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어 천재작곡가의 특별한 덕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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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하이
작품등록일 :
2024.08.06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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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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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대한 꿈

DUMMY

나는 프로듀싱 앨범 제작을 잠시 중단했다.

블랙원의 곡은 녹음까지 완벽하게 끝내서, 프로듀싱 앨범 말고는 딱히 작곡할 만한 게 없는데도 그렇다.


중단을 결정하는 데에 망설임은 없었다.

프로듀싱 앨범을 만드는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이건 지금이 아니면 놓쳐 버리거든.’


나는 마스크와 모자를 쓴 채로 주변을 둘러봤다.


“와, 떨려. 공개방송 온 거 이번이 처음이야.”

“근데 공개홀 공기가 왜 이렇게 탁해? 지현이 여기서 노래 부르다가 목 안 좋아지면 어쩌려고.”

“지현이 실물 보는 게 대체 얼마 만이야. 하아. 심장 터질 것 같아.”

“세 번쯤 무대 해주면 좋겠는데. 그것도 운빨이라며? 한 번에 끝날 때도 있고, 여러 번 할 때도 있고.”


선공개곡, ‘I’m In My Bed’가 마침내 공개됐다.

그러니 내가 모든 걸 다 제치고 이곳에 온 건, 자연의 섭리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 볼 수 있지.


‘차트 순위는 아직 10위인가?’


[10. I’m In My Bed – 유지현]


대형 아이돌들이 연달아 컴백을 한 탓이다.

가뜩이나 차트가 콘크리트화됐는데, 이걸 뚫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


‘유지현이 아니라면 말이지.’


그때도 처음엔 이랬거든.

회귀 전에도 이 곡은 콘크리트를 무지막지한 기세로 천원 돌파하며 결국 1위를 차지했다.

이전의 1위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대박이 터진 것이다.


‘그리고 이걸 몇 주간 유지했지.’


덕분에 대중들의 머릿속에 완전히 각인될 수 있었다.

유지현은 연달아 컴백한 대형 아이돌들을 제칠 만큼.

명실상부한 슈퍼스타가 되었다는 것을.


그때, 팬들 중 누군가 내 눈을 지그시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의아한 눈빛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헉!’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설마 날 알아본 건가? 모자에 마스크까지 썼는데?’


현재 나는 유지현 팬들 사이에서 미묘하고 애매모호 한 위치에 있었다.

유지현에게 좋은 곡을 주니까 아군인 건 분명한데, 데뷔 무대 때 나 혼자 응원했다는 것에 질투를 하기도 한다.


‘근데 이건 진짜 억울하네? 그때 공방에 안 온 건 자기들 잘못이지. 왜 나한테 화살을 돌리냐고···.’


아무튼, 거기다 녹음 비하인드에서도 아주 친밀해 보이기까지 했으니, 나는 팬들에게 경계 대상임과 동시에 조력자 포지션이 되었다.

당장 도움을 줘서 꿀떡꿀떡 맛있게 받아먹긴 하지만, 언젠가 조질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야 할 놈 취급을 한다는 거다.

마치 실눈캐. 마치 흑막캐. 이치마루 긴이 된 듯한 기분이다. 내 대의도 모르고 말이지.


내가 고개를 돌렸는데도, 놈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자세히 살피려 들었다.


“저기 혹시-“


그때, 텅- 텅- 울리는 철계단 오르는 소리.

곧장 팬들의 비명과 환호가 뒤따랐다.


“왔다!”

“꺄아아아아아!”

“지현아!”

“언니이이이!”


유지현의 등장에, 나 역시 정신을 잃은 듯 소리쳤다.


“지현아아아아! 나 죽어! 나 살려! 으아아아!”


그리고 그날 밤.

인터넷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유지현 공방에서 임정우 작곡가 응원법 직관한 썰 푼다]

「마스크랑 모자 쓰고 오면 내가 못 알아볼 줄 알았냐?

근데 얜 진짜 찐팬이 맞다. 솔직히 작곡가도 비즈니스하는 사람인데, 다른 곡은 좀 덜 되길 바라고 자기 곡만 잘되길 바라지 않겠음?

근데 얘는 그런 거 없다. 더블 타이틀이라서 경쟁 곡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진짜 개열심히 응원하더라. 지현이가 1호팬이라고 하면서 우렁차게 응원했다는 썰, 풀 만하다. 단독 1대1 무대··· 진짜 개부럽다. 난 그때 왜 안 갔지?

아무튼 넌 내가 인정한다. 대신 앞으로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면··· 아니, 그래도 ‘영원한 메아리’가 좋으면 봐준다. 앞으로도 좋은 곡 많이 써줘라. 대신 곡만 써라. 허튼 생각하면 그땐 나도 깡패가 되는 거야.」


-ㄹㅇ성덕 그 자체···.

-아니, 다른 건 그렇다 쳐도 1대1 데뷔 무대는 진짜 말 안 됨. 어떻게 한 거냐?

-ㅋㅋㅋㅋ그 무대 직캠 조회수 개높음ㅋㅋㅋㅋㅋ 응원 목소리 진짜 졸라 크긴 하더라ㅋㅋㅋ

-얜 근데 이쯤 됐는데도 아직도 공방 뜀? 성덕 된 지 오랜데 대체 공방은 왜 뛰는 거임???

└그는 진짜니까···.

-나도 봤음;; 보통 아니더라. 솔직히 위압감 느꼈음···.



***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그리고 그 말인즉슨, 오늘 ‘영원한 메아리’를 비롯해 다른 수록곡 2곡까지 모두 공개가 된다는 뜻이다.


[1. I’m In My Bed – 유지현]


유지현의 ‘I’m In My Bed’가 마침내 단단한 콘크리트를 뚫고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일까.

학교에 도착하기도 전부터 나를 알아보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시선에 묘한 기대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I’m In My Bed’랑 더블 타이틀이니, 오늘 공개될 내 곡도 그 정도로 좋을 거라고 짐작하는 모양이지?

예전엔 질투와 시기심이 깔린 시선도 종종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호기심과 동경만 담겨 있다.

새삼스레 질투를 하기엔 내가 이미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버린 탓이겠지.


“저기.”

“네?”


등굣길,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굴이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는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명찰을 보니 2학년 선배다.

이름은 정선혜.


그런데 중요한 간 그게 아니다.

예뻤다.

이런 사람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다니? 원래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확실하게 뇌리에 남기 마련인데. 그런 사람들만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면 말이다.


정선혜는 잠시 망설이며 쭈뼛거리더니,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 혹시 말이에요.”


존댓말을 한다. 2학년인데.

여기서 딱 촉이 왔다.


“연습생이에요? OMG 소속?”

“아! 네! 전에 로비에서 애들이랑 같이 한 번 인사드렸었는데, 혹시 기억하세요?”


대번에 반색하는데, 기억 못 한다.

그리고 기억 못 하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예쁘고 잘생긴 이들끼리 모여 있을 때 한 번 스치듯이 본 것뿐이라 하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나한테 관심 있어서 온 건 아닐 테고.


“아, 그게요···. 이제 걸그룹 데뷔조 뽑으려고 하거든요. 그거 혹시 작곡가님한테 언질 있었어요? 그냥··· 맡으실 의향이 있는지 조금 궁금해서요. 작곡가님이 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정선혜 선배는 눈을 굴리며 더듬더듬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그런데 내가 데뷔조 프로젝트를?

뭐, 지나가다 이런 소식을 듣긴 했는데, 나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


‘딱히 언질 같은 것도 없었고.’


물론 나한테 맡긴다면 생각은 한번 해 볼 것 같긴 하다.


‘나중에 내 그룹을 만들 때를 대비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좋겠지.’


“아뇨. 딱히 언질은 없었어요. 지금은 좀 바쁘기도 하고요.”


에둘러 거절을 표현했다.

당장은 프로듀싱 앨범이 우선이거든.


‘프로듀싱 앨범이 다 만들어진 뒤라면 모를까.’


이 앨범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내 머릿속에만 있는 나만의 유지현을 하루 빨리 현실로 끄집어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아···. 네. 알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정선혜는 시무룩한 얼굴로 꾸벅, 고개 숙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그 순간, 몇 걸음 뒤에서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강세영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담담하게 인사를 건네 온다.


“안녕?”

“···그래, 안녕.”

“······.”

“······.”

“너 유명하더라?”

“어. 좀 그런 편이야.”


신호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처럼 힘차고 씩씩한 발걸음으로 성큼성큼 멀어졌다.


‘···우리 대화하고 있던 거 아니었나?’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닌데, 그렇게 정상도 아닌 듯했다.



***



자정이 다가오고 있는 어둑한 밤.

하이즈의 김세희는 제 방 책상에 앉아 달달- 다리를 떨어댔다.


[11:58 PM]

시계가 자정을 향해갈수록 점점 다리의 떨림은 심해졌고.


[00:00 AM]

마침내, 시계가 자정을 알리자 그녀의 다리 떨림이 뚝, 멎었다.


김세희는 IA엔터에서 임정우가 블랙원에게 준 곡을 들은 이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완성된 음악을 듣고 느낀 충격도 충격이지만.

당시 소하윤의 표정과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도는 탓이다.


‘만약, 시험한 게 아니라면? 신두한이 나서면서 영감을 받은 거라면? 그냥 단지, 우리 간절함이 부족했던 탓 아닐까?’


임정우가 우리 곡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어떤 곡이 나왔을까?

재능 있는 작곡가가 걔만 있는 것도 아니니, 눈 밖에 났다고 해도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지금까지도 잘나가고 있으니, 딱히 미련을 갖거나 크게 후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다고 하기엔··· 걔는 좀 더 특별하긴 한 것 같기도 하고···.’


임정우는 분명히 다른 무언가가 있어 보이긴 했다.

그가 걸어온 길, 만들어낸 곡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점점 더 널리 알려지는 그 모든 것들이 그를 더욱 특별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일단 보자.”


결국 그녀는 한숨을 쉬며 태블릿을 집어 들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손가락은 망설임 없이 유튜브를 열고, ‘유지현’을 검색했다.


그녀는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임정우가 만든 유지현의 곡이 듣고 싶었다.

마치 그 곡이 자신이 지금 느끼는 이 복잡한 감정의 해답을 알려줄 것만 같아서.


[ 유지현 ‘영원한 메아리’ MV ]


김세희는 아쉬운 마음을 애써 삼키며 영상을 클릭했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피아노의 잔잔한 아르페지오가 부드럽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바람에 실려 떠다니는 가느다란 실처럼, 부드러운 음 하나하나가 서서히 짜여져 나갔다.


‘이런 느낌이구나.’


노바의 ‘비밀의 발코니’, 박재현의 ‘Top Of Top’, 그리고 블랙원에게 준 곡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는 차분하게, 서정적인 분위기로 시작됐다.


지금 김세희에겐 유지현의 실력이나, 뮤비의 내용 같은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임정우의 음악.

그가 만들어낸 선율이 더 큰 관심을 끌 뿐이었다.


「깊은 어둠 속에서 날 부르던 너.

사라질 줄 알았던 그 기억들이 내 안에 피어올라.」


유지현의 목소리가 차분하면서도 깊이감 있는 피아노 선율과 완벽히 어우러지며, 하나의 악기처럼 들렸다.


‘이건 임정우가 의도한 거겠지.’


서서히 스트링 섹션이 피아노의 뒤를 따라오고, 현악기의 깊고 풍성한 울림이 더해지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높아지며, 무언가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 스며들었다.


「차가운 바람 속에 남겨진 너와 나의 흔적들.

이제 다시 시작돼. Endlessly echoing, Never fading away.」


프리 코러스로 넘어가자, 드럼이 아주 미세하게 바닥을 치며, 조금씩 고조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마침내, 첫 번째 코러스가 터져 나왔다.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이 좀 더 소리를 키우며 짙어지는 곳에서, 현악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널 찾으려 내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던 그 기억.

닿을 수 없을 거라 해도 영원히 이곳에 남아.」


그러나 피아노의 선율이 여전히 중심을 잡고 있는 탓인지, 아직까진 서정적이고 진중한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 텐션만 높이며 감정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임정우의 새로운 면모를 보는 느낌이다.


‘이런 곡도 만들 줄 알았네···.’


그것도 이렇게나 잘.


곡의 구성은 탄탄했다. 김세희는 그 탄탄함이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 같은 걸그룹과는 맞지 않는 곡임에도, 곡에 집중하는 김세희의 가슴은 조금씩 타들어 갔다.

아쉬움 때문이다. 이렇게 다양한 색깔을 구사할 수 있는 작곡가가 우리 곡을 만들어준다면 어떤 곡이 나왔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다. 지금 업계에서 심상치 않은 두각을 나타내며, 심지어 활동량도 왕성한 이런 작곡가의 눈 밖에 났으니, 경쟁자들에게 조금씩 밀려 뒤쳐지지 않을까 하는.


점차 복잡한 감정에 휘말리는 사이.

곡은 어느덧 마지막 브릿지에 이르렀다.


「우리는 재에서 피어올라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흩어진 빛이 되어 가슴 속에 남아 영원히 울려 퍼지는 메아리.」


서서히 빌드업되던 소리가 갑자기 차분하게 가라앉고, 조용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유지현의 맑고 투명한 보컬만이 흐르고 있으니.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여기는 곡의 감정을 가장 집중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구간이며, 그럼으로써 마지막 코러스를 더욱 빛나게 할 거라는 걸.


그리고 역시나 예상대로, 처음부터 차곡차곡 빌드업하며 쌓은 감정선이 한꺼번에 터져나갔다.


「우리가 하나였던 그 순간이 이젠 영원 속에 울려 퍼져.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널 향한 나의 마음을 남겨.」


현악기와 피아노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곡의 전체적인 스케일이 극대화됐고.

유지현의 목소리는 그 중심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며 고음으로 높게 치솟았다.


“···하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전율 같은 거 느끼고 싶지 않은데.

몸은 그런 의지를 배반했다.


커질 대로 커진 아쉬움을 흩트리고 싶은 마음에, 무심코 머리를 감싸 쥐려고 손을 들었는데.

손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감동 때문이 아니라, 일련의 일들로 감정이 너무 복잡해서.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최고의 기회를 버리고 어렵게 돌아가게 생겨서 그렇다.


위치가 위치인 만큼 임정우가 없더라도 망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작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곡이 끝나기까지 10초를 남겨뒀을 때.

마지막 브릿지처럼 소리가 한꺼번에 죽으며, 유지현의 감정 짙은 한 소절이 읊조리듯 흘러나왔다.


「흩어져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

시간을 넘어 너에게 닿기를.」


리버브를 받은 유지현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지며 여운을 남기고.

곡은 그렇게 천천히 끝을 맺었다.


방 안에는 짙은 적막이 흘렀다.

영상이 끝난 태블릿 화면에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김세희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룹의 밝은 미래에 있어 절대 놓치면 안 됐을.

매우 중요한 기회를 놓쳐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



-임정우! 너 내가 봐준다. 지렸다. 미쳤다.

└킹갓임정우 작곡가님이 네 친구냐? 킹갓정우님, 그간 실례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ㅋㅋㅋㅋ노래 진짜 개좋아 어떡해ㅋㅋㅋㅋ 울면서 웃고 있다 지금ㅋㅋㅋ

-임정우, 그는 신인가?


나는 신이 되었다.

유지현을 찬양하는 댓글이 수백 배는 더 많았지만, 나에 대한 댓글도 이렇게 있긴 했다.


자정이 훌쩍 넘은 고요한 새벽.

아니, 고요하진 않구나?


“우리 아들이 진짜 천재긴 해!”

“어머! 내 아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음악이 너무 듣기 좋네. 근데··· 킹갓정우···? 우리 아들 이름은 임정운데?”


안방에서 들려오는 들뜬 목소리.

가게를 닫고 퇴근하신 부모님이 아주 기뻐하고 계신다.


내가 자고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도, 목청이 저렇게나 크시다.

부모님들은 원래 이렇게 제 자식들이 한 번 자면 건물이 무너져도 안 일어나는 줄 아시나?


아무튼.

나는 염원한 바를 이루었다.

드디어 내가 만든 곡을 유지현이 발매한 것이다.


가슴이 충만하게 채워지고, 불덩이를 집어삼킨 것처럼 온몸이 뜨겁다.


한데.

그 너머, 가슴 깊숙한 곳은 달랐다.

어째서인지, 갈증이 채워지긴커녕 더욱 강해져만 가는 느낌이다.


문득 우리 형이 떠올랐다.

회귀 전과 후를 통틀어, 우리 형이 나한테 잘해준 시기가 딱 한 번 있었는데.

내가 죽을 날짜를 받아 놓은 뒤가 그러했다.


그런 형 덕분에 유지현의 콘서트에 가서 그녀의 팬이 될 수 있었고, 형 덕분에 작곡을 배울 수 있게 됐지.

그런데 이렇게 잘해주는 시기의 형도 내게 싸늘한 조소를 보낸 적이 있었다.


‘형, 형이 작곡은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했잖아?’

‘그치. 작곡은 절대로 하는 게 아니야.’

‘그래도 한 번 시도라도 해 볼 걸 그랬어. 그럼 이런 행복을 조금 더 일찍 알게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만에 하나 나한테 재능이 있다면, 유지현한테 곡을 줄 수 있었을지도 모르잖아.’

‘응, 절대 안 돼. 뭐? 그렇게 꼬라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게 되겠냐? 유지현이 죠스로 보여?’


죠스는 형이었다.


아무튼 참 희한하지?

나는 불가능한 목표를 이뤄냈는데.

우리 형이 절대 안 될 거라며 호언장담하던 걸 이뤄냈는데.


도무지 만족이 되지 않는다.


내 욕심의 크기가 점차 커지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처음에는 유지현에게 한 곡이라도 주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곡을 한 번 주고 나니, 점점 더 많은 곡을 주고 싶어졌고.

그 뒤에는 내 프로듀싱을 앨범을 만들면서까지, 나만의 기획으로, 내가 상상한 유지현을 실현시키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젠.


“정규앨범··· 내가 담당할 수 있을까?”


이건 너무 원대한 꿈인가?

난 아직 신인인 데다, 그런 경험도 없지 않은가.

물론 비로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참여하긴 했지만, 중간부터 들어간 탓에 그 의미가 반쯤 희석되기도 했다.

그리고 유지현은 지금 슈퍼스타 반열에 오르고 있는 만큼, 회사는 그녀의 첫 번째 정규앨범에 아주 심혈을 기울이며, 보수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거다.


그럼 뭐, 방법이 없나?

생각하던 그때.

아침에 봤던 연습생의 말이 떠올랐다.


‘아, 그게요···. 이제 걸그룹 데뷔조 뽑으려고 하거든요. 그거 혹시 작곡가님한테 언질 있었어요? 그냥··· 맡으실 의향이 있는지 조금 궁금해서요. 작곡가님이 해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걸 성공하면 가능할지도?


“아니, 애초에 이것도 큰 프로젝트니까 나한테 맡기기 어렵겠구나?”


그냥 만들려던 프로듀싱 앨범이나 잘 만들어야겠다.


“이게 잘만 되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 같기는-“


‘응, 절대 안 돼. 뭐? 그렇게 꼬라봐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게 되겠냐? 유지현이 죠스로 보-’


“아이 씨!”


새벽 감성에 젖어 들려는데, 자꾸 형이 끼어들어 방해한다.

형이 돌아올 때가 거의 다 되어서 그런가 보다.

기말고사와 방학이 코앞으로 성큼 다가온 만큼, 형의 고등학교 졸업도 이제 곧이거든.


“···독립할까?”


같이 살기 싫은데.


옥탑방 작업실.

거기서 사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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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걸 작곡한 애가 진짜 천재거든요 +9 24.08.26 19,406 401 13쪽
23 <Top Of Top> +13 24.08.25 19,686 377 15쪽
22 확실히 어려서 그런가, 낭만이 있어 +15 24.08.24 19,624 371 15쪽
21 이 곡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22 24.08.24 20,107 361 16쪽
20 원하는 게 있으면 투쟁하여 쟁취하라 +12 24.08.23 20,306 357 15쪽
19 투자에 대한 확신을. +18 24.08.22 20,463 376 15쪽
18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싫다 이거지 +21 24.08.21 20,636 362 13쪽
17 설마 진짜 그 엘라겠어? +9 24.08.20 21,014 404 13쪽
16 재회 +13 24.08.19 21,093 409 12쪽
15 실리보단 신의 +23 24.08.18 21,323 397 15쪽
14 유지현은 대체 왜 저런대? +11 24.08.17 21,494 395 12쪽
13 강동 6주까지 되찾은 서희처럼 +13 24.08.16 21,674 403 13쪽
12 누굴 고르는 게 더 이득일지는 명백하잖아 +14 24.08.15 21,655 427 13쪽
11 이거, 저희가 하고 싶은데 +19 24.08.14 22,120 404 16쪽
10 곡은 제대로 뽑히긴 했네 +10 24.08.13 22,403 414 12쪽
9 혹시 아스날 좋아하세요? +14 24.08.12 22,868 405 14쪽
8 혹시 직접 연주해도 될까요? +13 24.08.11 23,079 409 12쪽
7 그냥 잘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8 24.08.10 23,416 411 14쪽
6 그 바람막이 +18 24.08.09 24,065 409 15쪽
5 재혼으로 가자 +14 24.08.08 24,740 435 14쪽
4 화선예술고등학교 +19 24.08.07 25,252 467 12쪽
3 혹시... 제 팬이에요? +15 24.08.06 26,553 478 15쪽
2 하니까 되던데? +25 24.08.06 29,333 474 15쪽
1 스물여섯 임정우, 개 같이 부활 +34 24.08.06 34,805 57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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