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실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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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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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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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DUMMY

59. 요리 대결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시칠리아 섬의 별장에 도착한 시현 일행은

본격적인 임무가 시작되기 전,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칠리아의 전통적인 디저트 카놀리를 완성한 시현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요리를 했는지 구경하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만만했던 베아트리체의 요리.

펄펄 끓는 냄비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베아트리체를 보는 순간,

시현은 깨달았다.

베아트리체, 요리는 더럽게 못하는구나.


요리 대결이 시작되기 전,

넘쳐 흐르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시현과 눈이 마주친 베아트리체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눈빛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는 소매를 걷으며 나섰다.


일단 불의 세기를 줄여 끓어넘치는 냄비를 진정시키고,

베아트리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요리를 하고 있었어?”

“내가 하려던 건 볼로네제 파스타야”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볼로냐의

대표적인 음식인 라구 파스타를 하려던 모양이었다.

시현은 한 차례 가라앉은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잘게 다진 소고기와 야채를 잔뜩 넣고 볶은 뒤,

와인 한 병을 통째로 들이부은 모양이었다.


“와인 한 병을 전부 넣은 거야?”

“응, 레시피에 적혀 있는 그대로 넣었는데”

“냄비 크기에 비해 와인을 너무 많이 넣었어”


시현은 나무 주걱으로 냄비 밑바닥을 휘저어

눌어붙은 재료들을 긁어냈다.

디글레이징이라고 하는 과정이다.


이후 익히지 않은 스파게티 면 한 가닥을

가스레인지 불에 가져가 불을 붙였다.

그러자 성냥불처럼 끄트머리에 조그만 불이 붙었다.


시현은 그 불을 냄비 위에 스치듯 가져다 댔다.

그러자 끓어오르는 와인에서 증발한 알코올이

파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많은 알코올을 태워서

요리 시간을 단축하려는 생각이었다.


알코올이 모두 날아가 자연스럽게 불이 꺼지자

토마토 퓨레를 부었다.


“이제 끓기 시작하면 재료가 모두 잠길 때까지 육수를 붓고,

충분히 졸아들 때까지 끓이면 완성이야”


베아트리체의 요리를 대충 수습해 준 뒤,

시현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아일라의 냄비였다.


냄비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가자

시현의 코 끝에 익숙하고 그리운 냄새가 스쳤다.


“어? 간장이야?”

“역시 바로 알아보시네요”


아일라가 미소를 지으며 시현을 반겼다.


“시현 씨는 고향을 떠나 온 지 오래 되었으니까,

고향의 맛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 준비했어요”


시현이 기대감에 차서 냄비 뚜껑을 열어보자 보이는 것은

짙은 갈색의 고기 요리.

간장 베이스의 양념이 먹음직스러운

갈비찜이었다.


직접 맛을 보지 않아도,

코를 자극하는 냄새만으로도,

완벽하게 만들어진 갈비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일라 씨, 원래부터 요리를 잘 하셨나요?”

“아버지랑 단 둘이 살면서 항상 요리를 맡아서 하긴 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일라의 목에 걸린,

서아프리카의 거미 신, 아난시의 유물은

빛을 내며 요동치고 있었다.


시현의 시선이 유물을 향하자

아일라가 부끄러워하며 유물을 감싸쥐었다.


“사실, 아난시의 넷째 아들의 권능이 바로 요리를 잘 하는 권능이거든요···”


아일라의 수줍은 고백에

멀찍이서 라구 소스를 주걱으로 젓고 있던 베아트리체가 다가왔다.


“요리 대결에서 권능을 쓰는 건 반칙이잖아!!!”

“베아트리체 씨도 시현씨의 도움을 받는 반칙을 하지 않았나요?”


지난 번 임무 때 힘을 합쳐 흡혈귀를 무찌르면서

어느 정도 친해졌나 싶었는데,

그건 시현의 착각이었다는 듯

투닥거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말리려는 시현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아테나는

미소를 지으며 와인 한 잔을 들이켰다.


그렇게 한 차례 소동이 지나간 후

만찬이 시작되었다.


베아트리체의 출신지인 볼로냐를 대표하는 라구 파스타,

정성이 가득 담긴 그 요리를 맛보는 심사위원,

마리오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포크를 들어 입 속에 넣은 마리오는

한참동안 우물거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맛있는 걸 정말 우리 딸이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는데?”


갑자기 얼굴에 화색이 도는 아버지의 모습에

베아트리체는 기뻐했다.


“내 요리를 맛있다고 해 주시는 건 처음이야!

항상 독설만 하셨는데!”


순식간에 날아오른 베아트리체의 기분은

마리오가 덧붙인 말에 의해 한순간에 추락했다.


“시현이가 다 해주는 거 다 봤지만 말이야”

“아빠! 쪼옴!!!”


부녀간의 만담에 시현과 아일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다음,

아일라의 차례가 되었다.


이탈리아에 넘어오고부터,

오랜 시간동안 만날 수 없었던 정겨운 냄새.

갈비찜이었다.


심사위원인 마리오와 아테나는

처음보는 음식에 호기심을 보였다.


“이건 튀르키예 음식인가?”

“아뇨, 이건 시현씨의 고향인 한국 음식이에요”


그 말에 베아트리체가 분개했다.


“이런 불여시 같은 게 시현이를 꼬시려고!”

“제가 저희 어머니 나라의 음식을 만든 게 무슨 잘못이죠?”


틈만 나면 투닥거리는 두 여성 때문에

시현은 때때로 골머리를 앓았다.

그런 모습을 뒤로 한 채로

고기 한 덩이를 들어 입으로 가져간 마리오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와우! 소고기가 이렇게 살살 녹다니!”


그런 반응을 보고 시현 또한 갈비찜을 한 입 맛봤다.

부모를 모두 여읜 시현에게

갈비찜이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먹지 못한 음식이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몇 번 해 주신 것을 제외한다면

비싼 재료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라

직접 만들어 먹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시현에게 있어,

갈비찜은 혼자 남은 외로움을 채워 주는 맛이었다.

시현은 아일라를 향해 감탄의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런 음식을 맛보게 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파스타와 갈비찜을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나서,

시현의 차례가 되었다.


필호에게 배웠던 요리.

하얀 접시 위에 보기좋게 가지런히 놓여 있는 디저트.

보기에도 좋게끔 플레이팅에도 신경을 쓴 카놀리를 보자

일행들의 손길은 저절로 접시를 향했다.


“음”

“호오”

“우와!”

“맛있는데요?”


바삭한 겉부분과 촉촉한 리코타 치즈.

피스타치오의 향긋한 맛에 일행들은 감탄했다.

달콤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조화로웠다.

카놀리를 손에 든 마리오가 시현에게 물었다.


“카놀리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하나 있는데 알고 있니?”

“물론이죠”

“그 영화에 카놀리와 관련된 명대사가 하나 있지”


시현과 마리오는 눈을 마주치고 신호를 주고받더니

둘이 동시에 그 영화의 명대사를 읊었다.


“”Leave the gun, Take the cannoli.””


시칠리아 섬의 마피아를 주제로 한 영화,

‘대부’의 명대사였다.


동시에 같은 대사를 떠올린 시현과 마리오는

낄낄대며 웃었다.

‘대부’같은 옛날 영화에 익숙치 않은 여성진은

그런 두 남자를 짜게 식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런 시현과 마리오는 역으로 질문했다.


“영화 ‘대부’잖아, 대부 몰라?”

“배신자를 처형하고 증거를 인멸하면서도 집에 가져갈 카놀리를 챙기는 무심하면서도 잔혹한 피터 클레멘자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는 명대사란 말이야!”


그런 옛날 영화 애호가들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한참동안 궁시렁거리며 카놀리를 먹던 마리오는

이번 요리 대결의 승자를 고르기 위해 아테나와 회의를 시작했다.


.

.

.


“결국 우승자는 시현이구나”


한동안 마리오와 의견을 나누던 아테나가 마침내 판정을 내렸다.


“베아트리체는 시현이의 도움을 받았고,

아일라는 아난시의 권능을 사용했으니 둘 다 반칙패야”


패배한 베아트리체와 아일라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맛은 아일라의 갈비찜이 더 맛있었어”


시현은 아일라의 요리를 칭찬했다.


“내껀 어땠는데?”

“라구 파스타는 거의 내가 만들어 준 거나 다름없잖아”


베아트리체가 자신의 요리도 내세웠지만

본전도 찾지 못한 채 물러나야만 했다.


투닥거리면서도 웃음기 넘치는 시칠리아의 첫날 밤이 그렇게 저물었다.


60. 꿈


요리 대결로 시작된 만찬이 끝나고,

어질러진 부엌의 뒷정리까지 마친 일행들은

각자 선택한 방으로 들어가 잠자리에 들었다.


시현은 침대에 누워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그럼에도 한참동안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와 보았다.


불 꺼진 거실,

다들 깊은 잠에 들어있는 듯 했다.

시현은 담배나 한 대 피우자는 생각으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그 사이 비가 그친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시현은 널찍한 마당에 놓인 나무 의자에 묻은 물을 털어내고

그 위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와

밤하늘을 빛내는 별들을 보면서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니 제법 맛이 좋았다.


그렇게 담배 한 대를 끝까지 태우고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불을 끈 후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는 참에,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황급히 고개를 홱 돌리자

정원에 심어진 나무 몇 그루 사이로,

시현 또래의 남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냐!”


시현의 질문에 남자는 답하지 않고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별빛이 환히 비추는 마당 한 복판으로 나온 남자는

병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창백한 피부에

새집처럼 아무렇게나 뻗친 백금발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한번 본 적 있지 우리?”


남자의 말에 시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널 처음 보는 것 같은데”


그러자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


“우린 분명히 서로 만난 적이 있어.

너는 아직 깨닫지 못한 모양이지만”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날 찾아왔지?”


시현은 경계심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종이쪽지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아타튀르크 댐에서 사망한 ‘정필호’에 대해서

하고싶은 말이 있는데 말이야,

나와 대화할 생각이 있다면 그 종이에 적힌 장소로 찾아와”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종이쪽지에 시선을 뺏긴 시현은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정필호’라는 이름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이미 남자는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봐!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지?”


곧바로 사라진 남자를 찾아서 대문 밖으로 뛰쳐나갔으나,

고개를 두리번거려도 남자를 찾을 수 없었다.

시현은 그렇게 사라진 상대를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잠에서 깨자마자 수치스러움에 몸을 일으키고,

이게 무슨 개꿈인가 싶어 마른세수를 하려다가,


자신의 손에 쥐어진 종이쪽지 하나를 발견하고 충격에 빠졌다.

단순한 꿈이 아니었던 것인가?

꿈 속에서 만난 백금발의 청년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종이를 펼쳐보자 지도 한 장이 나왔다.

정확히 어떤 위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산을 나타낸 지도였다.

산등성이 한복판의 어느 한 지점에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그 표시 밑에 작은 글씨로 메모가 적혀있었다.


<동굴 안에 있음. 혼자서 찾아올 것.>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면 동굴을 무너뜨리겠다.>


아마도 이 지도가 가리키는 산은 에트나 산일 터,

그렇지 않아도 이번 임무를 수행할 위치 또한 에트나 산이다.

그러므로 해당 장소로 향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으나,

대체 어떻게 다른 일행들을 떼어 놓고

혼자서 표시된 위치로 향할 수 있겠는가?


그건 그렇다 치고,

이 지도를 넘겨준 꿈 속의 남자는

대체 무슨 수로 시현의 꿈 속에 나타나서

현실의 시현에게 이 지도를 건네 주었는가?


과연 꿈 속의 남자는 필호와 관련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인가?

그는 필호와 어떤 관계인가?

과연 시현은 그를 믿을 수 있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다른 일행들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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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24.08.18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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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24.08.15 30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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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24.08.13 30 1 11쪽
21 21화 24.08.12 27 1 11쪽
20 20화 24.08.11 28 1 11쪽
19 19화 24.08.10 38 1 12쪽
18 18화 24.08.09 36 1 12쪽
17 17화 24.08.08 33 1 12쪽
16 16화 24.08.07 36 2 12쪽
15 15화 24.08.06 36 2 12쪽
14 14화 24.08.05 39 2 13쪽
13 13화 24.08.04 40 2 11쪽
12 12화 24.08.03 47 2 12쪽
11 11화 24.08.02 45 2 12쪽
10 10화 24.08.01 4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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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24.08.01 6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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