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걸그룹이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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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8.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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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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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일단 실력 좀 보자.

DUMMY

최유림은 망돌이었고, 정지운은 그런 그녀의 몇 안 되는 찐팬이었다.


정지운은 이 사실을 같은 조라고 병문안을 와 준 최유림에게 밝혔다. 그녀는 좌절한 팬을 위로해 주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병문안 왔고.


덕분에 부쩍 친해져 정말 오랫동안 친구로 함께했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겠네.”


지금은 빈말로라도 친하다고 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마주쳐도 인사조차 안 했겠지. 고등학생 정지운은 최유림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팬인 사실을 숨기고 몰래 응원했었으니까.


이제 와서 친한 척하니까 뜬금없게 느껴졌을 거다.


뭐, 상관없다. 전생의 정지운은 괴짜로 유명했으니까. 그런 괴짜와 친하게 지내던 최유림인데 이쪽이 유리할지 모른다.


“그나저나 새삼 예쁘네.”


어릴 때라 그런가? 아니면 해체 직후라 아이돌 화장과 코디가 남아 있어서 그런 걸까? 상큼하고 통통 튀는 얼굴과 잘 관리된 몸매가 눈에 띄었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눈 팅팅 부은 걸 안경으로 커버하던, 30대 후반의 생얼 츄리닝과 비교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다 들리거든? 뒤에서 뭐라는 거야?”

“뭐야. 속마음도 읽어? 이건 좀 거북한데?”

“······미친놈인가?”

“올. 비슷한데? 그래도 미친놈보단 미친 새끼라 불렸지.”

“미친 새끼.”

“아이돌 입이 너무 험한데?”


아이돌이란 단어에 뜨끔한 최유림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내가 아이돌인 건 아네? 소문 들은 거야?”

“아 맞다. 해체했지.”

“아직 아니거든!”

“깜짝아. 왜 소리를 질러?”


오랫동안 고요 속에 살아서일까. 정지운은 훅 들어오는 큰 소리에 예민했다. 남들보다 배는 더 놀라는 느낌이었다.


“공식 계정에 꼭 돌아오겠다고 올라왔잖아. 그건 무슨 소리야? 갔단 소리잖아.”

“······”

“SNS 계정도 다 삭제했으면서 뭐가 해체가 아니야?”

“네가 뭔데 그렇게 쉽게 말해?”


최유림이 입술을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꿈이었던 아이돌이 되었지만, 주목 한 번 못 받아 보고 해체됐다. 힘들겠지.


하지만 정지운은 안다. 그녀 주변에 그녀를 위로해 줄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있음을. 한 명쯤은 강하게 키우는 포지션이 있어야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법이다.


“사실만 나열했는데 왜 그렇게 무겁게 들어. 그냥 네가 믿기 싫은 거잖아.”

“됐어.”


화났는지 씩씩대며 먼저 가는 최유림. 같이 가기 싫었는지 걸음이 빨라졌지만, 보폭도 체력도 정지운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결국 못 참고 우뚝 서서 째려본다.


“왜 따라와?”

“목적지가 같으니까.”

“내 목적지가 어딘데.”

“너 나랑 같은 조인 줄도 몰랐냐?”

“······”


와. 진짜 싫은 표정. 조금 상처받았을지도.


······는 장난이고.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회화 끝난 최유림은 쉽게 안 당하는 성격이었으니까. 이렇게 놀릴 기회가 없었거든.


전생과 달리 첫인상이 굉장히 나빠진 것 같지만, 정지운과 최유림은 음악 취향이 천생연분이었다. 졸업 작품을 같이 작업하면 금방 친해질 거란 확신이 있었다.


“둘이 같이 오네?”


결국 학교 연습실에 도착한 두 사람은 먼저 와 있던 같은 조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저 앞에서 만나서.”


먼저 말을 건 놈은 드럼 전공인 박예찬이고, 구석에서 자신감 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다른 놈은 베이스 전공인 김준희다. 둘 다 뒤에서 둘째가라면 서운할 정도로 실력이 서투른 친구였지 아마.


최유림은 대충 가방을 올려둔 뒤 침울하게 앉아 있던 두 남자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각자 하고 싶은 곡 골라 왔어?”

“······”

“뭐야. 아무도 안 정해온 거야?”


모두예고 졸업 작품은 포트폴리오 역할을 해서 실력별로 조를 이루는 경향이 있었다. 박예찬과 김준희는 받아 주려는 조가 없어서 남은 인원이었다.


정지운은 편입생이라 학기 초부터 조를 구하는 게 어려웠다. 졸업 작품이 필수인 건 아니었기에 세 사람은 졸업 작품을 안 하려 했다.


이때 나타난 게 최유림이다. 연예인이라 졸업 작품을 안 한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꿔 뒤늦게 이런 조가 탄생한 거다. 다른 조는 진작 작업 시작했다.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김준희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고민은 해봤는데 마땅한 곡이 없어. 이제 어떡하냐.”


시작도 전에 사기가 꺾인 모습.


이해는 된다. 세션이 실력 없는 것도 문제지만, 드럼과 베이스만 있는 것도 큰 문제니까. 멜로디라인을 담당할 악기가 없다.


심지어 보컬까지 남녀로 갈려, 선곡의 폭이 확 줄었다. 중간 평가가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단 점을 포함하면 막막한 게 당연했다.


물론, 정지운이란 예외가 없었을 때나 해당하는 이야기. 그가 대수롭지 않게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어떡하긴 뭘 어떡해. 작업 시작해야지.”

“그 얘기가 아니잖아.”

“그럼 뭐. 아무것도 안 하게?”

“어떤 곡 할지도 막막한데 뭘 어떻게 시작하냐는 말이었지.”

“너희 실력에 맞춰 만들면 되지. 뭔 걱정이야.”

“······너 작곡할 줄 알아?”

“알지. 피아노도 칠 줄 알아. 그 외에도 어지간한 미디 작업은 할 수 있어. 최유림도 보컬이니까 넘기고 내가 세션으로 빠져도 상관없어.”


자신감 넘치는 정지운의 태도에 안심했는지, 아까까지 의기소침했던 박예찬과 김준희의 표정이 밝아졌다.


최유림은 다시 봤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컬과에 편입해서 작곡도 하고 피아노까지 친다고? 작곡 배운 지 얼마나 됐는데?”

“18년.”

“갑자기 욕을······”

“아니 배운 지 18년이라고.”

“너 만 나이 몇인데.”


정지운도 아차 싶었다. 말이라면 일단 뱉고 보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 그렇다고 수습하는 성격도 아니다.


“생일 안 지나서 17살.”

“······”

“난 엄마 뱃속에서부터 악상을 떠올렸어. 지금도 머릿속에 수천 곡이 있거든.”

“작곡을 우습게 아네.”

“우습게 보는 게 아니야. 내가 그냥 천재인 거지.”


사람이 워낙 뻔뻔하면 허언증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겠지. 설마 회귀했냐고 추궁할까. 아. 딱히 숨길 이유까진 없구나.


“사실 내가 회귀해서 18년 전으로 돌아온 거거든?”

“됐고. 그냥 커버곡이나 하자.”

“뭐래. 마땅한 곡이 없을 때 대안 있어? 가능성은 열어야지.”

“······”

“일단 실력 좀 보자. 악상 떠올려야 하잖아.”


정지운은 잔뜩 들뜬 표정으로 박예찬부터 드럼 의자에 앉혔다.



***



최유림은 13살부터 연습생 생활을 시작해, 5년간 피땀 흘리며 고된 커리큘럼을 버텼다. 오로지 아이돌이라는 꿈. 그것 하나를 위해서.


그 노력은 데뷔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처음 음악 프로그램에 입성할 때만 해도 온갖 환상에 둘러싸여 행복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한 아이돌은 무대 위에 서서 화려하게 주목받는 삶이었다. 말 그대로 ‘우상’이 되는 삶이었다.


‘이게 현실인 걸까.’


꿈의 무대에서 마주한 것은 타 팬들의 성의 없는 리액션이었다. 스마트폰을 보거나,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공연 중에 시끄럽게 떠들기도 했다.


그래도 매너 있는 타 팬은 동정심에 하는 옜다 환호성을 보내 주지만, 자신을 향한 환호성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방송국에서 열심히 인사하고 다녀도 무관심뿐.


심지어 소속사는 팬사인회조차 안 열어줬다. 남자 망돌은 한둘 있는 팬이라도 잡으려고 팬과 맞팔도 하고, 이름도 외워주고, 심지어 고민 상담까지 해준다지만······ 여돌인 레몬걸스는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이유로 통제당했다.


‘그래 놓고 언니들한텐 이상한 스케줄도 제의했었지.’


최유림은 제의를 못 받아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 언니들이 화냈던 기억만 있을 뿐. 미성년자 멤버만 모르기에, 떳떳하지 못한 제의가 아닐까 의심하는 거다.


회사도 무리수인 것을 알았던 건지, 이후로 그런 제의는 없었지만······ 대신, 투자를 멈췄다. 해주는 것 없이 적자를 메꿔야 한다며 눈치만 줬다.


결국 회사와 멤버 사이의 불화가 커졌고 사실상 해체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포기해야겠지.’


19살. 연습생 기간을 거쳐봤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소속사를 알아보면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연예계의 민낯을 보고 실망했던 그 충격을 다시 느낄 자신이 없었다.


자신에게 재능이 있긴 한 건지. 운이 따라주면 뜰 수 있는 존재인 건지. 실패하면 남는 게 있긴 한 건지.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깎여버린 자존감은 희망을 좀먹었다. 도전해 봤자 실망만 되풀이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난 포기할 용기도 없네.’


6년째 붙잡고 있는 꿈이다. 누가 쉬이 그만둘 수 있을까. 아주 작은 기회라도 있다면 아직은 도전하고 싶었다.


미련이라고? 인정한다. 졸업 작품을 하기로 한 이유도 이 미련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이 틀리지 않았음을. 아니, 아마추어 레벨에서라도 먹히는 수준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졸업 작품은 그 증명의 수단으로 딱 적합했다.


‘얘가 조원이었다니. 쉽지 않겠네.’


조원의 정신 상태부터 이상해 보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느낌이다.


‘아냐. 선입견에 휘둘리면 안 돼. 천재는 괴짜라잖아. 그 말대로 천재과일 수도 있어.’


물론, 괴짜가 천재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불안감을 떨치기 위한 합리화였다.


- 쿵 두둥 칫 쿵


드럼 전공인 박예찬이 먼저 실력을 뽐냈다. 최유림이 드럼을 칠 줄 아는 건 아니었으나, 들을 줄은 알았다. 현대 음악에서 가장 임팩트 주는 악기인데 그걸 모를까.


그런 그녀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실력. 피드백이 절로 튀어나왔다.


“야. 박자가 안 맞잖아!”

“연습을 많이 한 곡은 아니라······”

“곡 문제가 아니야. 박자 감각 문제지. 그리고 박자 들쭉날쭉하게 칠 바엔 그냥 틀린 대로 가. 박자는 네가 메인인데 흔들리면 어떡하냐?”

“······”

“안 되는 비트나 잘 치는 비트가 있으면 알려줘. 쟤 말대로 맞춰줘야 할 수도 있으니까.”


최유림은 스스로를 뮤지션이라 생각했다. 아니, 뮤지션이 맞았다. 음악적 철학은 확고하고, 음악에 한해서는 언제나 냉철했다. 타인이 봤을 때 날카롭게 느껴질 정도로.


눈빛부터 살벌한 탓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박자를 못 맞추는 건 치명적인 문제가 맞긴 하지만······ 중간중간 박자에 맞춰 속도를 조절하기에 눈치 못 채는 일반인도 많을 거다.


그러나 최유림은 정확히 박자를 캐치하고 지적했다. 드러머의 자존심? 그런 건 지켜주지도 않은 채 직설적으로 말했다.


안 될 거 같으면 빨리 포기하는 게 더 도움 될 테니까. 어쩌면 진작에 포기하지 않은 자신을 투영해 더 세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박자 맞추는 데 급급하면 스트로크 디테일이 챙겨져? 내가 드럼은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소리가 아니던데.”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시간은 얼마나 필요한데?”

“몇 주 연습하면······”

“그럼 박자 교정이 돼?”

“박자 교정은 몇 달 연습해야 그나마 되더라.”

“졸업 작품 중간 평가가 두 달도 안 남았는데? 연습된 곡은 몇 개야?”

“······세 곡 있어.”

“세 곡밖에 없어? 그럼 한 번씩 다 보자. 그 곡으로 해야 할 수도 있겠네.”


최유림은 스트로크 디테일까지 지적했다. 어떻게 쳐야 한다고까지 나온 건 아니었으나, 잘못 쳤을 때를 확실하게 잡을 줄 알았다.


청음도 타고났고, 세션을 노래 주제에 맞게 인도할 줄 알았다. 미래에 최고의 디렉터가 되는 만큼 떡잎이 보였다.


“그럼, 베이스 들어보자.”

“어!? 어······ 어.”


덕분에 원래도 자신감이 결여된 김준희가 긴장해서 실수를 연발했다. 준비된 곡조차 박자를 놓치고, 나중엔 악보까지 놓쳐서 멈췄다.


“하아······”


최유림의 한숨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눈이 너무 높아졌나 봐. 얘네와 만족스러운 음악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무엇 하나 되는 게 없다며 자신의 인생까지 비관하던 그때, 정지운이 당당하게 일어나 피아노 의자 위에 앉았다.


“마침 악상이 떠오른 노래가 두 곡이 있네. 들려줄게.”


최유림은 딱히 기대하지 않고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입을 떡 벌리며 감상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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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구나······ +5 24.08.07 10,240 211 14쪽
4 천재인 거 인정할게. +4 24.08.06 10,936 212 14쪽
» 일단 실력 좀 보자. +3 24.08.05 11,497 210 13쪽
2 내가 얘 팬이었지 참? +12 24.08.05 12,648 236 13쪽
1 잠깐, 왜 시끄럽지? +11 24.08.05 15,881 2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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