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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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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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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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주인을 잃은 숲 3

DUMMY

"······그렇군요."


사실 이전 생에서 용병으로서의 내 실력은 고만고만했다.

간신히 칼질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였고, 그마저도 귀동냥과 눈대중으로 익힌 어중간한 실력이었다.


오히려 나를 먹여살린 것은 '행운의 리안'이란 별명이었다.


최초의 늑대가 랑게르나에게 내린 축복 덕분인지, 용병질을 하며 먹고 사는 내내 나는 마물의 습격을 받아본 적이 손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내가 껴있는 야영지에는 마물이 습격하지 않는다는 낭설이 떠돌았다.

뭐, 사실 낭설이라기엔 어느정도 근거 있는 이야기였지만.


가문을 잃은 뒤 난 '리안'이라는 이름으로 살았고 당연히 내가 랑게르나라는 사실은 입밖으로 꺼낸 적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분명히 알았다.

마물들이 나를 피해가는 것이 우연이 아님을.

그 이유가 내가 랑게르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덕분에 내 별명은 늘 '행운의 리안'이었고, 이 별명이 유명해지면서부터 전투보단 호위 대상의 안위가 훨씬 중요한 호위 임무를 주로 맡았다.


······결국 죽게 된 전장에서는 전혀 소용없는 행운이었지만.

이건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니까 뭐, 어쨌든.


'행운의 리안'이란 별명은 살아남기에는 꽤 유용한 별명이었다.

적당히 삶을 이어가고 살아가는데에는 충분한 명성.

하지만, 다시 살아가는 것을 택한 지금, 고작 '행운'이라는 별명보다는 뛰어난 명성이 필요했다.


잃어버린 가문을 되찾을 만큼, 뛰어난 명성이.


그리고 불을 다룰 수 있게 된 지금, 이 능력이 그 명성을 쌓을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아르다르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쉬지 않고 걸었고, 간신히 해가 지기 전에 하얀 산맥의 초입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얀 산맥의 초입은 곧 마물의 숲이 거의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마물의 숲의 끝자락에 이르러서야 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펴고 배낭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꺼내 씹는데, 마물의 숲 안쪽에서 불길한 시선이 느껴졌다.

마물의 한 종류처럼 느껴지지만, 훨씬 강대한 무언가.


망령 나무라기엔 움직임이 느껴졌고, 숲의 유령이라기엔 시선이 날카로웠다.

독수 거미도 아니다.

독수 거미는 한 놈의 눈이 여덟 개니까.

그럼 남은 것은······.


"······아르다르보. 저거 설마······."


- ······그래. 그림자 늑대(Shadow Wolf)로군.


그림자 늑대.

망령 나무가 마물의 숲에서 '마주칠 법한 마물' 중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마물이라면, 그림자 늑대는 내가 마물의 숲에서 '마주친다는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았던 마물'이었다.

그만큼 개체가 드문데다가 그림자 늑대가 주로 활동하는 서식지는 마물의 숲 전체의 동쪽 근방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비밀 통로를 통해 마물의 숲으로 빠져나온 지점은 숲의 거의 중앙.

거기서 하얀 산맥 쪽을 향해 북서쪽을 향해 움직였으니 그림자 늑대의 주요 서식지와는 거의 반대편인데······.


"······왜 저게 여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망령 나무는 사정 거리를 주의하면, 그리고 숲의 유령은 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 승산이 있다.

독수 거미도 상당히 위험한 마물이긴 하지만, 덩치가 작고 움직임이 느려 망령 나무나 숲의 유령에 비하면 상대하기 쉬운 편이다.


하지만, 그림자 늑대는 다르다.


다른 마물과 달리 늘 홀로 움직이지만 제일 위험하다.


평범한 늑대의 배는 달하는 크기에 빛 아래에서도 칠흑처럼 새카만 몸체.

놈의 몸뚱이는 말 그대로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든 광원을 빨아들이는 그림자 같았다.

숲의 유령처럼 뚜렷하지 않은 윤곽은 주변의 어둠에 녹아든 것처럼 모호했다.

그러한 어둠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선명하게 빛나는 한쌍의 붉은 눈.


심연처럼 깊은 암흑 속에서 붉게 빛나는 그 눈동자는 마치 꿰뚫어 보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느끼는 공포.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공포는 그런 종류의 두려움이었다.

나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검 손잡이를 더듬었다.


젠장. 싸워야 하나?


아무리 이그니서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됐어도 그림자 늑대를 상대로는 무리다.

성인의 몸이라면 모를까, 지칠 대로 지친 지금의 몸으로는 절대.


- 리안. 잠깐.


긴장한 나를 아르다르보가 만류했다.

의아함에 되물으려는 순간, 아르다르보가 덧붙였다.


- 잘 봐라. 공격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르다르보의 지적에 그림자 늑대를 살피자, 과연, 당황과 긴장 때문에 놓쳤던 부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림자 늑대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를 드러내거나 하는 위협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고.

나와 같은 빛깔의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고요히.


"······."


공격 의사가 없는 마물에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나는 그저 기다렸고, 그림자 늑대와 오랫동안 시선을 주고 받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늑대는 떠났고, 나 또한 산을 넘었다.




***



“말씀 좀 묻지요.”


열 살은 되었을까.

밖은 날카로운 바람이 휘몰아치건만, 얇은 옷가지 하나를 겨우 걸친 꼴이 남루했다.

바람을 오래 맞은 듯 아이의 귀끝과 뺨이 온통 붉었다.

쫄딱 젖은 검은 머리가 영 지저분했지만 얼굴이 희었다.


‘곱게 자란 것 같은데······.’


근처 영지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했다.

거기서 넘어온 건가.


몰락한 귀족의 아이쯤 될지도 모른다.

그럼 일이 귀찮아진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이의 꼴을 본 노인의 마음이 약해졌다.


“일단 들어와라.”


노인은 혀를 차며 아이를 안쪽으로 불렀다.

집은 좁았으나 바람이 새지 않았고, 벽난로의 불꽃 덕에 훈훈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몸짓이 공손했다.

나이답지 않은 의젓함이 호감을 불러일으켰다.


“할 말이 무어냐.”


“하룻밤만 쉬어갈 수 있을까 하고······.”


아이는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숙였다.

마주 잡은 양손이 흙으로 더러웠다.

곱게 자란 것은 틀림없지만, 이후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리라.


노인은 여전히 떨떠름한 기색을 떨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내쫓기엔 바람 소리가 매서웠다.


“집이 좁으니 내줄게 마땅치 않다.

자리를 깔아줄테니 난로 옆에서 자라.”


노인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닦은 천과 이부자리로 삼을 것을 아이에게 던져주었다.

그리고 이내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




- 생각보다 순순하군.


노인이 방문을 잠그는 것을 확인한 나는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벽이 얇으니 소리가 새어나갈 수 있으니까.


“내쫓길 줄 알았습니까?”


- 그러는 너는 자신이 있었나보구나.


“정이 많은 노인이라서요.”


이름 모르는 노인은 회귀 전엔 나를 처음 발견하고 사흘을 돌봐줬던 사람이다.

이전 삶에서 나는 영지를 빠져나와 사흘을 꼬박 헤맨 끝에 이 마을 ‘노르달’에 닿았다.

그리고 처음 발견한 이 집의 처마 밑에서 밤을 지샜다.


이런 날씨에 밖에서 밤을 지샌 난 거의 얼어죽을 뻔했지만, 이튿날 아침 집밖으로 나온 이 집의 주인인 노인에게 발견된 후 사흘 간 보살핌 받았다.

그런 사람이었으니 이런 몰골로 공손히 부탁하면 하룻밤 정도는 재워줄 거라 생각했다.


“오래 있을 순 없지만······.”


저 노인이 없는 살림에 사흘이나 날 보살펴 준 것은 그때의 내가 사경을 헤매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렇지 않으니 밤을 보내고나선 바로 떠나야 할 터.


- 이제 어쩔 셈이지?


아르다르보가 물었지만 난 곧장 대꾸할 수 없었다.

이왕 시간을 되돌린 것 아는 것을 활용하기 위해 익숙한 노르달로 왔지만, 이제부터 잘 생각해야했다.

이 시기에 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


가문의 성이 불탄 것은 11월의 중순이었다.

며칠을 밖에서 헤맸더라도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니 아직 12월로 넘어가지 않았을 터.


사흘 거리를 꼬박 걸었다.

어린애의 몸으로 헤쳐오기엔 벅찬 길이었지만, 빠르게 성을 빠져나온 덕분에 온전한 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 외투는 일부러 바깥에 버리고 온 거냐?


"네. 그래야 저 노인이 절 더 불쌍히 여길 테니까요."


여기까지 날 버티게 해준 외투는 적당히 먼 곳의 땅에 묻어두었다.

슬슬 얼어붙기 시작하는 땅을 맨손으로 파느라 손이 엉망이 되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노인이 날 도운 것은 어디까지나 동정을 살 법한 어리고 불쌍한 아이라 여긴 까닭일 테니, 내 꼴이 남루하고 비참할수록 효과적일 것이다.


- 그래서 짐도 함께 버리고 왔나보군.


나는 대꾸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 감춰둔 단검 끝을 매만졌다.

다른 건 다 내버렸지만 이것만은 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내게 주신 또다른 유품이자 이그니서스인 단검.

빠른 시일 내에 이만한 검을 다시 구하긴 무척 어려울 것이다.


- 계획은?


"일단 노르달의 약제사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약제사.


이 마을, 노르달에는 제대로 된 의사가 없어 약제사가 의사 역할을 대신한다.

문제는 노르달이 결코 작은 마을이 아니라는 것.

평소에는 괜찮지만, 전염병이라도 도는 계절엔 약제사의 일손이 많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전 생의 내가 얻은 일자리가 그 약제사의 조수 자리였다.


노르달의 유일한 약제사 데온의 조수로.


사실 말이 조수지 해가 바뀔 때까지는 심부름이나 하고 숙식을 제공받았다.

주변 산지에서 직접 약초를 캐 사용하는 데온에게 겨울이 시작되는 12월부터 날이 풀리는 3월까지는 일거리가 평소의 절반으로 줄어드니까.

그에게 조수가 필요하게 된 건 날이 풀리고 이 마을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번에도 소개시켜 주려나?'


그때와 내 외견이 다를 게 없긴 하지만, 이번에는 죽다 살아난 꼴이 아니니 확신할 수 없었다.

약제사 데온이 날 데려가겠다고 한 것은 내가 노인의 집에서 사흘밤낮을 앓아눕는 꼴을 보고 날 보살핀 후였으니까.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없으니 대뜸 데려간다고 할지 의문이다.


- 데려갈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지.


동감이다.

더이상은 선택받길 기다리지 않을 거다.

나는 날이 밝으면 노인에게 할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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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을 잃은 숲 3 24.08.11 91 3 11쪽
6 주인을 잃은 숲 2 24.08.10 100 3 11쪽
5 주인을 잃은 숲 1 24.08.09 112 4 12쪽
4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3 24.08.08 125 2 12쪽
3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2 24.08.07 139 3 12쪽
2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1 24.08.06 150 4 13쪽
1 회귀 24.08.05 20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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