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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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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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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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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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목······ 갈라졌어.

DUMMY

괴물 신인은 언제 어디에나 있어 왔다.

특히나 재능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엔터 업계에서는 더 자주 볼 수 있다.

누가 천재냐 물었을 때, 대중들의 머릿속에선 몇몇의 이름들이 퍼뜩 떠오르겠지.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아! 걔도 있었지?” 하며 열 손가락을 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OMG엔터의 대표쯤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엔터 업계의 천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천재라고 불리우는 이들 중 대부분은 진짜 천재가 아니다.


‘천재로 보이게끔 만들어지는 거지.’


심지어, 신인인데 천재다? 그런 경우는 더더욱 흔치 않다.

천재라고 불릴 수 있는 이들 중에는 오랜 훈련과 깨달음, 그리고 노력으로 갈고 닦으며 비로소 그 재능을 빛낼 수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니까.


그러니.


[ 나의 천재 PD ]


이 경우는 OMG엔터의 대표, 황태영에게 더욱더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 비로가 이런 글을 남길 정도라는 건가.”


얼굴엔 짙은 웃음이 지어진다.

비로가 인정할 정도면, 말 다 한 거지.


비로는 예술가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천재였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손길을 거부하는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천재에게는 다른 이들이 함부로 엿볼 수 없는 천재만의 세계가 있기 마련이니.


허나, 제아무리 천재라도 재능이 영원할 수는 없다.


‘이제 점점 빛이 희미해지는 줄 알았더니.’


어쩌면 아직 좀 더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담벼락이 무척이나 높고 두터운 천재의 세계에 성큼 발을 들인 괴물 신인 작곡가 덕분에.


“이런 천재가 우리 회사에 둘이나 있다니.”


들뜨고 흥분된다. 옛날 그토록 좋아했던 ‘Billy Joel’의 ‘Piano Man’이 곧장 떠오를 정도로.

그 노래는 자신의 큰형 때문에 좋아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큰형은 영어도 잘 못했는데, 가사도 보지 않고 영어 가사 그대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그 노래를 좋아했다.

덕분에 자신 역시도 중독되어 좋아하게 되었지.


그 노래엔 이런 가사가 있다.


"Man, what are you doin' here?"


손님이 주점에서 피아노를 치는 가사 속 주인공의 노래를 잘 들었다며,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실력이 아니라면서 칭찬하는 의미로 하는 말이다.


“······나도 천재가 되고 싶었지.”


음악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이 업계 사람들이 모두 그러하듯, 꿈꾸게 된 계기는 어느 가수, 혹은 어느 노래이리라.

자신에겐 이 노래다. 가사 속 Piano Man처럼 천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천재는 아무에게나 붙을 수 있는 칭호가 아니기에 천재다.

자신은 선택받지 못했기에 천재가 될 수 없었는데.


그래도 정말 운이 좋게도, 천재를 품을 수는 있게 되었다.

그것도 두 명의 천재를 말이다.


“아니, 세 명인가?”


유지현.

그녀 또한 범상치 않은 떡잎인 건 같았으니.


아무튼.


“이 세 명이 우리 회사의 미래인 건 맞지.”


대표실 안에는, 눈을 감은 황태영이 감정 짙게 부르는 노랫소리가 흘렀다.

과거를 그리며 부르는 Piano Man이었다.


황태영은 몸이 달았다.

그 세 명의 천재가 밝힐 미래는 어떠할지, 몹시 기대가 되어서.


비록 어린 날 바라던 대로 천재가 되진 못했지만.

천재를 품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기에.



***



한편 그 시각.

다른 형태로 흥분한 이들이 있었는데.


“아! 우리는!”


정식으로 회사에 작곡 의뢰까지 한 블랙원이었다.


박재현은 형들의 눈총을 사야만 했다.


“야, 너 부모님 족발집까지 불렀다며. 그때 말 잘한 거 맞아?”

“평소에 좀 잘하지. 너 또 싸가지없게 군 거 아니야?”


박재현으로서는 억울해서 팔짝 뛸 노릇이었다.

솔직히 말해, 전에는 조금 일찍 성공을 맛본 이들이 으레 그러하듯, 제 잘난 맛에 살며 남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긴 했는데.


“저 요즘은 안 그래요! 제가 최근에 언제 그런 적 있어요?”


이젠 그렇지 않았다.

같은 나이의, 자신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재와 인연이 생긴 까닭이다.


‘어깨가 눌렸다······고 해야 하나.’


그놈에 비하면 자신의 재능은 보잘것없다는 걸 알았고, 자신은 평범한데 그저 운이 좋아서 성공을 조금 맛보고 있음을 알게 되니, 그런 건방진 생각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지더라.


허나 형들은 독심술이 있는 게 아니며, 천리안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모르지. 너 한동안 솔로 활동했으니까.”

“너 뒤에서 깔짝깔짝 남들 무시하는 거 잘하잖아.”

“이제 안 그런다고요!”

“이거 봐. 대드냐? 넌 쉽게 안 고쳐져.”

“그래, 평소에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믿으라 하든가.”

“······.”


이게 모두, 비로의 SNS 스토리를 발견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멤버들 전원이 비로를 팔로우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게 되었다.


아무튼, 박재현으로서는 억울했는데.

한 10분쯤 지났을까.

멤버들과 박재현도 슬슬 불편한 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안 해주냐고 하기엔······.”

“비로 선배님이면······ 우리 의뢰 정도는 가볍게 제낄 만하지.”


거기에.


“스토리까지 올려주신 거면 말할 것도 없······ 아 씨, 진짜 개부럽네.”


이제 그들은 임정우가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나의’, ‘천재’, ‘PD’이지 않은가.

하나하나가 주옥같기 짝이 없다.


그리고 한편.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반대되는 상황이 그려지고 있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블랙원과 마찬가지로 임정우에게 정식으로 작곡을 의뢰한 하이즈의 숙소였다.


“······왜 그렇게 봐요.”


김세희를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소하윤.

소하윤의 눈빛에는 진득한 아쉬움이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이럴 줄 알았어.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임정우 작곡가님이 천재라는 걸 알았다고. 우리한테 필요한 사람인 걸 알았어, 나는.”

“······.”

“너는 몰랐어?”

“······저도 알았어요. 천재라는 건.”


김세희는 슥- 눈길을 피하며 답했다.

소하윤의 눈빛이 너무 심하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소하윤의 입에서 얕은 한숨이 나오자, 김세희의 기분이 더욱 불편해졌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

그리고 김세희가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네가 학교에서 처음에 공격적으로 나가지만 않았더라면.”

“윽!”

“그다음에 갔을 때도 도발하면서 건방지게 굴지만 않았더라면.”

“끄응.”

“그리고 내가 학교 가서 부탁하라고 했을 때 따랐더라면.”

“······.”

“우리 그룹에 더 좋은 길이 열렸을지도 몰라.”


멤버들은 이미 살금살금 자리를 피한 뒤였다.

이제부터 시작될 정신교육에 당해보지 않은 멤버가 없었으니.

김세희 또한 앞으로의 시간이 예상되는지, 눈동자가 탁해졌다.


“난 우리 그룹이 소중해. 그리고 항상 우리 멤버들이 잘됐으면 좋겠어. 넌 안 그러니?”

“······저도 그래요.”

“아니야. 내가 보기엔, 우리가 그룹을 생각하는 마음의 크기가 다 같지는 않은 것 같아. 이 점에 대해선 생각 못 했어.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고 가치관이 다른 법인데. 정말 미안해. 같은 멤버라고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한 것 같아.”

“······아니에요.”


피 말리는 생지옥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김세희로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다.

아직도 문득문득 그 흑역사가 영혼에 극심한 타격을 주는 탓이다.


김세희는 흑역사에 뻔뻔해지기엔 아직 너무 어린, 19살의 소녀일 뿐이었다.



***



어쩌다 보니까 내 작업실은 아예 방치 상태다.

벌써 며칠째 여기로 오는 거지?


“음, 이 부분에선 이것보다 좀 더 여리여리하면서 날카로운 느낌이 좋을 것 같아.”

“그래요? 악기를 좀 바꿔볼까요?”


더군다나 이런 식으로, 나 혼자 만드는 게 아니지 않은가. 비로의 의견이 꼭 필요했다.

말은 앨범을 통째로 맡는 프로듀서라곤 하지만, 막상 내가 할 거라고는 비로가 거의 다 만든 곡에 MSG를 치는 것 정도이기 때문이다.

비로 말로는 그게 엄청 어려운 거라고 하던데, 솔직히 내 입장에선 좀 날로 먹는 것 같은 감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


하는 난이도에 비해, ‘비로의 정규앨범 프로듀서’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그리고 SNS 스토리까지 올렸으니······.’


며칠 전 올린 그의 SNS 스토리.

이에 팬들은 아주 희망 회로를 팽팽! 돌리며 기대감이 폭발하고 있었다.


-비로오오오오!!!!! 드디어 컴백이냐고!!!

-오랜··· 기다림이었다···!

-죽지 않았구나···. 형 빨리 와줘. 여기 너무 추워···. 형 목소리로 AI 듣는 것도 이제 한계야!


팬들은 아니나 다를까, 나의 존재보다는 컴백할 거라는 희망의 불씨에 눈이 돌아갔다.

왜냐하면, 지나가는 개가 프로듀싱을 해도 좋으니 일단 컴백만 해달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1~2년이라면 모를까, 무려 3년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흥미를 끌어야 하는 기사들 중 일부와, 라이트한 팬들은 태도가 살짝 달랐다.


「비로가 언급한 “나의 천재 PD”는 누구? 네티즌 갑론을박.」

「일부 팬들, “비로의 ‘나의 천재 PD’는 임정우가 분명하다!”」

「<17살 신예 천재 작곡가 임정우 & 태생 완벽 천재 비로> 조합 기대 모아. 컴백은 언제?」


SNS에 PD라고 올라온 내게 주목한다.


-쓰읍. 아, 비로가 아이돌 작곡가랑 하는 건 좀;;; 비로 혼자 만들면 안 되나? 평소처럼.

-아니, 그냥 하던 대로 만들면 되지 왜 다른 사람이 끼어들어ㅡㅡ

-아 역시 OMG 들어가더니 비로도 망했네ㅋㅋㅋㅋ 그저 그런 음악 나오겠지.

-노바 작곡가네요···^^ 들어보니까 좋긴 한데, 그래도 비로를 프로듀싱하는 건 좀 시기상조가 아닐 지.

-ㅋㅋㅋ하여간 분탕치는 새끼들은 꼭 팬 아니라니까. 프사나 바꾸고 말하세요 좀.

└ㅇㅈ······. 들어가보니까 팬도 아니면서 훈수질만 오지게 해요ㅋㅋ 비로가 인정한 천재라는데 지들이 뭐 되냐고ㅋㅋ 방구석 평론가들 진짜 키보드 못 치게 해야 돼.


언제나 그렇듯, 항상 논란과 분쟁거리를 만들어내는 건 찐팬이 아니었다.


인터넷은 이렇게 시끌시끌한데.

우리는 변함이 없다.

곡을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다가.


“오! 지금 좋다. 한번 불러볼게. 거슬리는 거 있으면 꼭 말해줘. 아주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네.”


진지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선 비로.

내가 수정한 음악이 나오자, 그의 입에서도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와, 씨······. 음색 진짜 욕 나오게 좋네······.’


성대에 꿀 주사를 놨나.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귀 정화가 되는 노래가 끝나자, 나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최고예요. 지금 거 그대로 쓰면-”

“다시 할게.”

“네?”


비로는 미간을 와락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방금 건 지워. 쓰레기였어.”

“······.”


완벽주의는 불치병인 모양이다.

이걸 버린다고?


“네, 알겠어요.”


근데 말만 하고 진짜 지우진 않았다.

혹시 모르잖아.

방금 게 얼마나 좋았는데.



***



집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더 작업해도 된다니까, 딱 잘라 거절하더라.

“넌 아직 학생이잖아.”라면서 말이다. 이럴 땐 아주 애 취급을 하고 있다.


‘딱히 그런 배려까지는 필요 없는데.’


사실 학교도 며칠 빠져도 상관없었는데, 그건 진짜 절대 안 된다며 혼내듯이 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며칠씩이나 걸리는 거지.

학교도 안 가고 새벽까지 했으면 진작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쓰읍······. 그건 아닌가?”


워낙 완벽주의라서 말이지.


침대에 퍼질러 누워서 쉬고 있다가, 이제 막 씻으려 몸을 일으켰는데.

그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주정원이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전화했지?’


가까워지긴 했지만 평소에 전화까지 하는 사이는 아니라,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무슨 일 있나?


“네, 선배.”

-응. 잤어?

“아뇨.”

-그럼 뭐 하고 있었어?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니, 그 변화가 있긴 했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게 맞나?


[3. 비밀의 발코니 – 노바]

[4. Dancing In The Breeze – 유지현]

.

[6. Say Something – 하이즈]

.

[12. Top Of Top – 박재현]


또다른 대형 아이돌의 컴백에 밀려 노바의 곡은 3위로 밀려났거든.

이런 콘크리트 같은 차트에서 1위를 한 것치곤 기간이 짧긴 했는데, 그래도 하이즈보단 길었다.


그리고 아직 1티어 걸그룹이 됐다고 말하기엔 팬덤이나 각 멤버들 인지도 측면에서 손색이 있긴 했으나.

어쨌든 곡은 히트를 치며 그룹의 저력을 알렸으니, 유의미한 걸 넘어 대박이 난 건 맞지.

곡과 더불어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팬덤도 많이 커졌고.


-비로 선배님이랑 작업은 할 만해?


그러니 1위에서 내려왔다고 한들, 그녀를 위로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다만, 1위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아쉬움이 있긴 할 테니, 이를 달래기 위해 그냥 대화가 필요할 수는 있겠다.

그런 거라면 난 얼마든지 응해줄 수 있다.


“음. 대부분은 할 만한데, 형은 가끔 제가 도라에몽인 줄 아는 것 같아요. 말하는 대로 다 하니까 점점 더 요구사항이 세세해지고 많아져요.”

-네가 너무 잘하니까 그런가 봐. 그리고 또?

“제가 듣기엔 진짜 보컬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녹음 끝내도 되거든요? 근데 정작 형은 자기 노래에 만족도 잘 못해서 반복하고, 반복하고, 계속 반복해요.”

-아, 그렇게 하시니까 그렇게 팬분들한테 사랑받으시는 거겠지. 그래도 재밌지?

“네, 많이 재밌긴 하죠. 좋기도 하고요.”


근데 이거 내가 응해주는 거 맞나?

나긋나긋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나는 집에서 나와 밖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고.

밤바람을 맞는 얼굴엔 시종일관 웃음이 자리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대화가 필요했던 건 나고.

이에 응해주는 건 그녀일 수도 있겠다.



***



비로와의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딱히 문제라고 할 만한 일도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몹시 화가 난다.


나는 학교 수업을 빠질 수는 있어도, 체육대회는 설령 비로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가지 말라고 매달려도 야멸차게 뿌리치며 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내 믿음을 배신했어.”


체육대회다.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축구 경기 결승.


숨을 헐떡거리는 놈들에게 나는 몹시 대노하며 꾸짖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란 말이야! 지금 지면 예선에서 이겨온 거 다 물거품이야! 내 눈엔 너희가 대충 뛰는 게 보여. ‘상대가 피지컬 좋은 실용무용과니까 뺏겨도 어쩔 수 없지’, ‘결승까지만 와도 잘한 거야’, 이런 썩어빠진 태도가 내 눈엔 훤히 보인다고!”


실용무용과에게 1:0으로 뒤지고 있는 하프타임.

놈들은 내게 찍소리도 못했다.

나는 미드필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팀을 결승으로 끌고 올라온 실질적인 감독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재현!”

“어, 어? 나?”

“그래! 너!”


나는 스케줄이 있다며 슬쩍 경기를 빠지려던 박재현에게 엄포를 놨었다.

그날 출전 명단에서 이름이 빠지면, 우리 A&R팀이 준 리스트에서도 블랙원의 이름은 영원히 빠지게 될 거라고.


어쩔 수 없었다. 얘가 그래도 패스는 좋아서.

우리의 승리에 있어 꼭 필요한 재원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따위로 몸 사릴 거면 당장 내 팀에서 꺼져! 아이돌이라서 몸을 아껴야 한다고? 다쳐선 안 돼? 헛소리! 집중해! 집중하란 말이야! 넌 지금 아이돌이 아니라 선수야! 공을 뺏기면 악착같이 쫓아가야지, 설렁설렁 뛰면 어쩌자는 거야!”


박재현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움찔거렸으나.

내가 눈을 부라리니 입술이 꾹 다물린다.


“구창식, 넌 잘하고 있어. 계속 그렇게 공간을 찾아 들어가. 그리고 너네들은 다 구창식한테 공 보내고! 구창식만 보라고! 구창식만! 항상 주위를 살펴! 압박이 와? 그럼 오히려 좋아! 앞쪽에 공간이 생기는 거잖아! 쫄지 말라고! 그리고 압박이 안 와? 그럼 공을 계속 소유해. 돌리고, 돌리고, 계속 돌리란 말이야! 지고 있다고 조급해지지 말고!”


머리가 뜨거워진다.

이 답답한 놈들 때문에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

그나마 구창식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얘라도 없었으면 진작에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목이 터져라 소리치며 놈들의 썩어빠진 정신을 바로잡아주고 있던 그때.


“저······.”


놈들의 시선이 내 어깨 너머를 향하고.

살포시 어깨를 두드리는 손가락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김세희 선배?”


김세희는 내 얼굴을 쳐다보긴커녕,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얼핏 드러난 귓볼은 타오를 듯 시뻘겋고.

내게 물통을 내미는 손 또한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머, 먹어. 너 목······ 갈라졌어.”

“······네, 감사합니다.”


내가 물통을 쥐자, 후다닥 전속력으로 달아나는 그녀.

지금까지 보던 그녀의 모습과 180도 다른 모습에, 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상념을 뚝, 끊어버리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지금은 저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쓰고 의미 부여하며 집중력을 빼앗길 때가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한 팀이라는 거 잊지 마. 따로따로 행동하지 말란 말이야! 알았어?! 그리고 박재현, 너 이번에 지켜본다. 열심히 뛰어.”

“씹······. 아, 알았어.”


그리고 그렇게 열정적인 연설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반 전우들은 실용무용과 놈들에게 3:0으로 처발리고 말았다.


블랙원은 이제 영원히 아웃이다.



작가의말

'블랙아웃'을 소제목으로 하려다가 너무 구려 보일까 봐 참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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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재현이는 아무 잘못 없어요 +28 24.09.14 10,938 366 16쪽
42 이 재미지 +28 24.09.13 11,571 402 19쪽
41 진짜 모르겠네···. +23 24.09.12 12,429 36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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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금시계, 금목걸이, Cash(검은) +22 24.09.10 13,345 344 15쪽
38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12 24.09.09 13,858 356 18쪽
» 너 목······ 갈라졌어. +32 24.09.08 14,158 363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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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나만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멜로디 +15 24.08.29 16,342 36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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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낭만이 있어 +14 24.08.24 17,107 33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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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18,982 380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8 24.08.14 19,401 357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9 24.08.13 19,644 370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0,015 356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0,213 362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0,504 363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1,043 363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1,604 388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6 24.08.07 22,037 411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3,127 415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2 24.08.06 25,525 421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29 24.08.06 30,183 50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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