔리누스가 무척 두려워하는 세네카. 그 세네카가 뭔가를 꾸미고 있다면, 앞으로의 일들이 무척 복잡해질 수 있다.


더군다나 검투사 제전이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


그래서 아주 사소한 것까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항명할 생각인가?”


싸늘한 일갈.


그러자 놀란 벤툼은 황급히 뒤로 물러서며 팔을 쭉 뻗으며 경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페르투스님. 지금 즉시 티겔리누스님에게 이 사실을 전하겠습니다.”


괜히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어 벤툼은 황급히 뛰어갔고, 페르투스는 다른 근위대 대원들에게 서둘러 지시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나와 함께 수색을 진행한다! 수상한 자가 있으면 호루라기를 불어 그 위치를 알려라!”


다시 페르투스는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다른 세 명의 대원들도 각자 흩어져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사라진 인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횃불을 든 야경꾼 무리가 숨을 헐떡이는 모습으로 숲에 나타났다.


이때 그들은 페르투스를 불청객으로 생각한 듯 일제히 포위했으나 야경꾼들의 우두머리가 다행히 페르투스를 바로 알아봤다.


그 우두머리는 깜짝 놀라며 다가와 페르투스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다른 야경꾼들은 무기를 아래로 내렸고,


포위되어 있던 페르투스는 굳은 표정을 하고서 그들을 노려봤다.


솔직히 페르투스는 답답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야경꾼들은 역시 오합지졸.


안타까운 점은 황궁 근위대장 티겔리누스가 저들을 신뢰한다는 것.


물론, 저들은 밤을 지배하며 각종 정보를 가져오고, 티겔리누스의 요구를 언제든 들어주는 노예들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저 오합지졸일 뿐. 누군가의 유인책에 빨려 들었고, 정작 중요한 방문자를 놓친 것이다.


“책임에 대해선 지금 논할 때가 아니다! 지금부터 다시 주변 일대를 수색한다! 절대 지금처럼 우르르 몰려다녀선 안 된다! 2인 1조로 각자 다른 방향을 수색하되, 발견하면 즉시 호루라기를 불어 그 위치를 알려라!”


페르투스의 일갈에 횃불을 든 야경꾼들은 2인 1조가 되어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졌고, 여기저기 수색을 진행했으나 문제는 대응이 너무 늦었다는 것. 뒤늦게 수색을 해 봤자 그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슴푸레 동이 텄고, 결국 수십 명의 황궁 근위대 대원들은 세네카의 별장으로 몰려왔다.


그들이 왔음에도 페르투스의 표정은 좋지 못하다.


누군가를 놓친 것도 문제지만, 벤툼이 가져온 티겔리누스의 전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늦은 감이 있기 때문.


'이제서야 철통같이 에워싸라고?'


티겔리누스의 명령.

삼촌이지만 너무 허술하지 않은가.

하긴, 삼촌 티겔리누스가 모든 일에 있어서 칼 같은 아버지 마르쿠스와 같을 수가 없다.

타인에게 엄격했고 본인에겐 더 엄격했던 아버지 마르쿠스.

외삼촌 티겔리누스는 그저 운좋게 근위대장이 된 사람일 뿐.

그 꼼꼼함의 깊이가 절대 같을 수가 없다.


그 점이 너무나도 아쉬운 페르투스.

그래서 자신이 더 삼촌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또 다른 감정도 느꼈다.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이것저것 가르침을 줬던 인자했던 세네카. 뛰어난 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 그런 그를 이곳에 유폐시키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게 군령이라면 절대 항거할 수 없다.


"지금부터 모두 정신 바짝 차려라! 어떤 존재도 저 별장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 누구도 별장에서 나와서도 안 되고!"


눈빛이 더 싸늘해지는 페르투스.

그의 광대뼈는 더 고집스럽게 보인다.

그러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적인 감정 따위가 아니라, 군령이며 황제이며 로마다.


그래서 그 군령에 따라 내일 검투사 경기가 끝날 때까지 이곳을 절대 벗어나지 않을 작정.


페르투스는 앞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서 이곳을 철통같이 지킬 생각이었다.










<46>


다음날.


검투사 제전이 열리는 당일.


이날 새벽부터 로마 원형 경기장 주변은 인파로 들끓기 시작했다.


이 경기장 앞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는데,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


특히, 오늘은 황제가 직접 관람한다고 하는데,


거기다가 로마 시민들의 기대감도 아주 높다.


바로 오늘 경기에선 로마의 영웅 크릭수스와 세베루스가 타렌툼 검투사들과 일전을 벌인다고 하는데, 이게 모두 박진감 넘치는 생사 대결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민들은 새벽부터 경기장을 찾았고, 입구 쪽에 긴 줄을 섰다.


물론, 그 줄이란 게 일렬로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입구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다는 뜻이다.


그 인파가 압축된 채 몰려들면서 마치 원형 경기장을 빙 둘러싼 듯한 그런 모습들이 되고 있었다.


거기다가 귀족들 역시 조금 이른 시간에 몰려들면서 그 일대는 혼잡 그 자체가 되었다.


수부라의 거지들 역시 우르르 몰려 나왔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까지 가세하면서 그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경기 시작 전, 전례로써 열리던 검투사 거리 행렬 퍼레이드가 오늘은 열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오늘의 주인공은 오로지 황제이기 때문.


또한, 무척 중요한 전쟁 선포 등의 행사도 있기 때문에 검투사들에게만 쏠리는 시선을 은근히 제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았다.


그 때문에 어수선하지만 대략 차분하게 시민들의 입장이 진행되었고, 하나둘 원형 경기장에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


그리고 지상 원형 경기장 무대로 들어갈 수 있는 지하 통로.


그 쇠창살 통로 앞.


그곳엔 파비우스 양성소 출신 검투사들이 무척 긴장된 표정을 하고서 서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주인인 쿨라는 뒤쪽 푹신한 의자에 앉아 쳐다보다가


잠시 후 부총관 바르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바르카는 몸을 숙였고, 쿨라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전사의 약은 모두 복용했나?”


그 질문에 바르카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도주와 함께 모두 복용했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파비우스 검투사들에겐 포도주가 지급되었다고 한다. 전사의 약이 녹아 있는 포도주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 파비우스 검투사들은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고 아주 용맹한 전사들이 될 것이다.


물론, 크릭수스와 세베루스는 더 위대해질 것이다.


만족해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쿨라.


그는 이내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거기엔 또 다른 의자가 있고


전차 경주 챔피언이자 신궁인 포르투스가 굳은 표정을 하고서 앉아 있다.


한때 노예 검투사였던 포르투스.


그는 어느덧 해방 노예 신분.


그는 전차 경주 능력이 뛰어나 일찌감치 스타비아에 전차 경주장으로 넘어갔고, 거기서 맹활약을 펼친 끝에 얼마 전 해방 노예 신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쿨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상태라고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포르투스는 여전히 쿨라의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쿨라는 뭔가 불안한 듯 계속 포르투스를 쳐다봤다.


무조건 오늘 포르투스는 제 역할을 해 줘야 한다.


그래야 오늘의 일들을 무사히 끝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일이라 도무지 미래를 예측할 수가 없다.


그래서 더 긴장된 순간.


쿨라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심장이 크게 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일부러 무표정함을 유지했고, 고개를 돌려 다른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멍청한(?) 근위대 병사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였다.


갑자기 우레와 같은 소리가 지상에서 들려온다.


쿨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환호와 저 열광.


저 소리만으로도 바로 알 것 같다.


로마제국의 황제.


그가 원형 경기장에 입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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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오늘도 일찍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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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절세미녀 로마공주와 결혼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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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학살자는 충성을 원한다 NEW 17시간 전 489 14 11쪽
29 누군가는 황제가 되고 누군가는 신이 되었다 +4 24.09.18 671 20 7쪽
28 안토니아 공주의 침실 +5 24.09.17 784 25 18쪽
27 첫날 밤, 그리고 태동 (2) +2 24.09.16 851 25 7쪽
26 첫날 밤, 그리고 태동 (1) +4 24.09.14 963 21 18쪽
25 수부라의 현인 +4 24.09.12 1,015 27 31쪽
24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2) +5 24.09.10 1,218 20 25쪽
23 안토니아 공주와의 첫날 밤 (1) +4 24.09.07 1,451 31 23쪽
22 카리우스 네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5 24.09.05 1,380 34 25쪽
21 황제가 되다 (2) +3 24.09.03 1,401 31 30쪽
20 황제가 되다 (1) +3 24.08.31 1,545 31 14쪽
» 쿨라의 결단, 새로운 로마황제 +5 24.08.30 1,536 36 23쪽
18 우연히 시작된 로마 혁명 +2 24.08.28 1,578 42 29쪽
17 로마의 흑막이 되다 +7 24.08.24 1,692 45 23쪽
16 로마 식기 마트 +3 24.08.22 1,642 42 16쪽
15 로마를 바꾸자 +2 24.08.20 1,777 49 21쪽
14 강철의 주인 +4 24.08.18 1,897 57 24쪽
13 안타까운 이혼 공주 +3 24.08.15 2,037 52 21쪽
12 안토니아 공주 +3 24.08.13 2,034 57 21쪽
11 황금 궤짝 +2 24.08.11 2,075 54 24쪽
10 돈이 넘친다 +4 24.08.09 2,206 53 28쪽
9 영웅 (2) +5 24.08.07 2,188 52 23쪽
8 영웅 (1) +4 24.08.06 2,229 48 17쪽
7 내가 유명해지다 (3) +4 24.08.05 2,313 47 24쪽
6 내가 유명해지다 (2) +3 24.08.02 2,362 54 28쪽
5 내가 유명해지다 (1) +5 24.08.01 2,492 61 20쪽
4 출세의 길이 보인다 +9 24.07.30 2,602 65 22쪽
3 향락의 밤, 벌거벗은 무희들 +4 24.07.28 2,758 60 20쪽
2 특별한 능력 +4 24.07.27 2,921 61 22쪽
1 욕실의 여자 노예 +2 24.07.25 3,515 65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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