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드라마

새글

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31 00:13
최근연재일 :
2024.09.19 08:00
연재수 :
79 회
조회수 :
25,144
추천수 :
983
글자수 :
425,663

작성
24.07.31 06:00
조회
687
추천
21
글자
11쪽

2. 인(因)과 연(緣)

DUMMY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막 자정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진채원은 직접 자가용으로 폭우를 뚫고 새벽 2시쯤 서울다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천의 연구소로 출장 갔던 부사장 최강식은 이미 응급실에 도착해 있었다.


“결아!”


채원이 응급실로 들어오자 최강식은 곧바로 그녀 쪽으로 뛰어갔다.


“채원아, 여기야. 지금 결이는 수술 중이래. 수술실로 어서 가보자.”


수술실 앞에 다다랐을 때 경찰관 2명이 난감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채원은 그들로부터 사고가 나게 된 자초지종을 들었다.


“죄송합니다. 저희는 가출신고를 받고 한결 학생인 걸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는데 학생이 갑자기 뭔가 오해하고 도망가다 이런 일이···”


사고 과정을 들은 채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도대체 고등학생이 왜 그 시간에 남양주까지 가야 했는지는 이미 궁금하지도 않았다.


제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기만으로 바랄 뿐.


채원이 자리에서 손 모아 기도를 시작했다. 종교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하늘에 대고 빌었다.


최강식은 한 발짝 떨어져 그녀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오전 10시가 됐을 때 집도의가 수술실에서 나왔다.


“어떻게 됐나요? 우리 결이 아무 문제 없죠?”


의사는 마스크를 벗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슬개골 골절에 대퇴부도 약간 손상됐고, 뇌에도 충격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외상이 크지 않습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죠?”

“네, 일단 생명은 건졌습니다만···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겨우 버티고 서 있던 채원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최강식은 급히 채원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어떡해요, 우리 결이··· 어떡해요···”


채원은 참았던 울음보가 터졌다.


“수술은 성공적이라고 하니 의식도 곧 차릴 거야. 너무 걱정 말고···”


최강식은 채원의 두 어깨를 감싸안으며 위로했다.


“오빠, 결이가 너무 불쌍해요. 곧 정신 차리겠죠?”


채원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최강식은 자기 손수건으로 채원의 눈물을 닦은 후 손에 쥐어줬다.


“차릴 거야. 믿어.”


최강식은 채원의 남편 한수호와 대학 동기이자 채원을 짝사랑했던 대학 선배.


둘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면 편하게 대화하는 사이였다.


최강식은 채원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다 채원이 한수호를 선택하자 깨끗이 물러났다.


혼자 시작하고 혼자 끝냈다. 마음속으로.


한수호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는 창립멤버로 그를 도왔다.


한수호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이사회에서 강력한 발언권으로 채원을 차기 사장으로 옹립한 이도 최강식이었다.


현재 세황그룹 한씨 일가로부터 회사를 지키는 수문장 노릇을 하고 있다.


‘지이이잉.’


막내 시누 한진희의 전화였다.


한씨 일가에서 유일하게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이였다.


성형외과 의사랑 결혼해 딩크족의 삶을 살면서 조카 한결 남매를 틈틈이 챙겨주던 고마운 고모였다.


진희의 남편 윤재웅은 결혼 후 세황그룹이 운영하는 세황의료원으로 이직해 부원장을 맡고 있다.


“네, 아가씨.”

[소식 들었어요. 결이는 어때요? 괜찮은 거죠?]

“수술은 성공적이라는데 아직 의식이 없어요···”

[어머, 어떡해···]


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언니, 오해하지 말고 들으세요. 우리 닥터 윤이 이왕이면 세황의료원으로 옮기는 게 어떠냐고 하던데···]


한진희는 말하기 껄끄러운 듯 약간 뜸을 들였다.


[아무래도 힘들겠죠?]


세황 일가와 다시 엮인다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결의 고모부 윤재웅이 부원장으로 있는 세황의료원에서 더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는 아직 생각을 안 해봤는데···”

[세황의료원은 아무래도 불편하겠죠? 그래도 닥터 윤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데···]


한수호가 사망한 후 한씨 집안이 채원에게 했던 짓들을 생각하면 이건 무조건 거절해야 한다.


그런데 아들의 생명이 걸린 문제가 아닌가.


“그 부분은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당장 전원이 가능한지도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네, 언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저한테 연락하세요.]


**


채원의 고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들을 위해서는 못 할 게 무엇이랴.


시댁 식구들과 얼굴을 맞부딪히는 건 죽기보다 싫었지만 일단 아들부터 살리고 봐야 했다.


아침이 밝자마자 한결은 앰뷸런스를 타고 곧바로 세황의료원으로 옮겨졌다.


한결의 고모부, 세황의료원 부원장 윤재웅의 ‘빽’으로 특실이 배정됐다. 첩의 소생인 한수호의 아들이지만 어쨌든 한결은 세황그룹의 손자였다.


병원 측에서 볼 때 한결은 회장의 직계가족으로, VIP였다. 즉 윤재웅의 도움이 없었더라도 특실에 들어갈 자격은 충분했다.


“아주머니, 결이의 전원절차가 모두 끝났습니다. 혹시 불편한 사항 있으시면 담당간호사한테 말씀하시거나 저한테 직접 전화하셔도 됩니다.”


윤재웅은 아내 한진희의 호출을 받고 아침 일찍 병원으로 나와 있었다.


“네, 감사해요. 아가씨한테도 고맙다고 꼭 전해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 아내도 미술관 일을 일찍 끝내고 오후에 여기로 온다고 합니다.”


**


온몸에 감각이 없었다.


사후세계라면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렸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느낌이었다.


절대적 암흑.


한편으로는 편안한 느낌이었다. 얼마 만에 맛보는 편안한 휴식이던가.


사람이 죽었을 때 왜 ‘Rest in Peace’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어느 순간 작은 빛이 보였다. 그 빛이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오래된 흑백필름처럼 과거 일들이 눈앞에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누가 영사기를 ‘빠르게 감기’로 돌리는 것처럼 과거의 일들이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졌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까지 빠르게 흘렀다.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들. 여기서부터 화면이 천천히 흘렀다.


절친이었던 세 명 앞에 운명처럼 나타난 여인. 셋 다 그녀를 사랑했다.


**


[내일 프러포즈할 거야.]

[그건 반칙인데? 그냥 조용히 군대나 가라, 응?]


한수호가 강력하게 반발했다. 최강식은 말이 없었으나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기분 나쁜 티는 확실하게 냈다.


[나 프러포즈 하지 않고 입대했다가는 100일 휴가 전에 탈영할지도 몰라.]

[너 군대 간 뒤 넋 놓고 기다려야 하는 채원이는 대체 뭔 죄냐?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냐?]

[니놈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어쩌라고?]

[난 빼줄래?]


최강식이 오징어포를 뜯으며 마치 자기 일이 아닌 듯 말했다.


[지랄, 응큼한 니놈이 젤 위험해.]

[어쨌든 프러포즈. 난 반댈세.]

[니가 뭔데 반대니 마니냐? 재벌 집에서 태어나 군대도 면제받은 니놈이 여자친구를 두고 입대해야 하는 마음을 알기나 하나?]

[누구 맘대로 채원이가 네 여자친구냐? 그리고 채원이를 처음 소개해 준 사람이 나란 걸 잊지 말도록!]


지오는 ‘피식’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채원이가 꼴랑 같은 과 후배라는 게 평생 자랑거리지? 클클.]

[나를 제일 따른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텐데.]


한수호 성격에 적당히 물러설 법도 한데 이날따라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덤벼들었다.


[혹시 내가 군대 간 사이에 네가 고백하려고 그러는 거냐?]

[지랄, 내가 너냐? 난 그런 비겁한 플레이는 하지 않지.]

[올림픽 출전하냐? 웬 페어플레이··· 그려, 넌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둬라, 난 반칙해서라도 금메달을 딸 테니.]


이 정도로 디스했으면 즉각적으로 반박했을 법도 한데 한수호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그냥 씨익 웃었다. 그때만큼 한수호의 웃음이 기분 나쁜 적이 없었다.


[야, 인마. 난 ‘새가 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자’는 주의야. 옆에서 병풍처럼 있으면서 천천히 다가갈 거야. 어느 순간 나에게 완전히 스며들 때까지.]


한수호는 다시 생맥주 500cc잔을 들어 남아있던 맥주를 쭉 들이켰다.


[그럼 나는?]

[넌 지금 ‘새가 울지 않으니 울게 만들겠다’는 거잖아. 아직 아무 결정도 하지 않은 채원이한테 결정을 강요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지오는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몰랐다. 일본 전국시대 세 영웅의 일화를 빗대 말했다는 것을.


일본 역사소설 「대망(大望)」에서 세 영웅이 경쟁하지만 결국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최후의 승자가 된다.


그렇다면 ‘새가 울지 않으면 울게 만들겠다’고 말한 자의 운명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먼저 일본을 통일했지만 도쿠가와에게 천하를 넘겨주고 만다.


한수호는 일찌감치 자신의 승리를 예고한 셈이었다.


**


지오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프러포즈를 강행했다. 그런데 어디서 꼬였는지 운명의 장난처럼 헤어지게 되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인천공항.


영국 유학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삶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다시 5배속처럼 빠르게 흘렀다.


사람이 죽으면 지나온 삶을 보게 된다더니···


제3자 입장에서 돌아본 자신의 지난날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게 영화라면 돈의 노예가 된 류지오의 삶은 분명 주인공의 삶이 아니었다.


‘테헤란로의 마귀’라는 별명처럼 악당 중의 악당이었다.


하나님 앞에 설지, 옥황상제 앞에 설지 모르겠지만 지옥행은 확정적이었다.


이제 지옥까지 데려갈 사신, 천사 혹은 저승사자가 곧 나타나겠지.


대범한 척하고 기다렸지만 너무 떨렸다.


또 시간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무런 감각도 느끼지 못하니 시간 개념이 희박해졌다.


그때였다.


‘웅성웅성’


뭔가 아까 옛 기억의 파노라마에서 들린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지옥문이 열리는 걸까.


뭔가 눈꺼풀에 힘이 들어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죽은 게 아니었나?


“눈 떠, 눈 떠!!”


고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어린 여자 목소리였다.


누구보다 눈을 뜨고 싶은 사람은 지오였다. 눈꺼풀이 이렇게 무겁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모든 힘을 눈에다 집중하자 눈꺼풀이 약간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힘을 내!”


마침내 눈꺼풀이 들어 올려졌다.


그런데 빛 때문에 다시 눈을 감아야 했다.


이러기를 몇 차례 반복하자 서서히 망막이 빛에 적응했다.


희미한 형체는 점점 뚜렷해지더니 추리닝 차림의 10대 여학생으로 변했다.


“나 보여?”


처음 보는 얼굴인데 반말? 게다가 나이는 딸뻘로 보이는데···


필사적으로 말하려 입을 열려고 애썼다. 하지만 산소마스크 때문인지 위아래 입술이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학생은 급히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어··· 엄마, 엄마. 눈 떴어. 살았어.”


그리고 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여기 환자 눈 떴어요.”


조금 후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간호사들을 대동한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병원이라는 게 확인됐다.


의사는 지오의 눈에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기 시작했다.


“의식이 돌아온 것 같은데 아직 움직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지오는 마침내 살아있음을 의사의 입을 통해 확인했다.


급격히 피로감이 몰려왔다.


다시 스르르 잠에 빠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22. 가족이 더 위험하다 +1 24.08.07 424 11 11쪽
21 21. 한결에게 모든 걸 건다 +1 24.08.07 429 12 12쪽
20 20. 사랑의 결실 vs. 성욕의 부산물 +1 24.08.06 461 13 12쪽
19 19. 신체 건강한 아들, 듬직한 오빠 +1 24.08.05 450 13 12쪽
18 18. 가족의 민낯 +1 24.08.05 461 12 12쪽
17 17. 포섭(包攝) +1 24.08.04 462 13 12쪽
16 16. 사람이 바뀐 거 아냐? +1 24.08.04 474 13 12쪽
15 15. 아들이 널 살렸다 +1 24.08.03 508 14 11쪽
14 14. 전화위복(轉禍爲福) +1 24.08.03 498 13 12쪽
13 13. 독점가격 +1 24.08.02 499 15 12쪽
12 12. 엄마(?)와의 데이트 +1 24.08.02 491 14 12쪽
11 11. 이 자식 잘생겼잖아 +1 24.08.01 509 15 12쪽
10 10. 채원의 기습 뽀뽀 +2 24.07.31 529 18 12쪽
9 9. 한수호 사망의 미스터리 +1 24.07.31 544 19 12쪽
8 8. 찐따의 일기장 +1 24.07.31 545 18 11쪽
7 7. 한결의 데이터가 잘못됐다 +1 24.07.31 560 19 11쪽
6 6. 불청객 +1 24.07.31 569 18 11쪽
5 5. 기억상실 +1 24.07.31 610 20 11쪽
4 4. 너 여전히 찌질하구나 +1 24.07.31 636 19 11쪽
3 3. 귀환(歸還) +1 24.07.31 662 20 12쪽
» 2. 인(因)과 연(緣) +1 24.07.31 688 21 11쪽
1 1. 테헤란로의 마귀 +4 24.07.31 972 24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