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의 복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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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블몽블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7
최근연재일 :
2024.09.1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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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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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주인을 잃은 숲 2

DUMMY

"······무슨······."


갑자기 발생한 상황에 나는 얼어붙었다.

원래 이런 일이 있었던가?


콰과과과광!


"큭!"


내가 있는 곳은 잿빛 성과 꽤 떨어진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귀를 찢는 듯한 소음이 쏟아졌다.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비명 소리.

폭발이 대지를 흔들고 잦아들었던 불길과 연기가 다시 치솟았다.

이어지는 소란은 끝이 보이는 전쟁터에서 들릴 법한 종류의 것들이 결코 아니었다.


그리고 이변이 시작되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


잠을 자고 있던 망령 나무(Wraithwood)들이 일어났고, 독수 거미(Venomweaver)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망령 나무들 아래 몸을 숨기고 있던 숲의 유령들은 망령나무가 일어남과 동시에 빛이 들지 않는 마물의 숲 안쪽, 더 어두운 곳으로 도망쳤다.


크고 작은 그림자들이 뒤엉키고, 혼비백산하여 도주한다.

괴기한 울음소리가 뒤섞인다.


쿠구구구구구······.


머뭇거리는 사이 주변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척에서 눈을 뜬 마물 하나.


망령 나무!


- 리안!


"압니다!"


이변을 눈치챈 내가 뒤늦게 달렸으나 벗어나기엔 역부족이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자의 세 배는 될 법한 크기.

망령 나무는 마물의 숲에서 가장 흔한 마물이지만 지금의 나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던 마물이다.

ㅡ왜냐하면ㅡ.


휘익!


내가 마물의 숲에서 '마주칠 법한 마물' 중 가장 빠르기 때문이다.


- 피해!


아르다르보가 외침과 동시에 망령나무의 가지가 나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흐물거리던 숲의 유령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빠르기.

지금의 나로서는 눈으로 쫓기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쾅!


"큿!"


사나운 채찍처럼 망령 나무의 나뭇가지가 내 팔을 후려쳤으나, 가까스로 검을 들어 막을 수 있었다.

어마어마한 힘 덕분에 서있던 자리에서 수미터를 미끄러졌고, 멈췄다.

덕분에 망령 나무의 사정거리 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망령 나무는 일정 이상 떨어지면 공격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이정도라면 거리는 넉넉했다.

문제는 팔.


'······더럽게 아프네······.'


검에 불의 힘을 불어넣고 받아친 덕분에 팔이 부러지는 건 면했다.

망령 나무의 공격을 단순한 검으로 받아냈다면 팔이 아니라 검째로 부러졌을 테니까.


'······부러지지 않았을 뿐인가.'


하지만, 망령 나무의 가지를 받아친 팔은 정말로 '부러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뼈만 부러지지 않았을 뿐, 관절 마디마디가 쑤셨고 팔 전체의 근육이 당겼다.

그리고 지독히 아팠다.


"······후우······."


아픈 것은 검을 쥐었던 오른팔 뿐만이 아니었다.

왼쪽 상박은 바닥을 쓸어낸 덕분에 외투 전체가 너덜거렸고, 양팔을 제외한 온몸에 이미 상흔이 가득했다.

자잘한 상처까지 셈한다면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그 모든 상처가 지독히 욱씬거리고 아팠다.

마음 같아선 그대로 기절하고 싶은 수준이었지만 이대로 정신을 놓을 순 없었다.

코앞에서는 망령 나무가 꿈틀거리고 있고,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해야 했으니까.


- ······어쩌면 나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통증을 견디기 위해 호흡을 고르는데 아르다르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 물음에 아르다르보는 대답이 없었다.

한참 동안.


"······?"


아르다르보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몸부터 추슬렀다.

다행히 망령 나무는 사정거리를 벗어나자 내게 관심을 거둔 모양이었다.

내가 자는 놈 근처에 얼쩡거렸던 탓에 운 나쁘게 처맞은 것뿐인 듯했다.


'······숲의 유령만 아니었어도······.'


망령 나무 지척까지 다가간 것은, 유령을 상대하느라 여기저기 움직이는 바람에 망령 나무가 잠들어 있던 것을 발견하지 못한 탓이 제일 컸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리 자는 놈이라도 근처에 얼씬 거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모든 랑게르나의 아이들에게 '낮'에도 망령 나무 만큼은 접근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다른 마물들은 랑게르나의 아이들을 피하지만, 망령 나무는 제자리에 뿌리박혀 평생을 살아가는 마물.

해가 떠있는 동안 모든 마물들이 비활동적으로 변하지만, 망령 나무의 경우는 좀 달랐다.

망령 나무의 행동 양상은 낮과 밤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망령 나무는 낮이든 밤이든 상대가 제 사정 거리 안으로 다가가지만 않는다면 공격하지 않는다.

주변에 괴악한 기운을 흩뿌리는 밤과 달리 낮의 망령 나무는 얼핏 평범한 나무를 닮았다.

덕분에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놈의 사정 거리 안에서 서성이다가 공격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낮의 망령 나무는 반응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것.

익숙한 자라면 낮의 망령 나무에게 습격받기 전에 눈치채고 그 사정 거리를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직전에는 숲의 유령과 싸우느라 자고 있던 망령 나무에게 너무 가까이 갔던 모양이다.


"······윽······."


잠시 쉬고 나자 통증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여전히 입을 다문 아르다르보가 의아했지만,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기에 나는 다시 방향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한바탕 소란이 휩쓸고 지나간 덕분인지 한동안은 마물이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쫓기듯 대거 이동한 모양인데,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마물의 숲이 왜 랑게르나는 공격하지 않는지 아느냐?


내가 질문을 했단 사실조차 잊어버릴 때 즈음이 되어서야 아르다르보가 다시 내뱉었다.


"······마물의 숲이 랑게르나의 지배하에 있으니까요?"


해가 떠있는 동안 마물의 숲은 랑게르나를 공격하지 않는다.

지금은 낮이고 비밀 통로의 출구에서부터 숲의 망령과 맞닥뜨렸지만, 그게 내가 오늘까지 가지고 있었던 상식이었다.

잿빛 성에서 자란 랑게르나가 갖는 마물의 숲에 대한 상식.


그리고 그 근거는 '마물의 숲의 마물은 모든 랑게르나의 지배하에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 마물의 숲의 마물이 왜 랑게르나의 지배하에 있게 되었는지도 아느냐?


"······그건······."


아르다르보의 질문에 나는 기억을 더듬었다.

왜였더라?

분명 이유를 들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마물의 숲에서 랑게르나의 아이들이 안전하다는 것은 잿빛 성의 상식이었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것에는 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모두가 잊었더라도 그것이 시작된 이유가 된 근거가.


- 마물의 숲에 있는 모든 마물은 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아르다르보를요?"


마물의 숲에 있는 모든 마물의 아르다르보를 두려워한다.

즉, 마물의 숲에 있는 모든 마물은 랑게르나의 최초의 늑대를 두려워한다는 뜻.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아르다르보의 말이 의마하는 것 또한 깨달았다.


비록 해가 떠있는 시간에 한정이지만, 이제까지 마물의 숲에서 랑게르나는 안전했다.

하지만, 방금 전 나는 숲의 유령에게 죽을 뻔했다.

즉, 해가 떠있는 시간임에도 마물의 숲에서 마물이 랑게르나를 공격한다는 것은······.


"그럼, 지금은 마물의 숲에 있는 마물들이 당신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 정확하진 않지만, 비슷해.


"비슷하다고요?"


- 내 지배력이 약해졌다.


"지배력······?"


두려움을 바탕으로 한 지배력.

그것은 마치, 상황에 따라 바뀌는 상하관계, 같은 것.


- 내 힘이 약해졌으니, 마물들이 내게 가진 두려움 또한 옅어졌으리라.


아르다르보가 가진 힘.

그 말에 나는 랑게르나에게 최초의 늑대가 내린 축복을 떠올렸다.

불을 다루고 마물의 숲에서만큼은 마물에서 자유로운 우리의 축복을.

두 가지 모두 시조 시벨리안 랑게르나가 최초의 늑대에게 받았다는 힘이었다.


"랑게르나가 당신에게 받은 축복이란 것이 그런 종류였습니까?"


그리고 내가 아르다르보에게 물은 것은 '랑게르나는 마물의 숲에서만큼은 자유롭다'는 쪽의 축복이었다.

내가 상상한 것과는 원리가 좀 다른 모양인데.

단순히 랑게르나가 마물의 숲 내에서만큼은 최초의 늑대가 내린 축복의 보호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니.


- 그래.

랑게르나의 모든 피는 나의 축복을 받았고, 마물들은 그러한 랑게르나에게서 내 그림자를 본다.

마물들과 주종 계약 따윌 맺은 것이 아니니, 마물들이 모든 랑게르나를 꺼리는 것은 생래적인 두려움이 바탕이 된 것 뿐이다.


"생래적인 두려움이라고요······."


생래적인 두려움이란, 근본적인 힘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온 힘을 다해 덤벼도 상대의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으리란 격차를 느꼈을 때 같은.


- 허나, 내 힘이 약해지니 그 그림자 또한 옅어졌으리라.

그러니 마물이 가지는 두려움 또한 옅어졌을터.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궁금증.


"당신의 힘이 약해진 것과 축복이 관계 있습니까?"


힘이 약해졌으면 축복 자체가 옅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 생각하고 물은 것이었으나 다행이 아르다르보는 내 의문을 부정했다.


- 네가 말하는 축복이 불을 다루는 재능을 말하는 거라면, 아니다.

내가 너희 랑게르나에게 내린 것은 재능의 씨앗 뿐, 그 능력 자체가 아니었으니.

내 힘이 옅어졌다고 해서 네 능력이 옅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아르다르보는 내 걱정을 정확히 짚어내며 부정했다.

다행이다.

아르다르보가 '이그니서스가 있으면 모든 랑게르나는 불꽃술사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짚어주지 않았다면 난 불의 힘을 다룰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할 줄 몰랐으면 모르되 내가 불을 다룰 수 있게 된 지금, 아르다르보의 힘이 약해짐으로 인해 내 능력의 한계가 그어져 버렸다면 그건 그거대로 아쉬웠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르다르보는 이런 내 걱정이 쓸데없는 것이라 짚어주었다.


- 그러니, 네가 불꽃을 어디까지 다룰 수 있을지는 오롯이 네게 달렸다.


아르다르보는 자신은 랑게르나에게 불꽃술사의 '씨앗'을 던져주었을 뿐, 그 재능을 꽃피우는 것은 오롯이 내게 달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랑게르나의 불꽃술사가 된 모든 랑게르나의 힘이 오직 아르다르보, 최초의 늑대가 내린 축복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모든 랑게르나의 불꽃술사들은 같은 능력을 보여야 했을 테니까.


하지만, 랑게르나의 긴 역사 속에서 불꽃술사는 무척 많았고, 그 수준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그림자 검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한 지금은 랑게르나의 불꽃술사 중 많은 수가 그림자 검을 통해 불의 힘을 구사한 이들이 있을 거라 짐작되지만, 그건 또 별개의 이야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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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3 24.08.08 124 2 12쪽
3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2 24.08.07 138 3 12쪽
2 바뀐 것과 바뀌지 않는 것 1 24.08.06 148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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