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용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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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곤
작품등록일 :
2024.08.05 18:19
최근연재일 :
2024.08.21 11:10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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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64

작성
24.08.2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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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6화. 기름 거미.

DUMMY

“정말 거미가 나보다 크다고?”

“직접 보면 안다.”


나는 거미한테 잡아먹히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쌍둥이 바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나무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바위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구간이 제법 있었다.


우리는 경사가 가파른 곳에 말뚝과 끈을 연결해 이동이 편하게 만들었다. 뒤에서 오는 후발대를 위함이었다.


3일이 지나고 한참을 가다 보니 누렁니가 말한 쌍둥이 바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두 개의 큰 바위가 마치 사람 얼굴처럼 생겼는데, 두 바위가 나란히 붙어있다 보니 정말 쌍둥이와 같은 모습이었다.


고지가 높아져서 그런가.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편한 길을 찾아가며 산을 올랐다. 지나치는 경로 곳곳마다 토비는 계속해서 표식을 남겼다.


해가 질 때쯤 돼서야 쌍둥이 바위에 이르렀다.


대원들은 바위에 기대어 물을 마시거나 다리를 주무르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낮과 다르게 밤이 되자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까는 선선해서 좋았던 바람이 지금은 꽤 부담스러울 정도로 차갑게 느껴졌다.


‘야영은 밑으로 내려가야겠다.’


나는 바람을 좀 막아주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바위 아래를 살피며 누렁니를 찾았다.


“누렁니 저 아래 어때?”


누렁니는 내가 찍은 장소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쉬고 있는 대원들과 함께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여기쯤이 좋겠다.’


내가 수신호를 하자 선발대는 평평하고 고른 땅을 찾아 야전용 임시 막사를 세웠다.


막사들 중간에는 모닥불을 피웠다. 지대가 높은 편이어서 야생동물이 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불을 피우고 안 피우고는 차이가 컸다.


토비는 주변을 좀 둘러보고 온다면서 클레어와 함께 정찰을 나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반짝이는 별들이 무수히 많았다.


나는 모닥불을 쬐고 있는 누렁니 곁에 다가가 앉았다.


“내일부터는 거미를 조심해야겠지?”

“그렇다.”

“거미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

“아니다. 잡아도 된다. 나는 전사들과 거미를 여러 번 잡아봤다.”

“오~ 어떻게 잡으면 되는데?”

“일단 미끼로 몇 명을 앞에 세운다.”

“미끼?”

“그렇다. 거미가 미끼에 거미줄을 쏜다. 그러면 그 사이 나머지 전사들이 포위해서 거미를 공격하면 된다.”

"그러다 잡아먹히는 거 아냐?"

"무서우면 숨어있어라. 내가 처리할 테니."

"숨다니? 나 케인이 거미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으냐?"

"그럼 니가 잡던가."


나는 누렁니의 설명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가 켕기는 부분을 물었다.


“거미줄이 위험하거나 하진 않아?”

“거미줄은 괜찮다. 누군가 풀어주기만 하면.”

“안 풀어주면?”

“서서히 숨이 막히다 죽는다.”

“음...”


누렁니가 이빨을 보였다.


"무서우면 숨어있어라."


나는 누렁니에게 나의 흰 이빨을 드러냈다.


"너나 숨어라."


누렁니가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날 도발했다.


"누가 먼저 잡는지 해볼까?"

"그래! 까짓것 해보지 뭐."


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거미는 근데 꼭 잡아야 하나? 그냥 도망치면 안 되는 건가?'


나는 모닥불을 쬐며 은근슬쩍 물었다.


“거미줄에 당하면 숨이 막혀 죽을 수도 있는데, 꼭 죽여야 할 필요가 있냐?”


누렁니 역시 나처럼 불을 쬐면서 답했다.


“거미의 내장이 좋다.”


난 잠깐 생각하다 재차 물었다.


“내장이 맛있어?”

“아니다, 먹는 거 아니다, 거미 내장은 불이 잘 붙는다, 우리는 그걸로 횃불을 만들거나 불을 피울 때 주로 쓴다.”

“아~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부싯돌로 불을 붙이면 자꾸 꺼진다. 거미 내장은 한 번 불이 붙으면 비가 와도 잘 꺼지지 않는다.”

“오~ 그러면 거미 내장은 기름이나 마찬가지인 거네?”

“그렇다.”

“신기하구만···.”


누비족은 교역이 없는 대신 이런 식으로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자연에서 얻는 것 같았다. 물론 재수가 없으면 거미를 사냥하다 죽을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잠깐, 그러면 혹시 이 내장을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도시에서 기름은 꽤 비싸게 거래된다.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대부분 양초를 쓴다. 하지만 여유 있는 귀족들은 달랐다.


바람에도 쉽게 꺼지지 않는 등잔불을 주로 썼다. 또한 기름은 휴대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램프에도 많이 쓰이는데 이 역시 값이 꽤 나갔다.


아직 도버성과의 교역이 열린 것도 아닌데 나는 벌써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거미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누렁니, 그 거미가 이 산에 몇 마리나 있냐?”

“많다.”

“얼마나 많은데?”

“내가 본 것만 해도 수십 마리다.”

“음···.”


‘기름양이 얼마나 되려나.’

‘거미를 만나게 되면 내장을 좀 살펴봐야겠다.’


내가 누렁니와 거미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정찰을 나갔던 토비와 클레어가 돌아왔다.


“문제없는 것 같아.”

“알았어. 오늘 보초는 클레어인가?”


클레어가 대답했다.


“아니요. 제 차례는 아직 멀었어요.”


토비가 알려줬다.


“케인니이임~ 케인님이세요~”

“아니, 내가 그래도 명색이 사자용병단의 단장인데 보초까지 서야 해?”


옆에 있던 누렁니가 매섭게 째려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일어나 무기를 집었다.

토비가 들고 있던 활을 내려놓으며 모닥불을 쬐었다.


“똑바로 서. 안 그럼 누렁니한테 이를 거니까.”

“치사한 새끼.”


나는 배낭에서 두터운 망토를 꺼내 몸에 두르고는 막사에서 벗어나 시야가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방이 고요했다.

아까 했던 고민이 다시 떠오른다.


‘기름 거미라···.’


얼추 시간이 지나자, 교대자가 찾아와 나 역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우리는 빠르게 자리를 정리하고 산을 내려갔다.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없어지면서 나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들고 있던 칼이나 창으로 가지들을 쳐가며 길을 냈다. 오랜 시간 외부인이 다니지 않았던 산이라 풀과 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누렁니가 말한 거미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전사들과 함께 속도를 내며 산을 내려갔다.


내 앞에서 길을 터던 누렁니가 갑자기 멈추더니 나를 돌아봤다.


“무슨 냄새 난다.”

“냄새?”


나는 순간 긴장하면서 주변을 살피며 냄새를 맡아봤다. 선발대가 모두 멈춰서 주변을 경계했다. 무언가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거미야?”

“아니다.”


누렁니는 예민하게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걸어 나갔다. 뒤따르는 우리 역시 발소리를 죽여가며 따라갔다.


한참을 가던 누렁니가 또 고개를 돌렸다.


“또 난다.”


나는 급히 수신호를 보내며 대원들의 이동을 막고는 다시 한번 콧구멍을 크게 열었다. 분명히 무언가 썩는 냄새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몸을 낮추며 신중하게 주위를 살폈다.

토비가 조심스레 나한테 다가왔다. 표정이 심각했다.


“얼굴이 왜 그래?”

“조장. 나 배 아파.”

“배가? 갑자기?”

“아니 아까부터 아팠어.”

“똥?”

“응.”


나는 토비와 대화를 나누던 중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분노에 휩싸였다.


“설마, 너냐? 니가 뀐 거냐?”


토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새끼! 겁나 놀랬잖아.”

“배가 아픈 걸 어쩌라고!”


나는 좀 킁킁대다가 현기증이 일었다.


“또 뀌었지? 아, 냄새!”

“흐흐흐흐”


우리는 토비 때문에 모두 코를 잡았다.


“배가 썩었냐? 냄새가 왜 이래?”

“몰라. 아까부터 부글부글해.”

“빨리 싸고 와! 여기 있을 테니까.”

“알았어!”

“아오. 더러운 새끼 진짜 뭘 처먹어서 냄새가···. 후. 숨을 못 쉬겠네.”


토비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풀을 뚫고 어디론가 향했다.


“야! 좀 멀리 가서 싸!”

“알았어!”


나는 코를 잡고 대원들을 살폈다. 클레어 역시 목에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끌어 올려 코를 가렸다.

예쁘장한 클레어의 얼굴이 험악한 사내처럼 변해 있었다.


우리는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토비를 욕했다.


누렁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잡아끌며 뭔가를 가리켰다.

내가 유심히 그것을 살펴보니 하얀 실이 나무뿌리에 걸려있었다.


“여기 왜 실이 있냐?”

“실이 아니라 거미줄이다.”

“거미줄?”


나는 도끼를 하나 뽑아 그 거미줄을 도끼날로 채서 들어봤다. 끈적한 실이 도끼날에 걸린 채 딸려 왔다.


‘이게 거미줄이구나! 신기하네.’


“거미가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다. 거미줄이 많이 있으면 있을수록 거미가 가까이 있다는 뜻이다.”


내가 사방을 둘러보니 거미줄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왼쪽 허리에 있던 도끼마저 뽑아냈다.


“토비가 오는 대로 바로 벗어나자.”

“알았다.”


선발대는 각자의 무기를 꺼내고 사방을 경계했다.

누렁니가 입술에 손을 갖다 댔다.


“쉿! 무슨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모두 긴장하며 조용히 했다.

가까운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린다.


내가 생각해 보니 그 소리는 토비의 항문과 바깥 공기가 서로 교신하며 내는 소리였다.


‘개새끼! 좀 멀리 가서 싸라니까!’


우리는 모두 함께 토비의 교신 소리를 들었다.

한번, 두 번, 교신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괴로웠다.

떠올리지 말아야 할 덩어리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인내해야만 했다.


잠시 후 토비가 아주 밝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지금까지 내가 봐온 토비의 얼굴 중 가장 행복한 얼굴이었다.


“조장! 다했어!”

“개새끼야 좀 멀리 가서 싸라니까.”

“흐흐흐흐.”


토비는 내 도끼에 걸린 거미줄을 보며 물었다.


“어? 여기에도 실이 있네?”

“이건 실이 아니라 거미줄이다.”

“거미줄? 아까 나 똥 싼 곳에 이거 엄청 많던데?”

“뭐야!!”


우리는 일제히 토비가 똥 싼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집채 만 한 나무들이 흔들리면서 나뭇잎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 이거 느낌이 안 좋다.’


누렁니가 다급하게 외쳤다.


“거미다!! 방패!”


뱀 부족의 전사 중 방패를 든 전사들이 내 앞으로 튀어나오며 대열을 만들었다.


“나머진 흩어져!!”


날랜 전사들이 흔들리는 나무를 앞에 두고 좌우로 흩어지며 자리를 잡았다.

나는 방패를 든 전사들 뒤에 서서 전방을 주시했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흑 거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거미가 그렇게 눈이 많은 건지 처음 알았다. 시커먼 거미는 머리부터 배까지 이어지는 공간에 노란빛을 내는 눈알이 달려있었는데, 어림잡아도 눈이 10개는 돼 보였다.


흉측한 털이 얽혀 있는 거미 다리가 높게 자라난 나무들을 파헤치며 움직였다. 대충 봐도 6개 아니, 8개의 다리가 어지럽게 움직였다.


‘이런. 미친!’


나는 순간 거미의 크기에 압도당한 채 침만 꼴깍 삼켰다.


‘이렇게 큰 거미도 있구나!’


거미의 입은 나를 충분히 삼킬 만큼 컸고 그 입이 꼬물거리면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누렁니가 크게 외쳤다.


“방패! 나가!”


내 앞을 막고 있던 방패 전사들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츠오오오!


거미는 괴상한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렸다. 역한 냄새와 함께 하얀 거미줄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방패를 든 전사들의 몸이 순식간에 거미줄로 뒤덮였다. 온몸이 허옇게 변한 전사들은 옴짝달싹 못 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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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 기름 거미. 24.08.21 13 0 11쪽
15 15화. 운명의 장난. 24.08.20 15 0 13쪽
14 14화. 알프레드의 변신. 24.08.19 18 0 13쪽
13 13화. 속전속결. 24.08.17 22 0 11쪽
12 12화. 하늘발톱. 24.08.16 24 0 15쪽
11 11화. 독수리부족. 24.08.15 27 0 12쪽
10 10화. 발바닥 족장의 선물. 24.08.14 28 0 13쪽
9 9화. 누렁니와의 결투. 24.08.13 34 0 12쪽
8 8화. 누비족의 전사들. 24.08.12 35 0 12쪽
7 7화. 행군. 24.08.10 41 0 13쪽
6 6화. 단장과의 면담. 24.08.09 40 0 13쪽
5 5화. 원정 준비물. 24.08.08 41 0 12쪽
4 4화. 정찰조 조장. 24.08.07 44 1 14쪽
3 3화. 강철의 망치 흑기사. 24.08.06 60 2 15쪽
2 2화. 명예로운 기사의 일격. 24.08.06 63 3 12쪽
1 1화. 용병 지원. 24.08.06 7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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