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용병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루이곤
작품등록일 :
2024.08.05 18:19
최근연재일 :
2024.08.21 11:10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586
추천수 :
8
글자수 :
92,464

작성
24.08.13 18:00
조회
33
추천
0
글자
12쪽

9화. 누렁니와의 결투.

DUMMY

“어이~ 친구! 놀아보자.”


‘아···. 이런 전개는 또 뭐냐. 이건 뭐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구나.’


나는 여유 있는 척 웃으며 족장과 전사들을 둘러봤다.

하나같이 내 실력을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 목소리로 등 뒤에 있던 내 부하를 힘차게 불렀다.


“토비! 내 도끼를 가져와라!”


토비가 뒤에서 속삭였다.


(도끼 어디 있는데?)

(몰라?)

(내가 그걸 어찌 알아? 아까 쟤들이 다 옮겼잖아.)


나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족장에게 말했다.


“제 도끼를 주시면 실력을 보이겠습니다.”


족장이 명령했다.


“무기를 갖다줘라.”

“네! 족장.”


전사하나가 내 도끼 두 자루를 가져다줬다.

내 친구 누렁니의 목소리가 막사 밖에서 들린다.


“뭐해! 친구. 빨리 나와!”


나는 도끼를 휘둘러보며 막사를 나섰다.


‘간다. 가. 시발.’


막사를 나와보니 누렁니가 칼을 휘두르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뱀 부족 전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누렁니는 자신의 큰 칼을 어깨에 걸치고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둥그렇게 모여 있는 전사들을 둘러봤다. 징그러운 뱀 문신의 전사들이 구름떼처럼 모여 나를 구경했다.


‘오싹한 기분이네.’


여긴 뭐 수련용 무기 같은 것도 없었다.


‘진검승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았다.

이들은 야생에서 수렵과 목축을 하며 살아가는 부족이니만큼 어쭙잖은 용병들보다 훨씬 더 잘 싸울 게 불 보듯 뻔했다.


‘지면 끝이다.’


그동안 내가 했던 많은 거짓말 들이 이 승부에 의해서 들통날 수 있었다.

나는 양쪽 손에 든 도끼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숨을 한 번 골랐다.

누렁니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됐냐?”


나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준비가 뭐 필요한가? 얼른 와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렁니가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도 모르게 도끼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바람 소리와 함께 누렁니의 크고 긴 칼이 내 얼굴을 쓸어왔다.


‘빠르다!’


나는 반사적으로 얼굴을 틀면서 왼손에 있는 도끼로 누렁니의 칼을 쳐냈다.

칼을 쳐내자마자 찌릿찌릿한 느낌이 왼손을 타고 어깨로 전해졌다.


‘뭐야 이거.’


겨우 한 번 칼을 쳐냈을 뿐인데 정신이 반짝 든다.


누렁니의 칼은 무겁고도 큰 만큼 강하고 억센 위력이 있었다.

딱 한 번만 맞아도 그대로 끝날 수 있었다.


나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누렁니의 칼이 느려지길 기다렸다.


대여섯 번 칼끝을 피하자, 그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무거운 무기로 몰아쳐도 내가 맞지만 않는다면 병기의 이점은 나한테 있었다.

가볍게 휘두를 수 있는 내 도끼는 누렁니의 칼보다 속도에선 한 수 위였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나는 오른손에 있는 도끼로 누렁니의 상체를 공격하며 빠르게 반격했다.

누렁니가 한 발 뒤로 빼더니 재빨리 내 도끼를 막았다.

오른손의 도끼가 막히자 나는 다시 내 왼손의 도끼로 녀석의 허리춤을 벴다.

누렁니는 또다시 한 발 뒤로 빼면서 칼등으로 내 도끼를 막았다.


캉!


누렁니의 칼등과 내 도끼날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틈을 주면 안 된다.’


녀석이 내 왼쪽 도끼를 막으면 난 다시 오른쪽 도끼로, 오른쪽의 도끼를 막으면 난 다시 왼쪽 도끼로 정신없이 누렁니를 몰아붙였다.

우리는 막고, 베고, 피하기를 십여 차례 나누고는 둘이 동시에 거리를 벌리며 2차전을 준비했다.

전사들의 환호성이 뜨겁게 울려 퍼졌다.


누렁니가 입을 열었다.


“꽤 하는데?”


나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더 할 거야?”


누렁니는 대답 대신 뱀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스으.


누렁니의 눈은 흡사 뱀의 눈처럼 변하면서 내 빈틈을 찾았다.

나 역시 누렁니의 하체와 칼의 움직임에 집중하며 다음 공격을 대비했다.

누렁니의 자세가 변했다.

왼발을 앞에 딛고 오른발은 빼면서 두 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찌르기를 준비하는 건가?’


누렁니는 나와의 거리를 천천히 재면서 앞서 있는 왼발을 움직여 나에게 접근했다.

나는 누렁니가 한 발 앞으로 다가오면 한 발 뒤로 빼면서 거리를 벌렸다.

누렁니는 한 마리 뱀처럼 땅을 서서히 기는 듯 나에게 다가왔다.


아주 잠깐의 방심이나 틈이 보이면 뱀이 머리를 쏘아내듯 누렁니의 칼이 내 얼굴을 찌를 것 같았다.


누렁니와 내가 신중하게 대치하자 주변의 반응도 고요하게 바뀌었다.


대부분의 야만족 전사는 큰 고함을 질러대며 자신의 허점을 노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누렁니는 달랐다.

녀석은 내 도끼가 자신의 칼보다 빠르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신중하고 차분하게 내 약점을 찾고 있었다.


‘쉽지 않네···.’


어떻게 할까.

먼저 들어갈까?


‘아니지.’


누렁니의 눈을 보니 내가 들어오길 바라는 눈치였다.


‘기다린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우습게도 우리는 서로 먼저 들어오길 기다리는 중이었다.


‘틈을 줘볼까? 녀석이 내 미끼를 물으려나?’


난 누렁니가 어떻게 찔러올지 최대한 머릿속에 떠올려 보며 미끼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내 한쪽 어깨가 흔들리면, 그러니까 내가 공격하는 척을 하면 누렁니의 찌르기가 내 얼굴로 올 것 같았다.


‘해보자.’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면 분명히 녀석은 미끼를 물 것 같았다.

나는 먼저 크게 함성을 내질러 한 번 속였다.

누렁니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나는 이어서 두 번 속이기 위해 내 오른쪽 어깨를 크게 흔들어 도끼로 공격하는 척했다.

아니나 다를까 누렁니가 미끼를 물었다. 누렁니의 칼이 일직선으로 내 머리를 찔러왔다.


‘됐다!’


나는 예상한 경로로 칼이 오자 허리를 뒤로 눕듯이 젖히면서 찌르기를 피하고, 오른발로는 칼자루를 쥔 녀석의 손을 강하게 올려 찼다.


뻑!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왼손에 있던 도끼를 버리고, 그 손으로 땅을 짚음과 동시에 허리를 세우며 오른손의 도끼로 누렁니를 공격했다.


칼을 놓쳐버린 누렁니가 황당한 표정으로 서 있었고 누렁니의 목에는 내 도끼가 닿아 있었다.


찰나의 미끼를 주고 승리를 취한 나는 누렁니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네가 졌다. 누렁니.”


누렁니는 얼떨결에 끝나버린 승부가 아쉬웠는지 입맛을 다셨다.


“쳇. 너무 쉽게 끝났다.”

“내가 운이 좋았다.”


누렁니는 목에 있던 내 도끼를 손가락으로 밀어내며 크게 웃었다.


“하하하.”


나도 누렁니와 함께 웃었다.


“하하하.”


주변에서 구경하던 전사들은 우리가 웃자 따라 웃기 시작했다.


뱀 부족의 족장이 걸어와서 내 등을 두드렸다.


“좋은 승부였다. 알프레드의 심장을 먹었다길래 반신반의했는데 이제는 믿을 수 있게 됐다.”

“운이 좋았습니다.”

“내가 보기엔 운이 아니었어. 자네를 인정하지. 이제 케인은 내 부족의 친구다.”

“감사합니다. 족장님.”


족장은 내 손을 잡아서 하늘로 들어 올렸다. 주변에 있던 전사들이 나와 족장을 쳐다봤다.


“자! 조용! 나 뱀 부족의 위대한 족장! 발바닥이 친구를 하나 소개하겠다!”


‘발바닥? 설마 이름이 발바닥인가?’


시끄러웠던 주변이 조용해졌다.


“놀라지 마라! 이 자는 알프레드를 죽이고 그의 심장을 먹은 전사다!”


뒤늦게 내가 누군지 알게 된 전사들이 흥분하며 말들을 쏟아냈다.


“알프레드를 죽였다고?”

“진짜야?”

“진짜 그 새끼를 죽인 거야?”


누렁니는 놀고 있던 내 나머지 팔을 같이 들어 올렸다. 난 졸지에 하늘에 대고 만세를 하게 됐다.


“친구가 알프레드를 죽였다!”

“와!!”

“알프레드가 죽었다.!”

“우와아아!”


전사들이 발을 구르며 엄청난 환호성을 질렀다.


‘도대체 대머리는 어떤 짓거리를 하고 다녔던 거야!’


족장이 내 팔을 내리고는 전사들을 진정시켰다. 누렁니 역시 내 팔을 내려줬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이빨이 다 빠진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얼굴에 주름이 잔뜩 있는걸 보니 나이가 꽤 많아 보였다.

노인은 천천히 내 앞에 서서 내 눈을 바라봤다. 노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까칠하고 주름진 노인의 두 손이 내 손을 와락 움켜잡았다.


옆에 있던 발바닥 족장이 부연 설명을 했다.


“노인의 아들이 알프레드한테 죽었다네.”


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내 손을 꼭 붙들었다. 그 손의 떨림이 내 마음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난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노인을 바라봤다.


노인이 족장에게 말했다.


“발바닥 족장님. 형제의 맹약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형제의 맹약? 그게 뭐지?’


노인은 갑자기 자기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한 번으로 부족했는지 연신 침을 뱉었다.


퉤! 퉤!


노인은 손바닥이 침으로 흥건해지자, 내 얼굴로 그 손을 가져왔다.


‘자, 잠깐!’


난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노인의 손은 누렁니의 칼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얼굴로 다가왔다.

노인의 침이 내 얼굴에 잔뜩 묻었다.


‘아···. 이거 느낌 안 좋다.’


노인이 말했다.


“이제 당신은 내 형제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기꺼이 죽을 겁니다.”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 안 그려서도 되는데···.’


난 도움을 요청할 겸 누렁니를 쳐다봤다.

누렁니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하고 있었다.


‘이게 아닌데.’

‘이게 무슨 개똥 같은 감동의 시간이란 말인가.’


족장이 날 칭찬해 줬다.


“고맙네. 원수를 갚아줘서.”

“아, 아닙니다.”


노인이 천천히 사라지자 다른 젊은 전사 하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족장이 또 설명을 해줬다.


“알프레드한테 형이 죽었네. 저 전사는 죽은 형의 동생이고.”

“아···. 그렇군요.”


그 젊은 전사는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절한 다음 일어나서 말했다.


“족장님. 저도 형제의 맹약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

“네.”


젊은 전사는 자기 손바닥에 침을 뱉었다.


카악! 퉤!


확실히 젊은이는 노인과 달랐다.

딱 한 번 뱉은 침이 노인의 침보다도 많았다. 굵직하고 노란 것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다.


젊은이의 손바닥이 다가왔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지그시 눈을 감고 내 뺨에 부딪혀 오는 미끄덩한 감촉에 온몸을 맡겼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젊은 전사 역시 감격하며 말했다.


“우리는 이제 형제입니다. 저는 형제를 위해 언제든 제 목숨을 바칠 겁니다.”


나는 좀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네···.”


젊은 전사가 사라지자 또 다른 전사들이 앞다투어 나에게 오기 시작했다.


3명.

4명.

5명.


어림잡아 그 숫자가 30은 넘어 보였다.


‘대머리 진짜 많이도 죽였구나!’


나는 모든 삶을 포기한 채 누렁니에게 물었다.


“누렁니, 지금. 이거 되게 성스러운 의식 같은 거지?”

누렁니가 감동을 떨치지 못한 채 대답했다.


“그렇다.”

“그럼. 이거, 내 얼굴에 묻은 거 말이야, 닦으면 안 되겠네?”

“당연히 안 되지.”

“얼마나? 이래야 해?”

“3일간은 형제의 예를 씻을 수 없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3일은 꼭 지켜야 하는 거지?”

“물론.”

“그래~ 그런 거구나.”


나는 진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냄새가 자꾸만 콧구멍을 자극해 왔다.


‘아···. 진짜 살다 보니 별 해괴한 일도 다 생기는구나.’


내 친구 누렁니는 눈물을 닦더니 본격적으로 나를 돕고 나섰다.


“줄 서! 줄!”


나는 그렇게 엄청난 환대를 받고서야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발바닥 족장은 우리를 환영한다고 대연회를 벌였다.


모든 뱀 부족 전사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연회를 즐겼다.


커다란 통나무 식탁 위에 음식과 술이 잔뜩 있었다.

차려진 음식은 고기가 주를 이루고 몇 가지 과일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고기는 소금과 후추로 간을 안 해서 노린내가 너무 심하게 났다.


토비와 클레어 역시 고기에는 손을 못 댔다.


다만 꿀을 바른 개구리 고기가 있었는데 그거는 좀 먹을 만해서 우리 셋은 개구리만 집어 먹었다.


발바닥 족장은 나와 토비, 클레어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독수리 놈들이 술을 전부 놓고 도망쳐서 술이 넘치도록 있으니 마음껏 먹고 취하게! 하하하!”


술은 산딸기로 담근 거였는데 단맛보다는 시큼한 맛이 강했다.


‘잠깐! 독수리 놈들?’

‘독수리 부족을 말하는 건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애꾸눈 용병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휴재에 관한 공지를 남겨봅니다. 24.08.21 27 0 -
16 16화. 기름 거미. 24.08.21 12 0 11쪽
15 15화. 운명의 장난. 24.08.20 15 0 13쪽
14 14화. 알프레드의 변신. 24.08.19 18 0 13쪽
13 13화. 속전속결. 24.08.17 22 0 11쪽
12 12화. 하늘발톱. 24.08.16 24 0 15쪽
11 11화. 독수리부족. 24.08.15 27 0 12쪽
10 10화. 발바닥 족장의 선물. 24.08.14 28 0 13쪽
» 9화. 누렁니와의 결투. 24.08.13 34 0 12쪽
8 8화. 누비족의 전사들. 24.08.12 35 0 12쪽
7 7화. 행군. 24.08.10 41 0 13쪽
6 6화. 단장과의 면담. 24.08.09 40 0 13쪽
5 5화. 원정 준비물. 24.08.08 41 0 12쪽
4 4화. 정찰조 조장. 24.08.07 44 1 14쪽
3 3화. 강철의 망치 흑기사. 24.08.06 60 2 15쪽
2 2화. 명예로운 기사의 일격. 24.08.06 63 3 12쪽
1 1화. 용병 지원. 24.08.06 77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