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걸그룹이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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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공작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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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5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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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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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는 부분?

DUMMY

임라희는 뮤직스의 메인 보컬로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다.


특유의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 귀염 상의 외모와 준수한 춤 실력.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실력파 아이돌로 손꼽히게 됐고, 놀림받을 때 특유의 타격감으로 예능에서도 곧잘 활약했다.


그런 그녀에게 한 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성격이었다. 의견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오히려 밀리는, 순둥이 같은 기질은 그녀를 피곤하게 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착한 게 아니라 호구라던데······’


특히나 이 바닥은 연예계다. 잡아먹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경쟁 사회다. 그런 곳에서 임라희의 성격은 무시당하기 딱 좋았다.


‘한창 잘 나갈 때도 은근히 무시당했는데.’


주변 스태프들이나 매니저 등이 챙겨주는 정도가 달랐다.


물론, 그들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니다. 좀만 기분 나빠도 있는 대로 성질내는 멤버에겐 당연히 조심하게 되겠지.


이것저것 다 조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얌전한 임라희 같은 멤버에겐 소홀해지는 것이다. 덕분에 활동하는 동안 얼마나 서운하던지.


‘뮤직스가 해체된 이후엔 더 노골적인 거 같아.’


속에 있는 말을 다 쏘아댄다고 해서 좋을 거 하나 없다는 건 안다. 연예계 바닥이 워낙 소문이 빨리 돌아서, 인성 빻은 연예인이 될 수 있다.


까탈스러웠던 멤버가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는지 봤기에 이제는 안다. 그렇게 될 바엔 혼자 이불이나 차면서 우는 게 낫다.


‘한심해······’


그렇게 혼자 울 때면 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마냥 짜증 내고 화내는 것과는 다르다. 명분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걸 아는데도 잘 안됐다.


‘이 답답한 마음을 노래로 풀면 좋을 거 같아.’


그녀가 걸크러시 컨셉을 원하게 된 계기였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의상부터 바꾸고, 태도 또한 바꾸려고 했다.


그게 어울리지 않았던 걸까. 첫 솔로 앨범은 대차게 말아먹었다. 팬들 또한 컨셉이 안 어울렸다는 의견을 냈다.


‘무시가 더 심해졌어.’


뮤직스 해체 후 기획 2팀으로 사실상 유배 됐을 때 느꼈던 것보다, 지금은 더 심했다.


임라희가 제이 엔터를 나가거나, 앨범 활동을 하지 않길 바라는 것처럼. 연습실 대여나 레슨 잡아주는 것 등. 무엇 하나 제대로 해주는 게 없었다.


‘난 뮤직스의 임라희야. 7년 연습생 견디고, 또 7년을 아이돌 생활한 베테랑 가수야. 할 수 있어.’


그러한 무시 속에서도 임라희는 묵묵히 두 번째 솔로 앨범을 준비했다. 이번엔 최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용하면서.


하지만 제이 엔터는 임라희에게 좋은 곡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비싼 돈을 투자하기 싫다는 것 같았다.


화가 났지만 항변은 못 했다. 그래. 직접 좋은 곡을 찾으면 되지. 그렇게 생각하며 발로 뛰던 때였다.


‘이건 너무 심하잖아.’


레코딩실 이중 예약이 걸렸다. 상대는 최근 제이 엔터에 들어왔다는 신입들.


처음엔 저 신입들이 자신의 레코딩실을 무단 점거라도 한 줄 알았다. 그 정도 수준으로 무시당하나 싶었다.


하지만 정지운과 최유림의 순수한 눈망울에 의심을 거뒀다. 특히 최유림의 얼굴은 낯익었다. 레몬걸스였나. 신인 걸그룹이 인사할 때, 뮤직스 멤버 중 임라희를 콕 집어 팬이라고 했던 친구라 기억에 있었으니까.


‘직원이 실수한 거겠지······’


결국 그렇게 합리화하며, 후배들이 레코딩을 끝낼 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할 것도 없겠다, 디렉팅도 봐주면서.


그렇게 듣게 된 [낙화]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뭔가 운명의 이끌림 같은 게 있었다.


‘이런 실력의 작곡가라면······’


어쩌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크러쉬한 노래도 잘 만들어주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했다.


하지만, 정지운과의 미팅 이후 처음으로 받게 된 곡은 기대와 달랐다.


- 딴. 딴. 딴. 딴.


아직 편곡도 안 된, 피아노로만 이루어진 멜로디 라인인데······. 그런데도 뽀짝했다. 사람이 걸크러시를 바랐으면, 걸크러시까진 아니어도 뽀짝하진 말아야지. 너무한 거 아닌가.


노래가 비트부터 심상치 않다. 이건 대놓고 재롱잔치 노래다.


톡톡 튀는 비트 위에 달콤함이 퍼지는 듯한 노래.


“이게 어떻게 걸크러쉬야! 완전 뽀짝하잖아!”


솔직히 말하면 1절 넘어갈 때까지 곡 좋다며 그루브까지 타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생각했던 컨셉과 거리가 너무 멀다.


“딱히 걸크러쉬를 원하는 거 같진 않아서요.”

“내가?”


이 와중에 상대 이야기부터 들어보자며 마음을 가라앉힌 스스로가 미웠다.


정지운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제가 느끼기엔 라희 님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다! 하는 열망을 노래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거 같았어요. 그것에 대한 도구로 걸크러쉬 컨셉을 빌리고 싶을 뿐이고요.”

“······맞는 거 같기도?”

“그래서 생각했어요. 차라리, 말을 못 해 먹먹한 심정을 노래해 보는 것은 어때요? 근데 그러한 답답함이 타인에게는 다정해 보이고 고마운 거죠. 그게 옳게 된 세상 아니에요?”

“그런가?”

“여기서 걸크러쉬가 되면 흑화한 거 같잖아요.”

“하긴, 저번 앨범 때도 팬들이 변했다고 싫어했던 거 같아.”

“또, 이게 편곡 전이라서 그렇지, 세션까지 다 채워지면 느낌이 또 다를 거예요.”

“그렇겠지?”

“그럼요.”


도를 믿습니까?의 팀이라도 되는 걸까. 정지운의 그럴듯한 포장 이후, 최유림이 추가타를 날렸다.


“저도 선배님이 이런 곡 부르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팬을 자처하는 후배의 말에 완전히 넘어간 임라희가 어물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 미디 작업하러 가겠습니다. 완성되면 곡 보내드릴게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정지운이 휙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뭔가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임라희가 한숨을 푹 쉬며 최유림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너 레몬걸스 시절에 내 팬이라고 했었지?”

“헉! 저 기억하세요?”

“응. 근데 넌 내가 왜 좋아?”

“그야 무대 위에서 너무 멋있었고······ 사실, 인사하러 갔을 때, 신인인 저희를 온갖 배려해 준 선배님한테 너무 고마웠던 것도 있어요. 레몬걸스 전원 선배님 팬일걸요?”

“그래?”


이 바닥에선 친절하면 이용만 당한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좋아해 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임라희의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던 곡을 귀로 직접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그 행복은 장비가 좋을수록 극대화되는 것 같았다.


‘마냥 즐기기만 할 때는 아니지. 이번 곡도 성공해야 해. 그냥 성공 말고, 대박을 노려야 해.’


개인 작업실에서 임라희에게 줄 곡의 미디 작업을 준비하던 정지운이 문득 과거를 회상했다.


‘전생엔 지금으로부터 1년 좀 안 돼서 제이 엔터에 입사했었지.’


청력을 잃어가는 상태로 1년 정도 음악을 배워 투고에 성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만으로도 재능은 있었다는 뜻이었다.


입사 후, 신입으로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곡 작업에 임했다. 신입이라 당연히 서브로 뛰었다.


그러다 청력의 손실로 서브 작업에 차질이 생겼다. 메인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진 거다.


그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메인으로 활동했다.


‘바보 같았어.’


상식적으로 실력이 없었으면 제이 엔터에서 살아남았을까? 청력이 손상된 실력 없는 작곡가를 누가 써줄까? 사정이 딱하다 해도, 회사 입장에선 자르는 게 맞았다.


그러나 제이 엔터는 묘하게 정지운이 포기도 못 하게끔 붙잡았다.


그 일에 앞장선 것이 지금의 기획 1팀의 박유철 팀장이다. 그때 당시엔 본부장 자리까지 올라갔던 사람이고.


- 네 곡에는 소울이 있어.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같은? 그런 게 있는데······

- 하, 이걸 들려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음악을 조각으로 표현한다면, 주제도 감성도 완벽한데 겉보기에 못생겼어. 대중들은 네 예술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 더 직관적으로 대중들을 납득할 만한 곡을 만들어야 해.

- 진짜 좀만. 진짜 딱 2%만 채워지면 성공할 거야. 진짜로.


박유철은 사람 좋은 얼굴로 자신을 꼬드겼다. 정지운은 그를 오랫동안 좋은 사람인 줄만 알았다.


김성태를 만나지 않았다면, 전생의 삶은 그저 시궁창에 불과했을 거다.


- 이게 네가 쓴 곡이라고?


처음 만난 김성태는 정지운의 곡을 듣고 크게 놀랐다. 그만큼 별론가 했는데 나중에 사정을 이야기하더라.


- 이거 이미 다른 사람 이름으로 시중에 판매되는 곡이야. 다시 물을게. 확실해? 네 곡인 거?


그렇게 알게 됐다. 정지운의 곡이 회사에 무단으로 도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감. 표절된 곡을 들으면서도 눈치채지 못한 것에 대한 자괴감. 이제 더는 음악에 이용할 수 없는 청력에 대한 절망. 그 모든 기분을 한 번에 느껴야 했다.


‘그 모든 일이 없던 일이 됐어도······ 복수는 해야지.’


전생엔 그가 그래미상을 타는 순간까지 재판이 진행됐었다. 아무리 언론이 정지운의 편이어도, 절차라는 것은 복잡했으니까. 어쩌면 패소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전생에도 못 받은 죗값을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적어도 박유철이 본부장을 지나 제이 엔터 사장이 되는 꼴 만큼은 못 본다.


‘복수하려면 일단 성과부터 내야 해.’


지금의 기획 1팀과 2팀의 경쟁 구도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기획 1팀이 압도적으로 성과가 좋다는 뜻이다.


그리고······ 1팀에서 살리지 못한 아티스트들은 2팀에 짬처리를 한다. 그런 2팀의 아티스트를 살린다면? 아니, 그런 아티스트들을 데리고 오히려 1팀보다 좋은 성과를 거둔다면? 전세는 뒤집힌다.


‘임라희 정도면 훌륭한 가수야.’


뮤직스 해체 후 2팀으로 보내져, 제대로 된 서포팅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번 앨범도 실패한 거다. 걸크러쉬고 뭐고 사실 안 어울리면 주변에서 허락해 줬을 리 없다. 이미지가 있으니까.


걸크러쉬는 정지운이 생각하기에 망하라고 허락해 준 수준이었다.


‘원래 성품 자체가 다정해서,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 하는 것 같아. 노력해도 잘 안되는 거지.’


차라리 속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한 감성이 섞여 있으면 임라희가 노래를 부를 때 더 몰입할 수 있겠지.


‘전체적인 음악은 통통 튀게 구성하는 거지. 그런 사람이니까.’


아티스트의 개성을 토대로 곡을 구성하는 것은 정지운의 특기다. 안 들리기 때문에 곡조의 분위기를 상상으로 메워야 해서 더 그랬다.


정지운은 머릿속으로 노래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굳이 미디 작업으로 상상을 구체화할 필요도 없었다. 머릿속에 악기의 소리를 전부 외웠으니까.


그렇게 구성을 다 하고 미디 작업을 시작했다.



***



미디 작업을 끝낸 정지운이 제일 먼저 찾아간 건 최유림이었다. 흥행하는 곳을 귀신같이 분별해 내는 능력이 있는 친구니까.


당장은 그 정도 능력이 없더라도, 그런 분별력을 갖추도록 지속적으로 좋은 노래를 들려 줄 필요가 있었다.


“와······ 곡이 벌써 나왔어? 알았어. 들어볼게.”


최유림은 첫 소절부터 눈을 크게 뜨더니, 미소를 지은 채 리듬을 타며 곡을 들었다. 다 듣고 또 들었다. 4번인가 5번을 돌려 들었는지, 한참 눈을 감고 있던 최유림이 드디어 의견을 말했다.


“노래 진짜 창의적이다. 네 노래는 흔하지 않으면서도 대중적인 거 같아. 어떻게 이런 느낌이 들지?”

“그래서? 성공할 거 같아?”

“음······ 근데 걸리는 부분이 있어.”

“걸리는 부분?”

“이 부분이 해결돼야 성공하든 말든 하지 않을까?”


최유림이 의외의 설명을 이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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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끝장낼 수도 있고. +7 24.08.21 7,434 174 12쪽
18 꼭 함께했으면 좋겠네요. +6 24.08.20 7,652 181 12쪽
17 너한테 온 섭외 전화였거든? +6 24.08.19 7,758 189 13쪽
16 이게 어떻게······ +3 24.08.18 7,846 193 13쪽
15 좋습니다. +4 24.08.17 7,862 177 12쪽
14 참. 그 방법이 있었지. +9 24.08.16 8,048 187 11쪽
» 걸리는 부분? +3 24.08.15 8,158 183 12쪽
12 그럼 걸크러쉬로······ +4 24.08.14 8,197 189 13쪽
11 드라마 시청률 봤어? +6 24.08.13 8,243 194 13쪽
10 ······진짜 프로듀서랑 일하는 거 같네. +4 24.08.12 8,389 187 13쪽
9 따로 챙겨 줘야겠네. +13 24.08.11 8,466 183 14쪽
8 저거다! 저거야! +7 24.08.10 8,651 193 13쪽
7 모든 학생 통틀어서 1, 2위야. +4 24.08.09 8,962 195 14쪽
6 잠깐만 대화 좀 하자. +2 24.08.08 9,432 189 13쪽
5 세상은 넓고 천재는 많구나······ +5 24.08.07 10,239 211 14쪽
4 천재인 거 인정할게. +4 24.08.06 10,934 212 14쪽
3 일단 실력 좀 보자. +3 24.08.05 11,496 210 13쪽
2 내가 얘 팬이었지 참? +12 24.08.05 12,647 236 13쪽
1 잠깐, 왜 시끄럽지? +11 24.08.05 15,879 21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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