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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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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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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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이 재미지

DUMMY

마치 거물이 된 듯한 느낌이다.

녹음실 안에는 블랙원의 멤버들, 하이즈의 멤버들, 그들의 매니저들, A&R 팀, 엔지니어,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온갖 사람들이 몰려들어 작업실이 터질 듯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유가 내 곡을 들어보기 위해서라니.’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게 무색할 정도로, 그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나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들이 모일 만하긴 했다.


멤버들이 오니 매니저들이 따라오고, 외부 작곡가가 여기서 곡을 쓴다고 하니 A&R과 엔지니어가 자연스럽게 참석하고,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의 이유겠지.

왠지 모르게 어깨에 뽕이 차오르는데, 그만큼 부담감도 심해진다.


“흠···.”


나는 녹음실 의자에 앉아 그들을 마주 바라봤다.

멤버들 위주로 물끄러미.

한 명 한 명 눈을 똑바로 맞추며.


하지만 역시나.


‘딱히 영감이 떠오르지는 않네.’


이 작업실에 들어오기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히 얘기를 했음에도 머리엔 영감이 간질거리긴커녕 별다른 느낌도 받지 못하긴 했다.

그러니, 재차 이렇게 쳐다본다고 해서, 아까 나오지 않았던 영감이 갑자기 뿅! 하고 튀어나오지는 않겠지.


그런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는 뭣하니.

일단은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나는 여기 오기 전부터 생각했었다.

두 그룹 중, 어느 한 그룹으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받게 되지 않는 한.

그룹에 맞춰 수정하는 건 두 팀 중 하나가 선택된 뒤에 할 거라고.


그러니, 두 팀 중 하나로 결정되지 않은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일단 뼈대부터 만들어 놓자.’


살도 없고, 혈관과 근육, 신경도 없으며, 장기도 없다.

그저 뼈대, 뼈다귀, 가시만 만드는 거다.

말 그대로 구조만 세운다는 거다.


저들의 색깔과 방향성이 너무나도 다른 탓이다.

하나는 대중성이 높은 걸그룹.

하나는 대중성을 원하는 컨셉츄얼한 보이그룹.


일단 염색체부터가 다르지 않나.

염색체가 다른데 어떻게 살덩이를 붙이겠냔 말이다.

염색체는 XY인데 정체성은 XX로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큰일난다 진짜.


아무튼 가시만 있어서 볼품없게 들리긴 할 텐데.


‘뭐 어쩔 수 있나.’


유지현에게 줄 곡을 쓰고 남은 영감을 뼈대로 두고, 거기에 살을 덧붙이면서 퀄리티를 높여야 하는데.

어느 한 쪽에 기울여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이 두 그룹의 세포가 다른 만큼 색깔과 방향성도 달라서.


아직 어느 그룹이 할지 정해지지 않았으니 이게 당연한 거지.


‘도중에 영감이 나오면 수정하고, 영감이 나오지 않으면 뭐··· 내가 임의로 한 쪽을 정해서 조금씩 살덩이를 붙여봐야지.’


그런데 그 한 쪽을 정하는 것도 문제라서, 이따가 뼈대를 다 세우면 물어봐야겠다.

"이거 할 사람?" 하고.

거기서 만약 둘 다 하고 싶다고 하면.


‘그럼··· 그냥 두 그룹 다 만들어 주지, 뭐.’


며칠이 걸릴 진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내 곡을 바라고 있으니 뭐라도 하나씩 제대로 된 걸 뽑아 줘야 내 마음도 편해질 것 같다.

물론, 내 프로듀싱 앨범에 참여할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없지 않아 있기도 했고.



***



모두에게 천재라고 불리는 작곡가이자, IA엔터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선유민 피디.

지금 그의 심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자존심이 상하지.’


이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을 못 믿어서 외부의 작곡가를 데려온 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작업실에 보이고 있는 풍경으로만 보면, 그냥 데려온 것도 아니고, 거의 모셔온 거나 다름없다.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라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렇다고 아티스트들이 데려오겠다는데 못 데려오게 막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게다가 임정우는 연달아 최고의 실력을 입증해 내고 있기도 했고.


‘우리가 얼마나 못 미더웠으면 그랬겠어.’


선 피디의 시선이 멤버들을 슥, 훑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진지하게 집중하는 블랙원 멤버들.

저들의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블랙원이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보이그룹들이라고 안 그럴까. 대중적인 성공을 바라는 건 다 똑같았다.


하지만 회사는 원래 이익을 가장 중요시하는 집단이다.

대중성을 어느 정도 희생하더라도, 컨셉츄얼한 곡을 타이틀로 내세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반면, 하이즈는 대중성이 차고 넘치는 곡으로 항상 인기를 끌고 있었다.

블랙원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말이다.

하지만, 선 피디는 그녀들이 왜 이곳에서 이러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하윤 때문이겠지.’


그녀는 모든 걸 다 가져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는 걸 안다.

성공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다. 실력도 뛰어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야망도 큰 타입.


그런 그녀가 유지현한테 지고 말았으니, 얼마나 분했겠나.

가지려다가 끝내는 손에 쥐지 못한 곡이 더욱 눈앞에 아른거렸을 것이다.


‘심지어 노바는 그 곡으로 유지현을 밀어내기까지 했으니.’


그 곡이 크게 성공할 거라는 소하윤의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아무튼 ‘좋은 곡’이라는 목적은 같아도, 이렇게 다른 이유들로 이 두 그룹이 이곳에 있게 된 것 같은데.


‘이런 광경은 듣도 보도 못 했어.’


아무리 아티스트들이 임정우에게 곡을 요청했다지만.

이렇게 다른 두 그룹을 두고 작업을 하는 모습은 기괴하게까지 보였다.

임정우가 괴짜라는 사실은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알고 있던 건 빙산의 일각이었던 모양이다.


선 피디는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이 떠다니는 가운데, 묵묵히 입을 다문 채 임정우의 작업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음···? 뭐지?’


선 피디의 미간이 좁혀지고,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곡이 그의 기대를 한참 밑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돌에 빠삭하지 않은 일반 대중들에게 있어, 거의 무명이나 마찬가지인 박재현을 ‘Top Of Top’으로 차트 1위에 올리고.

쓰러져 가던 노바에게 ‘비밀의 발코니’라는 이름의 8기통 날개를 달아 주어 1위로 올렸으며.

그 비로가 SNS에 ‘나의 천재 PD’라고 올린 사람의 실력 같지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자신만 하고 있는 건 아닌 듯했다.

녹음실 안에 있던 모두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엔지니어, 매니저들, A&R팀, 그리고.

블랙원과 하이즈까지.



소하윤은 곤란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어쩌지? 아무래도 이 곡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아무리 천재라 해도, 매번 기계처럼 최상의 퀄리티만 뽑아낼 수는 없는 법이긴 하다.

천재도 결국 사람이니까.

고점이 높을 뿐, 그래도 저점이 존재하긴 할 것 아닌가.


‘하필 그 저점이 지금이라니···.’


소하윤이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속으로 몇 번이고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멤버들을 돌아보며 눈짓을 보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까?”


아무래도 긴급 회의가 필요할 듯했다.

그리고 그 회의는 ‘이 곡은 포기하자’.’라는 결론이 나올 터였다.

멤버들의 얼굴에서도 만족하는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하이즈의 멤버들이 모두 작업실을 빠져나갔는데.

임정우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갔다.

이쯤 되면 임정우도 주변의 반응이 영 별로라는 걸 눈치챘을 텐데 말이다.


박재현은 발끈하여 벌떡 일어났다.

뭔가 한마디 하려던 찰나.


“앉아.”


박재현의 팔을 잡아내리는 손길이 있었으니, 블랙원의 리더, 신두한이었다.

박재현을 다시 자리에 앉힌 신두한은 본인이 대신 일어서며 말했다.


“작곡가님.”

“네?”

“가이드 필요하시면, 제가 한번 불러 볼까요?”



***



하이즈도 나가고, 다들 반응도 없다.


‘이쪽으로 틀고 저쪽으로 틀기도 쉽게, 그저 뼈대만 만들었을 뿐인데.’


저들은 이게 근육과 장기, 혈관, 신경, 살가죽까지 다 붙은 형태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이걸 못 알아보나?’


등줄기에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다들 전문가들인데 설마 못 알아볼 줄은 몰랐지.


가뜩이나 두 그룹을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드는 것도 처음인데, 이런 싸한 분위기에 놓인 것도 처음이라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몸으로는 작업을 이어 가면서, 머릿속은 쉴 새 없이 돌아갔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 내가 잘못 생각했나? 지금이라도 방향을 한 쪽으로 틀어? 어느 쪽으로? 아니, 근데 이걸 왜 못 알아보지? 뼈대라는 걸 미리 설명해 줬어야 했나?’


속으로 갈팡질팡하던 그때.

신두한이 나서며 나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가이드 필요하시면, 제가 한번 불러 볼까요?”


나는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그럼··· 그래 주시겠어요?”


이왕 가이드를 하게 된 만큼, 블랙원의 색깔에 맞춰서 시키는 게 좋겠다.

그럼 다들 알아보겠지?

정확히 지금 어떤 과정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혹시 몰라.’


그의 적극적인 태도에 말미암아 새로운 영감이 떠오를지도.


“알겠어요.”


신두한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부스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뭐가 됐든 일단 한 번 부딪쳐 보겠다는 듯이.


박재현이 리더의 저런 태도를 보고 배웠나 보다.

전에 과제곡을 만들 때도, 막혔다고 하니까 박재현이 나서서 가이드를 해보겠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영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신두한은 마이크 높이를 조절하며 물었다.

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군말 없이 따르겠다는 듯이.


‘여기서 천천히 듣고 들어가도 됐을 텐데.’


태도도 그렇고, 표정과 목소리에서도 그렇고, 열의가 아주 넘친다.


분명 다른 사람들처럼 뼈대라는 걸 알아보지 못했을 텐데도.

이 곡에 실망을 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만큼 절실한 건가?’


아무튼 적극적으로 부딪쳐 보려는 태도는 남자다워 보이긴 했다.

리더의 재질이 확실히 느껴지네.

이러니까 그 건방진 박재현도 꼼짝 못하는 거겠지.


“인트로 부분부터 차근차근 가볼게요. 가사는 마음대로 불러도 돼요. 처음에 ‘빠라리 라우러’ 이런 리듬으로 갈 건데, 이 ‘라우러’ 부분에서 이렇게 가성을 섞으면 되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그의 적극적이면서 열의 넘치는 태도 덕분일까, 나도 그의 흐름에 맞춰 몰입하게 되었다.

내 목소리에는 점점 더 힘이 실렸으며, 요구사항은 점차 길어지고 세세해졌다.


“좋아요. 그리고 여기서는 락커처럼 불러 보실래요? 알죠? 목소리 단단하게. 멀리 있는 사람들한테 노래하는 것처럼. 호흡 조금 덜 섞고, 시원시원하게요.”

“네. 해 볼게요.”


가성을 여기, 여기, 섞으랬더니 그렇게 섞고.

락커처럼 부르라니까 그렇게 부르고.

버터 바른 것처럼 부드럽고 느끼하게 리듬을 타라니까 그렇게 해낸다.


뭐야, 이 사람?


“···진짜 잘하네?”


기대 이상이라서 무심코 감탄이 흘러나왔다.

기본적으로 살짝 하이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느낌이 확 살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시키는 대로 무리 없이 따라오기 때문일까.


‘나도 신나네.’


박재현은 흐뭇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치? 잘하지? 이게 우리 메인 보컬이야.”


그러더니, 날 흘겨보며 덧붙였다.


“근데 너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맞냐?”


아까 이 질문이 나왔으면, ‘이때구나!’ 하고 대답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상황을 들려줬을 텐데.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신두한 덕분에 이 곡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명확하게 이미지가 잡혔거든.

그러니까.


‘영감이 떠올랐다는 거지.’


난 씩,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못 믿냐?”

“쓰읍···.”


놈이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신두한에게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잠시 나왔다가 다시 하죠. 수정해야 할 게 조금 있어서요.”


이제 내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다.

조금 전까지 등에 삐질삐질 흐르던 땀은 어느새 완전히 식었고, 나도 모르게 굽어 있던 등은 일 자로 펴졌다.

이번엔 다행히 신두한이 내게 도움을 줘서 살긴 했는데, 다시는 이런 식으로 작업하지 말아야겠다.


그렇게 수정을 시작하려는 순간.

문이 열리며 소하윤이 들어왔다.

그런데 소하윤뿐이다. 같이 나갔던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윤아, 멤버들은?”


A&R팀 직원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연습하러 갔어요.”

“아···.”


그 대답 속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작업실 안의 대부분이 그 말을 이해한 듯 날 흘끗 쳐다보고 있을 때.

소하윤이 내 앞에 다가와 섰다.


귀족 같은 고급스러움과 귀여움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얼굴.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고요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잠시 말을 고르는 듯하더니, 입술을 열었다.


“이번 곡은 저희랑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원래 미디어에서 그녀를 봤을 땐 눈매가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곳, IA엔터의 복도에서 그녀를 실제로 처음 보게 됐을 때는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만들어 주시면 안 돼요?’


미련 없이 몸을 돌리던 내 팔을 붙잡고 부탁했을 때.


‘노바 선배님들처럼 저희한테도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커진 눈동자와 힘이 들어간 목소리.

숨길 수 없는 욕심이 넘실거리는 얼굴.


그때 이후로 그녀를 마주칠 때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엔 항상 그때의 감정이 어느 정도 옅게 깔려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감정이 엿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눈은 미디어에서 보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족 같은 고급스러움과 귀여움이 절묘하게 공존하는 얼굴.

그리고··· 그저 귀여워 보이기만 하는 눈매.


“항상 응원할게요. 그리고 저희한테 맞는 곡이 생기면 언제든지 부탁드리겠습니다. 무례하게 찾아 뵙고, 무리하게 오시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말을 멈춘 그녀는 고개를 느리게 숙였다가 다시 천천히 들어올렸다.


“저희 곡에 대한 영감이 떠오르시면 말씀만 해 주세요. 어디든지 달려갈게요.”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내가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듯이.

지금도 그녀는 표정에 한 점 미동도 없이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런데 뭔가 낯설다.

다른 건 다 평소와 비슷한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 욕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어서.


그 차이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니.


“흐음···. 나도 볼 일이 있어서.”

“···애들 갔으니 저도 가 보겠습니다.”

“······.”


아까는 사람이 미어 터질 듯했는데, 금세 절반이 빠졌다.

찬물이 끼얹은 것 같은 분위기는 내가 곡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러긴 했는데, 지금은 공기가 무겁기까지 했다.


‘왠지 휑하게 느껴지네. 이것만으로도 사람이 적은 건 아닌데.’


저들이 나갔다고 해서 내가 기분 나빠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다. 기분 나쁠 이유를 하나도 꼽을 수가 없다.


저들이 독심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내 머릿속에 들어온 것도 아니니, 내 뜻을 못 알아봤다는 걸 탓할 수는 없지 않겠나.

내가 미리 설명해 주지 않은 탓이 더 크다.

못 알아볼 경우도 상정을 했어야 했는데.


다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꽉 들어찰 뿐이다.


‘진짜 잘 만들어야겠구나.’


이 바닥은 실력이 전부라는 말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시 의자를 돌려 앞을 바라봤고.

떠오른 영감을 따라 손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음?”

“어?”

“뭐야!”


작업실 내의 공기 또한 바뀌기 시작했다.

차가운 공기가 살짝 달궈진 정도?

그런데 워낙 차가웠기 때문인지 그 작은 변화가 여실히 느껴졌다.


뭐, 그렇게 크게 만지지도 않았다.


‘기존 신스 멜로디에 몽환적인 느낌을 한 스푼 정도 떨어뜨리고.’


처음 이 곡을 들을 때 귀를 사로잡는 건, 신스웨이브의 시그니처인 레트로 사운드와 전자 신디사이저의 강렬한 멜로디일 테지만.

점차 몽환적인 느낌이 붙는 속도가 빨라지며 곡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전환될 것이다.


‘베이스는 좀 더 늘어지게 바꿔야지.’


곡의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베이스는 둔탁해지면서 늘어진다.

공간감이 강조되며, 부드럽게 이어지는 그루브가 느껴지도록.


퓨쳐 베이스로의 전환이다.

BPM은 그대로 두되, 비트를 트랩 느낌이 물씬 나게 바꾼다.

트랩 특유의 하이햇 롤과 스네어의 경쾌한 리듬.

초반의 신스 웨이브 느낌과는 다른 텐션을 받을 거다. 그리고 신스 웨이브가 옛날 느낌을 불러일으킨 것에 반해 도리어 날카로우면서 세련된 느낌을 받겠지.


‘여기서 드롭 한 번 빵! 넣어 주면 남자들도 좋아 죽겠지.’


이 드롭은 몽환적으로 바뀌어 가는 신스랑 맞물리는데.

곡의 중심이 신스와 베이스인 건 변함이 없으니, 크게 위화감이 들지 않게 자연스러운 분위기 전환이 이루어진다.


유지현에게 줄 ‘Neon Pulse’는 까만 선글라스와 까만 단발, 까만 셔츠, 노란 정장 차림의 그녀를 떠올리며 만든 곡이다.

그 뒤로 강하게 터지는 황금빛 조명과, 그런 조명을 온몸으로 받는 모습까지.


이 곡은 그 영감의 잔재로 만들어서일까.

아니면 신두한의 안정적인 하이톤 보컬이 내 영감을 두드린 탓일까.


까만 선글라스엔 다이아몬드가 박히고.

황금빛 조명은 멀미 날 것 같은 사이킥 조명으로 바뀌었으며.

까만 셔츠와 노란 정장은 어깨 뽕이 뿔처럼 솟은 반짝이 하이 패션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또 너무 과하면 안 되거든.’


드롭과 안티-드롭을 적절하게 섞어 줘야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퓨쳐 베이스와 신스 웨이브를 오가는 ‘K-POP’이거든.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블랙원이 할 음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단지 신스와 베이스가 중심이 되는 다양한 구성을 원할 뿐.


‘전체적으로 봤을 땐 보이그룹 느낌을 크게 벗어나지 않게 하자.’


다행히 케이팝은 이전부터 EDM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를 꾸준히 섞어 왔기 때문에 대중들도 이 곡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거다.

그래도 너무 벗어나면 “그게 EDM이지 케이팝이냐”라는 소리가 나올 테니 주의해야겠지만.


적당히 딱.


‘대중들이 좋아하면서.’


적당히 딱.


‘컨셉츄얼하게끔.’


빌드업되다가 빵! 터뜨리는 드롭 파트에서는, 안정적이면서 맑은 신두한의 하이톤이 이끌게.

묵직한 베이스와 대조를 이루면서 청각적으로 청량한 쾌감을 줄 수 있을 거다.


‘근데 역시 핵심은 후렴 멜로디지.’


대중적인 멜로디라인,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구.

곡의 구조는 여전히 K-POP의 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정면의 녹음 부스 유리창으로 비치는 작업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벌떡 일어나 있다. 입이 떡 벌어진 채 경악한 얼굴들.

박재현의 눈은 거의 튀어나올 듯했다.


분위기가 점점 달아오르다 못해, 이제는 아예 끓어오르는 모양이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미친. 원래 이런 식으로 작업하시는 건가?”

“와 씨, 갑자기 장르가 막 바뀌고 막 섞이는데?”

“뭔 퀄리티가 이렇게 확 오르냐···?”

“저 새끼, 인성은 별로여도 실력은 진짜 확실하다니까.”


마치 코앞에서 마법을 목도한 듯한 사람들의 표정들이 보기 좋아, 내 얼굴에서도 짙은 미소가 번졌다.


‘이 재미지.’


역시,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건 포기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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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13 24.09.09 15,649 383 18쪽
37 너 목······ 갈라졌어. +33 24.09.08 15,938 391 18쪽
36 [ 나의 천재 PD ] +23 24.09.07 15,901 449 13쪽
35 진짜 문제와 더더욱 큰 문제 +12 24.09.06 16,595 362 18쪽
34 아름다운 구너들의 밤 +11 24.09.05 16,686 383 14쪽
33 혹시 방송에 얼굴 나와도 되나요? +15 24.09.04 16,733 377 14쪽
32 <비밀의 발코니> +15 24.09.03 17,134 344 14쪽
31 R&B계의 거물 +16 24.09.02 17,596 360 16쪽
30 제발 저희 버리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14 24.09.01 17,810 360 15쪽
29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15 24.08.31 17,863 385 13쪽
28 그 곡이면 달랐을 수도 있었는데 +16 24.08.30 17,768 387 15쪽
27 나만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멜로디 +15 24.08.29 18,015 395 14쪽
26 <Dancing In The Breeze> +11 24.08.28 18,290 388 15쪽
25 내 고백을 차버린 남자가 너무 잘나감 +10 24.08.27 19,051 370 19쪽
24 이걸 작곡한 애가 진짜 천재거든요 +9 24.08.26 18,613 383 13쪽
23 <Top Of Top> +13 24.08.25 18,881 358 15쪽
22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낭만이 있어 +14 24.08.24 18,826 355 15쪽
21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1 24.08.24 19,286 345 16쪽
20 원하는 게 있으면 투쟁하여 쟁취하라 +11 24.08.23 19,486 343 15쪽
19 투자에 대한 확신을. +18 24.08.22 19,637 362 15쪽
18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싫다 이거지 +21 24.08.21 19,820 346 13쪽
17 설마 진짜 그 엘라겠어? +9 24.08.20 20,168 384 13쪽
16 재회 +12 24.08.19 20,243 389 12쪽
15 실리보단 신의 +23 24.08.18 20,475 377 15쪽
14 유지현은 대체 왜 저런대? +11 24.08.17 20,628 373 12쪽
13 강동 6주까지 되찾은 서희처럼 +12 24.08.16 20,810 385 13쪽
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20,797 406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9 24.08.14 21,244 383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9 24.08.13 21,519 394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1,945 383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2,141 389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2,462 389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3,076 387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3,717 415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7 24.08.07 24,202 446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5,438 455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3 24.08.06 28,076 454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33 24.08.06 33,306 54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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