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최근연재일 :
2024.09.18 19:20
연재수 :
47 회
조회수 :
890,508
추천수 :
18,174
글자수 :
318,010

작성
24.09.16 19:20
조회
12,069
추천
328
글자
20쪽

그분이 역시 보물이긴 하구만?

DUMMY

다음날, 노바의 팬미팅.

팬미팅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나를 보고, 노바 멤버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어? 벌써 오셨어요?”

“아직 시간 한참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집에서 할 것도 없고, 그냥 준비하는 거 구경도 좀 하고 싶어서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었으니까.


‘나도 나중에 기획사를 세울지도 모르잖아?’


지금 당장을 말하는 건 아니다.


‘지금은 작곡가 일에 충실해야지.’


하지만 내가 성인이 되고, 서른이 되고, 또 시간이 흘러 마흔이 되면?

작곡가로만 활동하기엔 조금 아쉽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얼마 전 비로가 했던 말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비로는 작곡가 사무실을 말했던 것일 테지만, 기획사인지 작곡가 사무실인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둘 모두를 생각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난 기획사 쪽이 더 끌려.’


지금 인하우스 작곡가 생활에도 불만이 전혀 없거든.

오히려 이렇게 한 식구가 되는 유대감과 소속감도 너무 좋았고.


그래서인지 작곡가 사무실은 썩 끌리지 않는 반면, 기획사를 떠올리니 가슴속 어딘가가 미묘하게 반응했다.


유지현 같은 가수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키운다면?

처음부터 내 손으로 그룹을 만든다면?


‘진짜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


하지만 주변은 아무것도 안 둘러본 채로 오로지 작곡 일에만 대가리 박고 있다가, 나중에 가서 “나도 한번 제작해 볼까?”하면 늦는다.

작곡가들이 제작에 뛰어들어서 망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다.


‘음악만 기계처럼 만들 줄 알면 바보 되기 십상이라고 들었거든.’


적지 않은 예술인들이 자기 일만 하다가 통수 맞기도 하고, 착취도 당하고 그러지 않은가.

비즈니스도 좀 알고, 주변도 좀 둘러보고 그래야 사람 볼 줄도 알게 되는 거지.

그러니 이렇게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리미리 봐 두면서 감을 익히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지켜보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그리고 이런 현장에 오는 건, 비단 나중에 회사를 차릴 때뿐만 아니라,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도 무척 유익하다.

현장이 어떤 분위기이고, 관객들이 어느 포인트에서 어떤 호응을 하는지, 가수들이 어떤 부분을 힘들어하는지, 현장에 따라 음악이 어떻게 들리는지.

직접 발로 뛰며 피부로 느껴 봐야 음악을 만들 때도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도 아티스트들 현장에 자주 따라다녀야겠어.’


예를 들면, 유지현의 콘서트라거나, 유지현의 해외 투어라거나, 유지현의 광고 촬영, 유지현의 화보 촬영, 유지현의 예능 촬영, 유지현의 팬미팅, 유지현의···.


몹시 건설적인 계획을 하며, 매니저들을 지켜보기 위해 막 대기실에서 나가려는 순간.

이정빈이 대뜸 물어 왔다.


“작곡가님, 저 연기해 보면 어떨 것 같아요?”


너무 뜬금없는 질문에 ‘현장’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싹 사라졌다.


“네? 연기요?”

“예전부터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젠 도전할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아서요.”


회귀 전에는 이런 이정빈의 배우 변신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없었다.


‘아니면 그냥 내가 몰랐을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곳에서 활동을 이어가다가 내가 죽은 뒤로 대배우가 됐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지금으로선 어떻게 될지 함부로 재단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여유가 생겨서 한다는 걸 보니, 그동안은 그룹의 사정이 어려워서 연기를 하기엔 조금 힘들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무명 그룹 같은 경우엔 멤버의 배우 활동으로 그룹의 인지도를 띄우기도 하는데.


‘노바는 인지도가 문제인 건 아니었으니까.’


잘된 그룹 같은 경우엔 뭐 아무거나 해도 되니까 상관없고.


나는 이정빈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매우 강력한 힘에 힘겹게 저항하면서.


‘···비주얼이 깡패긴 해.’


사실, 비주얼만 봐도 어느 정도 답은 나오는 법이다.

얼굴도 그렇고, 다른 것들도 그렇고, 여러모로 분위기가 자동으로 보정되지 않나.


‘강세영처럼 외모빨이랑 노래빨로 좋은 작품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심지어 인지도는 물론이고, 이젠 인기까지 많다.

게다가 메인 보컬인 만큼 발음과 발성은 말할 것도 없고, 아이돌인 만큼 몸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유연하겠지.

물론 연기할 땐 또 그런 장점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강점을 떠올리자면 그렇다는 거다.


“왜 대답이 없어요? 잘 안 될 것 같아요?”


이정빈의 물음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요?”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씨익 웃었다.

그리고 한켠에 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데.


“드라마 대본 두 개 중에 뭐 고를지 고민이거든요? 하나 골라서 열심히 연습하고 오디션 볼 생각인데, 일찍 오신 김에 둘 다 한 번 읽어 보실래요?”


그녀는 뭔가 더 말을 이으려고 했다.

이 중에 자신이 연습하려는 배역들은 어떤 건지, 이 작품은 어떤 점이 마음에 드는지. 뭐, 그런 말들을 하려는 거겠지.


그런데 대본을 본 순간, 그런 말들은 들을 필요조차 없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하나를 가리키며 즉답했다.


“이거요.”

“네?”

“이게 참 끌리네요? 딱 이거네. 제목부터가 느낌이 빡! 오지 않아요?”


내가 가리킨 대본의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사내 연애 금지랍니다 >


생각해 보니까.

나 그냥 배우 매니저 했으면 딸깍으로 개꿀 빨았을 것 같다.



***



팬들에게서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비밀의 발코니’의 무대가 막 끝났기 때문이다.


팬심이 가득하여 반짝이는 눈동자들, 그런 팬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노바 멤버들, 그리고 그 전체적인 광경을 보며 만족스레 웃는 스태프들과 나.

당분간 축제나 행사로 바쁘다니까, 앞으로도 노바 앞엔 이런 광경이 매일같이 펼쳐지겠지?


그런데 문득 걱정이 들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이정빈이 과연 오디션 준비를 잘할 수 있을까?

물론 신인 작가의 작품인 데다, 경쟁작들이 넘치는 OTT 작품이라 오디션이 그렇게 빡세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꽤 중요한 기회일 텐데.’


그때, 이정빈이 마이크를 들고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여러분, 제가 그렇게 좋아요?”

“꺄아아아!”

“정빈아! 너무 예뻐!”

“어후! 환호성이 너무 커! 너무! 하하!”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배우 망해도 아이돌로 잘하고 있는데 뭐.


나는 무대 옆에서 다른 스태프들과 함께 팬미팅을 지켜보다가 슬그머니 핸드폰을 들었다.

이 뜨거운 분위기에, 나도 덩달아 팬심이 찌릿찌릿 자극됐기 때문이다.


“크으. 진짜 미쳤다.”


정말 누구 최애인지, 티저 사진도 어쩜 이렇게 기가 막히게 예쁘고 귀여운 거지?

유지현은 홍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팬들 역시도 기대 만발이다.


이제서야 드디어 세상이 옳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보고 있는데도 왠지 등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지 않나.


그런데 그렇게 열중하며 보고 있던 그때, 뒤쪽에서 살짝 인기척이 났다.

돌아보니, 주정원이 내 뒤에 딱 붙어서 물끄러미 내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억! 뭐, 뭐예요? 팬미팅 중인데 여기 왜 내려와 있어요?”


황급히 무대 위를 보는데 아무도 없이 휑하다.


“잠깐 쉬는 타임이야.”

“아.”


쉬는 시간이 됐는지도 몰랐네.

너무 집중하며 빠져들어서.


“우리 팬미팅 재미없어?”

“······!”


주정원은 거의 항상 무표정이다. 얼굴을 봐도 속내를 알기 어려운 표정을 거의 상시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삐죽, 불퉁하게 입술이 튀어나오고, 눈은 살짝 찡그려져 있다.

누가 봐도 삐졌다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얼굴이다.


당황스럽네. 안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표정을 지으니까.


뭔가 귀한 걸 보는 것 같아서 눈을 뗄 수가 없는데, 그 와중에 또 귀엽기도 하고, 그만큼 크게 삐졌나 싶어서 가슴이 철렁이기도 한다.


문득 생각해보니 충분히 삐질 만하긴 했다.

영화감독이 직접 영화 시사회 초대권을 주고 맨 뒤에서 관객석을 관찰하고 있는데, 보라는 영화는 안 보고 핸드폰을 보고 있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지 않겠나.


‘어떻게 수습하지?’


쥐가 나도록 머리를 굴리던 그때.

주정원이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오며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우리도···.”

“네?”


그녀의 말끝이 흐려지더니, 눈동자가 여기저기 방황했다.

그리고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더니, 어렵게 말을 이었다.


“우리도··· 팬···.”

“···네?”

“아냐.”


뭔 말을 하려는 건지 도저히 못 알아먹겠어서 눈매를 좁히며 되물었는데, 그녀는 쌩하니 나를 지나쳐갔다.


‘···대체 뭐지?’


어리둥절하다. 무슨 말을 하려던 걸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말을 조합하며 추론해 봤다.


‘우리도 팬 있으니까 조금 잘나간다고 건방 떨지 마라.’라고 할 리는 없을 것 같고.

‘우리도 팬 해 주면 안 돼?’라고 말할 것 같지도 않다.


‘그 주정원 선배가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에이, 설마.’


아무튼 오리무중이라, 김세희를 대하는 것처럼 살짝 답답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후로 나는 핸드폰을 절대 꺼내지 않았다.

한 번 더 한눈을 팔았다가는.


‘진짜 건방 떨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몰라···.’


그렇게 집중하며 마저 지켜본 팬미팅이 다 끝나고, 회식 자리로 이어졌다.


“와아! 마셔!”

“크으! 쥑인다. 역시 팬들 만나고 먹는 맥주가 최고라니까.”

“···뭐 한 잔 정도는 나도.”


박성희와 이정빈, 김민혜가 맥주를 즐기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청량하고 이뻐 보이는지.

아, 이래서 맥주 광고에 예쁜 연예인을 쓰는구나 싶었다.


‘나도 딱 한 잔만 하고 싶은데···.’


저기에 껴서 같이 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격렬하게 치솟는다.


‘젠장! 성인 되려면 아직도 2년 하고도 한참이나 남았다니!’


회귀한 뒤로 입에도 못 댔는데, 유학 시절 펍에서 아스날을 응원하며 마셨던 맥주의 맛이 아직도 잊히질 않는다.


‘아, 그리워라···!’


마이클, 잭슨, 도널드, 트럼프, 다들 잘 지내지?

펍에서 같이 아스날을 응원하며 친해진 현지 친구들.

지금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지.


내가 몹시 절절한 눈빛으로 맥주를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자.

이런 나를 본 박성희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어! 작곡가님 맥주 보면서 입맛 다셔요! 술 먹고 싶나 봐요!”


그 말에, 모든 시선이 내 얼굴에 화살처럼 꽂히고.

이정빈은 내게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가소로운 듯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푸훕! 작곡가님, 청소년은 술 마시면 벌 받아요. 아시죠?”

“······.”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저, 애 취급하는 표정이랑 말투가 열 받아서.


“야아. 작곡가님한테 그러지 마아.”


김민혜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걸 간신히 참는 게 역력하게 보인다.


내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분해하니까, 다들 더 좋아하며 웃음이 터지고 아주 난리가 난다.

심지어, 언제나 내게 조심스럽게 대하던 스탭들마저도 귀엽다는 듯이 웃고 있지 않나.

젠장! 젠장!


그때, 주정원이 내 잔에 콜라를 따라주며 말했다.


“술은 사실 별로 맛도 없대. 우린 콜라 먹자. 콜라는 맛있어.”

“네···.”


그건 틀린 말이에요, 선배.

술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선배가 어려서 그 맛을 모르는 거예요.


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은데, 나는 블랙원 멤버들 사이에 낀 박재현처럼 마음껏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조용히 콜라만 마셨다.


“이모! 여기 맥주 하나만 더 주세요!”

“오늘 진짜 분위기 좋았다, 그치?”

“어후! 배불러. 나 과식했어. 어떡해?”


뒤풀이가 한창인 삼겹살집.

팬미팅이 매우 호응이 좋고 성공적이었기 때문인지, 다들 웃음과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한껏 들뜬 분위기 속에 있는 그때.


“어! 노바 광고다!”


누군가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TV를 향해 홱! 돌아갔다.

TV엔 노바가 찍은 광고가 나오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콜라다.


방금 전 일 때문일까, 모두의 시선이 다시 내게로 향했다.


‘이번에도 또 놀리겠구만.’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콜라를 한 모금 마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


어째서인지 아무도 놀리지 않는다.

그저, 모두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보고 있을 뿐이다.


“크으! 우리가 콜라 CF를 찍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

“데뷔 때 이후론 TV에 나오는 CF는 꿈도 못 꿨지.”

“맞아요. 그리고 오늘 ‘비밀의 발코니’ 반응이 제일 좋았어요. 응원법 소리 진짜 엄청 컸잖아요.”


그녀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말하더니, 김민혜가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차분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저희가 항상 작곡가님한테 감사해하는 거 알죠? 작곡가님 아니었으면, 저희 지금쯤 뭐 하고 있을지 상상도 안 가요. 저희들이 이렇게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건 다 작곡가님 덕분이에요.”


벌써 취했나? 이제 막 500잔 하나 먹었는데.

아까는 동생 대하듯이 놀리더니, 지금은 이렇게 진심을 담은 말을 들으니까 낯이 간지럽다.

여기서 뭐라고 답하기에도 민망해서 나는 그냥 작게 웃음만 짓고 말았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주정원도 말을 꺼냈다.


“앞으로 바쁠 거야.”

“알아요. 어제도 말했잖아요. 이제 행사 철이라 바쁘다고.”

“학교는 아마 기말고사 때나 갈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로 바빠요?”

“응. 그러니까···.”


주정원은 아까 팬미팅에서의 쉬는 시간 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공부할 때 힘들거나, 곡 만들다가 쉴 때 연락해도 돼. 아무 때나 괜찮아. 우리한테 이런 날이 온 건 다 네 덕이니까.”


자리에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입꼬리를 움찔움찔하던 이정빈이 “푸훕!”하고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주정원과 내 얼굴은 동시에 붉게 달아올랐다.

이정빈이 시원하게 터뜨리는 웃음이 어째 우리를 비웃는 것 같아서.


“꺄악! 작곡가님 얼굴 빨개지셨어!”

“어머! 진짜네?”

“작곡가님, 얼굴 터질 것 같아요! 어떡해! 귀여워!”


신체가 어려지니까 반응도 아주 소년이 따로 없었다.

제기랄.



***



OMG엔터의 연습생 월말평가.

연습실 안에는 신인개발팀을 비롯해, A&R팀, 팀장급 매니저들, 그리고 최 본부장까지 모여 있었다.

방금 막 연습생들의 무대가 모두 끝났지만, 공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 팀장님, 이게 끝입니까?”


최 본부장이 묻는 말에, 신인개발팀장은 목이 타는 듯 침을 삼키며 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친근한 아저씨 같은 푸근한 풍채.

최 본부장은 그 외모에 걸맞게 허허, 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황당해서 터뜨리는 헛웃음에 가까웠다.


“이야. 보컬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있을까? 이대로는 데뷔조고 뭐고 신인 걸그룹 계획 자체를 엎어야겠는데? 이참에 걸그룹 말고 보이그룹 프로젝트로 바꿉시다. 응?”


마지막 순서로 무대를 꾸린 연습생들은 오도 가도 못 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다른 연습생들 또한 훌쩍훌쩍 소리 죽이며 울음을 터뜨렸는데.

자리가 자리인 탓에, 그런 눈물에 동정을 보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 팀장님, 전에 메인 보컬로 키우려던 애 하나 있지 않았나요?”

“···신혜는 남자 연습생이랑 임신 사실이 있어서 저번 주에 둘 다 방출했습니다.”

“아! 맞다, 참. 그랬지? 걔가 걔였나?”


최 본부장은 쩝, 입맛을 다시며 여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메보급 없이도 그룹들 데뷔시키는 게 지금 추세긴 한데 말이에요. 흐음. 양 팀장님, 얘네들로 좋은 곡 만들어질 수 있으려나요?”


A&R 양 팀장은 찝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들 수는 있을 겁니다. 저희 작곡가님들도 능력이 좋으니까요. 말씀하신 대로 그런 그룹들이 적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데요?”

“···아시다시피, 그런 그룹들한테는 논란이 좀 따르긴 합니다. 잘나가다가도 콘서트나 라이브가 중요한 무대 한 번으로 역풍이 불기도 쉽고요.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건 좀 어려울 겁니다.”

“이야. 대중적인 인기로 먹고사는 걸그룹이 대중들한테 인기 얻기 힘들면 망한 거네요? 그쵸? 회사 이미지도 안 좋아질 거고. 이대로 데뷔시키면 돈 들여서 손해만 입게 되는 꼴이네요?”

“하하···.”

“역시 한 명이라도 노래로 딱! 중심을 받쳐 줘야 일정 사이즈 이상을 노릴 수 있는데 말이지. 우리 노바 애들이나 저쪽 하이즈처럼요.”


노바에는 메인 보컬 이정빈이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죽을 쒔지만··· 그걸 굳이 꼬집어 말하는 이는 없었다.

지금 잘되고 있으면 됐지.


최 본부장은 지켜보고 있는 연습생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에요. 방송이나 녹음에선 어찌저찌 속이고, 팬들이 흐린 눈으로 보면서 응원해준다고 해도, 결국 문제는 곪아서 터지기 마련이라고요. 딱 하나, 메보급이 없다는 이유로요.”

“네, 맞습니다.”


믿음직한 메보의 존재 하나만으로, 그룹의 안정성과 활동폭이 대폭 커질 수 있다.

그뿐이랴? 음악을 만들 때 라이브 무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야 하니, 메보급 보컬이 있으면 음악의 퀄리티도 높아진다.

더 인기를 끌고, 더 매출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근데 말이에요. 임정우 작곡가쯤 되면, 메보 없는 그룹에도 딱 맞는 곡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대중들한테 거부감 없고, 라이브 못해서 저런 곡이나 한다고 무시 받지 않으면서도, 좋은 음악들로요. 어때요, 여러분들이 보기엔? 그분이 우리 노바 애들도 빵! 띄워줬잖아요. 저쪽 박재현도 1위 만들었고요.”


연습생들의 귀가 쫑긋 세워지고, 고개가 번쩍 들렸다.

설마, 그 사람이 이번 데뷔 그룹의 프로듀서를 맡게 되는 건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엔 그와 같은 화선예고를 다니고 있는 이들도 많다.

아예 말을 붙여 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몇 마디 인사 정도만 나누고 친해지지 못했을 뿐.


아무튼 최 본부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뭐, 그분이라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메보 없이도 그룹의 색깔을 안정적으로 잡아주실 수도 있겠죠.”

“워낙 마법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라···.”


마법 같은 일.

그 표현이 더할 나위 없이 적절했다.


음악을 워낙 잘 만들기도 하지만, 그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곡을 뺏길 뻔한 노바에게 다시 곡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음악적으로 누구도 간섭할 수 없던 비로의 정규앨범 프로듀서가 되기도 했지 않나.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들로서는 매우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보면 심지어 안목도 엄청나다.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작곡가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활동을 마쳐야만 했던 유지현의 슴슴한 발라드의 데뷔곡, <울지 않을게요(Cry Cry)>를 듣고 일찌감치 유지현의 팬이 된 거 아닌가.

데뷔 무대 때 혼자서 응원법을 우렁차게 외친 건, 이미 사내에 쫙 퍼진 유명한 일화다.

심지어 녹음 비하인드 영상으로 썰이 올라오기도 해서 대중들도 알게 됐을 정도다.


“그분이라면··· 저희도 못 보는 연습생들의 잠재력을 발견해서 마법을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르죠.”


연습생들의 눈에서 희망이 번뜩였다.

허나, 최 본부장은 여전히 펜을 딸깍거리며 침음만 흘렸다.


“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최 본부장은 이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말할 거 있나? 없죠? 그럼 여기까지 합시다. 평가는 의미가 없어, 지금은.”


서서히 피어오르던 연습생들의 희망을 대번에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최 본부장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혼잣말하듯이 다 들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그분이 역시 보물이긴 하구만? 그래도 메보급 하나 있으면 훨씬 더 좋긴 할 텐데 말이야. 어디 비주얼 되고, 매력 넘치는 메보급 보컬 하나 안 떨어지나? 허허.”



작가의말

총 글자수 9,277 자.

고봉밥으로 담았습니다.

+

namake님 1000골드 용돈 감사합니다!

스피또 사는 데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7 좀 금사빠거든요 NEW +12 16시간 전 6,677 250 17쪽
46 원대한 꿈 +12 24.09.17 10,258 319 19쪽
» 그분이 역시 보물이긴 하구만? +21 24.09.16 12,070 328 20쪽
44 연극영화과 1학년 강세영이라고 합니다. 가 보겠습니다. +14 24.09.15 12,758 339 16쪽
43 재현이는 아무 잘못 없어요 +29 24.09.14 13,710 405 16쪽
42 이 재미지 +29 24.09.13 14,062 439 19쪽
41 진짜 모르겠네···. +24 24.09.12 14,682 392 15쪽
40 ······너였구나? +20 24.09.11 15,148 368 14쪽
39 금시계, 금목걸이, Cash(검은) +23 24.09.10 15,411 372 15쪽
38 회사를 차리라는 소린가? +13 24.09.09 15,872 384 18쪽
37 너 목······ 갈라졌어. +33 24.09.08 16,156 394 18쪽
36 [ 나의 천재 PD ] +23 24.09.07 16,105 450 13쪽
35 진짜 문제와 더더욱 큰 문제 +12 24.09.06 16,808 363 18쪽
34 아름다운 구너들의 밤 +11 24.09.05 16,899 384 14쪽
33 혹시 방송에 얼굴 나와도 되나요? +15 24.09.04 16,942 379 14쪽
32 <비밀의 발코니> +15 24.09.03 17,339 346 14쪽
31 R&B계의 거물 +16 24.09.02 17,813 362 16쪽
30 제발 저희 버리지만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14 24.09.01 18,029 363 15쪽
29 이거 완전 미친 새끼 아니야! +15 24.08.31 18,075 388 13쪽
28 그 곡이면 달랐을 수도 있었는데 +16 24.08.30 17,996 390 15쪽
27 나만이 알고 있는 우리들의 멜로디 +15 24.08.29 18,237 399 14쪽
26 <Dancing In The Breeze> +11 24.08.28 18,514 392 15쪽
25 내 고백을 차버린 남자가 너무 잘나감 +10 24.08.27 19,289 374 19쪽
24 이걸 작곡한 애가 진짜 천재거든요 +9 24.08.26 18,851 387 13쪽
23 <Top Of Top> +13 24.08.25 19,109 362 15쪽
22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낭만이 있어 +14 24.08.24 19,051 358 15쪽
21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1 24.08.24 19,513 348 16쪽
20 원하는 게 있으면 투쟁하여 쟁취하라 +11 24.08.23 19,722 346 15쪽
19 투자에 대한 확신을. +18 24.08.22 19,872 365 15쪽
18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싫다 이거지 +21 24.08.21 20,060 349 13쪽
17 설마 진짜 그 엘라겠어? +9 24.08.20 20,422 388 13쪽
16 재회 +12 24.08.19 20,500 394 12쪽
15 실리보단 신의 +23 24.08.18 20,730 383 15쪽
14 유지현은 대체 왜 저런대? +11 24.08.17 20,885 380 12쪽
13 강동 6주까지 되찾은 서희처럼 +12 24.08.16 21,065 391 13쪽
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21,042 412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9 24.08.14 21,503 391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9 24.08.13 21,781 400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2,237 389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2,438 397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2,773 398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3,394 396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4,052 423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9 24.08.07 24,555 454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5,804 465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4 24.08.06 28,487 461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33 24.08.06 33,794 557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