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걸그룹이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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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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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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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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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청률 봤어?

DUMMY

날이 선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자, 편한 돌핀 팬츠에 반팔 티를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귀염 상의 얼굴과 잘 관리된 몸매, 인상과 안 어울리는 거 같지만 톡 튀는 애쉬블루 머리가 눈에 띈다. 아이돌로 따지면 비주얼 센터까지는 아니어도 매력적인 비주얼로 마니아층은 있을 미모였다.


정지운도 아는 얼굴이었기에 그녀의 이름을 바로 떠올렸다.


임라희. 5인조 아이돌 그룹 뮤직스의 메인보컬. 그리고 뮤직스는 3세대 아이돌의 선두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몇 가지 논란과 빠른 4세대의 등장으로 금방 묻힌 그룹이었다. 논란 없는 그녀는 솔로 활동을 준비했으나, 거하게 한 번 말아먹은 후였다.


“전 정지운인데요.”


정지운은 친절하게 임라희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그리고 아차 했다. 상황과 문맥을 뒤늦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너희 뭐냐는 말은 시비 거는 말투지?’


왜 화난 얼굴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적어도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대답이었다.


“······”


임라희는 지나치게 순수한 대답에 당황했다.


“임라희 선배님 아니세요!? 완전 팬이에요!”


근데 이번엔 최유림 쪽이 더 눈치가 없었다. 사실 눈치가 없었다기보단, 눈치를 볼 겨를이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했을 거다.


임라희는 최유림의 롤모델로, 제이 엔터에서 가장 보고 싶어 하던 가수 1순위였으니까. 롤모델을 마주한 최유림이 저도 모르게 꺅하고 소리를 지른 거다.


“······아니, 그니까 너희 왜 여기 있냐고.”

“네? 저희 레코딩하고 있는데요.”

“······”


정지운보다 더 순수한 최유림의 대답에 임라희는 표정 관리가 안 되는지 인상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레코딩 얼마나 남았어?”


대답은 정지운 쪽에서 나왔다.


“이제 시작했어요. 최소 5시간으로 잡고 있고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밤늦게 끝날 수도 있습니다.”

“하아, 진짜 짜증 나. 아. 미안해. 너희한테 한 말 아니야.”


임라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우물쭈물 서 있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재촉하는 건 아닌데, 레코딩 좀 도와줘도 될까? 너희 끝나고 나도 써야 할 것 같아서.”


전생의 정지운은 보컬 디렉터로 최유림을 썼다. 최유림이 노래를 부르면 봐줄 전문가가 없다는 뜻이었고, 임라희가 도와준다면 좋은 일이었다.


그와 별개로 정지운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솔로로 한 번 실패했다고 무시당하는 건가? 그 임라희가?’


제이 엔터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일부러 녹음실 겹치게 예약하기, 막내 엔지니어 배치하기, 전달 사항 누락하기, 멋대로 일정 옮기기 등. 신인이나, 퇴물이라 판단되는 아티스트를 괴롭히곤 했다.


정지운과 최유림은 기획 1팀을 무시하고 2팀에 들어와서 이런 대접을 받는 거고, 반대로 임라희는 퇴물로 판단되어 같은 대접을 받는 거다.


‘그래도 신인 상대로 함부로 안 하네.’


임라희 입장에서 충분히 빡칠 상황이다. 자신이 예약한 레코딩실을 신인들이 차지하고 있는 꼴일 테니까. 어쩌면 싸움이라도 붙여 보려고 회사에서 이런 상황을 유도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앞에 사람들이 화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걸까. 잘 참았을 뿐 아니라, 도움까지 주려고 한다.


이런 사람을 푸대접하는 제이 엔터는 망하는 게 맞다.


“좋습니다. 저희도 최대한 빨리 레코딩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보컬도 임라희 님 팬이어서 영광일 거예요.”

“맞아요. 영광입니다 선배님. 마구 피드백해주셔도 됩니다.”

“······잘 부탁해.”


그래도 다행인 건,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실력이 있어서 금방 녹음이 끝났다는 데에 있었다.


정지운은 녹음된 세션을 최대한 빠르게 가믹싱했다. 미세한 박자 문제나, 섞이지 않는 톤 문제를 대략적으로만 잡은 것이다.


최유림이 노래에 더 집중할 수 있어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더 맛있게 듣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넌 작업을 무슨 안 듣고 하냐?”

“그래프만 봐도 다 알아. 그리고. 빨리 해야 빨리 비켜주지.”


당장은 듣는 것보다 그래프 보고 작업하는 게 더 정확하기도 하고.


“너 이런 거 배운 적 없다며.”

“······꼭 배워야 아는 게 아니야.”


이건 오랜 기간 연구한 노력의 결실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미디작업한 음원을 가믹싱하여 나름 괜찮은 MR을 땄다. 이제 최유림만 녹음하면 모든 게 완벽했다.


- 아아. 들려?

“어.”

- 와 레코딩 오랜만이다. 완전 떨려.

“선배님 기다리신다. 빨리 준비해라.”

- 감상에 젖질 못하겠네. 알았어!


최유림은 아직도 임라희가 얼마나 빡칠 만한 상황인지 눈치를 못 챈 것 같다. 하긴, 롤모델이 디렉팅까지 해주겠다는데 들뜰 만도 하지.


- 아슬아슬 억지로 붙잡던 미소

- 추위 속에 피어나길 기다려 난


정지운의 재촉에 노래가 시작되었다.


- 닿아 있는 모든 순간

- 의미 없는 희망에 갇혀 의지를 다지지만,

- 닿아 있는 손의 온기가 사라져

- 아니야 아직 따듯해


제대로 갖춰진 음향 장비. 한때 롤모델이었던 최유림의 목소리. 돌고 돌아 결국 주인을 찾은 [낙화]라는 곡.


정지운은 회귀 후 처음 마주친 최유림을 떠올렸다. 레몬걸스 해체 직후의 좌절로, 아름다운 자신을 비관하던 그 모습이.


역시. 이 곡은 처음부터 최유림의 곡이었다. 돌고 돌아 슬픔을 지나 결국 그녀에게 [낙화]가 닿았다.


정지운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노래를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와······ 노래 진짜 좋다. 눈물 나.”


옆에 있던 임라희조차 눈물을 훔쳤다.


전생보다 3년 빨리 슬럼프를 극복한 최유림의 퍼포먼스는 이미 완성된 아티스트였다.


‘이런 애가 무슨 보컬 디렉터냐. 가수를 해야지.’


전처럼 최유림과 함께 음악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최유림은 떨어질 꽃잎이 아니었다. 활짝 필 꽃이었다.


아름다움을 간직하겠다고 꽃을 꺾는 것은 이기심이겠지. 이제 작곡가 계약도 했겠다, 그녀가 활짝 피길 돕기로 마음먹었다.


- 다음을 믿어줬음 해 부디


최유림이 완곡하자, 임라희는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


“진짜 잘한다. 팬 될 거 같은데?”

- 진짜요? 감사합니다!

“근데 몇몇 디테일한 부분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어서 말 좀 할게. 1절 싸비에 ‘그 끝은 예상대로 낙화~’에서 리듬감을 ‘그 끝은, 예상, 대로, 낙화.’처럼 포인트를 잡으면 좋을 거 같아. 그리고······”


임라희는 톱 아이돌 생활만 7년을 버티고, 수없이 많은 스케줄을 소화한 전적이 있는 스타였다. 보컬 디렉팅에서도 전문성을 띠는 것은 당연했다.


“애드리브는 전체적으로 좋았으니까 손 안 봐도 될 거 같고, 대신 마지막 부분에서는 뭔가 따스함이 있으면 좋을 거 같거든? 뭔가 아련한 미소 같은 게 지어지는? 예를 들어서 ‘다음을 믿어줬음 해, 부디.’ 이런 식으로.”


또한 예시라며 불러주는 노래도 차원이 달랐다. 그냥 프로가 아니라 관록이 붙었다는 느낌.


“지적한 부분 유념해서 한 번만 더 불러보자.”


그렇게 몇 번의 레코딩이 오가고.


“오. 이번엔 지적할 게 없어. 이거로 그냥 끝내도 되겠어. 어······ 나 빨리 레코딩하려고 한 말 아니다? 좀 빨리 끝났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진짜 좋았거든?”


혼자 말하고 혼자 수습하는 임라희의 모습에 정지운이 피식 웃었다. 사실 그도 임라희의 말에 큰 이견은 없었다.


“저도 레코딩은 다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두 번만 더 녹음해 보죠. 지금은 떨어지는 꽃잎이 너무 아름다운 느낌이에요.”

“그래서 더 좋지 않았어? 일부러 그렇게 조언했는데.”

“그건 그렇긴 한데, 여러 버전을 비교하는 게 좋으니까요.”


사실 정지운의 사심이었다. 좋은 노래 더 듣고 싶어서.


녹음하면서도 정지운은 행복에 몸을 떨었다. 자신이 작곡한 곡이 주인을 찾았고, 그 노래를 직접 듣는다는 것은, 정지운에게 그 어떤 것보다 더 많은 도파민을 가져다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녹음이 더 지나서야 보컬 레코딩이 끝났다.


“수고했어. 이제 나와도 돼.”

- 지운아.

“응?”

- 나 이제 포토 카드 돌려줘도 되겠지?

“응. 빨리 내놔. 너 유명해지면 팔게.”

- 아 진짜! 안 돌려준다?

“아이돌 A양. 자기 포토카드 절도. 충격······!”

- 네가 줬잖아!

“빌려준 거잖아.”


투덕거리며 정지운과 최유림이 자리를 정리했다. 레코딩이 잘 마무리되어 모두가 기쁜 상황이었다. 특히, 임라희의 극찬을 들은 최유림의 텐션은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아. 그러고 보니 정지운이라고 했지?”

“네.”

“혹시 나 곡 좀 써줄 수 있어? [낙화] 들으니까 오랜만에 심장이 뛰는 느낌이라······”


역시 프로는 실력자를 알아보는 법. 정지운의 곡을 탐내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만약 임라희가 녹음실에 들어와 난장을 피웠으면 안 해줬겠지만, 충분히 기분 나쁠 상황에서도 좋게 넘어가 주었다. 거기에 정지운의 실력을 보기 전에도 레코딩을 도와준다 약속하기까지 했다.


좋은 첫인상이었으니, 곡 써주는 약속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애초에 임라희와는 나쁜 기억도 없으니까.


“실력 있는 아티스트와의 작업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래? 잘 부탁해. 연락은 매니저 통해서 할게.”


임라희는 뮤직스 해체 후, 꽤 오랫동안 공백기가 있었다. 솔로 활동을 두 번이나 실패했고, 제이 엔터에서 철저하게 배제됐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활약하여 다시 떴지만,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정지운의 곡이 있다면? 두 번째 솔로 활동에 성공하므로써 그 공백기를 없앨 수도 있다.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묵묵히 마이크 세팅을 돕던 박운일도 정지운에게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제가 더 어려요.”

“아······ 그래? 그럼 너도 말 편하게 해. 그런 거 안 따지니까.”


박운일은 김성태와 달리 열려 있었다. 역시 편한 형이다.


“형. 형은 오늘 퇴근 못 해. 믹스 마스터링할 시간이 3일밖에 없거든.”

“······뭐? 3일?”

“괜찮아. 나도 도와줄게.”


[끝까지 보고 뛰어]라는 드라마 스케줄이 맞춘 OST이기에 시간이 없었다.


“알았어.”


정지운은 미래에 나올 음파 분석 플러그인이 있다면, 믹싱까지 해낼 인재긴 했으나, 지금 상태에선 전문적인 도움을 주긴 어려웠다.


그래도 믹싱 작업을 함께 하겠다는 것은, 그 과정을 직접 보고 들어, 청음 능력을 더 넓히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도 도와줄까?”


갈 준비를 마친 최유림의 질문에 정지운은 고개를 저었다.


“있고 싶으면 있는 거고. 크게 도와줄 건 없긴 해.”

“그럼 난 쉴게.”


회귀 후 정지운의 데뷔곡 [낙화]는 몇 가지 방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레코딩에 성공했다.



***



역시 박운일은 천재과에 가까웠다. 아직 신입 엔지니어인데도 불구하고 믹스 마스터링을 완벽에 가깝게 했다. 미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손이 느렸다는 것 정도?


어쩔 수 없다. 원하는 소리가 있는 건 같은데, 그 소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했으니까.


그걸 옆에 있던 정지운이 채워줬으니, 도리어 박운일은 정지운을 천재라며 치켜세웠다.


‘난 노력파 아닌가?’


그렇게 완벽한 음원이 된 [낙화]는 [끝까지 보고 뛰어] 편집팀에 넘어갔고, 드라마 OST로 음원이 잘 들어가 방영되었다.


“지운아. 지운아. 너 [끝까지 보고 뛰어] 드라마 시청률 봤어? 케이블 TV인데도 1화 시청률 3.4%야. 우리 노래도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끝까지 보고 뛰어]는 1화부터 화제가 되었다. 새로 발굴된 신인 배우의 매력적인 면이 부각됐기도 했고, 눈을 뗄 수가 없는 스토리라인과 연출이 큰 호평을 받았다.


‘전생에도 난리가 났던 드라마지.’


물론, 전생엔 드라마가 떴다고 OST까지 떴던 건 아니지만······


[낙화]는 전생의 OST보다 훨씬 임팩트 있는 곡이었고. 점점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끝까지 보고 뛰어]의 6화 방영이 끝났을 때, 음원차트에 처음으로 든 [낙화]의 순위가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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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참. 그 방법이 있었지. +9 24.08.16 8,049 187 11쪽
13 걸리는 부분? +3 24.08.15 8,158 183 12쪽
12 그럼 걸크러쉬로······ +4 24.08.14 8,198 189 13쪽
» 드라마 시청률 봤어? +6 24.08.13 8,244 194 13쪽
10 ······진짜 프로듀서랑 일하는 거 같네. +4 24.08.12 8,391 187 13쪽
9 따로 챙겨 줘야겠네. +13 24.08.11 8,467 183 14쪽
8 저거다! 저거야! +7 24.08.10 8,651 193 13쪽
7 모든 학생 통틀어서 1, 2위야. +4 24.08.09 8,964 195 14쪽
6 잠깐만 대화 좀 하자. +2 24.08.08 9,432 189 13쪽
5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구나······ +5 24.08.07 10,240 211 14쪽
4 천재인 거 인정할게. +4 24.08.06 10,936 212 14쪽
3 일단 실력 좀 보자. +3 24.08.05 11,496 210 13쪽
2 내가 얘 팬이었지 참? +12 24.08.05 12,647 236 13쪽
1 잠깐, 왜 시끄럽지? +11 24.08.05 15,881 2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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