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걸그룹이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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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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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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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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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프로듀서랑 일하는 거 같네.

DUMMY

제이 엔터테인먼트 기획 2팀 김성태 실장. 그는 최근에 고민이 많았다.


‘하아······ 미치겠네.’


원래 제이 엔터의 연습생으로 있었던 그다. 입사 전부터 회사에 인맥이 많았다. 뿐일까. 좋은 곡을 선별할 줄 알고, 실력 있는 아티스트를 발굴할 줄 알았다.


그 능력을 바탕으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다. 라인을 잘못 타기 전까진 말이다.


‘그렇다고 박유철 팀장을 따라갈 수는 없잖아.’


기획 1팀의 팀장 박유철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더러운 인간이다. 법과 도덕보다 성공이 우선인 사람. 언젠가 패가망신할 거로 여겨 피했더니, 그의 눈 밖에 나버렸다. 재앙의 시작이었다.


이제는 김성태가 인재를 발굴했다 하면 빼가기까지 했다. 반대로 1팀의 애물단지 아티스트들은 2팀에 버려졌다. 실적에서 밀리기에 거절할 명분조차 없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 사태의 주범이 된 김성태는 2팀 내에서도 온갖 눈치를 봐야 했다.


‘실적을 내려면 일단 괜찮은 아티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박유철의 눈을 피해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어야 한다. 어렵겠지만 그 방법밖에 없다.


그렇게 고민하던 때에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낙화]를 썼다는 한 고등학생이었다.


사실 잘해봐야 얼마나 잘할까 하는 마음은 있었으나, 기획 1팀에서 침을 바르려 했다는 사실에 일단 약속부터 잡았다.


김성태는 SNS를 통해 [낙화] 공연을 들으며 이동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진짜 천재란 존재를.


‘······얘는 진짜다.’


전문가가 되면 원치 않아도 디테일이 거슬리게 된다. 음정, 박자는 기본이요 공간감이니 선명도니 톤이니 많은 것들을 다루다 보니 원치 않아도 들린다. 그렇게 작은 것들이 눈에 띄면 큰 것을 종종 놓치곤 한다.


하지만 이 노래는 환경의 열악함과 세션의 부족함을 덮고도 남을 힘이 있었다.


곡이 가진 명확하고 직관적인 주제.

그 주제를 또 완벽하게 전달하는 보컬.


김성태는 삘이 딱 꽂혔다. 이 노래는 뜰 노래라고. 당장 SNS에 올라간, 음질도 별로인 이 공연만으로도 마니아층이 생길 거라고.


‘오히려 환경의 열악함을 계산해서 특유의 감성을 만들었어.’


[낙화]의 매력은 대체할 수 있는 노래가 없다. 유니크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했다. 특별했다. 이런 곡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전국에 진짜 몇 없다.


‘반드시 잡아야 하는데······’


먹기 좋은 떡이 절로 굴러온 상황 아닌가. 최고의 기회였다.


- 알았어. 형.


호칭을 편하게 정하라는 뜻으로 한 말에 말까지 놔 버려서 할 말을 잃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성격이 까칠한 놈들보단 붙임성 있는 쪽이 백번 나으니까.


심지어 사회생활은 해본 적도 없는 사회 초년생들이다. 잘 구슬린다면 좋은 인재를 가성비 좋게 데려올 수 있겠지.


······물론,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




모두예고 앞 카페. 아기자기한 디자인과 여러 악기가 비치되어 있다. 벽에는 언제 학생들이 공연을 하는지 적힌 홍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달달한 음료와 디저트가 인기 있는, 각종 SNS에서 유명한 핫플레이스. 그곳엔 정장 입은 말끔한 20대 중·후반의 남자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다 말고 중간 점검을 했다.


"이해가 좀 돼?"


학생 중 하나인 정지운이 일말의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


“응. 이제 우리 요구 사항 이야기해도 되지?”

“······어?”

“회사 조건은 들었으니, 우리 차례잖아. 계약은 의견을 조율하는 거고.”

“이 정도면 신인치고는 굉장히 좋은 조건인데.”

“그거야 우리가 판단하는 거고.”


전생의 김성태는 정지운의 모든 편의를 다 봐주었다. 현실적인 도움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르겠다. 장애가 있었으니 그랬을 수도 있고, 그만큼 친해서일 수도 있겠지. 정지운도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김성태는 제이 엔터에 묶여 있다. 불리한 계약을 한다고 해서 이득 보는 것은 김성태가 아니라 제이 엔터다. 전생에 정지운을 뜯어 먹던, 기생충 같은 제이 엔터 말이다.


‘그건 안 되지.’


정지운은 가방에서 USB 하나와 서류봉투 하나를 꺼냈다.


“[낙화]만으로 내 실력을 모를 수 있으니까, 샘플로 5곡 정도 넣어놨어. 그리고 서류 안에 든 것은 요구 조건.”

“······이런 걸 준비했다고?”


뭐야. 인생 2회차라도 되나? 그렇게 중얼거리는 듯한 김성태를 보며 정지운이 피식 웃었다. 아직 젊은 시절이다 보니, 당황하는 얼굴이 고스란히 느껴졌으니까. 그 철저했던 사람의 어리숙한 모습이 신기했다.


‘옛날 같았으면 말발에서 밀려서 어버버하다가 계약했을 텐데.’


그래도 김성태는 김성태라는 걸까. 금방 정신을 가다듬고 샘플을 들어보며, 요구 조건까지 꼼꼼하게 읽었다. 그리고 자신이 보장해 줄 수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체크했다.


“아는 작곡가가 있나 보구나? 개인 작업실, 장비, 플러그인 등등.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이 만든 요구 조건이네. 흠······ 근데, 신인에게 8:2까지 보장해 주긴 어려운데?”

“아니지. [낙화]는 이미 판매처가 정해졌잖아. 뒤에 가계약서도 첨부했고. 그럼 경력직이지 어떻게 신인이야? 거기다 최유림도 아이돌 경력이 있는데 신인 취급이잖아.”

“그건······”

“일단 보유한 곡이 있고, USB 안의 샘플로 미래에 대한 보장도 있는데, 내 가치는 확실하게 매겨 줘야지.”

“자신감이 대단하네.”

“그래서. 샘플 들어봤잖아. 별로야?”

“······아니. 하아, 잠시만. 전화 좀 하고 올게.”


김성태가 자리를 잠깐 비우자, 그동안 한마디도 제대로 못 꺼내 본 최유림이 입을 뗐다.


“나도 뭔가 요구했어야 했나?”

“네 요구 사항도 내가 적었어.”

“응? 어떤 거?”

“[낙화]는 반드시 네가 레코딩해야 한다는 사실, 너한테 보컬을 비롯한 필요한 레슨 비용을 지불해줘야 한다는 거, 계약 비율 조정, 담당 매니저 배정 같은 것들.”

“대단하다······ 엄청 꼼꼼하네.”

“기본이지.”


이쪽 업계가 정치질도 심하고, 결과물이 없으면 무시당하기 일쑤다. 제공되는 것이 기본인 것들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으면, 언제 뒤통수 맞을지 모른다. 일일이 다 적어두는 게 안전하다.


요구 조건 안엔 이미 계약서에 기재된 부분이 많다. 합리적인 선에서 제안했으니, 정지운의 실력을 파악할 귀가 있다면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 사이 김성태가 통화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샘플은 보내 놨어. 너에게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으면, 요구 조건은 다 들어줄 거야.”

“부모님은 내일 모셔 올 수 있으니까, 그 안에 결정해 줘. 안 되면 빨리 다른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야 하니까.”

“······[낙화] 레코딩 때문에 그렇지? 알았다.”


계약 이야기가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김성태가 푸근하게 웃었다.


“그나저나 팀장님 상대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기 걸 잘 챙기네?”

“어디 가서 호구 당할 성격은 아니거든.”

“그런 태도 좋지. 근데 언제까지 반말할 거야?”


······담아두고 있었나?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편하게 부르라며.”

“호칭 말한 거지. 심지어 형이라고 부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상하게 형이랑은 내적 친밀감이 있더라고. 친해지고 싶어서 그러는 거니까 나쁘게 생각하지 마.”

“어휴, 그래. 너도 대단하다. 처음엔 미친놈인 줄 알았어.”


옆에서 최유림이 거들었다.


“본인 입으로 미친 새끼래요.”

“······?”


그렇게 불렸다는 거지 인정한 건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 말 놔라. 계약하면 자주 마주칠 사람인데. 말 놓으면 좋지.”


결국, 정지운은 공식적으로 반말을 허락받는 데에 성공했다.



***



제이 엔터는 정지운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였다. [낙화]를 [끝까지 보고 뛰어]라는 드라마 OST에 팔 거라는 사실이 큰 도움이 됐다.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정지운과 최유림은 드디어 레코딩 스튜디오에 입성할 수 있었다.


‘드디어······!’


모든 소리가 아름답게 들린다고 해서, 더 좋은 소리가 필요 없는 건 아니다. 스튜디오에서 좋은 음향 장비로 듣는 음악은 차원이 다른 법이니까.


그런 좋은 소리를 들을 생각에 들뜬 정지운이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들어왔다. 물론, 기억보다는 훨씬 젊은 얼굴이었다.


아직 더운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정장을 차려입은 것 하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만 봐도 고생하고 있나 보다.


“안녕하세요. 박운일이라고 합니다.”


박운일. 훗날 세계적인 사운드 엔지니어. 김성태와 함께 제이 엔터를 고발하고 정지운을 돕는 데 일조한 사람이자, 같은 팀 멤버. 반가운 얼굴이었다.


“작곡가 정지운이라 합니다.”

“레몬······ 아니, 보컬을 맡은 최유림입니다.”


박운일은 지금이야 신입에 불과하겠지만, 재능이라는 것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듣기로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이미 궤도에 오른 후라 했다.


‘실력이 뛰어나니까 선배들이 견제해서 일을 못 했다고 했지.’


특이하다. 그럼 다른 선배와 같이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혼자 왔지?


“제가 신입이긴 한데······ 사정상 제가 담당해서 레코딩하게 됐어요.”

“믹싱도요?”

“네.”


그렇다면 뻔하다. 정지운이 몰래 김성태와 계약했다고, 기획 1팀 박유철 팀장이 손을 쓴 모양이다. 레코딩 엔지니어를 배정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아예 막내를 준 건가.


오히려 좋다. 어지간한 3, 4년 차 엔지니어보다 박운일이 뛰어날 테니까. 물론, 아직은 진짜 전문가한텐 밀릴 것 같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드럼, 베이스, 보컬 레코딩 진행할 거고요. 디렉팅은 저랑 유림이가 같이 하려고요.”

“아. 보컬이 디렉팅을 같이 보면, 보컬 녹음부터 할 걸 그랬나요? 드럼 세팅이 제일 복잡해서 처음으로 잡았는데.”


말을 많이 하면 목은 건조해지기 마련. 말해야 할 상황이 있다면, 그 전에 레코딩을 끝내는 것이 좋다. 아무래도 박운일은 스케줄에 관한 이야기조차 전달받지 못한 것 같다.


“괜찮아요. 시간 아끼는 것도 중요하죠.”


레코딩 스튜디오엔 드럼과 마이크 여러 대가 세팅되어 있었다. 세팅을 점검하기 위해 프로 드러머가 레코딩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레코딩 엔지니어도 안으로 들어갔으면, 체크를 내가 해야 하는 건가?’


아직 그 정도 청음 능력은 되지 않았던 정지운이 최유림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킥 먼저 쳐 주실래요? 오. 댐핑 좋은데요? 근데 뭔가 이상한 소리도 같이 들리는데.”

“공진음 잡히네요. 마이크 좀만 떼도 될 것 같아요.”


최유림의 청음 능력은 대략적으로 문제를 잡아냈다. 그걸 토대로 정지운이 어떻게 세팅해야 하는지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음······ 마이크 톤이 안 맞는 거 같아요.”

“위에 거 톤이 많이 높아?”

“아니. 아니. 조금 높아.”

“엔지니어님! 위에 마이크를 톤 다운 되게 다른 마이크로 바꿔 주세요.”


- 통


“톤은 좋아요! 근데 음량이 조금 작아졌어요.”

“전체적인 수율이 좀 안 좋나 보다. 엔지니어님. 조금씩 가까이 가면서 소리 들려주세요.”


- 통!


“어때?”

“딱 괜찮은데 공진음 들려.”

“아. 그러네. 엔지니어님! 조금씩 움직이면서 소리 들려주세요.”


- 통!


“아주 조금만 더요.”


- 통!


“딱 좋아요.”

“······진짜 프로듀서랑 일하는 거 같네.”


박운일이 처음보다 더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작업한 결과물을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긴장감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재능 있는 사람이다 보니 금방 세팅을 마쳤고, 박운일이 나와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와······ 뭐야. 세팅 진짜 잘됐네요. 두 사람 다 사운드 엔지니어엔 관심 없어요?”

“없어요.”


정지운의 너무 단호한 거 아닌가 싶은 대답에 박운일이 침울해졌다.


“없군요······ 네······ 그래요······ 근데 세팅하는 거 배운 건가요?”


대답은 최유림이 먼저 했다.


“레코딩할 때마다 조금씩 들으면서 엔지니어분들께 많이 물어봤어요. 물론, 필요해 보여서 공부도 하고 있고요.”


정지운은 세팅하는 법을 딱히 배운 적이 없기에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대부분은 짬밥과 눈칫밥이다.


“첫 작업으로 알고 있었는데, 너무 잘해서 놀랐네요.”

“감사합니다. 자, 이제 드럼 레코딩 시작할게요.”


확실히 박예찬의 드럼을 듣다가 진짜 드럼 전공자의 드럼을 들으니 차원이 달랐다. 물론, 환경도 큰 몫을 하겠지. 여기는 드럼도, 마이크도, 스피커도, 룸 세팅도, 그동안의 장비와 차원이 다른 고가의 물건들이니까.


- 쿵!


울림에 공간감이 느껴진다. 아. 이래서 뮤지션들이 비싼 장비, 비싼 장비 하는 거구나. 감회가 새롭다.


고작 드럼 소리에 눈물까지 날 것 같다.


“뭐야. 너희?”


그러나 불청객의 등장에 감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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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저를 어떻게······ +7 24.08.22 7,081 178 13쪽
19 끝장낼 수도 있고. +7 24.08.21 7,434 174 12쪽
18 꼭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6 24.08.20 7,652 181 12쪽
17 너한테 온 섭외 전화였거든? +6 24.08.19 7,759 18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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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프로듀서랑 일하는 거 같네. +4 24.08.12 8,390 187 13쪽
9 따로 챙겨 줘야겠네. +13 24.08.11 8,467 183 14쪽
8 저거다! 저거야! +7 24.08.10 8,651 193 13쪽
7 모든 학생 통틀어서 1, 2위야. +4 24.08.09 8,963 195 14쪽
6 잠깐만 대화 좀 하자. +2 24.08.08 9,432 189 13쪽
5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구나······ +5 24.08.07 10,239 211 14쪽
4 천재인 거 인정할게. +4 24.08.06 10,935 212 14쪽
3 일단 실력 좀 보자. +3 24.08.05 11,496 210 13쪽
2 내가 얘 팬이었지 참? +12 24.08.05 12,647 236 13쪽
1 잠깐, 왜 시끄럽지? +11 24.08.05 15,880 2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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