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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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곤
작품등록일 :
2024.08.0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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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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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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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화. 용병 지원.

DUMMY


“언제쯤 가능하냐?”


접수원이 서류를 뒤적거렸다.


“가만 보자. 저번에 보내신 데가······.”


얼굴이 익을 대로 익은 접수원이 날 모른척하니 어이가 없었다. 놈이 수작질하는 게 느껴졌다.


“켄터메리.”

“아, 기억났습니다. 켄터메리라···. 한 달 뒤쯤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 후에 출발이면 생일 전에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딸아이의 생일 선물을 꺼냈다. 드래곤 장식이 걸려있는 목걸이다.


“돈과 함께 이것도 전해줘.”


목걸이를 살펴보던 접수원이 웃었다.


“드래곤 목걸이네요.”

“딸아이가 곧 생일이거든.”


접수원은 내가 보내는 돈주머니에 목걸이를 묶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수수료 오른 건 아시죠?”

“그래?”

“저번 주부터 4할로 올랐습니다.”


‘4할?’


보내는 원금의 4할을 수수료로 챙긴다는 게 말이 되나?


나는 좀 짜증이 올라왔다.


“4할이라고?”

“동부 왕국들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문은 들으셨죠? 지금 여왕의 군대가 불타는 계곡에서 밀리고 있는 것도 아실 테고, 여기저기 도적 떼들이 넘쳐 나는데 당연히 수수료도 올려야죠.”


전쟁의 판이 더 커지고 있었다.


딱히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진 않았다.


내가 직접 가려고 하면 말이 있어야 했는데, 말은 너무 비싸서 살 수 없었고 가는 데만 최소 넉 달은 걸릴 것 같았다.


“알았어.”

“네, 그럼 접수하겠습니다.”


나는 등을 돌리려다 말고 접수원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아까부터 녀석이 계속 삐대는 게 불안한 구석이 있었다.


접수원의 말처럼 한 달 후에 출발할지, 보내는 돈이 온전히 갈 수 있을지 혹은 돈이 가도 목걸이는 사라진다든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었고 믿을만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보이지 않는 길도 있기 마련이다.


은근한 협박과 함께 당근을 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은화 5개를 꺼내 접수원에게 내밀었다.


접수원의 표정과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 이런 거 받으면 안 되는데······.”

“너 고생하는 거 뻔히 아는데 뭐. 이 정도는 내가 챙겨야지. 그나저나 이사는 잘했어?”


접수원의 눈이 커졌다.


어디서 사는지, 내가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걸 확인 시켜줬다.


“그,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

“미첼이 얘기하던데?”


미첼은 이 녀석이 자주 가는 술집의 창부였다.


접수원의 손이 떨리는 게 보였다.


“저···. 그러니까 제 마누라가···.”


나는 접수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얏! 걱정하지 마! 사내끼리 뭐. 다 그렇고 그런 거지. 안 그래?

“아······. 네.”

“아까. 언제쯤 출발한다고 했지?”


접수원은 내가 준 은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대답했다.


“음······. 특별히 다음 주에는 출발하도록 접수하겠습니다.”

“최선이지?”

“네! 정말 이것보다 빨리는 힘듭니다.”

“진짜?”

“네! 진짜예요. 믿어주세요!”


나는 접수원의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목걸이도 꼭 가야 한다.~”

“걱정 붙들어 매십쇼. 확실하게 갈 겁니다.”

“그래~ 잘 부탁한다. 미첼한테도 안부 전해주고.”

“네, 네.”


나는 딸에게 보내는 돈과 생일 선물을 부치고 상인 길드를 빠져나왔다.


열 살 생일을 앞둔 딸아이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딸에게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최근 모집하고 있는 용병단의 보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계약만 해도 한 달에 은화 30개씩, 전투 후 무사 복귀면 이사벨 여왕의 금화가 보수로 지급된다고 한다.


흔치 않은 기회였다. 작센 남작의 용병만 될 수 있다면 딸과 함께 살날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었다.


조급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빨리 값을 치르고 수도원에서 딸아이를 찾아와야 했다.


나는 용병단을 모집하는 작센 남작의 집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복잡한 시가지를 벗어나자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검을 차거나 방패를 든 사람들, 용병들은 멀리서 봐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목적지로 향했다.


용병을 선발하는 곳은 그 규모가 엄청났다. 이 정도의 땅과 건물이라면, 작센 남작의 위세를 알 수 있었다.


입구에는 용병들이 붐볐고 줄이 길었다.


“줄 서세요! 줄!”


다양한 인종의 용병들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줄을 섰다. 나 역시 빠르게 줄을 섰다.


지루한 시간이 흐르고 내 앞의 용병 차례가 되었다.


그 사내는 면접관과 몇 마디 나누더니 빠르게 탈락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좋았다. 장비도 멋지고 체격도 좋았다. 하지만 경험이 문제였다.


난 그 사내를 처음 본 순간 그가 풋내기인 걸 알아차렸다. 내가 면접관이어도 그 사내를 뽑진 않았을 거다.


내 차례가 되었다.


면접관은 무심한 듯 의자에 앉아 있었고 펜을 들어 문서를 작성했다.


“나이는?”

“42입니다.”

“좀 많군.”

“아직 한창입니다.”

“마지막 전투는?”


나는 면접관이 써 내려가는 문서를 보며 답했다.


“한 달 전입니다.”

“한 달 전?”

“네, 불타는 계곡에 있었습니다.”


필기하던 면접관의 고개가 올라왔다. 옆에 서 있던 경비병들도 나한테 관심을 보였다.


“이력을 부풀리거나 거짓말을 하면 감옥행이네.”


나는 면접관의 눈을 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면접관이 다시 물었다.


“그럼 어떤 용병단에 있었나?”

“달빛 용병단입니다.”

“거기 있던 용병들은 대부분 죽었다고 들었는데.”

“네.”

“생존자가 몇이나 되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용병단이 해체되어서 아쉽겠군.”

“늘 있는 일입니다.”

“자넨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왔나?”


참혹했던 방어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날은 운이 좋았다. 찰나의 순간이었고 하늘이 도왔다.


“운이 따랐습니다.”


면접관은 펜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면접에 통과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이었다.


“너처럼 운이 좋았던 사람이 저기 또 있네.”


나는 면접관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짙은 초록색 모자를 쓴 이를 발견했다.


용병치고는 체구가 매우 작았는데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활쟁이?’


때마침 녀석도 날 발견한 듯했다.

활쟁이가 두 손을 교차로 흔들며 뭐라고 지껄였다.


활쟁이 토비가 살아있었다.


“저자는 궁수로 지원했다.”

“네. 달빛 용병단에서 가장 솜씨 좋은 녀석이었습니다.”

“본인도 똑같이 말하더군.”

“자네 이름은 뭔가?”

“케인입니다.”


면접관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늘을 보며 자기 턱을 매만졌다.


“케인이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지켜보던 경비병이 허리를 숙여 면접관에게 속삭였다. 그 경비병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이야기를 듣던 면접관이 흠칫하며 물어왔다.


“혹시 자네가 강철의 망치를 쓰러트린 사람인가?”

“불타는 계곡에서 만난 흑기사가 그 자라면 제가 맞습니다.”

“오! 오!”


면접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훑어봤다.


“도끼를 주로 쓰는 건가?”


나는 허리춤에 걸려있는 두 자루의 도끼를 뽑아줬다.


“보시겠습니까?”

“아, 아니네. 솜씨가 좋다고 들었는데···.”

“못 쓸 정도는 아닙니다.”

“하하하. 이 친구 말도 잘하는구만.”


면접관이 자리에 다시 앉으며 경비병을 쳐다봤다.


“이 자는 합격. 안내해 줘.”


경비병이 친근하게 굴며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따라오시오.”


나는 경비병을 따라 활쟁이 토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생각보다는 면접이 수월했고 빠르게 합격했다.


앉아서 손을 흔들던 토비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케~~인! 조장!!”


내가 잘 웃는 편은 아닌데 감정이 북받치며 웃음이 나왔다.


‘살아있었구나. 토비.’


나는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벌렸다.

토비는 내 앞에서 껑충 뛰더니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토비는 귀여운 구석이 많은 놈이었다.


나는 아이처럼 안겨있는 토비의 등을 매만졌다.


놈이 애지중지하던 활이 없었다.


“활쟁이가 활이 없네?”

“어. 잃어버렸어. 그때 너무 경황이 없었거든.~”


토비는 방어전을 할 때 그나마 후방에 있었다. 나는 다른 단원들이 궁금해 물었다.


“다른 애들은?”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토비의 머리가 내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안아줬다.

한동안 우린 침묵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다른 용병들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남자 둘이 꼭 안고선 떨어지질 않으니, 오해를 살 만도 했다.


“토비, 그만 내려와~”

“싫어. 나 쪼금만 더 안아줘······.”


불필요한 오해는 사양이었다.

나는 토비의 허리에 엄지손가락을 깊게 찔러넣었다.


“아! 아!”

“내려와.”

“아! 알았어. 그만, 그만해.”


토비가 내려오자 나는 녀석의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좋은데 들 갔을 거야.”


토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른 합격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앉았다.


면접은 해가 넘어가서야 끝이 났다. 지루한 기다림이었다.


경비병들이 횃불에 불을 붙였다. 합격자들이 모인 곳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어중이떠중이들은 대충 걸러내고 남아 있는 용병은 대략 60여 명 가까이 되었다.


면접관은 우리가 모인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왔다.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면접이 끝났으니, 지금부터는 실전 능력을 보도록 하겠다. 우선, 궁병은 제외하고 보병부터 보도록 하지. 소문은 들었겠지만, 우리는 최정예의 용병이 필요하다. 각자 최선을 다하도록!”


면접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경비병들이 수련용 장비를 들고나왔다. 나무로 만든 창과 검, 방패 등이 보였다. 근접전을 하는 용병들의 시험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은 경비병들의 지시에 따라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앉았다. 가운데 있는 면접관을 중심으로 결투 공간이 만들어졌다.


면접관이 손바닥을 마주쳐 주의를 집중시켰다.


“여러분들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다! 위대한 기사! 작센가의 사자! 번개같이 휘두르는 창에는 용서가 없는 법! 명예로운 기사 알프레드경 나오시오!”


용병들의 이목이 기사에게 집중됐다.


은은하게 빛나는 철제 갑옷이 번쩍거렸다. 작센가의 상징인 사자 망토는 기사의 어깨에 달린 날개 같았다.


기사는 기다란 철창을 어깨에 걸치고 한발 한발 다가왔다.


용병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알프레드란 이름을 한 번쯤은 아니 백 번쯤은 들어왔을 터다. 그만큼 명성이 자자한 기사였다.


기사는 결투 공간에 당도해 면접관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알프레드가 천천히 용병들을 살폈다. 나 역시 알프레드의 얼굴을 뜯어봤는데 대머리에 콧수염이 인상적이었다.


기사 알프레드는 자신의 콧수염을 정리하더니 어깨에 걸친 철창의 꼬리를 땅에다 박았다.


쾅!


“나 명예로운 기사 알프레드가 네놈들의 실력을 직접 확인하겠다! 자신 없는 것들은 집으로 가라!”


‘어라?’


몇 명의 용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의 철창이 다시 한번 땅을 찍었다.


쾅!


“애초에 실력이 안 되는 것들은 시간 끌지 말고 빨리빨리 일어나!”


기사 알프레드가 입을 열 때마다 용병들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몇 사람이 더 일어나다니 먼저 포기한 이들의 뒤를 쫓았다.


“자! 병신들은 갔고, 먼저 맞고 싶은 사람부터 나오도록.”


선뜻 나서는 용병들이 없었다.


‘자신감이 넘치네······.’

‘명성만큼 진짜 대단하려나?’

‘내가 먼저 끊어?’


아무도 도전하는 이가 없자 기사 알프레드가 다시 한번 외쳤다.


“계집애 같은 것들! 빨리 나오는 놈일수록 가산점을 주도록 하겠다! 어때? 누가 도전해 보겠는가?”


‘계집애?’


오만하기 그지없는 알프레드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알프레드의 콧수염을 뽑아서 머리에다 붙여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땅에 손을 짚었다.

케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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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운명의 장난. 24.08.20 15 0 13쪽
14 14화. 알프레드의 변신. 24.08.19 17 0 13쪽
13 13화. 속전속결. 24.08.17 22 0 11쪽
12 12화. 하늘발톱. 24.08.16 23 0 15쪽
11 11화. 독수리부족. 24.08.15 26 0 12쪽
10 10화. 발바닥 족장의 선물. 24.08.14 27 0 13쪽
9 9화. 누렁니와의 결투. 24.08.13 33 0 12쪽
8 8화. 누비족의 전사들. 24.08.12 35 0 12쪽
7 7화. 행군. 24.08.10 40 0 13쪽
6 6화. 단장과의 면담. 24.08.09 39 0 13쪽
5 5화. 원정 준비물. 24.08.08 41 0 12쪽
4 4화. 정찰조 조장. 24.08.07 43 1 14쪽
3 3화. 강철의 망치 흑기사. 24.08.06 59 2 15쪽
2 2화. 명예로운 기사의 일격. 24.08.06 63 3 12쪽
» 1화. 용병 지원. 24.08.06 7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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