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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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모
작품등록일 :
20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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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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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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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결의 데이터가 잘못됐다

DUMMY

한결의 폭주에 태기준만큼이나 채원도 놀랐다.


세상에 어느 누가 세황그룹 한석조 회장의 최측근 비서실장을 상대로 ‘개’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태기준은 개라는 말까지 듣고도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듯 입술을 말아 깨물었다.


“결아, 말이 좀 지나치구나.”

“사장님한테 왜 사모님이라고 하죠? 그런 아저씨가 더 지나친 거 아닌가요?”


마치 눈싸움을 하듯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없이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이윽고 태기준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앞으로는 꼭 사장님으로 부르마. 미안하다.”


결국 태기준이 굴복했다.


어린애에게 그 수모를 당하고도 마음을 추스르고 사과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굴욕을 당하긴 했지만 역시 세황그룹 비서실장 자리를 아무나 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왜 저한테 사과하세요? 진채원 사장님께 죄송해야죠.”


태기준을 저 밑바닥까지 처박아 버리려는 듯 한결의 팩폭은 계속됐다.


“진채원 사장님, 죄송합니다.”


태기준은 몸을 돌려 채원에게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태기준이 허리를 굽히자 채원도 당황해하며 같이 허리를 굽혔다.


채원은 믿을 수가 없었다. 사고 이후 너무도 변해버린 아들.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한 번씩 왠지 모를 적대감을 드러내기도···


처음에는 아들에게 소홀했던 자신을 질타하는 거라 치부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자신을 바라봤던 적대감 어린 눈으로 지금 눈앞의 태기준을 노려보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리고 기사 검색만 해도 지금 한석조 회장이 해외 요양 중이라고 뜨는데 무슨 회장님 호출이라는 거죠? 세황그룹에 우리가 모르는 회장님이 한 분 더 계신 건가요?”


그제야 채원도 한석조가 스위스에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비서실장을 통해 날 부른 건 바로 큰어머님?


태기준은 말문이 막혔다.


죽은 한수호의 아들 한결에 대한 데이터가 완전히 잘못됐다.


비서실이 조사해 한석조에게 보고한 파일 속 한결은 이런 총명함을 갖추지 못했다.


아버지 한수호의 반도 못 따라가는 지적 능력에 학교에서는 왕따. 소심한 성격.


이런 부정적인 내용이 보고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결에 대해 조사한 비서실 직원이 도대체 누구지. 태기준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 정도 오판이면 다음 인사 때 해고까진 아니더라도 계열사의 자회사, 거기서도 창고나 담당하는 한직으로 이동시키리라.


채원이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아들 말이 맞는 것 같네요. 실장님, 말씀해 보세요. 큰어머님 호출인가요?”


채원의 다그침에 태기준은 체념한 듯했다.


“네 그렇습니다, 사모··· 아니, 사장님.”


한결은 이런 태기준을 보면서 빙긋 미소지었다. 제대로 교육이 됐군.


“그럼 실장님이 큰어머님께 전해주세요. 만약 인수합병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나서 할 얘기도 없다’고.”

“아니, 그래도 시어머님의 부르심인데.”


채원의 칼같은 거절에 태기준은 적잖이 당황했다. 평창동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채원이 이토록 단호한 모습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이건 시어머님으로서 부르는 게 아니잖아요. 태 실장님이라고 하셨죠? 가서 할머니께 전해주세요. 김장 담그시거나 누구 가족 결혼식 같은 행사 있으면 부르시라고. 그때는 며느리로서 냉큼 달려가 주겠다고.”


한결이 또 끼어들어 정리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태기준은 도와달라는 듯 채원을 바라봤다.


채원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이 말이 맞아요. 시어머니로서 부르신다면 제가 거부할 수 없겠죠. 그런데 회사 일로 부르신다면 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기준의 표정은 다시 터미네이터처럼 굳었다.


“네, 접수했습니다. 그럼 관장님께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태기준은 깎듯이 허리를 굽힌 후 병실문 쪽을 향해 걸어갔다.


태기준이 병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채원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봤다.


애틋하고도 자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면서 곧 눈물샘이 폭발할 것 같았다.


앗, 이거 위험한데. 이건 누가 봐도 포옹을 준비하는 자세였다.


**


최강식은 병실 밖에서 왔다 갔다 하며 화를 삭이고 있었다.


진채원 사장의 최측근이 누구인가. 최강식 이외의 이름은 절대 거론조차 할 수 없다.


말이 부사장이지 회사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하는 건 물론 채원의 비서실장 역할도 하고 있었다.


회사 일에 관한 한 채원이 모르는 건 있어도 최강식이 모르는 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태기준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나를 배제한 채 독대를?


도대체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세황에서 은밀하게 할 얘기라면 회사 인수합병밖에 없다.


다시 칼을 빼 든다는 것일까. 최강식의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굳이 나를 배제해야 할 이유가 있나. 태기준이란 작자가 나를 같이 이야기할 동급으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얘긴가.


갑자기 기분이 팍 상했다.


‘딩동.’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교복 차림의 한소진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왔다.


“부사장님, 왜 병실 밖에 나와 있어요?”


최강식과 웬만해선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어, 소진이 왔구나. 안에 손님이 와 있어서.”

“어떤 손님이길래 최측근이자 엄마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는 부사장님을 바깥으로 내보낼 수 있을까요? 아주 대~단한 손님이겠네요.”


소진은 대놓고 빈정거렸지만 최강식은 ‘최측근’이라는 말에 혹해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세황 비서실장.”

“비서실장이면 김 실장님? 그분이 여길 왜?”

“아니, 김충헌 부회장은 지금 기조실장이고 태기준 부사장.”


소진은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 갸우뚱했다.


“뭐 같은 부사장인데 별거 아니지 않나요?”


아까 공격이 별로 타격감을 주지 못한 것 같아 소진이 잔뜩 심술이 났다. 소진이 재차 폭격에 나섰다.


매출액 수백조원에 달하는 국내 ‘빅3’ 그룹의 부사장과 연간 매출액 겨우 1,000억원을 넘기는 회사의 부사장. 매출액 1,000억원이면 세황그룹 주요 계열사 영업이사가 연간 움직이는 금액 수준이다.


이걸 같은 부사장이라고 해야 하나.


최강식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지 뭐, 아무리 대기업 부사장이라도 결국 다 같은 월급쟁이 아니겠어? 흐흐.”


이번에는 공격이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약간 의기소침해진 말투. 소진은 기분이 좋아져 최강식을 향해 썩소를 날렸다.


“아, 씨. 엄마 옷 챙겨 왔는데. 빨리 전해주고 집에 가야 하는데···”


소진이 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의 태기준이 경직된 얼굴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최강식과 소진에게 가벼운 묵례를 건넨 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최강식은 손가락 두 개로 거수경례 흉내를 내며 태기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사요나라.”


**


병실 안에 들어섰을 때 눈이 붉게 충혈된 채원은 눈물을 닦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엄마, 무슨 일이야?”


최강식이 채원의 어깨를 감싸려 하자 소진은 얼른 어깨로 밀쳤다. 마치 아이스하키 선수가 상대방을 밀어내기 위해 바디첵(body check)을 하듯.


최강식을 밀어낸 소진은 재빨리 채원의 어깨를 감쌌다.


“엄마, 울었어? 방금 나간 아저씨가 엄마 울렸어?”


최강식도 소진 뒤에 서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아니, 아니야. 네 오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서.”


이건 또 뭔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인가.


국가대표 ‘찐따’이자 선릉고 공식 ‘셔틀’, 한결이 어떻게 자랑스러울 수가 있나.


“야, 너 뭔 짓 했냐? 뭘 했길래 엄마가 이런 반응이야?”


소진은 두 눈을 부릅뜨며 오빠를 노려봤다.


아무리 한결이란 사실을 받아들인다 해도 저 어린 학생의 막말은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뭔 짓은 무슨··· 그냥 팩트체크만 해줬어. 그랬더니 아까 그 아저씨가 무안해졌나 봐. 누워 있는 내가 무슨 힘이 있겠냐.”


소진은 미심쩍은 듯 채원에게 물었다.


“이거 사실이야? 쟤 지금 기억도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채원은 소진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오빠 말이 맞아. 아까 그 아저씨가 엄마를 궁지로 몰았는데 오빠가 나서서 물리쳐줬어.”

“물리쳤다고? 쟤 싸움 더럽게 못하는데. 오죽했으면 학교에서 셔···”


소진은 한결이 학교에서 셔틀이라는 말을 엄마가 들으면 안 될 것 같아 중간에 말을 멈췄다.


“왜 말을 하다 마니? 학교에서 뭐?”

“아, 아냐. 아무것도. 어쨌든 엄마한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개똥도 약에 쓸 일이 있다더니 진짜 별일이네.”


개똥? 아무리 말을 막 한다지만 오빠한테 개똥이라니.


소진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오빠가 사고 이후 뭔가 변했다는 걸.


그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어른스러워졌고··· 어쨌든 싫지 않은, 좋은 변화라고 생각했다.


“채원아, 태 실장이 뭐라고 했니?”


최강식은 더 이상 궁금증을 뒤로 미룰 수 없었다.


“아, 적대적 M&A가 곧 시작될 거라는 선전포고. 평창동 큰어머님이 나를 좀 보자고 하신다네요.”


예상대로다. 적대적 M&A.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다.


“그런데 황 관장이 널 따로 보자고 했다고?”

“네.”

“이런, 시어머니 위세를 앞세워 널 찍어 누르기라도 할 모양이네. 어쩌기로 했어? 만날 거야?”


채원은 병상에 걸터앉아 한결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나서 할 얘기도 없다고 전하랬어요.”


최강식은 채원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동안 평창동 큰어머니 앞에서 채원은 한수호와 마찬가지로 그야말로 ‘고양이 앞의 쥐’였다.


그런데 당당하게 만날 이유도 없고, 할 얘기도 없다고?


천지개벽이 따로 없었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어?”


채원은 최강식의 물음에 한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우리 아들이 용기를 줬어요.”


채원의 말에 누워있던 한결이 깜짝 놀랐다.


내가 언제? 내가 무슨 용기를 줬지? 그냥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사장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거밖에 없는데···


최강식이 한결의 머리를 격하게 쓰다듬었다.


“결아, 자식. 잘했어. 그렇게 엄마를 도와드리는 거야. 장남이면 응당 그렇게 했었어야지. 이제 엄마도 한시름 놓겠다. 하하.”


손 치워라, 짜샤. 몸에 손대지 말라니까? 앞으로 이 자식을 아저씨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짜증나네.


앞으로 고등학생 한결로 살아야 할 미래를 그려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한결이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왜 그래, 결아. 몸이 불편하니?”

“아니오. 너무 오래 누워있다 보니 좀이 쑤셔서요. 몸도 얼추 다 나은 거 같은데 이제 퇴원하고 싶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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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첫사랑의 아들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2 22. 가족이 더 위험하다 +1 24.08.07 424 11 11쪽
21 21. 한결에게 모든 걸 건다 +1 24.08.07 429 12 12쪽
20 20. 사랑의 결실 vs. 성욕의 부산물 +1 24.08.06 461 13 12쪽
19 19. 신체 건강한 아들, 듬직한 오빠 +1 24.08.05 450 13 12쪽
18 18. 가족의 민낯 +1 24.08.05 461 12 12쪽
17 17. 포섭(包攝) +1 24.08.04 462 13 12쪽
16 16. 사람이 바뀐 거 아냐? +1 24.08.04 474 13 12쪽
15 15. 아들이 널 살렸다 +1 24.08.03 508 14 11쪽
14 14. 전화위복(轉禍爲福) +1 24.08.03 498 13 12쪽
13 13. 독점가격 +1 24.08.02 499 15 12쪽
12 12. 엄마(?)와의 데이트 +1 24.08.02 491 14 12쪽
11 11. 이 자식 잘생겼잖아 +1 24.08.01 509 15 12쪽
10 10. 채원의 기습 뽀뽀 +2 24.07.31 529 18 12쪽
9 9. 한수호 사망의 미스터리 +1 24.07.31 544 19 12쪽
8 8. 찐따의 일기장 +1 24.07.31 545 18 11쪽
» 7. 한결의 데이터가 잘못됐다 +1 24.07.31 561 19 11쪽
6 6. 불청객 +1 24.07.31 569 18 11쪽
5 5. 기억상실 +1 24.07.31 610 20 11쪽
4 4. 너 여전히 찌질하구나 +1 24.07.31 636 19 11쪽
3 3. 귀환(歸還) +1 24.07.31 662 20 12쪽
2 2. 인(因)과 연(緣) +1 24.07.31 688 21 11쪽
1 1. 테헤란로의 마귀 +4 24.07.31 972 2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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